새 단말기로 바꿔준다고? 하마터면 호갱될 뻔

미니멀리스트를 꿈꾸는 '호갱님'의 스마트폰 변경 체험기

등록 2018.03.12 08:08수정 2018.03.12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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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지난해 11월 3일 아이폰8 국내 출시 개통 행사에서 초청받은 고객들이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적게 소유하되, 소유한 물건에 대해 만족하며, 소비가 아닌 다른 것으로부터 진정한 삶의 행복을 느끼는 것. 이것이 내가 이해한 '미니멀 라이프'고, 내가 택한 삶의 형태이기도 하다. 자칭 미니멀리스트라고 명명하기엔 허술한 점이 많아 왠지 민망하지만, 한동안 이에 관한 책이 나올 때마다 훑어보며 "어? 나네?" 하며 알량한 자부심을 가지기도 했다.


시나브로 미니멀 라이프에 관심을 갖던 친구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다이어트 보조제를 사겠다고? 게다가 OO에서 나온 제품을? 잘 생각해 봐. 그 회사에서 나온 초콜릿, 과자들을 먹다가 살이 찐 건데, 다시 그 회사 제품으로 살을 빼겠다니 이건 그 회사만 남는 장사야. 군것질을 끊고, 나랑 밤마다 공원 한 바퀴 도는 건 어때?"

미니멀 라이프가 더 널리, 더 지속적으로 유지되길 바란다. 가볍게 물건을 구매한 대가로 순식간에 사라질 기쁨을 얻고, 청구서를 보며 지속가능한(!)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이 소비 아닌 다른 즐거움을 찾게 되는 것을 보는 것도 행복하고, 때로 '궁상'이라고 눈 흘김 받던 나의 라이프스타일이 미니멀 라이프라는 괜찮은 이름도 얻게 되었으니 금상첨화다.

이런 나의 소비에 대한 자부심이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게 된 일이 있었으니, 바로 스마트폰 때문이다. 나는 대체 왜 단말기 체인지업 서비스에 가입했을까.

통신사 단말기 체인지업 서비스는 1년(혹은 그 이상) 뒤 새로운 단말기를 구입할 때 쓰던 단말기를 반납하면, 반납한 단말기의 잔여 할부금을 소멸시켜 주는 제도다. 언뜻 들으면 새로운 단말기를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노(NO). 그럴 리가 없다.


체인지업 서비스의 효력은 사용하던 단말기를 반납하고, 새로운 단말기를 구입할 때 성립한다. 신형 단말기에 대한 소비 욕구를 증가시키기 위한 제도라고 봐도 내 오해는 아닐 테다. 결국 새로운 단말기 대금에 대한 혜택은 전혀 없다.

애초에 나는 이 서비스를 잘못 이해했다. 새 단말기로 교체하며 기존 단말기를 반납하면, 새로운 단말기 할부금 절반을 소멸시켜 주는 것으로 오해한 것이다. 그래, 내가 아둔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오해한 탓에, "어머, 새 폰을 반값으로! 횡재네요, 그럼?"이라고 말하며 나는 멍청한 웃음을 흘리며 기뻐했다. 가입 당시, 대리점 직원이 나의 오해를 정말 몰랐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실수다. 복잡하게 말을 한다면, 저 말도 말이 되긴 하니까(구·신형 단말기 대금을 이중으로 납부하진 않아도 되니까).

아이폰X가 출시되고, 고민이 깊어졌다. 겨우 1년 사용한, 매우 멀쩡한 내 스마트폰을 교체하는 것은 이때껏 고집해온 나의 미니멀 라이프에 완전히 위배되는 일이다. 기존의 스마트폰도 3년 반을 사용했고, 배터리 문제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때까지 사용해왔던 나다.

그럼에도 슬금슬금, 소비 욕구가 발동했다. 그리고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이용하지 않을 거면 체인지업 서비스는 왜 가입해서 매월 꼬박꼬박 요금을 납부했어? 바보 같은 짓이야."

처음부터 이 제도는 내게 맞지 않았다. 가입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이쯤에서, 나는 그 서비스를 해지하는 것이 옳았다. 헛돈을 날렸지만 더 큰 헛된 소비는 하지 않게 되는 거니까. 하지만 나는, 그 한 번의 어리석음을 메우기 위해, 더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다. 바로 스마트폰을 교체하기로 한 것.

새 스마트폰을 손에 넣으며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용하던 스마트폰을 반납하면 그 단말기 대금이 무조건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단말기 상태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진다는 것. 등급에 따라서는 이미 반납한 단말기 대금 일부를 고객이 납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안내받은 바가 없었다.

뭔가 유쾌하지 않지만, 흘려 넘겼다. 겨우 1년 사용한 내 스마트폰은 사소한 흠집 하나 없이 아주, 매우 멀쩡하니까(다시 한 번 부끄러움이 몰려온다.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내가, 1년 사용한 멀쩡한 스마트폰을 버렸다니).

더 이상 아둔한 소비는 하지 않겠다는 나름의 굳은 결의로 새 스마트폰 기기값은 일시불로 결제했다. 할부라는 것 자체가 내 소비 생활을 혼란스럽게 하기 때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제껏 단말기 할부 수수료를 꼬박꼬박 내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모쪼록 확인해 보시길).

물론 이번엔 체인지업 서비스에 가입하지 않았다. 이제 나의 어리석은 소비는 교훈만을 남기고 끝나기를 바랐다. 앞으로 이 스마트폰을 오래오래 탈 없이 잘 사용하면 되는 거라고, 한 번쯤 실수도 해야 교훈도 얻는 것이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미 반납하여 내 손에 없는 단말기 대금 십여만 원이 두 달이나 더 청구되고 있었던 것이다.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고객센터 상담원은 단말기를 판매한 대리점 전화번호를 알려주며 직접 전화하라고 안내했다. 설마 책임 떠넘기기 '핑퐁'이 시작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섰다.

대리점 측은, 2월 중순께 단말기 보상 센터로부터 받은 문자가 없는지 물었다. 그 문자를 받고 내가 직접 대리점에 전화했어야 이전 단말기의 할부금이 수납처리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름 이상 지난 그 문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것이 부당하다는 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단말기 대금을 처리하는 과정 중 고객이 처리해야 할 업무가 있다면, 분명 미리 고지했어야만 한다.

애초에 듣도 보도 못한 내용을 들어 문제를 고객 책임으로 떠넘기는 태도에 기가 막혔다. 또한 이 처리 과정이 옳다고 생각지 않지만, 만일 내가 그 문자를 받았고, 그 문자에 대리점으로 전화해 업무를 처리하라는 내용이 있었다면 전화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런 내용이 명시되어 있냐고 묻자, 대리점에서는 말했다. 모른다, 내가 보내는 것이 아니니, 라고.

여기서 문제가 끝났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대리점은 아직 남아 있는 단말기 할부대금은 오늘 수납하지만, 이미 빠져나간 단말기 할부대금 십여 만원은 '포인트'로 줄 터이니, 다음에 단말기를 구입할 때 사용하라며 어이없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결국, 나는 애초에 불필요했던 열을 올리고, 포인트 대신 '선수납' 처리를 얻어냈다. 이 또한 잘 처리 될지 지켜봐야 하니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허탈할 뿐이다. 이 모든 과정을 왜 겪어야만 했는가.

온종일 진을 빼고, 몇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째는 소비에 관한 것이다. 기업은 결코 내 이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소비를 할 땐 두 번 세 번 확인할 일이다. 둘째는, 사과는 신속하게 해야 한다는 것.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나 또한 실수한다. 고로 실수한 쪽에서 제 실수를 인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기만 한다면, 대개의 사람들은 서로의 실수를 용인하고 이해할 자세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남의 탓으로 문제를 떠넘기지만 않는다면, 나는 이렇게 긴 기사를 쓰는 수고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나 깨나 명세서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 자동이체를 걸어놓으면 마음이 편하지만, 나 모르게 눈 먼 돈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이상은 근사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었던, 그러나 실상은 어수룩한 '호갱님'일 뿐인, 나의 스마트폰 기기 변경 체험 수기였다.
#스마트폰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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