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것

등록 2018.04.06 08:48수정 2018.04.06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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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키우기 전까지는 '작으면 강아지, 좀 크면 개'였다. 개를 싫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던 딱 중간 성향의 내가, 강아지를 데려오고 나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집안의 소파와 의자를 같이 쓰고, 심지어 이불도 같이 덮고, 나의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하루 8시간 정도를 강아지와 같이 보내게 된 것이다(같은 공간에 있기만 하는 시간은 계산하지 않았다). 많은 강아지 보호자들이 나와 비슷한 변화를 겪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이를 낳기 전과 후를 비교해 볼 때 후자의 내가 좀 더 어른스러워지고 인간다워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강아지를 키우는 것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 따라 엄마인 나의 관심사가 점점 확장되어 가듯,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내 강아지의 문제에서부터 동물 전반의 문제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내 아이와의 관계에서 늘 좋은 엄마는 아니듯, 강아지에게도 늘 훌륭한 보호자는 못 된다. 강아지를 서운하게 하기도 하고, 오랜 시간 외롭게 둘 때도 많다. 새끼 강아지일 때는 내 손등을 자꾸 물어서 여러 번 쥐어박기도 했다. 고기 굽는 냄새 가득한 애견 캠핑장에서 고문 아닌 고문을 한 적도 있다.

강아지에 대해 무지해서 안 해도 되는 고생을 시키기도 했다. 날이 추워서, 황사가 있어서, 미세먼지가 심해서, 너무 늦어서, 내가 피곤해서, 땅이 젖어서 등등 온갖 이유를 들어 산책을 빠뜨린 건 셀 수도 없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생이 통째로 내게로 오는 것이다"라는 시 구절이 있다. '강아지 한 마리 키우면서 지나친 의미 부여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냐 동물이냐를 떠나 하나의 생명을 만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감을 갖는 일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우리는 예쁜 새끼 강아지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만, 모견(母犬)이 살아온 시간과 경험은 물론 내게 오기 전까지 겪은 강아지로서의 짧은 삶도 함께 딸려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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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레인> ⓒ 상상의힘


'앤 M. 마틴'의 소설 <레인 레인>(Rain Reign)에 보면 자신의 개, '레인'을 원래의 가족에게 보내는 장면에서 로즈가 이렇게 말한다.


"저 사람들이 네 가족이야."
마침내 내가 말했다.
"저 사람들과 함께 집에 가게 될 거야."
레인은 나를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나는 두 팔로 레인을 감싸 안아(wrap/rap:톡톡 두드리다) 내 뺨에 닿는 부드러운 털을 느꼈다.
"사랑해. 레인, 사랑해."
내가 말했다.
레인은 나에게 몸을 기대었고, 우리는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그렇게 앉아 있었다.
- <레인 레인> 중에서

이 책은 반려동물에 대한 얘기만을 다룬 책은 아니지만, 3년 전 우리 집에 강아지가 처음 오던 즈음 읽었던 책이라 나에게는 초심을 떠올리게 한다. 이미 여러 번 읽었지만, 같이 사는 강아지를 살아있는 장난감 대하듯 하는 나를 발견할 때 고해성사를 하듯 다시 읽곤 한다(<레인 레인>은 우연히 가족이 되어 함께 살던 사랑하는 개, '레인'에게 원래의 가족을 되찾아 주려는, 야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12살 소녀, 로즈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만약 반려동물을 입양하는 제도가 좀 더 엄격해져서 강아지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도서를 10권 정도를 선정해 반드시 읽도록 하는 제도가 생긴다면, 그 10권 중에 한 권은 이 책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만의 공간이던 집에 어느 날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오고, 강아지의 물건이 몇 가지 생기고, 일정한 시간에 밥을 주고 산책도 하고 잠깐씩 놀아 준다고 해서 강아지와 '함께 산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새끼 때부터 꾸준히 긁어댄 나무 의자나 물어뜯긴 종이벽지를 강아지와의 추억이라고 생각하고, 집주인에게는 익숙하지만 어쩌다 오는 손님에겐 확연히 느껴지는 강아지의 냄새도 '우리 가족의 냄새'라고 생각하게 될 때, 화장실 입구를 차지한 배변패드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 살면서 생기는 강아지의 흔적과 동선들이 집의 일부처럼 편안하게 느껴질 때, 비로소 강아지와 '함께 산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반려동물 #레인레인 #앤 M. 마틴 #가족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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