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 - 퇴사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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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오카아야카(lijia01)등록 2018.04.06 17:05
계기 :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변화하도록 만드는 결정적인 원인이나 기회.

  햇수로 13년에 이르는 회사원이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지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굳이 집착할 만큼 번지르 한 타이틀은 아니었다 손 치더라도 2006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는 지금껏 모양은 모두 직사각형이었으되 그 크기와 재질이 서로 다른 명함을 몇 케이스씩 받고는 버리고 또 받고는 버리면서 살아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얄팍하고 각이 잡힌, 반질반질 윤이 나는 명함지갑에서 우아하게 명함을 한 장 스윽 뽑아서 건네는 커리어 우먼을 꿈꾸던 시절도 있었건만 현실의 나는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부담스러운 양의 명함을 받는 순간부터 내가 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이 엄청난 양의 명함을 다 사용하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고 꽤나 많은 양의 명함 더미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난 후에야 회사원 졸업을 결심했다.

"누구누구 씨가 이번에 그만둔다던데…?"
"걔 금수저야? 먹고 살만 한가 보네."

회사를 그만두고도 먹고 살 수 있는가.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나 역시 그동안 수없이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물었고 실제로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발목이 잡히곤 했다. 
매달 정기적으로 빠져나가는 월세, 보험료, 적금, 세금, 기타 생활비 명세를 주욱 적어 보고는 스치듯 안녕하는 나의 월급에 퇴사 욕구를 꼬깃꼬깃 접어야 했던 날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YOLO 하다 골로 간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로서는 대책 없는 일탈을 감당할 깜냥이 되지도 않을뿐더러, 지금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하는 문제까지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2018년 서른여섯의 나는 로또라도 맞았는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아니다.

또한, 회사를 그만둔다는 것이 앞으로 백수로 탱자탱자 놀고먹으며 살겠다는 뜻도 아니다.
거창한 계획은 없지만 청소 일을 하든 서빙을 하든 나의 노동력을 사주는 곳에서 소박한 생활을 자기 힘으로 꾸려나가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생각한다.

달라진 점이라면, 그동안의 노력으로 월세의 부담에서 벗어났다는 것.
그리고 인생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세운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비로소 이해했다는 것.
나는 '카타오카 아야카'이자 동시에 '이예가'이기도 하며 그런 나를 이제는 내가 아끼고 사랑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것 정도일까.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회사일이 바쁘고 고되다는 핑계로 저만치 제쳐두었던 중요한 문제.
덕분에 나는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에 따른 보상으로 매달 통장에는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와 그동안 화려하진 않더라도 그리 곤궁하지도 않은 생활을 누리고 살았지만 그것이 곧 행복에 비례하는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대인관계에 능하고 사교적인 타입도 아니었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회사라는 조직 안에서 인간관계를 맺을 때에는 일정한 선을 긋고 그 선을 넘지 않았다.
타인과의 다양한 관계 맺음에서 오는 피로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나 할까.
아마도 회사가 나에게 부여한 유능한 인재라는 평가에 걸맞도록 주어진 업무를 쳐 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무척이나 버거운 일이었던가 보다.
그 결과 회사원 이예가 씨는 가족을 챙기지 못했고, 진정으로 마음을 나눌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나는 변하지 않았지만 주변 상황은 끊임없이 변하고 사랑도 변했다.
스몰 웨딩을 하고 엘리베이터와 베란다와 욕조 딸린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이사한다는 계획은 일순간 백지화되었다.
한 달여를 근본 없는 108배와 눈물로 참회하는 흉내를 내던 어느 날 문득 나는 홀가분 해졌다.
부족한 나 자신과 화해하고 그동안의 내 인생과 앞으로의 내 인생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리고 행복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졌다.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인간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 선에서 본인의 주어진 상황에 맞는 선택을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 행복해질 권리를 찾는 것이 아닐까.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를 그만둬야만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그만둔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행복해지기 어려운 사람이었고, 그 결과 퇴사를 선택했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질 뿐이다.

앞으로 내가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그리고 그 경험이 나의 사고와 행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모르지만 행복하고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야겠다.
지금까지 내 인생의 순간순간을 함께 해 준 사람들과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선물해 준 사랑들, 그리고 앞으로의 인생에서 마주칠 소중한 인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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