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결정적 실수, 손자를 사지에 몰아넣다

[사극으로 역사읽기] TV조선 드라마 <대군-사랑을 그리다>

등록 2018.04.14 11:18수정 2018.04.14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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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공화국의 직전 왕조인 오스만투르크(오스만, 1299~1922)에는 냉혹하고 살벌한 제도가 있었다. 투르크족(돌궐족)이 세운 이 나라에서는 장남의 왕권 승계가 보장되지 않았다. 옛날 한국에서는 가급적 장남을 후계자로 세우려 했지만, 오스만에서는 장남의 특권이 인정되지 않았다.

오스만 군주는 술탄으로 불렸다. '통치자'나 '권위'를 뜻하는 아랍어에서 나온 용어라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왕자만 궁에 남고, 패배한 왕자는 저승으로 가야 했다. 적자생존 원리가 작동됐던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진원숙 계명대 교수의 <오스만제국: 지중해의 세 번째 패자>는 이렇게 정리했다.

"오스만제국에서는 새로운 술탄이 즉위할 경우, 제권(황제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황제의 형제들 및 그들의 남성 자손들을 살해하는 것이 관례였다. 따라서 연로한 술탄의 왕자들은 아버지가 죽을 경우에 살아남을 수 있는 대비책을 세워야 했다."

'대비책'이란 것은 자기 세력을 확대해 후계자 투쟁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임진왜란 3년 뒤인 1595년 즉위한 메흐메트 3세는 즉위하자마자 형제 19명을 모조리 죽였다. 이런 식으로 권력투쟁을 최소화하고 술탄의 입지를 보호했다.

'금빛 감옥'이 생기자 쿠데타가 발생한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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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트 3세. ⓒ 퍼블릭 도메인


그런데 1603년에 메흐메트 3세가 죽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새로 술탄이 된 아흐메트 1세는 만 13세였다. 그 밑으로 만 11세 된 무스타파가 있었다. 이때 왕실에서는 아흐메트가 어리고 자녀도 없는 상태에서 무스타파를 죽이면 왕실의 대통이 끊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우려는 기존 관행을 폐지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지은 <처음 읽는 터키사>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아흐메트에게 문제가 생길 경우 뒤를 계승할 왕자가 없을 것을 대비해 왕실은 무스타파를 죽이지 않고 살려두었다. 이때부터 술탄의 형제들을 죽이는 대신 '금빛 감옥'이라 불리는 '카페스'에 가두었다."


술탄이 되지 못한 왕자를 카페스에 연금하는 제도는 인도적으로 볼 때는 좋은 조치였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하기 힘든 측면이 있었다. 술탄 교체를 목표로 오스만에서 발생한 역대 정변 17건 중에서 14건이 그 후로 발생했다. 왕자들을 살려뒀더니 왕자의 난이 증가했던 것이다. 

'주상 못 된 왕자는 위험', 조선에도 그런 인식이

'왕이 못 된 왕자는 위험하다'라는 인식은 조선왕조에도 당연히 있었다. TV조선 드라마 <대군>의 배경이 된 세종·문종·단종·세조 때도 마찬가지다. 오스만 같은 관행은 없었지만, 후계자가 못 된 왕자를 위험시하는 시각은 있었다. 그래서 세자가 아닌 왕자의 정치적 입지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왕자는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세종의 차남인 수양대군과 3남인 안평대군은 특이한 편이다. 장남인 이향(문종)이 세자가 됐고 세자 시절부터 임금 역할을 했기 때문에, 정상적 경우라면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이 없어야 했다. 그런데 이들은 세력을 형성했고, 결국 이들 중 하나가 조카를 몰아내고 왕(세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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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군> 인물관계도. 수양대군·안평대군 표기는 필자의 가필. ⓒ TV조선


<대군>에서 은성대군(윤시윤 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안평대군은 극중에서는 정치적 야심이 전혀 없을 것 같은 순수한 이미지를 띠고 있지만, 실제의 안평대군은 인적 규모 면에서 형인 수양대군을 능가할 정도로 세력을 형성했다.

화가 안견에게 <몽유도원도> 창작의 영감을 제시해준 안평대군은 예술적 소질이 출중했다. 이 점도 그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데 일조했다. 수양·안평뿐 아니었다. 세종의 왕자들은 다른 시대 왕자들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이 강했다.

바로 이 점이 단종의 비극을 낳은 정치적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여느 시대에 비해 왕자들이 강했기에 이들 주변으로 세력이 모이고, 그런 세력들이 충돌했기에 일대 비극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양대군의 쿠데타를 그의 야심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왕자들이 강했던 당시의 정치 상황 역시 쿠데타를 조장했다는 관점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왕자들에 국정 참여시킨 세종

서울 광화문광장에 앉아 있는 세종은 신체적으로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실제의 세종은 그야말로 '종합병동'이라 할 만했다.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쉼 없이 일만 하고 살았기 때문이다.

세종한테는 두통·이질·당뇨·임질·안질·시력저하·어깨통증·가슴떨림·중풍·보행장애 등이 있었다. 각각의 질환이 다들 심각했다. 30대 후반부터는 등이 굳어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40대 중반부터는 어두운 데서 지팡이 없이 걷기 힘들었다. 죽기 1년 전인 53세부터는 언어장애도 겪었다.

이랬기 때문에 말년의 세종은 세자 이향에게 국정 운영을 맡겼다. 그런데 이때 세종이 취한 조치가 훗날 분란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문약한 장남을 다른 왕자들이 보조하도록 한 것이다. 세자 이외의 왕자들을 국정 운영에 참여시킨 것이다.

음력으로 세종 26년 2월 16일 치(양력 1444년 3월 15일 치) <세종실록>은, 한자 발음사전인 <고음운회거요>를 훈민정음으로 번역하는 문제와 관련하여 "동궁(세자)과 수양대군 이유, 안평대군 이용에게 그 일을 관장하도록 하여"라고 말한다.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장남을 도와 정부 사업에 공식 참여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 조치는 세종으로부터 나왔다. 다른 왕자들에게도 각각의 임무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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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동상. ⓒ 김종성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 이방원은 세종을 왕으로 앉힌 뒤 4년간 후견인 역할을 했다. 상왕이 된 태종은 군사권 같은 핵심 권한을 꽉 쥔 채, 세종에게 제왕 수업을 시켰다. 세종은 왕자 시절에 후계자 수업을 받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임금이 된 뒤에야 아버지한테 훈련을 받았다.

반면, 세종은 세자 이향에게 국정 운영을 맡기는 한편, 다른 왕자들이 국정에 참여해 장남을 돕도록 했다. 세종 자신이 아닌, 왕자들이 세자를 돕도록 했던 것이다. 이러면서 왕자들이 세력을 형성하는 특이한 양상이 출현한 것이다.

'우애'를 믿었지만, 결과는 참혹

태종과 세종의 차이는 각각 엄청나게 다른 결과로 이어졌다. 태종이 죽은 뒤에는 왕권이 안정된 데 반해, 세종이 죽은 뒤에는 그렇지 못했다. 세종이 죽은 지 불과 3년 만에 수양대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세종의 조치는 결과적으로 단종의 비극을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아버지 태종의 스타일을 지켜봤으면서도 세종이 다른 방식을 걸었던 원인 중 하나는 건강 문제였다. 자신을 열심히, 때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후견했던 아버지의 방식을 답습하자니, 세종한테는 그럴 만한 체력이 없었다. 말년의 세종은 자기 몸 건사하기도 바빴고, 그나마 틈만 나면 한글 창제에 공을 들여야 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세종의 성격을 들 수 있다. 아버지 태종은 형제들을 죽이고 왕권을 잡은 데 반해, 세종은 평화롭게 왕위에 올랐다. 세종은 자기 자리의 원래 주인이었던 큰형 양녕대군과도 평화롭게 지냈다. 그래서 아들들도 자기처럼 우애를 발휘하리라 믿었을 수도 있다. 태종은 인간을 믿지 않은 데 반해, 세종은 믿었던 것이다.

세종은 오스만 술탄들처럼 후계자 문제를 엄혹하게 처리하지 못했다. 조선시대의 여느 임금들에 비해서도 그랬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세종의 왕자들, 특히 수양대군과 안평대군이 세력을 급속히 확장했다. 이것은 세종의 손자가 만 열여섯 나이로 비극을 당하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대군 #세종 #수양대군 #안평대군 #후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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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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