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물타기', 올해도 성공했습니다

[5월이 두려운 사람들] 어린이날로 선제공격하는 아이들, '물타기'로 차단하다

등록 2018.05.04 08:32수정 2018.08.0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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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이자 유난히 행사가 많은 달이기도 합니다. 덩달아 신경 쓸 일, 돈 쓸 일이 몰려 있어 '5월이 부담스럽다'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5월이 두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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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계절 아름다운 5월 ⓒ 이희동


5월이다. 꽃이 피고 신록이 푸른 계절. 예전부터 난 그 5월의 싱그러움이 좋았다. 비록 올해는 날씨가 유난히도 갈팡질팡 하지만 그래도 창밖의 연두색 색감을 보면 마냥 좋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마음.

그런데 이런 5월을 나보다 더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렇다. 한 지붕 아래 같이 사는 우리 6살, 8살, 10살짜리 1, 2, 3호다. 아이들은 4월 말쯤부터 내게 계속 같은 질문을 해댔다.

"아빠, 이제 조금만 있으면 5월이다."
"응. 5월. 그런데 왜?"
"5월 5일은 어린이날이잖아. 크리스마스와 어린이날은 우리가 선물 받는 날. 아빠는 5월 5일에 우리한테 무슨 선물 해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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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서 삼남매 5월은 너희들의 날 ⓒ 이희동


내게 5월은 '잔인한' 달이다. 1일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즈음 어머니 생신까지. 이제는 거기에 더해 어린이 세 명의 선물까지 챙길 위기다. 어쩔 수 없다. 다른 질문으로 이 위기를 피할 수밖에.

"그런데 너희들 5월 5일 어린이날은 누가 만들었는지 알아?"
"방정환 선생님이지."
"우리 예전에 방정환 선생님 묘소 갔던 거 기억나? 아차산 옆에 망우산."
"기억나. 사진도 찍었잖아. 그런데 아빠는 무슨 선물 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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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정환 선생 묘소 구리 망우산 ⓒ 이희동


이런. 실패다. 어린이날 선물을 향한 아이들의 집념이 생각보다 크고 강하다. 다시 짐짓 모르는 척부터 하고 본다.

"어린이날에 아빠가 왜 선물을 줘야 해?"
"응? 어린이날이니까. 5월은 우리들 세상이잖아.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우리한테 선물해줘야 한다고요."

이유는 없다. 아니, 있을 리 없다. 노래 가사에 나오는 당위만 있을 뿐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참으로 듣기도 좋고 부르기도 신났던 노래이건만, 이제는 그 노래 듣기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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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진흙놀이 진흙놀이도 마냥 즐거운 나이 ⓒ 정가람


녀석들은 망설이는 아빠가 불안했는지, 친구들이 그네 부모님한테 어떤 선물들을 받기로 했다고 알려줬다. 그러더니 결국 그동안 자신이 갖고 싶었던 장난감을 끝도 없이 나열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스케이트가 달린 신발, 공룡인형, 무선 자동차 등.

아뿔싸. 대게가 TV 어린이 프로그램 중간에 나오는 광고에 등장한 장난감들이다. 아이들을 TV에 너무 많이 노출시킨 내 잘못인가.

특명, 어린이날 기습 차단 작전

아이들의 성화에 무의식적으로 아이들 선물을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 문득 억울해졌다. 돌이켜보면 난 어린이날에 부모님께 선물을 사달라고 한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선물은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에게 받는 것이었고, 어린이날 선물은 학교에서 받은 스케치북이나 색연필 등 학용품이 전부였다.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각 반의 어머니회에서 돈을 걷어 산 선물임을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난 부모님께 따로 선물을 받은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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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산들이와 복댕이 ⓒ 이희동


아이들에게 이렇게 쉽게 어린이날 선물을 내줄 수는 없다. 나는 많은 부모들이 쓰는 바로 그 작전을 걸었다.

"좋아. 그럼 너희들은 5월 8일 어버이날에 어떤 선물 해줄 거야?"
"어버이날? 우리는 편지 쓰고 카네이션 달아주지."
"그럼 우리도 너희들에게 어린이날이라고 편지 쓰고 꽃 줄게."
"엥?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디 있긴, 여기 있지. 불공평하잖아. 너희는 받고 싶은 선물 다 받고, 엄마, 아빠는 선물도 못 받고. 우리는 어버이날이라고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용돈도 드리잖아."

그제야 아이들은 심각해졌다. 아빠 말을 듣고 보니 무작정 어린이날 선물을 달라고 우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이들이 자란다는 것은 그만큼 돈의 소중함을 지각한다는 것이요, 가계의 형편도 챙길 줄 알게 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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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유관순 열사 생가에서 마냥 즐거운 어린이들 ⓒ 이희동


그렇다고 어린이날 선물을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어쩔 줄 몰라 아빠의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에게 아내가 그럴듯한 제안을 던진다.

"그럼 대신 여름에 꼭 필요한 것들을 선물로 사주는 건 어때?"
"뭔데?" 
"까꿍이는 여름에 입을 내의를 사고, 산들이와 복댕이는 여름에 신을 샌들을 사고."
"힝. 그건 어차피 어린이날 선물이 아니더라도 엄마가 사주는 거잖아."
"너희도 어버이날 선물 따로 준비하기 어렵다며. 대신 까꿍이는 거기에다가 외갓집에서 할머니가 더 이상 쓰지 않는 디카(디지털카메라)를 받아오고, 산들이와 복댕이는 다O소에 가서 너희들이 갖고 싶은 공룡 인형을 사자. 거기는 별로 안 비싸더라. 어때?"
"좋아."

다행이다. 더 줄다리기를 할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거기쯤에서 타협해주었다. 자신들이 생각해도 어린이날에 크리스마스와 같은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 듯했고, 어찌 보면 엄마, 아빠를 봐준 듯도 했다.

어차피 디카가 필요했던 첫째 까꿍이는 원하던 것을 얻었고, 둘째 산들이는 5월 말 생일에 다른 선물을 요구할 수 있었기에 크게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잘 모르는 막내 복댕이는 위의 누나와 형이 선물을 받는다고 하니까 덩달아 좋아했을 뿐,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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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홍대용과학관에서 역시 즐거운 아이들 ⓒ 이희동


아마도 이번 어린이날은 이렇게 또 무사히 지나갈 것 같다. 과연 내년에는 또 다른 핑곗거리를 만들 수 있을까? 어쩌면 그 핑곗거리를 만드는 지금이, 항상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아이들을 키우는 가장 행복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아. 어린이날이 너희들의 날이 아님을 알기 전까지 열심히 웃고 행복하자. 5월은 어쨌든 너희들이 주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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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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