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를 민주시민교육부로 바꾸겠습니다"

[제안] 전직 교사가 써 본 교육부 장관 가상 담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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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태(kwt58)등록 2018.05.25 11:09
"교육부를 민주시민교육부로 바꾸겠습니다"

                                   [제안] 전직 교사가 써 본 교육부 장관 가상 담화문

기자는 현 김상곤 교육부 장관에게 깊은 인상을 받은 적이 두 번 있었다. 처음은 2012년 8월 13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경기도교육청 주최로 열린 '아동청소년인권 실태 진단 및 법 제정을 위한 토론회' (" 경기교육청,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 시동 걸었다") 에 토론자로 참석했을 때였다.

그 당시 김 교육감은 인사말을 통해 "아동과 청소년의 문제는 교육과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범국가적인 문제로 아동과 청소년이 다양한 분야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반과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아이들이 존중받고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밑거름을 함께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토론회를 마련했다"고 밝히면서 아동청소년인권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었다.

3시간 이상 이어진 토론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심 있게 지켜보며 꼼꼼하게 메모하던 김상곤 전 교육감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토론자로 참석했던 기자는 "아동을 시민으로 인정하고 그들과 동등한 자격으로 어떤 문제든지 토론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고 함께 성취감과 공동체 의식을 느낄 수 있게 제도화 되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에 교육청이 집중해야 하며 서유럽 국가들처럼 시민교육을 전담하는 교과와 교과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기회는 경기도교육청 인정교과서인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의 집필을 끝내고 집필자들이 감사패를 교육감에게 전달할 때(" 민주시민' 교과서 쓴 교사들, 교육감에 감사패")였다
.
교과서 집필 과정은 처음부터 험난했다. 심의 과정에서 수많은 비판과 격렬한 논쟁들이 있었고, 심지어는 다음해 교육감 선거에서 이 교과서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정치적인 이유까지 난무했다. 교육감의 결단이 없었다면 민주시민 교과서는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집필자들은 교육감도 잘한 일이 있으면 교사들로부터 상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소박한 감사패를 전달했다. "교육감이 되고 나서 선생님들한테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소중하게 간직 하겠다"며 너무 좋아하던 교육감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교육부 장관에 대한 뭇매

그랬던 그가 교육부 장관이 되어 요즈음 여론의 뭇매를 흠씬 맞고 있다. 최근 국정지지율 조사에서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관계는 90%에 가까운 지지율을 얻고 있다. 그러나 경제·일자리·인사 등은 50%를 밑돌고 있고, 교육 분야는 30%도 안 된다고 한다. 대학입시개편 방안, 유치원·방과 후 영어 금지 등 공개하는 정책들마다 큰 반대에 부딪히면서 유예되거나 변경되는 진통을 겪고 있다.

'대학입시개편방안에 대한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이 발표되자 세간에서는 "장관이 교육에 대한 비전 제시가 전혀 없다", "의사 결정 장애가 있다", "목을 걸지 않고 어찌 개혁할 수 있겠나" 등의 비난이 들린다. 다른 한편에서는 "청와대가 6.13 지방선거 때까지 군기를 너무 잡는 것 아니냐", "청와대 눈치만 보고 있다", "너무 지방 선거만 의식하고 있다" 등과 같은 다양한 비판의 목소리들이 들린다. 심지어는 "6.13 지방선거 이후 교체대상 1순위"라는 말까지 떠돌고 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 김상곤 교육부 장관 취임식 2017년 7월 5일 취임식에서 “촛불 혁명에 담긴 국민의 열망을 안고”, “이행할 수 없는 백 가지 이유보다, 이행 가능한 단 한 개의 가능성을 찾고 또 찾아서”, “이제 우리 사회와 교육은 이러한 격렬한 슬픔과 분노를 풀어 줄 언어를 마련하고 들려주어야”, “헌법과 민주주의와 국민 주권의 의미와 가치를 학교와 교실에서 생생하게 구현해 나가는 일이 우리 교육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는 민주주의”를 언급했다. ⓒ 교육부


1993년 이후 역대 교육부 장관 평균 재임기간이 12개월이란다. 교육 관련 이슈에 대해서는 늘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평균 재임기간이 12개월이라면 어찌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세울 수 있을까? 또 장관이 바뀌고 인사 검증하고, 학부모 반발에 꼼짝 못하고, 교육부 관료들에 의해 '뺑뺑이 돌다'가 또 바뀌고 그렇게 개혁의 시간이 다 가 버릴 수도 있겠다. 적폐다. 교육기본법상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을 말씀하신 단군께서 보신다면 통탄해 마지않을 일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만약 기자가 교육부장관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떤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장관이 받고 있는 '교육의 비전 제시가 전혀 없다'는 비판에 대한 답을 만들어 보았다. 다음과 같은 담화문은 어떨까?

[교육부 개편에 따른 교육부 장관 가상 담화문]

교육인적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 다음은 '민주시민교육부'입니다.

존경하는 교육시민 여러분!

지난 5월 10일은 문재인 정부가 시작된 지 만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지금의 입시제도 개편 논란과 고교 학점제 논란, 유치원·방과후 영어 금지 논란 등으로 국정 지지도 조사에서 교육 분야에 대한 평가가 가장 낮게 나왔다는 이야기를 뼈아프게 듣고 있습니다. 교육부 장관이 "개혁의지나 철학이 없다" 또는 "분명한 철학과 전망을 제시하고 사회 구성원을 설득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교육 개혁의 철학이 무엇인지, 핵심 정책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교육부 조직을 장악하지 못했다" 등의 비판을 겸허한 마음으로 귀담아 듣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육부 장관은 6.13 지방선거 이후 교체 1순위다"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한번 임명한 장관은 큰 과오가 없는 한 대통령의 임기까지 같이 일할 것이라는 생각을 아직 바꾸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라를 나라답게"를 구호로 내세웠던 더불어 민주당은 19대 대선공약 '촛불혁명의 완성으로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이라는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이를 위해 '부정부패 없는 대한민국', '공정한 대한민국', '민주·인권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도 약속하였습니다. '적폐청산'이라는 측면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폐", "초·중등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 확대"를 약속했습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철폐는 이루어졌습니다. 초·중등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 확대 공약 이행방안은 우리 부의 민주시민교육과에서 검토하고 있습니다.

촛불 혁명에 담긴 국민의 열망을 말하는 장관 ‘촛불 항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들은 후일 ‘횃불 항쟁’로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 교육부


나라를 나라답지 못하게 하는 많은 적폐의 모습들을 그 동안 언론 보도를 통해  너무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여러 사회 세력(국정원, 기업, 언론, 교육, 정치인)의 적폐의 모습들이 차츰 들어나고 있습니다. 그 적폐의 뿌리가 너무 깊어 적폐를 해소하다가 문재인 정부의 집권 기간이 끝날 수 있다는 절망감이 들기도 합니다. 초·중등교육에서 민주시민교육을 확대하는 것은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초석을 다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비단 초·중등교육에서 뿐만 아니라 대학교육에서도 강조되어야 합니다. 교육이 올바른 의식을 가진 성숙한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라고 정의할 때, 그것은 이미 교육이 민주주의 사회의 토대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교육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헌법과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의 의미와 가치를 학교와 교실에서 생생하게 구현해 나가는 일이 우리 교육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학교와 교육 전 영역에 깊게 뿌리 내린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과감하게 걷어내겠다"고 약속 드렸습니다. 또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공존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교육생태계를 구축"하겠다고 말씀드린 바도 있습니다.

어린 시민들의 절규를 전하는 장관 대통령은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구호로 집권하였다. 학생들은 “이 나라가 너무 밉고 말도 안 된다. 나중에 다 바꿔버리겠다”고 촛불 시위 과정에서 외쳤다. 학생들이 바꿀 수 있도록 장관은 제도적 변화를 생각하고 있을까? ‘촛불 시위’로 풀리지 않는 문제는 후일 ‘횃불 시위’로 풀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 교육부


학교와 교육 영역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 영역에서 요즈음 언론을 통해 밝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적폐들을 들어낼 수 있는 학교 시민들을 육성하고 싶습니다. 칼 포퍼는 항상 민주주의 속에 적들도 함께 섞여 있어 적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적들이 나타나거나 기존의 적들이 잠복해 있는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그 민주주의의 적들을 물리칠 수 있는 '강한 자아'를 갖는 학교시민들을 육성하고 싶습니다.

강한 자아를 가진 민주시민이야말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적폐들이 반복되는 것을 차단할 확실한 방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인간을 교육으로 형성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누구도 외부로부터 "인간을 형성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교과 중심의 지식을 전달로만 이루어질 일도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학교시민들에게 올바른 의식이 싹틀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함께 학습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교육은 지금까지 드러난 기업이나 언론, 국가 권력기관, 교육 기관들이 저지른 적폐를 다시는 반복되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헌법 제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주권재민(主權在民)'에서 학생들은 '민(民)입니다. 학생들을 국민으로서, 주권을 소유하고 행사하는 주권자로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교육이념과 목적

1949년에 만들어진 교육법과 1997년에 제정된 교육기본법의 이념과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육법」 제1조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기본법」제2조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여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교육법」이 규정한 교육의 이념이나 목적이 50여년이 지났지만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1949년의「교육법」의 '공민의 자질'이 1997년의「교육기본법」에서는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로 좀 더 구체화되었습니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한다는 내용이 새로 추가 되었습니다. 이 두 법에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바, 다시 말해 교육 이념은 '홍익인간'입니다.

우리나라의 교육 이념 '홍익인간"은 70여 년간 법상으로는 전혀 바뀌지 않고 있습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이 교육이 추구해야 할 바라는 사실이 확실합니다. 이를 위해 인격의 도야,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해야 할 책임이 교육(공교육)에 있음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 책임은 학교의 책무이며, 교육감의 책무이며, 또 교육부장관의 책무입니다. 또한 대통령의 책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육기본법」2조는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국가의 교육이념이나 목적과는 무관하게 교육하게 되었습니다. "부자되세요"를 강조했던 7차 교육과정에서도,  "가만히 있으라"던 2009개정교육과정에서도 교육의 결과를 평가하는 방법이나 내용들에서 교육기본법 2조의 가치와 목적은 고려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학입시제도 논쟁에서도 '학교교육의 정상화', '민주시민교육의 실현' 등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목적인 '민주시민교육의 자질'이 수학능력시험의 평가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기존의 5지선다형 상대평가 방식은 국가교육이념과 목표에 어긋난다고 주장합니다. 국가교육이념과 목표에 적합한 선발 방식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국가교육 이념(민주시민교육)에 대한 적폐

법령위반이 개인적 차원뿐만 아니라 집단적인 차원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 과도한 교육열이 법령을 무시하게 만들었습니다. 과도한 경쟁과 교육열은 법령을 위반해서라도 자식들의 사회적 성공을 가져오면 된다는 의식을 낳았고 지금도 끈질기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부모들과 학교 시민들이 교육이념과 목적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자신의 지자체에 학교민주시민교육 조례가 있음에도 교육청이 신청한 민주시민교육 예산을 무지막지하게 삭감해 버리는 지방 위원, 학교 시민교육 관련 입법을 이런 저런 이유로 망설이는 국회의원, 과목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있는 사범대·교대 교수, 분과 학문이 교육 내용의 주요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변하는 교수, 입시 성적에만 함몰되어 있는 교사와 학교 관리자, 민주시민교육추진에 있어 사회적 합의가 없어 망설이고 근거 법령이 없어 망설이는 우리 교육부 관료도 모두 적폐 세력입니다.

내 자식 수능 시험 성적을 올리라고 학교를 압박하는 학부모, 지방 선거에서 집권 여당의 유불리를 따지며 교육부를 압박하고 있는 청와대의 참모, 학계의 동종교배에 빠져 담당 교과목의 학회에서 따돌림 당하기 싫어 비판의 논문 못 쓰는 교수는 모두 국가교육이념 추구와 목적 달성을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적폐란 '누누이 쌓여온 폐단'이란 뜻입니다. 1949년 교육법 발효 이래 70년간  '민주시민교육의 적폐'를 쌓아 왔습니다. 우리는 모두 크든 작든 '민주시민교육의 적폐 세력'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젊은 시민들과 학교 시민들의 모습

우리의 민주주의는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는 민주주의'라고 안타깝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드러나는 대기업들의 횡포와 그에 저항하기 시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기성세대로서 참 미안한 마음입니다. 최근 대한항공의 직원들이 가면을 쓴 채 주말마다 모이고 있습니다. 지난 해, 가면을 쓰지 않고도 당당하게 대통령이라는 최대 권력에 맞섰던 시민들이 기업 총수 퇴진을 외치는 자리에서는 자신을 감추는 가면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대놓고 비판할 수 있어도, 기업 총수에게는 그럴 수 없는 상황입니다. 광장의 거시권력보다 일상의 미시권력이 더 무서운 것입니다. 힘겹게 쟁취한 정치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사회민주화는 아직도 멀리에 있습니다.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정신분석학 박사가 이런 한국 상황에서 "동시대 최고 형태의 허무주의"를 발견한 것은 당연하다고 해야 할까요?

군사독재시대에는 물리적 폭력으로 국민의 생명을 위협했다면, 자본독재시대에는 심리적 압력으로 국민들의 생존을 걱정하게 합니다. 지난 시대는 외적 억압과 검열로 시민들을 통제했다면,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내적 공포와 자기검열로 시민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런 사회적 모순들에 대해 뚜렷한 자아의식을 가지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학교 시민들을 키우지 못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 학교는 학교 시민들의 '자아를 강화'시키는 데에 소홀했음이 사실입니다.

슬픔과 분노를 풀어 줄 언어를 마련하겠다는 장관 우리 사회와 교육은 세월호와 촛불 항쟁을 통해 지금 적폐 청산 과정에서 느낀 격렬한 슬픔과 분노를 풀어줄 언어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 교육부


"동시대 최고 형태의 허무주의"

주변의 많은 권위주의적 요인뿐만 아니라 이윤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에 의해서도 학생들의 자아는 약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민들에게 한 때는 "부자 되라"고 했고, 최근에는 "가만히 있으라"고 말했었습니다. 개인들이 저항해야만 겨우 살아남을 수 있는 이 모순된 현실을 그대로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항하는 방법이나 능력을 우리는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오직 순종이 미덕인 것처럼 위장해 왔습니다. 겉으로만 평화, 인권, 민주주의를 외친 것은 아닌지 반성합니다.

그 결과를 오늘날 여러 가지 적폐의 모습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학교와 교육이 답할 때입니다. 이런 오늘날의 모순과 뿌리 깊은 적폐 상황에서 학교 시민들의 성숙을 위한 진정한 교육은 권위주의와 적폐에 '저항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가면을 쓰지 않고도 저항할 수 있는 학습된 시민들로 성장해야 합니다. 오늘날 성숙은 곧 기존의 질서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저항을 의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50년 전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 - "민주주의를 감행하자!" ("Demokratie wagen")

성숙의 문제는 곧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즉 성숙의 교육은 민주주의의 교육입니다. 성숙한 인간 없이는 민주주의는 불가능합니다. 성숙한 인간이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보다 자율성과 민주성일 것입니다. 즉 성찰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권위주의와 억압에 동조하지 않는 힘이라는 말입니다. 민주주의는  결국 성숙한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자아가 강한' 사람들에 의해 지탱될 것입니다. 저는 이를 위해 교육 부분에서 '민주주의를 감행'하고자 합니다.

1969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빌리 브란트는 "민주주의를 감행하자!"("Demokratie wagen!")라는 구호로 승리해 전후 최초로 정권 교체를 이뤘고, 정말로 '민주주의를 감행'했다고 합니다. 민주주의가 과감하게 실험된 곳은 무엇보다도 학교와 일터와 언론이었다고 합니다. 초·중·고 학교에서는 민주주의자를 길러내는 것이 최고의 교육목표가 되었고, 민주주의교육, 반권위주의 교육, 비판 교육, 저항권 교육, 적폐청산 교육 등 정치교양교육이 정착되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 "삶을 바꾸자" ("Change la vie.")

문재인 대통령은 "나라를 나라답게"라는 구호로 집권하였지만, 프랑스에서는 사회당의 미테랑 대통령은 "삶을 바꾸자" ("Change la vie.")라는 구호로 집권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의 시민교육의 부활을 요구하는 주장이 정치권, 언론계 일각에서 제기되자 이를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준비에 들어갑니다. 1980년대 전후 분과학문중심의 교과가 담지 못하는 사회적 요구(시민적 권리와 책무, 학교 폭력, 정치적 무관심, 선거 참여율 하락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유럽의 시민들이 개별화로 인해 사회적 연대가 약해져 가고 있는 중이었답니다.  이런 현상은 자본주의가 작동하는데 필수적인 사회자본의 안정화를 해치기 때문에 '시민교육'을 강조하기 시작했다는 설명도 있습니다.

이행 가능한 단 한 개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모습 장관은 “광장에는 있고 학교에는 없는 민주주의”를 위해 가능성을 찾고 또 찾겠다고 말했다. ⓒ 교육부


50년 전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 반만 따라하기

50년전 독일의 수상 빌리 브란트가 외쳤던 "민주주의를 감행하자!" ("Demokratie wagen!")를 우리나라에서 시도하고자 합니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육부 스스로가 민주시민교육의 적폐 상태에서 벗어나고 노력하겠습니다. 항간에 '교육부 폐지론'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교육부가 폐지된다고 해서 집행부서가 모두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닿는데 까지 이행할 수 없는 백가지 이유보다, 이행 가능한 단 한 개의 가능성을 찾고 또 찾아서 아래의 내용들을 실천하겠습니다.

첫째, 어린이·청소년들을 성인들의 동료·동반자 시민으로 인정하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들을 동료·동반자로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교육과 권리를 보장한다면 그들도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교육감은 학생들을 '교복 입은 시민'이라고 칭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학교 시민"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정규교육과정의 밖에 있는 어린이·청소년들을 배제하는 호칭은 아닙니다.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떤 책무를 다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실제 영국에서는 학교 시민교육을 도입한 후 청소년 폭력이 급격히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둘째, 모든 유초중등학교에서 시민교육(학습) 과목을 기초과목이 되도록 하여 학교시민교육을 제도화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1993년 성인용, 대학생용은 말할 것도 없고 유치원용 민주시민교육 교재까지도 개발하였습니다. 이런 교재를 이용한 학습을 제도화하지 못한 것이 오늘날 우리를 이런 적폐 속에 고통스러워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보다 더 민주화된 서구 유럽 국가들도 '시민교육' 교과를 만들어 시민교육을 제도화하고 훌륭하고 민주적인 시민을 육성하는데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과거 청산과 권위주의 청산을 위해 '정치교양' 교육을 강화하였습니다.

시민교육(학습)과목이 제도화된다면 학생들은 스스로 시민임을 자각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목은 수업시간뿐만 아니라 학교의 민주적인 문화와 분위기를 바꿀 것입니다.  학교와 더 넓은 공동체(지역사회와 국가)를 연결시키게 될 것입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민주시민교육 활동을 결합시키고 구심점을 제공하는 '중추'교과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 과목은 학교와 지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감행을 손쉽게 할 것입니다.

셋째, 공감 교육, 민주주의 교육, 비판 교육, 과거청산 교육, 반권위주의 교육, 저항권 교육 등이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습니다. 이 교육들이 독일의 70년대 교육개혁을 통해 독일의 새로운 교육원리로 정착되었듯이 이를 우리의 교육원리로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2015년에 독일은 시리아 난민 백만명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런 성숙한 시민의식과 정치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교육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교육이 정확히 강조되지 않았던 영국에서는 브렉시트가 발생했습니다. 영국의 이런 사태는 우리가 어떤 민주주의의 길을 걸어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북한과의 통일과  교류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에게는 시급한 일입니다.

넷째, 교육과정의 모든 교과가 분과학문 중심에서 벗어나 삶과 생활 중심의 민주적인 삶의 모습들이 교과내용으로 반영되도록 하겠습니다. 1993년 우리나라 교육부가 언명하였듯이 "학교 교육의 성패 여부는 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성패 여부와 직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은 사회과나 도덕과처럼 특정 교과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와 사회와 정부 전체가 노력해야만 우리 교육이념을 추구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다섯째, 시민교육(학습)은 유치원의 낮은 단계에서부터 체계적으로 매 학년마다 끊임없이 실시되도록 할 것입니다. 같은 과목을 갖고 있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과의 차이는 초등학교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는가의 문제였습니다. 우리가 보아도 영국의 민주주의 보다는 프랑스 독일의 민주주의가 더 강건해 보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늦게 '시민교육' 교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결정하였지만 초등학교는 학교장의 선택으로 남겨 졌습니다. 게다가 정확하게 교과서도 만들지 않습니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정도가 이 교육과정에 충실할 뿐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는 아직도 명확하게 학교 시민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잘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여건이 작년의 영국의 브렛시트 사태를 몰고 오게 된 결정적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는 교과서 자유발행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영국은 교과서 제도가 없어 많은 교사들이 정확한 교육 내용을 선정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1990년∼1993년 우리나라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은 민주시민교육자료 8종 14책을 개발·보급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유치원용 민주시민교육 자료 1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이런 흐름이 제도화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여섯째, 이 과목의 교사들이 '민주주의의 감행자'가 될 수 있도록 특별히 지원하고자 합니다. 이 과목 담당교사들은 학교 문화를 민주적으로 개선시키는데 노력할 것이며 학교와 지역사회를 연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며 지역사회의 민주주의의 확산을 위해 구심적 역할을 하는 민주주의의 촉진자가 될 것입니다. 영국의 '시민교육' 교과 신설은 이런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이 교과 신설에 앞장섰던 크릭 교수는 이 교과를 통해 영국의 정치문화가 바뀌기길 고대한다고 보고서에서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일곱째, 위와 관련된 학습자료를 개발하기 위한 학교민주시민교육원이나 민주시민교육지원센터를 설립하고자 합니다. 민감하면서도 시사성 높은 학습 자료들을 교사들에게 맡기는 것은 민주주의 교육을 더디게 할 뿐입니다. 독일의 연방정치교육원이나 네덜란드의 프로데모스 등을 연구하여 적절한 모델을 찾고 찾아서 우리나라에 적절한 학교시민교육 지원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여덟째,  민주시민교육 관련 제도적 적폐 청산을 서두르도록 하겠습니다. 학교 시민교육을 가로 막고 있는 여러 가지 지침들과 교육 제도들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과목들의 교육과정을 재평가하여 국가교육이념과 목적에 적합한 교육과정으로 개정하고자 합니다. 평가 제도와 교과서 발행제도도 어린 학교 시민들이 늠름한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전면 검토하겠습니다.

아홉째, 우리나라 민주시민교육의 목표와 가치와 방법을 시민의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쳐 정하겠습니다. 이 정부에서 정해진 민주시민교육의 목표와 가치와 방법들이 다음 정부에서 변경된다면 또 다른 적폐를 쌓게 되는 것입니다. 1998년 영국처럼 여당·야당과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하여 우리나라 학교 시민들에 대한 민주시민교육의 목표와 가치 그리고 방법 등에 대해 합의점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 또한 어느 쪽으로부터인가는 공정하지 못하다든지, 이념적으로 치우쳤다든지 등의 비난과 비판이 쏟아 질 것입니다.

우리의 미래를 책임 질 젊은 세대들에게 묻겠습니다. 11세부터 40세까지의 시민 대표들을 구성하여 그들에게 묻겠습니다. 11세부터인 이유는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이해력이 있으며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미래는 어떤 민주시민교육을 받은 시민들이 사회를 책임지고 통제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40세까지인 이유는 대개 이 시기까지 미래 세대를 출산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을 때만이 세계 최저의 출산율도 좀 더 높아질 것입니다.

약 한 세대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미래를 그리는 민주시민교육의 가치와 목표와 방법을 정하는 것이 사회적 합리성이 높을 것입니다. 비판 교육, 과거청산 교육, 반권위주의 교육, 저항권 교육 등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필요한지 묻겠습니다. 이 교육은 어쩌면 우리 기성세대들과 갈등을 빚을 여지가 많습니다. 비판을 두려워하는 사람, 과거에 잘못이 많은 사람, 권위주의가 이로운 사람, 기득권 세력들은 이런 교육 방법에 심한 저항감을 느낄 것입니다. 젊은 세대에게 물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교육부를 민주시민교육부로 바꾸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 정부들은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맞추어 교육부의 이름을 바꾸어 왔습니다. 국가 발전을 위해 인적자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에는 '교육인적자원부'로 불렀고, 과학과 기술이 강조되던 때의 교육부의 명칭은 '교육과학기술부'였습니다. 이제 교육부는 촛불 항쟁으로 다시 태어나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어야 하는 시민을 육성해야 한다는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민주시민교육부'로 개칭하고자 합니다. 스웨덴에서는 중앙정부 부처로 '민주주의부'가 있었고, 현재 캐나다에는 '민주관계부'가 중앙부처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스웨덴, 캐나다 정도까지는 아니더라고 교육분야에서 만이라도 민주주의를 집중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93년 교육부는 전국의 교사들에게 "학교 교육의 성패 여부는 궁극적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성패 여부와 직결 된다"라고 언명한 적이 있었습니다. 25년이 지난 지금 우리 교육기본법의 교육이념과 목적에 어긋나지 않는 학교시민들의 '민주시민의 자질'을 위해 교육부가 전력 질주하겠습니다.

위의 10가지 내용이 이루어지면 우리 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학교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공감과 연대, 포용과 배려의 감성을 지닌 시민(존중)
◯ 평화, 인권, 민주주의에 대한 교양이 있는 시민(존중)
◯ 시민으로서 권리와 책임을 인식하고 있는 시민(자율)
◯ 세상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책임감 있고 참여적인 시민(연대)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법 등의 분야에 대한 교양(정치적 문해력)이 있는 시민(시민적 소양)
◯ 사회적 가치를 찾아 낼 수 있는 비판적 관점, 문제 제기력을 지닌 시민(시민적 소양)


그리고 우리 학교시민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늠름하게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누가 이 사회를 통제해야 하는가?
◯ 나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 이 시대의 본질적인 특성은 무엇인가?
◯ 시민으로서 나의 권리와 책임은 무엇인가?
◯ 사회의 시민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 우리 사회와 세계 사회의 전체적의 구조적 특징은 무엇인가?
◯ 이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나는 시민으로서 무엇을, 또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위의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에 교육부의 '학교 민주시민교육 기본계획'을 세워 시민들께 보고 드리겠습니다. 모든 삶의 영역에서 건승하시길 기원합니다.
2018년 5월 25일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스트레이트뉴스에도 기고하였습니다. 기자의 생생한 마음을 담고 몇 가지 제안을 더 담아 오마이뉴스에 기고합니다. 김누리 교수의 칼럼 ‘민주주의를 감행하자’, ‘가면 쓴 민주주의’와 논문 ‘아도르노와 교육담론’에 빚지고 있습니다. 기자는 학교시민교육전국네트워크 고문, 전국사회교사모임 고문, 교육청 민주시민교육 자문관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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