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가 '긍지'라는 일본, 적반하장 허락한 미국

일제 상징 욱일기의 부활…망각된 침략전쟁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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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haemil808)등록 2018.10.16 09:35
나치의 상징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는 전세계적으로 범죄시 돼 사용 자체가 전면 금지됐다. 반면 일본의 자위대는 오늘도 일제의 상징인 전범기(욱일기)를 내걸며 우리의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이날 사이타마(埼玉)현 소재 아사카(朝霞) 육상자위대 훈련장에 등장한 아베 총리는 4000여명의 자위대원들 앞에서 "모든 자위대원이 강한 긍지를 가지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겠다. 자위대의 존재를 냉정히 볼 때도 있었지만 여러분은 자신의 손으로 신뢰를 쟁취했다"고 밝혔다.
 
자위대의 최고사령관인 총리가 직접 나서 한국에서 불거진 자위대의 '욱일기 게양' 논란을 아랑곳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평화헌법을 개정해 국제사회에서 자위대의 무력행사를 용인 받겠다는 노림수도 담겼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욱일기 지난 14일 아베 총리가 차를 타고 사이타마(埼玉)현 소재 아사카(朝霞) 육상자위대 훈련장에 들어서자 도열한 자위대원들이 욱일기를 펼쳐 맞이했다. ⓒ 일본총리관저 페이스북 공식계정

 
"한국은 근년, 욱일기에 '전범기'라는 딱지를 붙여 배척의 움직임을 강화해 왔다. 욱일기를 향한 혐오는 전례가 없는 것으로 국제적으로도 비상식의 극치다. 배척을 당장 그만두라."
-11일 일본 극우진영을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에 실린 주장. 제주관함식에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군함'을 보내지 못한 데 따른 노골적 반응이다.

오늘날 일본사회에선 일제군의 상징이었던 전범기, 욱일기의 과거는 거의 잊힌 듯하다. 대표적으로, 일제의 식민침략을 비판하는 입장을 밝힌 만화가의 인기작품에는 욱일기를 내건 1인용 보트가 물살을 가르는 장면이 버젓이 나온다. 이밖에 올림픽·월드컵을 비롯한 굵직한 국제경기에도 소·대형 욱일기는 항상 눈에 띈다.

일제의 침략수탈을 직접 겪은 우리민족(한국과 북한), 중국 등과 달리 일본인들 사이에서 '욱일기는 전쟁범죄의 상징'이란 인식이 없단 얘기다. 과거사를 반성하고 전쟁금지를 명시한 평화헌법을 지지하는 일본인들 중에서도 '욱일기를 왜 내려야 하느냐'란 반응이 나온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그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우선 욱일기의 탄생과정을 살펴보자.

'아침에 떠오르는 밝은 해'란 뜻의 욱일(旭日)은 국호 일본(日本)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일본은 '해가 떠오르는 곳'이란 뜻으로, 우리가 잘 아는 빨간 동그라미 일장(日章·히노마루)기는 일본의 정신을 상징한다. 욱일기는 1870년 구일본육군의 군기로 공식 채택된 이래 1889년에는 구일본해군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히노마루'가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욱일기의 디자인은 '영화로운 대일본제국이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일본어 인터넷 사전은 욱일기를 가리켜 한국과 중국에서 "욱일기는 일본의 군국주의·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정치적표현 금지규정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며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다.

일본 측에서는 민간의 어업활동에서 비롯된 욱일기가 오래된 전통이란 주장이 나온다. 에도(江戸)막부 시절 '만선'과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어부들이 아침해와 파도가 그려진 욱일기의 일종을 매달고 항해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욱광(사방팔방으로 뻗어나가는 햇빛)은 마케도니아 국기나 유명 스포츠제품 등에서도 자주 쓰이는 '보편적 문양'인만큼,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반론도 나온다.
 
그러나 욱일기가 전쟁침략을 뒷받침한 일본 천황가(왕실)에서 비롯됐음은 명확하다. 박미영 씨는 2017년 발표한 '하켄크로이츠(나치 상징인 갈고리 십자가)와 욱일기 상징에 나타난 문화정체성의 메타언어 분석'이란 논문에서 "욱일기의 햇살은 왜 하필 16개일까?"라는 물음을 던져 답을 이끌어냈다. 왕실 대표문양인 국화의 꽃잎수가 16개인 점을 본 따 욱일기의 햇살을 16개로 정했다는 것.
 
이로 인해 1868년의 메이지유신 직후 여러 갈래로 분열돼있던 사무라이(무사계급)의 여론이 욱일기 아래, '천황의 권위'로 결합돼 대대적인 침략전쟁에 나설 수 있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비롯한 일제의 권력층이 인위적으로 탄생시킨 침략전쟁의 상징 욱일기는 '처음부터' 보편적 문양이 아니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도 1일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민간에서의 욱일기 문양 사용도 일본 육군이 군기로 사용한 이후에 나온 것으로 확인된다. 전통문화라는 것도 대단히 잘못된 이야기"라며 "(욱일기는) 일본 육군이 군기로 사용을 해서 시작된 군대문화"라고 뒷받침했다.

'사용 금지 전범기' 부활, 그 뒤에 도사린 미국

당초 욱일기는 일제 패망 직후 사용이 금지됐다. 자위대의 전신인 경비대가 사용하던 깃발은 한 가운데 벚꽃 문양에 파란 가로 줄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욱일기가 다시 부활하게 된 결정적 배경에는 미국의 허락이 있다.
 

왼쪽은 자위대의 전신 경비대기, 오른쪽이 해상자위대가 새로 채택한 자위함기(욱일기) 경비대기와 욱일기 ⓒ 일본 방위성

 
이제 일본 방위성 홈페이지에 실린 '자위함기에 대해서'란 제목의 글을 살펴보자. 내용에 따르면 일제 패망 직후 욱일기 사용이 과연 문제가 되는 것인지를 둘러싸고 검증의 과정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글이 밝히지 않는 중대한 역사가 있다. 검증에 나선 이들이 전범을 등용한 미군정 GHQ(연합국최고사령부)의 정책으로 부활했다는 사실이다.

욱일기의 부활을 꾀한 일본의 세력들은 1952년 7월부터 보안청 산하 경비대의 깃발 선정에 관한 논의에 돌입한다. 학자와 화가, 각 부대의 여론 등을 종합한 결과 "대부분은 옛 군함기를 희망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판명됐다"고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전쟁범죄와 밀접한 엘리트층, 군사조직만 콕 골라 '이게 여론의 대세'라며 포장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일제 패망 직후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성찰하는 입장을 표명한 일본공산당, 사회당, 각계 노동조합 등 좌익진영의 활동이 많은 일본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미군정이 인정한 전범세력은 전쟁범죄에 책임이 있는 극소수의 의견만을 취합하고는 '대부분'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민의를 왜곡했다.

미군정은 1950년, 6.25전쟁 발발을 즈음해 일본을 '공산주의의 방파제'로 삼았다. 곳곳에서 잇따르는 노동자집회와 미군정에 대한 항의집회를 무력으로 억누르는 한편, 언론검열로 전범세력들의 만행을 희석시켰다. 미군정의 비호로 정치·경제계의 중심으로 돌아온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 키시 노부스케(岸信介) 등 A급전범들은 이때를 계기로 다시 기득권을 쥔다.
 
미국 내에서는 당초 미국의 입김으로 1947년 5월부터 시행된 평화헌법에 대해 '오판'이라는 기류가 감지됐다. 미국을 대신해 소련과 중국을 견제해야 할 일본의 무력이 헌법에 의해 크게 제약됐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설립된 것이 바로 자위대다

1952년 체결된 미일안보조약은 "미국과 일본의 공동대처"를 못 박았다. 이후 1954년 7월, 치안유지 조직이었던 경비대는 사실상의 군대조직인 자위대로 탈바꿈돼 새 출발 한다. 이미 자위대 공식출범 직전인 6월부터 욱일기가 자위대의 상징기로 제정되며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결국 미국이 허락한 욱일기와 자위대가 오늘날 불거지고 있는 욱일기 논란의 본질인 것이다.

당시 욱일기의 심사를 담당했던 토쿄예술대학 측의 의견을 직역해 그대로 인용해 본다. "부대의 기로 옛 해군의 군함기는 최상의 것이었다. 국기와의 관련, 색채의 단순선명, 바다색과의 조화, 군사 기세의 앙양 등 모든 조건을 충족하고 있다" '침략전쟁의 눈부신 상징'으로써 태평양해역을 나부꼈던 전범기의 역사를 말끔히 지운 채, 예술성에 대한 자화자찬만 가득하다.

훨씬 심각한 건 당시 총리 요시다 시게루(吉田茂)의 발언이다. 요시다는 "해군의 좋은 전통을 계승해 바다나라(海国) 일본을 확실히 지켜가고 싶다"라며 아예 화룡점정을 찍었다. 요시다가 말하는 '해군의 좋은 전통'에 침략으로 학살당한 동아시아 민중의 울분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명백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지난 4일 카와노 카츠토시(河野克俊) 자위대 통합막료장(합참의장)이 "해상자위관에게 있어서 자위함기(욱일기)는 자랑이다. 내리고 (관함식에) 갈 일은 절대 없다" 같은 발언이 일본사회에서 당당히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로 취임한 이와야 타케시(岩屋毅) 일본 방위상도 "자위대의 게양은 국내법으로 의무"라며 카와노 막료장의 발언을 뒷받침했다. 욱일기의 정당성을 역설하는 이와야 방위상의 말은, 사실상 관함식에 욱일기가 내걸린 자위대 군함의 참가를 금지시킨 우리 정부의 요구가 일본에 대한 주권침해라는 얘기다.

"욱일기 내리라는 요구는 주권침해" 억지주장 '집착' 버려야

"자위함기(욱일기)는 유엔해양조약법상 나라의 군대에 소속하는 선박의 국적을 나타내는 외부표식에 해당하는 것."
-9월30일,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가하는 자위대 군함의 '욱일기 게양' 논란에 대해 오노데라 이츠노리(小野寺五典) 당시 일본 방위상이 4차례 되풀이한 답.

오노데라 전 방위상은 일본기자단의 질문에 '국제법적 주권행사의 정당함'을 앞세우는 원론적인 답변을 고수했다. 전쟁범죄와 관련한 얘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과거사를 반성 않는 일본을 정면 비판하는 우리의 여론을 '물타기' 하려한 시도다.

방위성 홈페이지에 소개된 '방위정책의 기본'은 "우리나라(일본)로선 분쟁이 생긴 경우에는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대한의 외교력을 다하는 것"이라면서도 "헌법해석을 바탕으로 정비되어 온 기존의 국내법령에 의한 대응을 모색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무력행동을 시사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평화헌법에 따라 상대국을 침략하지 않는 '전수방위(전쟁에 임하지 않고 오로지 자국방어에 힘쓴다는 뜻)'를 주창하면서도 필요한 경우 "최소한의 무력"을 구비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 주장에 따르면 발동조건은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는 미국 등 동맹국이 공격받았을 때 발동되는 집단자위권, 둘째는 평화를 해치는 북한의 핵위협이다.

'전범국 딱지'를 떼고, 군사적으로 제 몫을 발휘하고 싶다는 일본의 '열망'이 눈에 띈다. 하지만 그를 위해 우선돼야 할 최소한의 조치가 있다. 전쟁침략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또렷한 성찰과 반성, 욱일기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공식발표가 병행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은 이번 논란을 계기로 동북아의 평화를 해치는 존재가 누구인지 스스로 되물을 일이다.

그러나 자위대 측은 욱일기를 내건 해상자위대가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합동군사훈련을 벌여 박수갈채를 받았다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한국과 북한은 언제까지 논리적이지도 않은 반일감정을 들이댈 거냐, 제발 좀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자'는 식이다.

이렇듯 오늘날 일본은 "일제 전범기의 입항은 절대로 안 된다"는 우리의 당연한 목소리에 "주권침해"라며 맞서는 세력이 여론을 움켜쥐고 있다. 욱일기 논란의 해법은 일본의 직면이다. 남북이 힘을 합쳐 일본의 변화를 촉구하게 될 '무서운 시기'도 아베 정권을 기다리고 있다.

'비상식의 극치' 전범기를 내리고 잘못을 인정 않으려는 집착을 버린 뒤에야, '정상국가 일본'의 새 출발은 비로소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와야 방위상은 12일 "결과적으로 한국은 (해당국 국기와 태극기 게양만 허용한다는)통보를 지키지 않았다"며 "매우 유감"이라고 했다.
 
이 와중에 미국은 과거 적대국의 깃발인 욱일기를 반긴다. 주일미군은 아예 욱일문양을 각 부대기마다 도입해 일본인과의 친근함을 과시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제의 적이었던 미국이 전범기를 '얼마든지 사용하라'며 국제인증을 해주는 셈이다. 일본 내부에서도 이와 관련된 의문이 고개를 든다.

 

주일미군 앰블럼 왼쪽이 주일미군 사세보 함대기지, 오른쪽이 주일미군 이와쿠니 미해병대 항공기지 본부 및 본부대대의 상징. 욱일기가 결합된 디자인이 도드라진다. ⓒ 주일미군

 
"미국인은 욱일기를 좋아하는 건가요? 어째서 미군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과) 격심한 전쟁을 벌인 일본해군의 기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건가요?" 일본 1위 포털 야후재팬 '지식주머니'에 2016년 12월 19일 올라온 질문이다. 미국은 공식입장을 내지는 않고 묵묵부답이다.
 
현재 국면은, 냉전시절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한 미국이 일제 군국주의를 심폐소생술로 되살려낸 꼴이다. 오늘날 미국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범기가 최종 퇴각하는 그 날은 언제나 올까. 일제 전쟁범죄의 완벽한 청산이 멀어 보이는 현실이다.
 

미일 합동군사훈련 미군과 자위대가 대규모 합동훈련을 전개하고 있다. 나란히 펄럭이는 욱일기와 성조기가 보인다. ⓒ 주일미군사령부 페이스북 공식계정 ⓒ 주일미군사령부 페이스북 공식계정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권방송>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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