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야기올레 코스에 제주 외돌개가 있다?

[여행기] 제주올레 3번째 '자매의 길'... 게센누마-가라쿠와, 오쿠마츠시마 코스 개장

등록 2018.11.03 12:55수정 2018.11.0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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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7번 코스에 있는 외돌개(왼쪽)와 미야기올레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에 있는 오레이시. ⓒ 최경준



제주 서귀포 외돌개.

할머니는 바다에 고기잡이 나가 돌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를 오래오래 기다렸다. 할머니의 기다림은 그리움이 되고 돌이 되어 뭍에서 한 발짝 떨어진 바다에 홀로 서 있다.

사람의 머리처럼 소나무와 풀들이 자란다. 그 아래 주름진 이마와 슬픈 눈망울과 낮은 콧등이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낸다. 쩍 벌어진 입 모양은 할머니가 먼 바다를 보며 "하르바앙~, 하르바아~ㅇ" 애타게 할아버지를 부르는 모습이 역력하다.

'할망 바위' 전설이 깃들어 있는 외돌개는 약 150만 년 전 화산이 폭발해 용암이 섬의 모습을 바꿔놓을 때 함께 태어났다. 오랜 시간 강한 파도와 바람에 의해 이리저리 깎여 나갔다. 강한 암석만 남아서 높이 20여m, 폭 7~10m의 돌기둥이 됐다. 외돌개는 온몸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사이 제주를 제집 드나들듯 하던 태풍의 잔인하고 얄궂은 횡포를.

외돌개는 서귀포 칠십 리 해안가를 둘러싼 기암절벽 중 단연 눈에 띄는 명승지다. 제주올레 7번 코스를 가장 인기 있는 코스로 만들었다. 올레꾼은 외돌개 뒤로 보이는 범섬에 석양이 어릴 때의 장엄한 경관을 보며 넋을 놓는다.

제주의 외돌개와 미야기의 오레이시... 슬픔을 기억하다

지난달 7일 일본 도호쿠 미야기현에 문을 연 미야기올레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에서 제주올레 외돌개를 닮은 선돌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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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가 덮친 히가시마쓰시마시 노비루(野蒜) 기차역의 참혹한 모습.(위쪽) 역은 폐쇄됐지만 역터를 보전하고, 역 앞 건물 2층에 전시관을 마련해 당시 쓰나미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전시관에 걸려 있는 벽시계는 대지진 발생 시각인 '오후 2시 46분 18초' 경에 멈춰져 있다. ⓒ 최경준


코스가 끝나는 지점 앞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높이 16m, 폭 3m의 대리석 돌기둥의 이름은 오레이시(折石), '잘린 바위'다. 1896년(메이지 29년)에 발생한 산리쿠 쓰나미(지진해일) 때 석주 끝부분 약 2m 정도가 부러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산리쿠 해역 지진이 몰고 온 최대 38.2m 규모의 쓰나미는 2만 명이 넘는 목숨을 앗아갔다. 오레이시도 외돌개만큼이나 자연재해의 공포를 온몸에 새기고 있다.
  
2011년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미야기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쓰나미(지진해일)를 오레이시는 용케 견뎌냈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 속절없이 부러지고 잘려나갔다. 1만5894명(미야기현 9541명)이 사망하고, 2553명이 실종됐다. 대피 생활 중 건강이 악화해 숨진 지진 관련 사망자 3523명을 합치면 희생자는 2만2000명에 육박한다. (2016년 2월 일본 경찰청 집계)

대지진 피해로 공영 가설주택이나 임대주택, 친척 집 등에서 거주하는 사람도 12만3000명에 달한다. 이들 상당수가 아직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 지역의 농지나 철도·도로 등 인프라는 속속 복구가 진행되고 있다. 쓰나미로 침수됐던 농지 가운데 미야기현은 96%, 이와테현은 77%의 면적에서 농작물 재배가 가능한 상태로 회복됐다. (일본 농림수산성)

미야기올레가 만들어진 게센누마시(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와 히가시마쓰시마시(오쿠마쓰시마 코스)도 각각 1000여 명이 죽거나 실종되는 등 큰 피해가 있었다. 게센누마시의 시가지는 3분의 1이 물에 잠겼고, 탱크에서 유출된 중유에 불이 붙어 대규모 화재가 발생해 시내 전역으로 불이 번지기도 했다.

지난해 NHK가 동일본대지진 당시 원전사고 피해를 본 1400여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61%가 "대지진에 의한 심신의 영향이 지속되고 있다"고 답했다. 지진에 따른 후유증은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능 공포도 여전하다.

쓰나미의 땅 미야기현, 제주올레를 주목하다

제주올레는 왜 이런 지역에 올레길을 냈을까?

미야기현 관계자들이 제주올레를 처음 찾아온 것은 지난해 봄이었다. 동일본대지진 이후 줄어든 한국인 여행객과 상처받은 지역 공동체 회복을 위해 올레길을 내고 싶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제주올레가 지닌 치유의 힘,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 등에 주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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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이 지난 10월 8일 일본 미야기올레 오쿠마츠시마 코스 개장식에서 미야기현 지사, 시의원 등 관계자들과 함께 리본 커팅을 하고 있다. ⓒ 제주올레

  
양측은 첫 논의 시작 이후 여러 차례 만나 미야기올레 가능성을 타진해왔다. 그러나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은 처음부터 그들의 제안이 탐탁지 않았다.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야? 지진, 쓰나미 난 지역에 가서 방사능 범벅된 음식 먹으면서 방사능 깔렸을지도 모르는 길을 걸으라는 거야'라는 생각에 아예 검토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제주도도 태풍으로 충분한데, 지진이 난 곳까지 가라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러나 미야기현 관계자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미야기현 지사, 시장, 시의원 등이 직접 제주를 찾아와서 제주올레를 진정성 있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또한 몇 개월에 걸쳐서 미야기현 관광 자원 홍보자료 등을 계속 보내왔다. 특히 서울이나 대구보다 낮은 미야기현 방사능 수치, 동경이나 오사카 등에서 잘 팔리는 미야기현 농수산물 등 미야기현의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애썼다.

미야기올레 때문에 열린 두 차례의 제주올레 이사회에서는 격론이 오갔다.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유보한 채 회의를 끝내기도 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자며 이사들이 단체로 짐을 싸서 미야기현으로 날아와 현지답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미야기올레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정작 그들이 보내온 안전한 방사능 수치가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제주도가 일상적인 재난 지역이라는 점이 미야기올레를 하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는 게 서명숙 이사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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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세 번째 해외 ‘자매의 길’ 미야기올레에서도 간세(조랑말을 형상화한 제주올레의 상징)를 볼 수 있다. ⓒ 제주올레

 
"제주도는 올해만 해도 두 번이나 큰 태풍을 맞았다. 어렸을 때 겪었던 사라호 태풍은 내 인생의 아주 큰 트라우마다. 내 주변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태풍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기억이 너무 많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은 그만큼 재난에 훨씬 많이 노출되어 있다는 얘기도 된다. 다행히 우리에게 지진은 없지만, 지진 난 지역 사람의 고통에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었다. 지진까지는 경험 못했지만, 태풍은 맞아 봤으니까.

태풍도 이렇게 힘든데, 지진 나고 쓰나미로 모든 게 쓸려가고. 이런 지역에서 다시 어떻게든 복구하고, 자연을 다시 찾아내고. 그러면서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불러들이고 싶은 그 마음에 우리가 움직였다. 그 엄청난 자연재해, 하늘이 준 시련을 인간의 의지와 힘으로 극복하고 다시 살려내는 모습에 감동 받아서 결정했다. 가자, 욕먹더라도. 국적을 떠나서, 인간으로서의 연대였다. 일본의 평범한 마을에 대한 연대였다."

미야기올레는 규슈올레, 몽골올레에 이어 제주올레의 세 번째 해외 '자매의 길'이다. 자매의 길은 제주올레가 코스 개발과 자문, 간세(조랑말을 형상화한 제주올레의 상징)․리본․화살표 등 길 표지 디자인을 제공하고, 운영방침과 철학까지 공유해 올레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다.

제주의 오레이시와 미야기의 외돌개... 치유를 공유하다

미야기현은 서쪽으로 1000m가 넘는 고산준봉이, 동쪽으로 태평양에 맞닿아 있어 산과 들, 강과 바다가 아름다운 곳이다. 미야기올레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11㎞)와 오쿠마츠시마 코스(10.5㎞)는 모두 바다를 낀 산책길이다. 태평양을 바라보며 걷는 웅장한 해안 길과 푸른 숲길, 지역 주민과 만나 교류할 수 있는 마을 길로 다채롭게 구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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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기올레 게센누마-가라쿠와 코스(11㎞)와 오쿠마츠시마 코스(10.5㎞)는 변화무쌍한 리아스식 해안의 압도적인 절경과 사철마다 피는 야생화를 오감으로 느끼며 편안하게 걷기에 좋다. ⓒ 최경준

  
미야기올레는 제주올레나 규슈올레와 닮은 듯 하지만,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제주․규슈올레는 단조로운 해안선인 데 반해 미야기올레는 리아스식 해안 특유의 역동적이고 극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그렇게 길의 겉모습은 다르지만 모든 길은 '치유와 상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규슈올레 도입에 중심 역할을 했고, 지난해 초부터 미야기올레 개장을 준비해온 이유미 제주올레 일본지사장은 "게센누마 도시만 보면 쓰나미가 와서 다 무너졌다가 재건한 동네가 맞나 싶을 정도로 주택 등이 많이 복구됐다"고 말했다.
 
"올레 코스를 찾아다니면서 자연에서의 치유의 힘을 느꼈다. 해안가 나무가 쓰나미나 파도를 맞으면 소금 때문에 많이 죽는다. 그런데 나무는 스스로 재생을 하는 치유의 힘이 있다. 그렇게 길 곳곳에서 나무나 풀, 꽃이 점점 다시 살아나는 게 보였다."

게센누마시 주민인 레기시 에마(26)씨는 "많은 사람이 미야기올레를 걷기 위해 오기 때문에 환대하기 위해서 집 앞을 깨끗하게 청소했다"며 "올레길을 계기로 한국과 미야기현이 이어져서 많은 사람이 서로 교류했으면 좋겠다"고 기대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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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8일 일본 미야기올레 오쿠마츠시마 코스 개장을 기념해 마을 주민들이 메밀, 바지락, 오리고기, 버섯 등을 넣은 소바가유(메밀죽)를 끓여서 올레꾼들에게 나줘주고 있다. ⓒ 최경준


제주올레 7코스에 있는 외돌개를 처음 본 미야기현 사람들은 '제주의 오레이시'라고 환호성을 지른다. 미야기올레에서 오레이시를 본 한국 올레꾼들은 '미야기의 외돌개'라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게센누마시 주민들은 쓰나미에도 굳건히 견뎌낸 오레이시를 보면서 작은 용기를 얻는다. 오레이시 돌기둥과 함께 보는 일출은 그야말로 절경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 일어난 올레꾼만이 누릴 수 있는 특혜다. 한 번 도전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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