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도 역사가 있다니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를 읽고

검토 완료

이유림(afillip)등록 2018.11.11 17:59
어릴 적 역사책에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문장이 있었다. 선생님은 이 문장으로 역사의 인식에 대해 설명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역사는 항상 사실로 받아들여질 뿐 그 역사서를 기록한 역사가의 인식이나 사유 과정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 없다. 역사서의 내용도 정리하기 어려운데 역사가의 삶, 역사가의 역사 인식 태도까지 생각해야 한다니 그건 수업 시간에나 배우는 이야기였다.
 
역사는 역사가에 따라 주관적으로 서술된다. 그렇다면 독자는 역사가의 인식을 통해 역사를 보게 되는데 이 때 필터 역할을 하는 역사가를 빼놓고 그가 서술한 역사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사를 어디서부터 접근해야 할까? 그 시작으로 삼을만한 책이 <역사의 역사>이다.

 

유시민 <역사의 역사> ⓒ 돌베개

 
 
2016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파동과 이어진 촛불혁명을 마주하면서 역사의 현장이 어떻게 기록되고 전해지는지 다시금 관심을 기울인 저자 유시민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 이 책의 집필을 시작했다고 한다.
 
역사가들의 인식은 사회, 시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하고 그들의 서술에 반영된다. 그렇기에 역사에도 역사가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이를 책의 제목으로 하여 그 흐름을 들려준다. 물론 전문적인 역사학자가 보기엔 미흡한 점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지나치게 학문적이지 않아 오히려 대중을 조금 더 역사로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책은 서구 역사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그리스의 역사가로 문을 연다.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와 '역사 서술의 창시자'라 불리는 투키디데스, 이들은 역사를 보는 관점에 큰 차이가 있다. 페르시아 전쟁을 기록한 『역사』에서 헤로도토스는 제지 기술도, 문헌 자료도 없던 시대에 여행하고 탐문하여 사실을 충실하게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사료의 공백은 상상력으로 채워나가며 재능 있는 이야기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달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는 정보의 진위와 가치를 검증하는 데 정성을 들였다. 사실을 시간 순으로 배치하고 신화와 전설을 최대한 배제하여 현대의 역사서와 비슷한 형식과 내용을 갖추었다.
 
이 두 사람의 역사 인식 방법은 서구 역사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투키디데스의 역사관은 랑케로, 헤로도토스의 역사관은 카, 재레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로 이어진 듯하다.
 
토인비도 눈에 띈다. 그는 현존하는 문명을 스물한 개로 정리하여 각 문명의 특징, 흥망성쇠의 과정 등을 세밀하게 추적하고 분석한 최초의 역사가이다. 그 과정에서 '도전과 응전의 패러다임'이라는 문명의 흥망성쇠를 지배하는 일반 법칙을 찾아냈다.
 
토인비의 이론에 따르면, 문명은 외부 환경의 도전에 대한 성공적 응전의 산물이며 탄생한 후에도 계속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문명은 응전에 성공하면 성장·발전하고, 실패하면 쇠퇴하며, 실패한 응전이 계속될 경우에는 해체된다. -p.259
 
인종설과 환경설을 배척하였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문명이 만나는 도전을 다양화한다면 지금도 적용될 수 있는 일반 법칙이 아닐까.

 성공과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면서 '소수의 창조적 천재'를 말한다. 사회의 진보는 비창조적 다수자가 이 소수의 창조적 천재의 비전을 받아들여 사회적 창조 행위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때 일어나고, 만약 창조적 소수자가 창조력을 잃고 지배적 소수자로 타락하면 문명은 쇠퇴한다고 본다. 작가는 박정희 정부를 예로 드는데 이들이 바로 창조적 소수자이고 싶었으나 지배적 소수자로 전락한 경우라 하겠다.
 
유시민 작가가 전작 <청춘의 독서>에서도 언급했듯 학창시절 자신은 랑케의 역사관을 추종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E.H.카를 읽고 난 다음 랑케와 작별했다는. 랑케는 역사가가 역사를 서술할 때 역사가 자신의 가치판단이나 도덕관념을 최대한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역사는 발전하거나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리저리 변화한다고 보았다.
 
이에 반해 카는 역사가의 주관적 신념이나 희망에 따라 역사적 사실이 선택되고 그 사실들 사이의 관계가 설정되었다고 보았으며 역사와 사회는 결의를 가지고 도전을 근본적인 도전을 감행하는 사람에 의해 진보한다고 보았다.
 
두 사람의 역사관은 그저 역사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느냐, 주관적으로 서술하느냐의 차이만은 아니다. 역사와 사회의 진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지금 우리 사회의 역할이 규정되기에 다른 것이다. 필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 역사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는 생각이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사회가 진보한다고 볼 있는 것 아닐까? 이처럼 이 책은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스스로 사고하고, 나름의 역사를 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독서의 확장을 통해 해결하지 못한 문제의 답을 찾아보라 말하는 듯하다.
 
<역사의 역사>를 통해 살펴본 역사 서술의 흐름은 객관적 서술에서 주관적 서술로, 국가사나 민족사에서 문명사, 인류사로 변화한다고 파악된다. 인류사를 다루면서 작가 나름의 해석과 시선이 돋보여 사랑받는 책 <총, 균, 쇠>와 <사피엔스>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유발 하라리도 소개한다.

이 외에도 이슬람의 역사가 이븐할둔, 중국의 역사가 사마천, 일제강점기의 우리나라 역사가들의 역사서를 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과 함께 제시하여 다양한 역사관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
 
'오랜 세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거나 지금 사로잡고 있으며, 다른 역사가들의 역사철학과 역사 서술 방식에 큰 영향을 준 역사서(p.7)'와 역사가들을 소개하는 이 책은 에필로그에 나온 작가의 말처럼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잠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인증 사진을 찍는 패키지여행과 같다. 작가의 설명을 통해 위대한 역사가들의 생각과 감정을 느껴보고 역사에 대한 대략의 지도를 그릴 수 있었다.
 
작가 유시민은 어디서든 사람을 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도 사람의 삶을 이야기했고, <청춘의 독서>에서도 역사가나 사상가뿐 아니라 소설 속 등장인물에서조차 의미를 찾아냈다. <역사의 역사>도 마찬가지였다. 역사가 아닌 역사가를 보는 작가의 일관된 시선이 좋았다. 방송에서 보는 그 말투가 그대로 문장에 녹아있어 어렵지만 편안했고, 내용이 방대하지만 학문하는 티를 내지 않고 아무것도 모르는 독자를 설정한 듯 자신의 생각을 쉽고 명료하게 밝히는 서술도 맘에 든다.
 
결정적으로는 독자가 서양의 역사서를 쉽게 읽지 못하는 것은 독자들이 무식해서가 아니라 그저 문화권이 달라 그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어서일 뿐이라며 용기 내어 역사서를 읽을 수 있도록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 한 대목을 우리나라 역사, 거기다가 앞장에서 이야기했던 대목으로 바꾸어 확인시키는 열정까지 선보이니 그의 재기발랄함에 감탄하고, 노력에 감동할 수밖에. 벌써 유시민 작가의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
첨부파일 역사의 역사.jpg

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18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