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연하에게 쪽지도... 글 올릴 때마다 설렜다

[명랑한 중년 - 최종회] 아내도 엄마도 아닌 그저 나로 지금을 살렵니다

등록 2018.11.19 16:08수정 2018.11.1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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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에 비례해 현명함이 저절로 생긴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늘 갈등하고 잘못하고 후회하고 배우며 살아갑니다. 오늘 실수하고 내일은 그만큼 지혜가 쌓이는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중년의 좌충우돌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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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중심을 잡는 운동이다. 흐트러지지 않게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 ⓒ unsplash

 
지난달, 일산 킨텍스에서 '코리아 요가 콘퍼런스'가 열렸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인도의 유명한 요가 선생님들이 각자 자신들만의 수업을 진행한다. 요가와 사랑에 빠진 지 2년이 다 되어가는 나는 마침 요가 강사로 일하는 친구가 있어 같이 참가 신청을 했다. 더구나 행사장 앞에서는 각종 요가 용품들을 저렴하게 판다고 하니 놓칠 수 없는 '득템' 기회다.

아침 9시부터 여러 수업이 시작됐다. 일찍 도착한 우리는 간단히(?) 요가복을 쇼핑하고, 우리가 신청한 수업이 열리는 방문 앞에서 기다렸다. 사람들이 어디서 그렇게 많이 왔는지 예비군 훈련장은 저리가라다.

문이 열리자 참가자들은 넓은 방 안으로 차례로 들어가 각자 소지한 요가 매트를 바닥에 깔고 앉았다. 200명이 넘는 인원이 따닥따닥 붙어 앉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순식간에 방 안은 어떤 열기와 기대감,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20대부터 5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처음이라 신기했던 나는 불현듯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닌 것 같은 생소함에 사로잡혔다. 참가자 다수가 요가 강사였다. 내 눈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물구나무를 서고 다리를 쫙쫙 찢어가며 몸을 풀었다. 기가 죽었다. 요가는 중심을 잡는 운동이다. 흐트러지지 않게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 나는 잠시 나간 넋을 데리고 와서 몸 대신 마음을 풀었다.

수업을 지도할 요가 강사가 들어왔다. 40대 전후로 보이는 여자 강사는 온몸이 잔 근육이다. 빛이 나는 구릿빛 피부, 견갑골과 발목에 그려진 신비한 타투, 카리스마 넘치는 허스키한 목소리. 아우라가 장난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다. 개인적인 일들로 힘든 시간을 보냈고 살기 위해 요가를 했다.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무거운 뭔가를 내려놓지 않으면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날마다 숨을 뱉어내며 내려놓았는데, 돌아서면 다시 가득 차 버려서 다시 호흡하고 내려놓아야 했다. 그녀는 그렇게 긴 수련의 날들을 보냈다고 한다. '내 안에 스승이 있다'고 강조한 그녀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가게 내버려 두세요."

나는 지금을 산다

그 말에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고, 눈물이 감정보다 먼저 반응했다. 뭔가를 놓지 않으려고, 혹은 놓지 못해서 괴로운 게 있었나 보다. 정확히 무엇 때문에 눈물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럴 때 있지 않나. 내 안에서 해소되지 않는 사건과 감정들이 뒤섞여 갑자기 훅 스치고 지나는 순간. 하여간 시도 때도 없이 사연 많아 보이는 1인. 나는 코를 푸는 척하며 눈물을 닦았다.

돌아보니 어영부영하는 순간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때 그런 말은(행동은) 하지 말 걸' 하는 후회와 자책들로 여러 밤 위경련을 앓았다. 일어나지도 않는 온갖 경우의 수를 세느라 숱한 불면의 밤을 보냈고 그러느라 정작 현재를 살지 못했다.

잡히지 않는 것을, 아니 잡을 수 없는 것을 억지로 쥐고 있느라 손에서는 쥐가 났고 손끝에서는 피가 났다. 스치는 것들은 지나가게 두는 것, 보내야 하는 것인데. 사람이든, 욕망이든 기꺼이 그렇게. 후회와 걱정들이 밀려들기 시작해 어느새 머릿속이 꽉 차버렸다. 이럴 땐 몸을 써야 한다. 달리기든 요가든 뭐라도. 그래야 덜어지고 떨쳐낸다.

달리기는 숨이 턱까지 차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순간이 지나고 나야 숨이 골라지고 몸과 마음이 정돈된다. 요가도 숨을 내쉬며 근육을 제대로 이완하고 내 몸에 집중해야, 제대로 된 동작을 취하고 겨우 중심을 잡을 수 있다. 여차하면 넘어진다. 여기에는 걱정이나 후회가 들어설 겨를이 없다. 과거와 미래의 잡념들로부터 나를 현재로 데려와줄 내 몸뚱이. 몸을 이기는 정신은 드문 법이니까.

'느낌 있는 빈야샤 플로우'. 우리 수업 제목이다. 빈야사 요가를 느낌 있게 음악을 타며 동작을 취하는 수업이다. 마치 현대무용 같다. 이 수업에서는 동작 하나하나를 완성하기보다 자신을 느끼고 표현하라 했다. 내게는 버거운 동작들이 많았지만 느낌이라면 둘째가면 서러운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내가 느끼는 대로 나를 표현해도 괜찮은 이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었다.

어설픈 자세지만 그 시간들을 즐겼다. 도저히 할 수 없는 동작들은 옆 사람이라도 편히 할 수 있게 살짝 뒤로 물러서 구경했다. 그것도 좋았다. 그동안은 내 것을 해내느라 다른 사람을 볼 여유가 없었으니까.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수업은 끝이 났다.

지금의 나는 뭔가가 되거나, 뭔가를 이루고 싶다기보다, '현재를 사는 것'이 내 삶의 목표다. 비가 오면 비를 느끼고, 바람 불면 흔들리고, 커피를 마실 땐 커피 향에 취한 채로 그렇게. 후회와 걱정 속에 내 남은 시간들이 매몰되지 않고 오롯이 현존할 수 있도록. 누구의 엄마가 아니고 누구의 아내도 아닌 나로. 아이들을 낳아 키운 23년의 세월이 회오리처럼 지나고 나니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나로 산다는 것이 이기적으로 살거나 가족이나 타인과의 관계를 깨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는 게 미덕인 줄 알고 미뤄두었던 나와 타인과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듯하다.

무조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참지 않고 내가 느끼는 대로 나를 표현하니 오히려 관계들이 더 건강해졌다. 다만 아픈 말일수록 상대도 다치지 않도록 표현하는 게 포인트. 아무리 옳고 좋은 말도 내 입장에서만 헤아리면 그 말은 독이 된다. 관계를 깨는 독.

'명랑한 중년'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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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누군가 내 글을 관심 있게 읽어준다는 것 하나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시간들이었다. ⓒ unsplash

 
'명랑한 중년'이란 주제로 연재를 시작한 지 1년. 이번이 그 마지막 기사다. 어리바리 시작한 글이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수생 아들 이야기'(관련 기사: 4수생 아들과 삼시세끼, 이런 '쿨'한 엄마를 봤나)를 썼을 땐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엄마들로부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쪽지를 받았고, '동창회의 목적'(관련 기사: 동창회의 목적, 그 목적이 아니라니까요)이란 글에는 웃느라 눈물이 났다는 말을 들었다. 또 '귀농한 친구 이야기'(관련기사: 그녀 나이 47세, 시골마을에 신혼집을 차렸다)는 방송국들마다 취재하고 싶다는 열기가 뜨거웠다. 글이 올라올 때마다 나도 설렜다.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서.

행여 누군가 내 글에 악플이라도 달아놓으면 신경 쓰지 말고 계속 글을 써 달라는 쪽지가 어김없이 날아왔다. 자신의 '사는이야기'를 메일로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웹툰 말고는 글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20대 청년이 포털에 실린 내 글을 보고 '글을 읽는 즐거움'을 알았다는 쪽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물론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누군가 내 글을 관심 있게 읽어준다는 것 하나로도 충분히 감동적인 시간들이었다.

'내 글에 등장해 깨알 같은 감동과 웃음을 선사해준 나의 가족, 친구, 지인들, 감사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글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아닌데 이 멘트는 뭐며 이 뭉클한 감정은 뭐지? 이러다 고마운 사람들 이름을 다 열거할 판이다.

지금은 새벽 두 시. 비바람이 몰아친다. 아파트 베란다 창은 그렁그렁 눈물을 매단 채 흔들리고 있다. 커다란 창도 이별이 슬픈가 보다.
덧붙이는 글 지금까지 '명랑한 중년'을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모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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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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