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고 너희 가족 명절 여행에 끼라고? 응 그럴게

[비혼의 명절 나기] 낯설지만 신선했던 초대장... 명절은 변하고 있다

등록 2019.02.03 11:30수정 2019.02.0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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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국 자료사진. ⓒ pixabay


질문이 하나 있다. 축제 같은 명절에 다른 사람들은 다 가족과 함께 보낸다며 선물을 사들고 가는데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무도 없는 집뿐이다. 명절을 혼자 보내는 데 익숙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좀 쓸쓸하다. 그때 마침 한 친구가 당신을 초대한다. 반가운 제안이지만, 그의 집에는 그의 배우자와 자녀, 가족들이 다 모여 있다. 더구나 그들은 당신을 그다지 반기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영화 <그린북>에 나온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셜리의 이야기다. 인종 차별이 심각했던 시절, 셜리는 흑인에 대한 편견과 싸우기 위해 차별이 심한 미국 남부 쪽 순회 공연을 감행한다. 온갖 모욕을 당하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은 셜리 곁에는 단순 무식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이탈리아계 백인 매니저 토니가 있다. 사실 토니도 자신의 집에 온 흑인 수리공들이 마신 컵을 버릴 정도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러나 돈 때문에 셜리의 운전기사가 되어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좁아진다.

8개월간의 순회 공연을 마치고, 셜리는 계약한 대로 성탄절에 토니를 집 앞에 내려준다. 쓸쓸히 집으로 돌아가려는 셜리에게 토니는 선뜻 자기 집에 같이 가자고 청한다. 그러나 편견으로 인한 냉대에 익숙한 셜리는 차마 그 초대에 응하지 못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천재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죠. 용기가 필요해요." 

이런 신념으로 남부 연주 여행은 감행한 셜리도, 낯선 초대 앞에서는 쫄보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기가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분위기가 될 지 불 보듯 훤했으니까. 그러나 셜리는 이내 용기를 끌어 모아서 토니의 집으로 향한다. 

"우리 집에 같이 가자"는 토니의 초대, 그 초대에 응한 셜리의 용기, 그리고 재빨리 환영 모드로 태세 전환한 가족들의 따뜻한 환대. 나는 모두가 두려움과 편견 하나씩을 깨고 익숙한 경계를 넘어 서로에게 문을 연 그 장면이 좋았다.

초대에 응하는 용기

3년 전, 40대 비혼인 나는 낯선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추석을 앞둔 어느 날이었다. 친한 동생의 집에 놀라갔다가 '명절 연휴 때 오빠와 엄마가 해외여행을 가서 혼자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한 참이었다. 그런 적이 몇 번 있어서 특별한 대화는 아니었다.

"언니. 그럼 명절 때 뭐할 거예요?"
"그냥 집에 있으려고. 읽고 싶은 책 사놨어."
"그럼 우리 집에 와서 같이 놀아요."


순간, 당황했다. 지금까지 명절에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서 집으로 놀러오라는 초대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던 탓이다. 밖에서 잠깐 만나 차를 마시며 수다 떠는 것도 아니고, 집으로 오라니.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대충 얼버무리려는데 후배는 진지했다. 어차피 친정 식구들은 미국에 있고, 시댁에는 평소에 자주 왕래해서 명절 당일에만 다녀오면 된단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명절에 눈치 없이 남의 집에 가서 부비대는 불청객 되는 거 아닌가...'
'난 명절에 혼자 지내는 게 괜찮은데, 좀 처량 맞아 보였나...'


'나는 쿨합니다~'라는 분위기로 "괜찮아. 혼자 잘 노는 거 알잖아"하며 완곡하게 빼려는데, 소용이 없었다.

"언니, 내가 놀고 싶어서 그래요. 밤 9시면 아이들도 자니까 그땐 남편한테 맡기고 심야영화도 보러 가요. 그리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면 되잖아요."

자고 가라는 한술 더 뜬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남편하고 의논은 하고 하는 말이니?"하고 묻자, 실행력 좋은 후배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 자리에서 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평소 나를 '누나'라고 부르는 후배의 남편도 흔쾌히 좋다고 한다. 아마 그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눈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진행되는 이야기에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 얼떨떨하면서도, 왜일까. 생전 처음 받은 명절 초대가 꽤나 신선하고 즐거웠다.

40대 비혼의 명절, 가끔은
 

생각해보면 언제부터인가 명절은 평소보다 조금 더 쓸쓸한 날이 됐다. ⓒ pixabay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인가 명절은 평소보다 조금 더 쓸쓸한 날이 되었다. 친척이 별로 없어서 시끌벅적한 명절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데다가, 40대 비혼이 되면서는 명절 연휴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현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혼자 명절 연휴를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서 나름 잘 지내지만, 가끔은 친구들이 그립다.

그렇다 하더라도 명절이면 가사노동에 시달리는 기혼 친구들의 고단함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연락을 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서는 그런 타인의 상황을 조금 더 의식하게 된다. '명절이니까 바쁘겠지', '피곤할 텐데 쉬어야지' 하면서 연락하지 않게 된 게 꽤 오래 전 일이다.

몇 안 되는 비혼 친구들도 하나둘씩 결혼하면서 명절 때 "우리 만날까" 하고 연락할 친구들을 찾다가 그만둔 적이 많다. '아, 시댁에서 아직 안 왔겠구나.' '아이들 보느라 바쁘겠네.' 이렇게 한 사람씩 넘기다 보면 만날 사람이 없었다. 그런 패턴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굳어졌다. 그러니 명절에 기혼 친구를 만난다거나 남의 집 가족 모임에 끼는 건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다.

여전히 타인의 상황을 의식하면서 사는 데 익숙한 나를 앞으로 훅 당긴 건, 후배의 초대와 환대였다. 당연히 타인을 배려해야 하지만, 그 배려가 선이 되어 버려 그 선에 관계를 가두기도 했다. 어쩌면 그런 초대와 환대의 기회가 더 많았을 수도 있는데, 내가 낄 자리인지를 판단하며 스스로를 분리시키다 보니 미리 연막을 치거나 선을 그은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된다. 그게 제일 아쉽다.  그런 환대 속으로 용기를 내어 폴짝 뛰어 들어가 볼 걸. 

이제 마흔을 넘어 오십의 비혼이 되어 보니, 참 많이 변해 있다. 명절을 보내는 풍경도, 명절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해졌다. <그린북>에서 흑인 셜리에 대한 이탈리아계 미국인 가족의 환대가 앞으로 미국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를 알려주는 예고편이었듯, 우리의 명절도 변하고 있다는 예고편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명절을 가족과 보내는 전통도 소중하고 존중한다. 또한 명절을 대체 가족과 보내거나 다르게 즐기는 사람들의 선택도 환영한다. 명절이란, 피를 나눈 가족이든 아니든 서로를 배려하고 환대하는 축제이면 좋은 것 아닐까.

얼마 전, 고등학교 때부터 친한 베프가 연락을 했다.

"설 명절 끼고 신랑하고 아들하고 다낭으로 여행 가는데 너도 같이 가자."

이건 또 뭐람.

"뭐? 나보고 너희 가족 여행에 끼라고?"

이런저런 집안 사정 상, 설날 가족 모임을 안 하게 돼서 여행을 간다며 같이 가잔다. 이번에도 역시 흠칫해서 말했다.

"내가 주책없이 거길 왜 따라가니?"
"뭐 어때?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남편한테 이야기했더니 너만 괜찮으면 자기도 좋다고 같이 가재."


이미 명절의 다양한 버전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19년 설날을 앞둔 지금, 여전히 용기가 부족한 나에게 누군가 이렇게 말하며 등을 떠미는 것만 같다.

"뭐가 문제야? 지금은 2019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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