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동,섹'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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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림(ubikili)등록 2019.02.06 17:28
그들은 말하고 싶어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을 향해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야 글이 써지는 것이다.
 
나는 이들의 에세이를 읽고 우리 세대와 참 다른 세대라는 걸 느꼈다.
경제 호황을 누리기도 전에 IMF를 경험했고, 그래서 경제적 몰락을 겪거나 가족의 해체를 받아들여야 했다.
어느 새 맞벌이 부부가 평균이 된 시대가 되어 할머니 손에 자라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는 너무 잘 알지 않나? IMF 이후 한국의 경제적 상황을.
스펙경쟁이 심화되고 대학 등록금이 올라 빚을 진 채 사회로 나와야 했다. 그나마 제대로 된 일자리도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사회는 이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또 어떠한가. 남녀가 평등하다고 교육 받았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남성의 성욕과 여성의 성욕은 다르게 취급되었다. 심지어 여성의 성욕은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 놓여 있다.
어렵게 취직을 하고(그마저도 좋은 일자리는 아님) 돈을 모아 뜻을 펼치려고 하면 경제적으로 더욱 쇠락한 부모가 발목을 잡았다.
내가 읽은 에세이의 저자들은 비정규직이거나 프리랜서다. 그들은 글을 쓰고, 글을 쓰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 혹은 뒤늦게 자기 꿈을 좇아 공부를 한다.
이들의 이야기에 사회는 귀를 기울인 적이 없다. 여전히 우리 사회의 스피커는 전쟁(을 경험한) 세대나 민주화운동의 세대다. 자신의 훈장을 뽐내거나 아래세대를 향해 설교를 내지른다.
 
그래서 이들이 글을 쓴 것이라 생각한다.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말하기 시작했다.
 
이 점이 이들의 가장 다른 점이다. 모두가 출판사를 통해 데뷔하지 않았다. 직접 독립출판물 워크숍을 찾아갔고 글을 써서 자기 손으로 책을 만들었다. 여기엔 출판 비용도 포함된다. 그렇게 세상과 만난 이야기는 같은 시대를 경험한 친구들로부터 열렬한 환영과 뜨거운 공감을 얻었다.
이들과 세대가 다른 나는 이들의 이야기에 공감은 하지 못하지만 어떤 시대를 관통해 살아 왔는지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우리의 뒤를 걸어오고 있는지 말이다.
그렇지만 그 어느 세대보다 현명하고 씩씩하며 용기 있는 이들의 다음 이야기를 어서 빨리 들어보고 싶다.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 김나연 저
스토리지북앤필름의 독립출판물 제작 워크숍 수강하며 5년 동안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을 정리하고 다듬어 독립출판 형태로 2000권을 찍었다. 이후 문학테라피를 통해 정식 출간됐고 얼마 전 3쇄를 찍었다.
짝사랑 상대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해 써낸 글은 너무나 솔직하다. 거짓 없는 감정에 동세대 독자들은 응답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제목의 '섹스'에 홀려 집어 들어선 안 되는 책이다.
 
"너를 내 세상에 초대하고 싶었는데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런 연결고리도 없는, 그저 낱개의 점들이었으니까.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나를 알아봐달라고. 나에게 글은 너를 향해 나부끼는 찢어진 깃발 같은 것." <모든 동물 후 섹스 후 우울해진다> 중에서
 
<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 이슬아
상인들의 거리에서 태어나 상인들의 이야기를 읽고 이야기를 파는 상인이 되기로 결정한 사람이 있다. 이슬
아 작가는 한겨레신문의 손바닥 문학상을 통해 데뷔했지만 작가로서 이름을 알린 것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일간 이슬아>를 통해서다. 월화수목금, 한 달에 20일. 하루에 글 한 편씩을 이메일로 구독자에게 보냈다. 글 속에는 이슬아 자신의 솔직한 모습이 담겼다. sns를 통해 독자를 모집했고 구독료는 만 원이었다. 6개월 동안 배달한 글을 모아 독립 출판물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만들었다. 이 책은 '없어서 못 파는 책'이 됐고 헤엄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간됐다. 엄마 '복희'씨와의 이야기를 쓰고 그린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는 출간 일주일 만에 증쇄.
 
"두렵기 때문에 우선 나에 관해 쓰곤 했다. 그것 역시 어려웠다. 사실 나도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다. 나란 사람의 구성은 가족과 사회화 정치와 국가와 환경과 과학과 시대의 맥락 속에서 해석되어야 했다. 세상 속 나의 좌표를 알려면 우선 세상을 이해해야 하는데 그건 평생 계속해야 하는 공부였다."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중에서
 

이 밖에도 너무도 유명한 백세희 작가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몇 쇄까지 찍었는지 궁금), 김경희 작가의 <회사가 싫어서> (해외에 판권이 팔림), <찌질한 인간 김경희> 그리고 <한 달의 길이>, <일개미 자서전>, <아무튼, 양말> 등을 쓴 구달 작가 모두 직접 독립 출판물로 자신의 책을 만든 다음 인기를 얻어 정식 출판한 사례다.
 
지상파 드라마의 시청률은 매해 떨어지는 반면 종합편성채널이나 케이블 채널 드라마의 시청률은 상승세를 타고 있는 것처럼 출판계는 불황이지만 우리가 몰랐던 세대의 고군분투가 출판계에 불씨가 되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에 송고했습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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