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그림만 보면 누군가가 그리워진다

[그림의 말들]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

등록 2019.03.21 15:04수정 2019.04.0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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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드워드 호퍼,1942,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뉴욕 그리니치 애비뉴에 있는 어느 카페. 밤늦은 시간, 텅 빈 거리, 상점들도 문을 닫았다. 적막이 흐르는 거리, 사람들이 몇 있는 카페 안도 적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림 어디에도 카페로 들어가는 입구가 없다. 단절되고 고립된 공간.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사람들도 시선이 모두 각각인 채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다. 무슨 말을 건네는 듯 보이는 카페 종업원, 무심히 손톱을 내려다보는 빨간 드레스 여인, 그리고 그녀와 일행처럼 보이는 담배를 든 남자,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있는 모자를 쓴 신사. 등장인물이 넷이나 되지만 마치 음소거가 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요하다.

이 그림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새우는 사람들>이다. 이 작품을 볼 때면 제일 먼저 기다란 직선에 눈이 베인다. 그리고 저기 저 고독이 뚝뚝 떨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에 마음을 베인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흘리는 고독의 무게에 감히 말을 붙이기도 어렵다.

담배를 든 사내와 빨간 드레스 여인은 손끝이 간신히 맞닿아 있다. 마치 인연의 끝자락에 서 있는 연인들처럼. 이들의 눈치를 보며 일하는 종업원도 마음 둘 곳 없기는 마찬가지다. 혼자는 혼자라서 외롭고 둘은 둘이라서 외로운 곳. 대도시, 그 골목 귀퉁이의 민낯.

에드워드는 이 그림 속의 고독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특별히 고독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나는 그림을 단순화하고 식당을 크게 그림으로써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그 도시의 고독을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번의 세계대전과 경제 대공황을 거친 미국 대도시의 풍경과 그 속에 우두커니 등장하는 사람들을 통해 보여주는 고독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호텔, 카페, 주유소, 기차와 같이 대도시 어디든 흔히 볼 수 있는 곳을 주로 그렸는데, 대도시의 화려함보다 그 속에 소외된 인간들을 특징적으로 표현했다.

물질이 발달할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고 그 무언가를 얻기 위해 관계는 부서진다. 바다 한 가운데서 단 한모금의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 탈진하는 것처럼 도시의 많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지탱해줄 단 하나의 관계를 만들지 못해 죽어가는 사람들. 에드워드는 그들의 소외와 고독에 관한 것들을 캔버스에 담았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그림 속 이야기들은 모두 나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니 저기 뒷모습의 남자는 가장이라는 무게에 눌린 내 아버지가 되고, 내 남편이 되고, 내가 된다. <밤을 새우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베이는 이유다.

이렇듯 그의 많은 작품들은 단순 관람을 넘어 그림과 나의 일치점을 보여준다. 그가 표현한 고독은 즐길 만한 것이 아니다. 한 발만 더 내밀면 공포로 다가올 진절머리 나는 외로움, 그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을 보고나면 누군가 생각나고, 걱정되고, 그리워진다.

에드워드의 그림들은 영화나 소설, 나아가 팝아트까지 다양하게 영향을 끼쳤는데, 이 작품은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 영감을 주어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주요 이미지로 차용되었다.

"나는 끊임없이 이 그림을 재생산하려고 했다. 우리 제작팀은 이 그림을 참고해 일러스트를 그리고 분위기를 비슷하게 가져가려고 노력했다." - 리들리 스콧.

현대인의 고독을 가장 잘 보여준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눈을 감은 뼛속까지 뉴요커다. 뉴욕주의 나이액에서 태어난 그는 12세에 키가 180센티미터가 넘었다. 어린 시절, 마르고 큰 키 때문에 메뚜기라고 놀림과 따돌림을 받았으며 그의 소외나 외로움의 근원이 여기서 기인한다는 예술사가도 있다. 성인이 된 그는 거의 2미터에 가까운 장신이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고 넉넉한 가정형편으로 뒷받침도 받고 자랐다.

처음에는 삽화를 시작으로 뉴욕 미술학교에서 로버트 헨리의 제자로 회화를 공부했다. 1906년 학교를 졸업하고 광고회사에 취직, 일러스트와 광고용 판화들을 주로 제작했다. 그 무렵 유럽 각국을 여행했고 파리에 10개월가량 머물면서 당시 파리를 휩쓴 인상파와 입체파들의 그림들을 보았다. 그는 파리 인상주의 그림들을 보며 그림자에도 빛이 있음을 지각한다. 이 시절 인상주의 풍의 그림을 시도하지만 그는 그런 화풍에 크게 매력을 느끼지 않았다.

뉴욕으로 돌아온 그는 생계를 위해 광고 미술을 하면서 틈틈이 자신이 원하는 작업(순수 미술)을 했다. 1913년 그의 스승인 로버트 헨리의 노력으로 69연대 병기고에서 '아모르 쇼'가 열렸고, 그도 '항해'라는 작품으로 이곳에 참가한다.

아모르 쇼는 유럽과 미국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동시대 화가와 조각가들이 참여한 전시다. 이 전시는 유럽 미술과 미국 미술을 비교하고 문화적 교류를 성취한 최초의 전시로 역사적 가치가 크다. 마르셀 뒤샹의 충격적인 작품인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가 전시 되었고 조르주 브라크, 에버렛 신, 윌리엄 글라큰스, 조르주 브라크 등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참여했다.

이 때, 운 좋게도 아모르 쇼에 출품한 에드워드의 작품이 팔렸지만 이 후 그는 10년 동안 단 한 점도 판매하지 못한다. 1924년, 42살의 그는, 같은 미술학교 출신인 조세핀 니비슨(1883-1968)과 결혼한다. 조세핀은 그의 모델이 되어 주었고 평생 예술적 동지로 함께한다. 둘 사이에 아이는 없었고 달라도 너무 다른 성격 차이로 때때로 육탄전을 벌이며 싸울 때도 많았지만, 그녀는 예술가로의 에드워드를 존중했고 사랑했다. 그녀의 조언대로 그는 수채화에 비중을 두기 시작하고 대중과 비평가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1925년 발표한 <철길 옆의 집>은 그의 출세작이다. 빅토리아풍의 허물어져 가는 저택이 철로 앞에 스산하게 서 있는 작품이다. 뉴 아티스트 소사이어티 제7회 전시회에 이 작품을 출품했고 젊은 비평가 로이드 굿리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이 전시에서 가장 충격적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어떤 사실주의 그림보다 가장 신랄하고 황량한 작품"이라며 극찬했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또한 많은 영화에서 그의 작품을 차용했는데 <철길 옆의 집>은 영화 <사이코>에 나오는 집의 모티브가 되었다.

1927년 열린 그의 두 번째 전시에서 그는 완판을 기록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전업화가의 길로 접어든다.

"위대한 예술은 작가의 내면세계를 훌륭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내면 세계는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개인적인 시각으로 구현된다."
 

자동 판매기 식당(에드워드 호퍼,1927, 아이오아주 디모인 아트센터) ⓒ 아이오아주 디모인 아트센터

  
할리우드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장갑을 한 손만 벗은 채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 그림의 모델 역시 그의 아내 조세핀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자동판매기 식당>. 자동판매기에 돈만 넣으면 원하는 음식이나 음료가 나오는 무인 판매 식당이다. 그림만 봐도 숨은 이야기가 많다. 누굴 만나러 가는 길일까. 혹은 만나고 오는 길일까. 무슨 상념에 잠겨있는 걸까. 마치 영화의 스틸 컷처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미스터리 작가인 스티븐 킹, 조이스 캐럴 오츠, 게일 레빌, 마이클 코넬리 등이 모였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골라 상상력을 더해 이야기 한 편씩 실었다. 이렇게 탄생한 단편소설 모음집이 <빛 혹은 그림자>이다. 이 책에는 총 17점의 작품이 실렸는데, 기획자이기도 한 로렌스 블록은 위 그림인 '자동판매기 식당'을 주제로 '자동판매기 식당의 가을'을 써서 2017년 에드거상 최고 단편부분 상을 수상했다.

그의 그림들을 엮어서 만든 영화도 있다. <셜리에 관한 모든 것>. <맘마미아>가 아바의 노래를 연결해 만든 영화라면 <셜리에 관한 모든 것>은 그의 그림을 연결해 만든 영화다. 그림과 똑같은 배경에 배우들은 그림에 나오는 옷을 입고 그림 속 동작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 영화에서는 모두 13점의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20세기 중반을 접어들어 시대의 흐름이 추상으로 갔다. 그의 그림은 진부한 것으로 치부되었다. 허나 그는 그의 화풍을 바꾸지 않았다. 시류에 타협하지 않고 마지막 까지 꾸준히 자기 길을 간 셈이다.
  

두 코미디언들(에드워드 호퍼,1965,개인소장) ⓒ 개인소장


이 그림은 그의 마지막 작품이다. 어쩐지 제목만 들어도 찡하다. <두 코미디언들>. 80이 훌쩍 넘은 그가 그간의 삶을 돌아보니 '인생이 코미디 같다'고 느꼈는지 모르겠다. 두 남녀가 관객을 향해 인사를 하며 무대를 내려올 준비를 한다. 한 세상 잘 살다간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를 누구보다도 잘 보여준 예술가. 순수미술뿐 아니라 대중문화에도 지대하게 영향을 끼친 그는 1967년,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자 그의 아내 조세핀은 그의 남은 작품들을 모두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 기증하고 이듬해 그녀도 눈을 감았다.

*참고서적
호퍼, 고독한 현대인의 자화상(마로니에 북스, 실비아 보르게시, 최병진 옮김)
에드워드 호퍼,빛을 그린 사실주의 화가(을유 문화사, 게일 레빈, 최일성 옮김)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인천 투데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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