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증 받으려다 속 터질 뻔한 사연

[도쿄옥탑방일기-18화] 고지식한 건가, 정직한 건가

등록 2019.03.24 19:10수정 2019.03.2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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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타이토구 구청 민원실 모습. ⓒ 김경년

 
받을 사람 눈앞에 있는데 우편으로 보내겠다고?

작년 이맘 때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외국인등록과 의료보험 가입을 위해 구청으로 향했다. 듣던 대로 일본 공무원들은 친절했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신청문서를 모두 작성했다. 곧 집으로 보험증을 보내줄테니 보름쯤 기다리라고 했다.

까먹고 있다가 얼마 후 집 우체통을 열어봤더니 '우체국에서 왔었는데 수령인이 집에 없어서 그냥 돌아간다'는 안내문이 한 장 들어있었다. 언제 다시 오겠다는 내용도 없고 보험증은 얼른 받고 싶고 해서 다음날 아침 구청에 다시 갔다.

우체국 직원이 놓고 간 안내문을 보여주니 '알았다'고 하면서 캐비닛을 열어 내 보험증을 가지고 나왔다. 본인 것이 맞냐고 물어보길래 반갑게 '그렇다'고 대답하고 이제 저걸 수령할 수 있겠구나 했다.

그런데 웬걸. '아, 그러냐'고 되묻더니 우체국을 통해 다시 한 번 보낼 테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것이다. 헐~ 당사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 이게 무슨 황당한 시추에이션. 당황해서 그냥 주면 안 되냐고 물어보니 규정이 그렇다며 "한 번만 더 해볼테니 좀 참아라"는 말만 계속한다. 어눌한 일본말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힘들고 해서 결국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고 말았다.

낮 시간엔 학교에 가야하니 집이 항상 비어있고 우체국 직원은 언제 오는지도 모르니 다음에도 꼭 받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우체국 직원은 다음에도 우리집에 왔다가 허탕쳤고, 결국 우체통에는 언제까지 동네 우체국에 와서 찾아가란 쪽지가 놓여있었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앞에 있는 본인에게 줬으면 될 걸. 들어만봤던 일본 사회의 답답함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보험 가입자가 정말 그 주소에 살고있는지 확인하려고 극구 집으로 보내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하고 나름 추론을 해봤지만, 그럼 방문하는 날짜와 시간이라도 정해서 주든가 했어야 하지 않나. 일본 온 지 30년 된 지인은 "일본 공무원들과 말하다 보면 너무 고지식하고 답답해서 속이 터지려고 한다"라며 "내가 그래서 일본 관공서 출입할 일을 웬만해선 안 만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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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한 번화가에서 여자 대학생들이 이야기하고 있다. ⓒ 김경년

 
한국인들이 일본인 보고 답답하다고 하는 이유

일본에 좀 살아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일본인들이 참 답답하고 고지식하다고 말한다. 한국 같아선 조금만 머리를 굴려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일도 이들은 절대 규정을 어기지 않고 참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하룻 만에 할 수 있는 일도 일주일 이상 걸리는 게 다반사이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결국 할 수 없게 만들 때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회사의 부서장은 자기 혼자 결정 내리는 일이 없고 부서원 전체 회의를 열어 결정한다고 한다. 좋게 말하면 민주적인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필자보다 몇 년 먼저 방문연구원을 지낸 어떤 기자가 학부생들의 수업을 청강하다 몇몇 일본 학생들과 친해졌는데, 회식이나 뒤풀이 장소를 정할 땐 꼭 자기 얼굴만 쳐다봐서 난감했다고 한다. 어딜 가자고 먼저 얘기하는 학생들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답답한 자신이 무슨무슨 맥줏집을 가자든지, 어느 가라오케를 가자고 하면 그 때야 환성을 지르며 따라오더라며 "일본 아이들은 자기결정력이 없는 것 같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관공서나 은행에서 일처리를 하다보면 아직도 도장이 없으면 진행이 안 된다. 한참 전부터 도장 대신 사인으로 대체하고 있는 한국에 비하면 참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수수료가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 은행은 은행과 은행 간은 물론 같은 은행이라도 지점이 다르면 송금 수수료를 내야 한다.

이메일과 메신저 프로그램이 나온 지 언젠데 사무실 한 편에는 여전히 팩스에서 종이 나오는 소리가 삑삑거린다. 일본 라디오를 듣다가 아직도 엽서로 신청곡을 받는걸 알고 깜짝 놀랐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수금사원이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시청료를 거둬간다.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식당이나 카페에서 와이파이를 쓰려면 카운터에 가서 비밀번호를 물어봐야 하는 곳이 상당수고, 무료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지하철이 많이 생겼지만 항상 한자가 빽빽이 쓰인 약관에 '동의하십니까' 버튼을 눌러야 사용할 수 있게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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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한 건물 공사장 앞에서 행인들을 안내하는 안전 요원들. ⓒ 김경년

 
답답한 게 아니라 정직한 것이라고?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적지 않다. 모든 것을 빨리 해치워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 사람들이 볼 때는 답답하겠지만, 일을 정직하고 예측가능하게 하는 측면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5일 걸릴 일을 한국 사람들은 "3일이면 할 수 있다"며 가져가서 끙끙 앓다 7일 만에 해가지고 오지만, 일본 사람들은 여유있게 "7일은 줘야 할 수 있다"고 말한뒤 무슨 일이 있어도 7일 안에 끝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인에 비해 일본인들이 일은 늦게 하지만 더 정직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것으로 알려지는 게 아닐까.

물론 사람은 똑같은 것. 한국에 비해 경쟁이 훨씬 덜한 사회이기 때문에 꼼꼼히, 천천히 하는 게 가능한 것이다.

혹자는 무사 전통이 이어져 온 일본에서 조금만 잘못하면 사무라이에게 목이 잘릴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일에 신중히, 그리고 완벽하게 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고도 하지만, 그 외에 오래 전부터 발달한 상업문화도 한몫을 하지 않았나 싶다. 장사를 하고 가업을 잇기 위해서는 손님들에게 흠이 없는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전화를 잘 안 받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메일이나 SNS로 뭘 물어봐도 바로 답장을 받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다. 그래서 일본인들이 한국 사람들에 비해 사람 간의 정이 부족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직장이나 아르바이트가게에서 사적인 통신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근무시간은 내가 돈을 받고 직장에 내준 시간이기 때문에 전화나 SNS같은 용무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 그러다가는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편의점에서는 한국처럼 알바생이 손님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휴대폰을 보고있는 일은 절대 없다.

공사장 양옆에 후줄근한 유니폼과 안전모를 하고 배치된 안전관리원들도 자신의 일을 철저하게 하겠다는 의지가 대단하다. 인사하는 말투에서, 허리 숙이는 각도에서 단순히 행인들의 안전을 신경쓰는 것을 넘어, 통행에 불편을 줘서 미안하다는 표정이 역력히 묻어난다.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라지만 저출산 고령화로 치닫는 일본 사회 모습에서 과거만큼 넘치는 활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일본이 앞으로도 경제대국으로의 면모를 유지한다면 그것은 이같이 각자가 선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들 덕분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도쿄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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