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의 옥탑 탈출을 꿈꾸고 있다

[삼달다방 친구들의 세 번째 편지] 건축기금 '이음' 마련 프로젝트

등록 2019.04.08 10:07수정 2019.04.0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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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달다방에서의 식사. 누가 이용하더라도 불편함 없는 삼달다방의 편안함을 지인들과 나누었다. ⓒ 박영희

    
나는 24년 전 서울 방배동 3층 빌라에서 옥탑에 갇힌 공주처럼 살고 있었다. 왕자가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었다. 높은 옥탑에서 탈출시켜줄 왕자님이 나타나야만 자유로울 수 있는 신세의 공주가 나였다. 멋진 왕자가 아니어도 무수한 계단을 나를 업고 내려와 줄 수 있는 힘센 사람이 필요했다.

어느 날, 키 크고 잘생긴 진짜 왕자님처럼 보이는 남자가 나를 옥탑에서 탈출시키려고 나타났다. 그렇게 그를 처음 만났다. 만나면 말수가 적은 그는 내게 몇 마디만 했지만, 헤어지고 나면 늘 내게 따뜻한 여운을 오래도록 남게 하는 그였다.

어느 날 사랑하는 옥순이가 '언니 나 결혼해' 들뜬 목소리로 전화했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성엽이구나'라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들과 있어도 항상 옥순을 향한 시선이 멈추지 않은 것을 봤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상엽과 옥순은 지금 부부가 되어 있다. 우리는 24년 전 방배동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 있었던 '빗장을 여는 사람들'이라는 모임에서 만났다. 우리 집은 계단뿐인 3층 빌라였고 상엽은 나를 빗장에 참여시키려고 업고 내려오기 위해 왔었다. 상엽과 옥순 등에 업히면 3층의 높은 계단과 모임장소의 지하계단도 안심할 수 있었다.

24년 전만 해도 장애인운동은 경증장애에 교육을 받은 남성중심이었다. 여기에 나는 제도교육조차 받지 못했고, 중증장애여성으로서 세상을 변화시킬 운동은 내가 할 것이 아니라고 나름 판단하고 모임참여에 의지가 없었다. 그러나 옥순과 상엽은 나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선선히 자기 등을 내밀고 나를 업고 계단을 하나하나 내려가는 그 발걸음이 미안해서 모임에 나갔다.

상엽은 내가 모임에 빠지면 꼭 다가와서 '누나 왜 안 나왔어' 짧은 물음 속에 많은 말을 담고 있었다. 어느 날은 미안해서 때로는 고마워서 모임에 나가다 보니 어느덧 나는 모임에서 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삶은 지금 장애여성활동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이 부부가 나의 삶의 옥탑 탈출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옥순은 서울에서 장애인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혐오, 차별, 인권 등 장애인의 전 생애의 옥탑에서 탈출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고, 상엽은 제주에서 삼달다방으로 장애인만이 아닌 다양한 사람들의 자유를 방해하는 옥탑에서 탈출을 위한 활동하며 살고 있다.


이상엽. 그는 높은 옥탑에서 공주를 탈출시킨 왕자처럼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자유를 향해 탈출시킨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어느 곳에나 그것이 무엇이든지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거절 없이 말이 많지 않은 과묵함에 어려운 사람 같으면서도 조용히 살피면서 도움이 된다. 늘 화려한 말보다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사람. 향기와 온기가 있는 사람. 짧은 한 마디 말에 많은 것을 담은 사람. 소리 없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뭔가를 준비하고 만들어 내는 사람. 지금까지 내가 아는 그이다.

나는 또 꿈을 꾼다,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고 싶은 꿈을
 

장애인도 마음 편히 한달살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고 있는 삼달다방 이음동. 건축비가 이상엽의 부담으로 남아서는 안된다. ⓒ 박영희

 
사람들이 제주도의 노란 유채꽃밭을 말할 때 나와는 상관없는 곳. 제주도를 생각 할 때면 피로감이 먼저 앞서던 곳. 대부분 사람들은 제주도 가는 기회가 생기면 좋은 기회이니 여행하고 오라고 쉽게 말하지만, 내게는 좋은 기회가 아닌 곳. 좋아하는 사람과 나란히 하는 제주도 바다를 상상할 수 없는 곳. 성시경의 '제주도의 푸른 밤' 노래를 들으면서도 머나 먼 이국나라를 상상하게 하던 곳. 비행기를 타고 내리면 이동과 먹고 자는 것 편의시설 등 생각만으로도 벌써 지쳐 버리는 곳. 제주도는 나에게 이런 곳이었다.

그런데 마치 옥탑에서 나를 탈출시켜줬던 기억을 남기듯이 그가 내게 또 하나의 자유의 기억을 남겨줬다. 작년 10월 그가 제주도에 우리를 초대했고, 우리는 제주에서 진정한 자유로운 여행을 했다. 내가 25년 동안 집안옥탑에서 소설책을 읽으며 상상했던 책으로 가득한 예쁜 삼달다방.

공항에서부터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전동휠체어로 이동하는 리프트 장착 노랭이 차의 편안함. 넓고 편한 장애인화장실과 창이 있는 아담한 방. 좁지만 라면 냄새와 삶은 감자가 있던 부엌과 커피향이 있는 거실 그리고 정감 있는 사람들과 소박한 웃음. 그리고 그가 아기자기한 그릇들 속에서 조용하게 요리한 음식들. 저녁이면 편한 자세로 의자에 다리를 올려놓고, 대형스크린에 명화극장의 옛스러운 영화 관람과 맥주 한 잔, 가로등 없는 밤하늘의 무수한 별과 손톱만한 달.

낮이면 빛이 좋은 마당과 조금은 거센 바람 그리고 주변 산책로는 턱없이 거닐 수 있는 곳. 나의 장애가 부담되지 않는 여행 기억들... 그가 제주도에 있기에 이렇게 자유여행기억이 있다.

나는 또 꿈을 꾼다.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장애로 불편하지 않고, 시간의 아쉬움과 초조하지 않는 여유를 가지고 살아보고 싶은 꿈을. 그는 내게 꿈을 꿀 수 있고,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 꿈은 그와 나만이 꾸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과 같이 꾸면 더 의미 있을 것이다.

24년 전 그는 옥탑에서 나를 업어서 내려 탈출 시켰지만, 이제는 혼자 업는 것이 아니라 구조를 바꿔서 이 세상의 많은 옥탑을 거두고 더 많은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려고 한다. 그래서 나도 함께 한다.

충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쉼이 있는 곳. 소진한 사람이 에너지 받는 충전소 같은 곳. 자신의 소중함에 격려하는 곳. 장애 때문이 아닌 구조 때문임을 확인하는 곳. 누구나 자신에게 집중할 존중이 있는 곳. 이런 곳을 만들고 싶다. 그와 함께 말이다. 이런 꿈을 함께 할 분들 그와 함께 기다린다.

'이상엽' 참 멋진 사람입니다.

이상엽이 삼달다방 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우리에게 보낸 편지를 여기에 올린다.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질 수록 나와 내 장애인 친구들의 제주 여행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모두가 머물 수 있는 삼달다방 '이음'동 건축기금 모금

삼달다방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사람여행의 공간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람과 문화가 어우러지는 공간을 지향하며 삼달다방은 공간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건강함과 사람과 문화를 중심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며 인연이 된 수많은 사람들, 또 앞으로 새로이 인연이 될 사람을 만나는 사람여행 공간을 꿈꾸며 삼달다방지기, 저 이상엽은 제주 서귀포의 삼달리에 삼달다방을 만들었습니다.

방 4개, 부엌 하나짜리의 아늑한 삼달다방이 만들어지고 얼마 후인 작년 가을, 제주를 좋아하는 친구 L이 삼달다방을 찾았습니다. 장애가 있는 그는 탈시설한 사람이었고, 장애인의 권리와 인권향상에 몸을 던져 살아온 이였습니다. 저는 늘 진정성 있는 L의 삶을 좋아했습니다. 그가 대뜸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며칠 후 집 마련을 위해 귀하게 모은 청약통장을 해지했다며, 삼달다방 계좌로 송금해주었습니다. 이유는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제주에서 좀 길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귀한 돈이란 생각과 함께, L의 진한 소망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L을 비롯해 장애를 가진 또 다른 이들의 비슷한 요청이 이어졌습니다.

사실, 잠시 고민했습니다. 삼달다방은 직장생활 퇴직금과 살던 집을 팔아 이제 막 지은 공간이었습니다. 곧바로 다시 새로운 공간을 준비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털고 결정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공익활동가들이 편안히 한 달여 장기 휴식할 공간이 제주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익활동가들이 긴 시간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다시 만들어 보자.' 일단 대출의 힘을 빌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인건비를 줄여보고자 직접 노동을 하고, 자재를 실어 나르고, 같은 마을 친구들, 철수와 목수, 용기, 병선의 도움을 받고, 매일 밥을 직접 지어 따뜻한 점심을 나누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삼달다방에 장애인과 공익적 삶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한달살이 집을 짓고 싶습니다. 사람의 공간을 만들고 싶습니다.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가 제주에서 긴 시간 자연을 느끼고, 문화적으로 충전할 수 있는 공간을 여러분의 참여로 만들고 싶습니다. 삼달다방의 노랑차(장애인도 이용하는 리프트 카)를 구입할 때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한 지가 얼마 지나지 않은 것이 마음을 계속 불편합니다. 공사를 처음 시작할 지난 가을, 손을 내밀고 싶었지만 주저스러운 마음에 선뜻 말을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다시 용기를 내어 삼달다방의 <이음>동 건축기금 모금을 청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사람답게 머물고 쉴 수 있는 공간인 <이음>을 만드는 데 여러분의 마음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이음'은 처음 이 고민을 시작하게 한 친구 L이 직접 새로이 만들어질 집에 지어준 이름입니다.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잇는다는 탈시설 운동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이음'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사람답게 머물고 쉴 수 있는 공간입니다. '이음'을 함께 만들어주실 것을 한 분 한 분께 부탁합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잇는 여행자 문화공간, 제주와 육지를 잇는 소통공간, 제주의 자연과 사람이 이어지는
삼달다방이고 싶습니다. 사람을 향한 작은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협력을 요청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잘 모여서, 좋은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살이 공간을 함께 만들면 좋겠습니다. 삼달다방이 사람을 만나는 사람여행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 길에 길동무가 되어주시길 청합니다.

제주의 가장 아름다운 꽃이 피는 봄날 삼달리에서
삼달다방지기 이상엽 올림<삼달다방>

※ 주소와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작은 마음의 선물 전하겠습니다. 모금참여자 링크 잠시 시간내어주세요
https://forms.gle/DdEQjHBxh6L43HCM6
#삼달다방 #이상엽 #박옥순 #건축기금모금 #건축기금마련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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