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검 오른 '성락원' 가기 전에 알아둬야 할 것들

자연의 즐거움을 담은 옛 정원... 성락원 감상 포인트

등록 2019.05.02 21:07수정 2019.05.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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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5월 28일 오전 11시 20분] 

지난 23일부터 연일 화제가 됐던 성락원. 서울에 몇 안 남은 아름다운 옛 정원이다. 이곳이 그동안 일반에 공개된 건 매년 봄·가을 단 며칠이 고작이었다. 이번에는 다소 긴 기간(6월 11일까지) 개방하는데, 이 또한 거의 하루 만에 예약이 모두 마감됐다는 후문이다.

언론에서는 성락원 개방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러나 전통 정원의 이해를 도울 만한 글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 잘못된 기사가 여기저기 복제돼 인터넷을 떠돌기도 했다. 성락원이 어떤 곳인가를 제대로 알려 우리 옛 정원의 아름다움을 독자들과 함께 누리고자 한다. - 기자 말


조선 시대 한양 도성 안에 살면서 대대로 벼슬했던 가문을 흔히 '경화세족'이라 했다. 이들은 도시 특유의 세련된 문화를 형성했는데, 서화와 골동품을 수집해 감상하거나 희귀한 꽃과 나무, 괴석으로 뜰을 꾸미기도 했다. 권력과 경제력을 가진 데다 문·사·철에 밝았고 시·서·화에 능했던 이들은 적극적으로 정원을 조영하기도 했다.

이들이 19세기에 서울에 지은 대표적인 별서 정원으로는 지금의 삼청동에 있었던 김조순의 옥호정, 부암동에 있는 김흥근의 석파정, 윤웅렬의 별서였던 부암정, 성북동에 있는 성락원 등을 들 수 있다. 부암동에 터만 남은 백석동천은 지은 연대가 정확하지 않다. 이들 별서들은 계곡이 깊고, 수석이 맑은 데다, 도성에서 가까운 곳이라 세도가들이 자주 찾았다.
  

성락원경사진 구릉지와 계곡을 이용해 조성한 성락원은 마치 심산유곡에 있는 듯하다. ⓒ 김종길

 
복사꽃이 만발했던 한양의 명승

예부터 한양에는 춘경 오색이라 하여 필운대의 살구꽃, 흥인문 밖의 버드나무, 정릉의 수석, 도봉의 단풍과 더불어 성북동의 복사꽃이 유명했다. 서울을 중심으로 기록한 인문지리서인 <동국여지비고> '한성부' 명승 편을 보면, '도화동'으로 불리던 성북동 일대는 봄철이면 복숭아꽃이 만발해 도성 사람들이 다투어 꽃구경을 하던 곳이다.
 
북저동은 혜화문 밖 북쪽에 있는데, 동(洞) 가운데 복숭아나무를 벌려 심어서 봄철에 복사꽃이 한창 피면, 도성 사람들이 다투어 나가서 놀며 구경한다. 민간에서는 도화동이라 부르며, 어영청의 성북둔이 있다. 북사동이라고도 하며 옛날에 묵사가 있었기 때문에 묵사동이라고도 한다. 맑은 시내의 언덕을 따라 주민들이 복숭아나무를 심어 생활을 한다. 늦은 봄철마다 노는 사람들과 수레와 말로 가득 찬다."
 
초정 박제가도 "어인 일인고, 복사꽃 안 심으면 수치로 여기는 게 성북동의 풍속이라네"라고 감탄했을 정도였으니 예부터 성북동 일대는 복사꽃이 명물이었던 모양이다.
  

성락원본채 옆 누각에서 송석정 가는 오솔길 ⓒ 김종길

  
성락원은 순조 때 황지사의 별장으로 처음 조성되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황지사가 어떤 인물인지 알려진 바가 없어 언제 별서를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순조 때로 어림잡아 200년이라고 하나 이는 추측일 뿐이다.

또한,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별서로 사용했다고도 전해지나 심상응이라는 인물에 대해 확인된 바가 없다. 이후 고종의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이 별궁으로 사용했다고 전해진다.

아쉽게도 심상응이 정원을 어떻게 조영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성락원 주변의 자연 경관을 읊은 시문만이 몇 편 전하고 있어 짐작할 뿐이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조선지형도>(1915)에는 '이강 공(公) 별저'로 표시돼 있다.

성락원은 1950년대 심상응의 후손인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이 사들이며 개인 소유지가 됐고, 이후 한국가구박물관에서 관리해 왔다.

성 밖 자연의 즐거움을 누리는 곳

성락원(城樂苑)은 '성 밖 자연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뜻이다. 성락원은 북한산 구준봉(구진봉)을 배산으로 삼고, 좌청룡 우백호 두 줄기의 산이 둘러싸인 계류에 자리하고 있다. 낙산이 주봉 역할을 하고, 정원이 들어선 자리가 혈(穴)이 된다.
    

영벽지와 본채 풍경성락원은 계류를 중심으로 조성돼 있다. ⓒ 김종길

 
정원은 경사진 산지의 계류를 따라 몇 개의 단으로 나누어 조성됐다. 정원에 들어서면 경사가 높은 곳인 수원지에서 인공 연못을 거쳐 쌍류동천까지 물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구성된 공간을 볼 수 있다. 경사진 구릉지와 계곡을 이용해 적절한 여백을 두고 자연의 풍취를 최대한 끌어올려 마치 심산유곡에 있는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한다.

성락원은 자연 암반과 계류를 중심으로 연못을 파고 건물을 세워 조성된 정원이다. 먼저 정원이 들어설 빼어난 곳을 정한 후에 땅의 생김새에 맞게 인공을 적절히 가미해 정원을 조성하는 우리 옛 정원의 특징이 이곳에서도 나타난다.

정원은 크게 진입 공간(전원), 중심 공간(내원), 후원 공간(후원) 등의 세 공간으로 나눌 수 있다. 전원(前園)에는 쌍류동천과 용두가산이, 내원(內園)에는 본채와 영벽지가, 후원(後園)에는 송석정과 연못, 샘이 있다. 예전엔 과수원과 채소밭, 약초밭이 동쪽에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볼 수 없다.
  

쌍류동천입구 계곡의 바위 글씨로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하나로 모이는 곳이다. ⓒ 김종길

 
성락원에서 보아야 할 것들

입구에 들어서면 지형을 따라 구불한 길이 정원으로 이어진다. 관람객은 길을 따라 정원을 관람하면 된다. 정원은 경사에 따라 각 공간이 구분돼 있어 계류를 따라 오르면서 자연스레 정원을 감상할 수 있다.

제일 먼저 계곡 바위에 쌍류동천(雙流洞天)이라 적힌 행서체의 바위 글씨를 만나게 된다.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하나로 모이는 곳이다.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쌍류동천은 성락원의 산문인 셈이다.

용두가산(龍頭假山)은 정원 안뜰을 가려주고 바깥의 시선을 차단하는 '차폐(遮蔽)'와 지형의 결함을 보충하는 '비보(裨補)'의 역할로 조성됐다. 용두가산에는 200∼300년 되는 엄나무를 비롯해 느티나무, 소나무,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나무, 말채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용두가산바깥의 시선을 차단하고 비보의 역할로 조성됐다. ⓒ 김종길

 
계곡의 작은 다리를 건너 용두가산을 돌아가면 성락원의 하이라이트인 영벽지 일대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벽지는 계류의 물이 자연스럽게 고이도록 만들었고, 전서체로 쓰인 청산일조(靑山壹條), 장빙가(檣氷家) 등의 바위 글씨를 볼 수 있다.

영벽지는 물(계류)과 돌(암반)의 조화가 일품인 정원의 진수를 보여준다. 북쪽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암반에 고이도록 인공으로 쪼아서 물길과 홈을 만들었는데, 전혀 인공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영벽지 일대성락원은 계류를 중심으로 조성된 정원으로 물과 돌의 조화가 일품이다. ⓒ 김종길

   

인공폭포와 청산일조 각자물이 암반에 고이도록 인공으로 쪼아서 물길과 홈을 만들었다. ⓒ 김종길

 
2단으로 떨어지는 폭포수를 둥그런 돌확에 고이게 한 다음 돌아나가도록 한 물의 처리 기법엔 절로 감탄이 나온다. 이런 방식으로 물은 암반 위를 곡예하듯 몇 번이나 돌아 연못으로 흘러 들어간다. 언뜻 창덕궁 후원의 옥류천이 떠오르는 경관이다. 연못에는 예전에 섬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조물 하나만 잠겨 있을 뿐이다.
  
폭포 옆에는 '영벽지(影碧池)'란 세 글자가 초서체로 쓰여 있다. 영벽지 각자 위 바위에는 "밝은 달은 소나무 사이에 비치고, 맑은 샘물은 돌 위에 흐른다. 푸른 산이 몇 겹 둘러 있는, 나는 내 오두막을 사랑한다"라는 한시가 새겨 있다. 푸른 산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정원의 서정과 그 정원을 사랑하는 이의 마음이 물씬 풍긴다.
  

영벽지와 장빙가연못에는 석조물이 있고, 암반에는 장빙가 등의 글씨가 새겨 있다. ⓒ 김종길

 
연못의 서쪽 암벽에는 '장빙가(檣氷家)'라고 새긴 글씨가 있다. 완당(阮堂)이란 작은 각자가 있는 걸로 보아 추사 김정희의 글씨이다. "한겨울에 장대 같은 고드름이 매달려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름을 붙여 자연을 완상하는 고도의 '의경'인 셈이다.
  
계곡 옆 본채는 의친왕이 기거했던 곳으로 나중에 지어졌다. 앞마당은 차일을 치고 멍석을 깔아 접객 공간으로 사용했다. 연못으로 난 담장에는 경주 독락당처럼 안팎이 통하는 살창이 있어 눈길을 끈다. 이곳의 건물들은 정원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뒤로 물러나 있어 주변 자연과 절로 융합되는 자연스러운 풍경을 보여준다.
  

본채성락원 본채 담장에는 경주의 독락당처럼 안팎이 통하는 살창이 설치돼 있다. ⓒ 김종길

 
본채 옆 오솔길을 오르면 후원 영역인 송석정 일대이다. 송석정에 들어가기 전 연못 둑에 서면 멀리 남산이 보인다. 일종의 차경인 셈이다. 또한, 여기선 정원 안의 암반과 계류도 조망할 수 있다. 바깥 전망과 정원 안 풍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인 셈이다. 정원 안은 용두가산이 있어 외부로부터 가려지지만 정작 안에선 바깥 전망이 트여 있어 개방적이다.
  
송석정(松石亭)은 연못과 주변 풍경에 비해 다소 위압적이다. 정자와 연못은 195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한다. 원래 11칸의 규모였는데 다시 지으면서 지금의 7칸 건물이 됐다고 한다.

그러나 원래는 작은 정자가 있었다고 하니 송석정을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하는 이유이다. 그나마 연못가로 최대한 물러나 있어 자연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럼에도 송석정 지붕을 보수하면서 원래 있던 소나무를 제거하지 않고 그 공간만큼 지붕을 비워둔 채 공사한 건 두고두고 남을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송석 각자바깥 연못에서 흘러온 물이 바위 각자를 돌아 송석정 앞 연못으로 흘러간다. ⓒ 김종길

   
송석정 안쪽 계곡에는 송석(松石) 이라는 각자가 있다. 4개의 홈을 따라 흘러내리던 물이 글씨가 새겨진 바위를 돌아 두 줄기로 모여서 연못으로 들어가는 걸 볼 수 있다. 북쪽 산자락에는 바위를 쪼아서 만든 샘이 있다. 이 샘물은 약수로 유명해 철종 때부터 별감이 나와서 지켰다고 했을 정도다. 이 약수를 고종과 순종도 마셨다고 한다.
  
성락원 곳곳에선 괴석, 석상, 석탑, 석등, 문인상, 해태상 등 다양한 점경물을 볼 수 있다. 특히 문인상과 해태상은 여느 정원에서 볼 수 없는 이곳만의 특별한 경관 요소이다. 의친왕이 왕릉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는 문인상은 그 표정과 모양새가 하도 다양하여 절로 눈길이 간다. 대개 궁궐 등에 있기 마련인 해태상이 있는 건 이곳이 왕족의 별궁으로 이용됐기 때문일 것이다.   
 

송석정예전 11칸의 규모였는데 다시 지으면서 지금의 7칸 건물이 됐다고 한다. ⓒ 김종길

     
고종 때의 문인 서파 황수연이 지은 '성북동에 누워(臥城北洞)'란 시에서 그 옛날 이곳 풍광이 어떠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다.
 
"십 년 동안 긴 휴가 얻어 북성(北城) 아래 누웠다네. 산수풍경 다 내 것이라 마음대로 노니는데, 어느새 귀밑털 다 희었다네. 한가로우니 늘 졸음이 쏟아지고 술이 있으면 친구와 더불어 마신다네. 일 만 골짜기 구름이 덮이는데 이내 누대(樓臺)엔 가을 달이 밝구나."
 
성락원의 복원과 개방
성락원은 처음에는 자연 암반과 계류를 이용해 소극적으로 조영했다가 나중에 진입 공간과 주 공간, 후원 등으로 구획해 적극적으로 조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다시 축대 등을 걷어내고 원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특히 1960년대 이후 현대식 주택을 건축하고 시멘트 포장도로나 콘크리트 석축, 옹벽 등이 설치되는 등 주택 정원으로 큰 변화를 겪으면서 원래 모습을 많이 잃었다. 2008년 이후 주택 정원 형태를 걷어내고 원래의 자연 계류형의 별서 정원으로 복원하고 있다고 하니 지켜볼 일이다.

원래 소나무가 있어 송석정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소나무는 고사하고, 약수터에는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나마 성락원의 수원지 역할을 하는 바깥 연못까지 문화재 구역이 된 것은 다행이다. 앞으로 끊긴 물길과 계곡을 복원하고 경매 문제 등을 해결해야 하는 등 많은 난관이 있지만 잘 극복하고 정원을 아끼는 시민들에게 개방돼 사랑받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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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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