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 감사하지 않습니다' 구호에 주목하는 이유

[빛바랜 스승의 날 ②] 교대 단톡방 사건부터 스쿨미투까지... 현직 교사가 보는 '학교 내 성폭력'

등록 2019.05.15 13:24수정 2019.05.1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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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전국 각지의 교육대학교에서 성폭력 고발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경인교대에서는 남학생 단체 카톡방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성희롱과 비하 발언이 오갔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며, 광주교대에서는 학과 수학여행 중 남학생이 화장실에서 동기 여학생을 불법촬영하는 사건이 있었다.

서울교대에서는 지난 3월 남학생 선후배 대면식에 여자 신입생들의 외모를 품평하는 순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후 최근에는 단체 카톡방에서 '대면식 고발자'들에 대한 비하와 조롱은 물론, 졸업생이 자신이 가르치는 초등학생을 성적 대상화했다는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교사로부터 겪은 성희롱과 성추행을 용기 있게 고발한 스쿨미투가 교육계를 뒤흔들었다. 그러나 학생들에 대한 사과나 가해 교사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학교가 많다. 

교사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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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초구 서울교육대학교에 최근 불거진 남학생들의 성희롱 의혹 관련 규탄 메시지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이러한 사건이 대두될 때마다 흔히 나오는 말이 있다. '교사는 다른 직업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직업'이라는 것이다. 교사들은 때로 이 말에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교사는 술이나 담배 따위를 즐기면 안 된다거나, 사적인 자리에서도 항상 반듯한 언행만을 해야 한다는 등의 의미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히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직업들이 어떤 것인지, 그 직업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교사는 다른 직업보다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직업'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도 분명해진다. 교사뿐 아니라 성직자, 의사, 경찰 등은 상대방을 쉽게 억압하고 착취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경찰이 성폭력 가해자와 유착관계를 맺고 피해 신고를 묵살하고, 정신과 의사가 자신의 위력을 이용해 환자에게 성관계를 요구하고, 목사가 신도를 성추행하고도 오히려 피해자를 매장해버리는 일련의 사건들이 바로 그 착취의 사례다. 이렇게 명백한 가해 행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교사, 성직자, 의사, 경찰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가진 권력을 민감하게 의식하고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교사에게 높은 윤리적 기준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일부의 일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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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교내 교사 성폭력 공론화를 위해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용화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창문에 "ME TOO, WITH YOU" 문구를 붙였다. ⓒ 이희훈

 
이런 사건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일부 범죄자의 비행을 전체의 문제로 일반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다수 교사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이 사회문화적 토양과 관련 없이 오로지 일부의 일탈로 일어난다는 생각이야말로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모든 교사가 잠재적 성범죄자라는 식의 과잉 일반화가 옳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심각한' 사건은, 우리가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던 일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다.

흔히 상상하는 것과 달리 성폭력 가해자의 대다수는 사회에서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라 주변인과 곧잘 어울리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다. '평범한' 가해자가 그렇게 거리낌 없이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괜찮을 수 있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 문화가 성폭력에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우리 모두가 성폭력이 나와는 관계없는 일부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스쿨미투가 일어났던 대다수의 학교에서, 여러 명의 학생으로부터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는 한둘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교사의 성희롱과 성추행에 대해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려고 했을 때 "그 선생님이 원래 좀 그러니까 네가 이해해라"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는 것은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증언이었다.

성적 비하 발언이 일상적으로 오간 남자 교대생 단톡방은 익명으로 돌아가는 공간도, 친밀한 몇 명이 따로 모인 사적 공간도 아니었다. 수십 명의 학생들이 지켜보는 공적 공간이었다. 이는 성폭력이 예외적 일부의 일탈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임을 강력하게 증명한다.

성폭력이 '식인'과 마찬가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면
 

지난해 9월 11일 인천 부평 부원여중학생들이 성폭력 피해에 항의하는 포스트잇 시위를 벌인 모습. ⓒ 학생 제공

 
미국의 심리학자 메리 파이퍼는 "강간을 식인이나 마찬가지로 상상조차 못 할 짓으로 여기도록 청소년을 사회화하여야 한다"라고 말했다. '남자는 원래 성욕을 참기 어렵다'는 말 대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할 때 진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는 말이 상식인 사회, '성폭력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 대신 '내가 하는 행동이 성폭력이 될 수 있는지 항상 고민하라'는 말이 규범인 사회를 상상해 본다. 성폭력의 구조적 원인이 해결된 그런 세상에서라면 성폭력은 정말 '예외적 일부의 일탈행동'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실현하려면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겠지만, 자라나는 세대를 가르쳐야 하는 교사들부터가 올바른 인식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학우, 동료교사,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을 성적 대상화하고 성희롱과 성적 비하를 일삼은 교대생이나 현직 교사에 대한 강력한 대응과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남자 대면식 및 단톡방 성희롱 사건 등과 관련해서 가해 학생 일부에게 유기정학 2~3주를 내리는 데 그친 서울교대 측의 솜방망이 징계나, 대자보를 통한 최초 문제제기가 3월이었음에도 지금 시점에서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하는 서울시교육청의 대응은 그래서 문제적이다.

특히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 13일 서울교육대학교에서 내놓은 총장 담화문은 잘못된 대응의 전형을 보여준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은 채로 '우리들 모두의 문제'임을 이야기하는 것은 기만이다. '우리의 공동체가 지녔던 과거의 잘못된 관습과 그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

공론화하고 연대하는 피해고발자의 존재가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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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경남운동본부는 5월 28일 경남도교육청 정문 앞에서 "교육청은 성차별, 성추행, 여성 비하 언행 교사를 즉각 퇴출하라"고 촉구했다. ⓒ 윤성효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공론화와 연대를 통해 문제를 뿌리 뽑고자 하는 피해고발자들의 존재다. 남자 대면식과 단톡방을 고발했던 '서울교대 국어교육과 성평등 공동위원회'는 대자보를 통해 철저한 재조사와 엄중한 징계뿐만 아니라 성평등 센터 건립 및 전 교직원·재학생 대상 성평등 교육 의무화를 요구했다.

요구 대상에는 서울교육대학교는 물론 서울시교육청과 교육부도 포함되었다. 하나의 성폭력 사건이 단지 관련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점, 성폭력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평등 실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한 요구이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스승의 날을 맞아 '우리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캠페인을 열었다. 많은 학생들의 용기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쿨미투 사안이 아직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음을 환기해 준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교사의 성폭력 가해 사건이 연일 뉴스에 오르고 있는 지금, 학교 내 성폭력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다수의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스승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아니다. 노력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지지와 연대다.

'감사합니다'는 말을 듣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학교 내 성폭력이 구조적인 문제로 존재하는 한 감사한다는 말을 들을 수 없다. 학생, 보호자, 교사, 일반 시민이 함께 손을 잡고 학교 내 성폭력 및 위계에 의한 폭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것만이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교육 그 자체를 회복하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솔리님은 현직 초등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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