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적으로 본 노회찬의 열두 가지 편린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 1회] 글머리에 ①

등록 2019.05.15 13:32수정 2019.06.2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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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진보의 아이콘 노회찬 평전]을 시작한다. 노회찬의 위트섞인 촌철살인은 감동적인 울림이 되고 긴 메아리로 남았다. 그의 발언은 임기응변이나 땜질용이 아니라 신념에 찬 확신이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새 연재 노회찬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간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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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익살에 '눈물바다' 대신 '웃음바다'4.24재보선 투표일인 지난 2013년 4월 2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마들역 부근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노원병) 선거사무실에서 열린 해단식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부인인 김지선 후보와 포옹을 하던 중 춤을 추는 포즈로 익살을 부리자 참석자들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 권우성


냉철한 주관이 가끔 광범한 객관을 불러모을 수 있다고 한다.

내가 지켜봐 왔던 고 노회찬 전 의원의 편린이다.

① 그는 순결한 사람이었다

순결(純潔) - 마음에 조금도 더러움이 없이 깨끗함이라고 국어사전은 풀이한다. 순결에 무구(無垢)가 따른다. - 아주 깨끗하여 조금도 더러운 티가 없음을 말한다. 비슷한 단어에 순수ㆍ청정ㆍ결백ㆍ청결 등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부터인지 순결이라는 용어는 사어가 되었다. 특히 사회지도층에서 이 단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장기간 부패세력이 정권을 오로지 하고 치사한 인물들을 중용하면서 유유상종의 구조가 되고, 순결보다는 더러움이 출세자의 비결처럼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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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성의 날 축하하는 노회찬 율동노회찬 마들연구소 이사장이 3.8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 2011년 3월 8일 낮 서울 명동거리에서 열린 플래미몹 '해피 위민스 데이(Happy Women's Day!')'에 참여해서 여성단체 회원들과 함게 춤을 추고 있다. ⓒ 권우성


② 그는 품격이 있는 사람이었다

극단적으로 물신화된 사회, 이기심과 정파성이 극심한 정치판에서, 그는 신념과 관용을 겸비하고 사려 깊고 공적인 책임감을 갖추고 품격을 지켰다. 깜냥도 못 되는 정상배들이 권력의 곤룡포를 입고 날뛸 때, 그는 진득하고 청렬하게 자신의 길을 걸었다.

③ 그는 인성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평생을 음지에서 살아오면서도 품성은 농가의 아랫목처럼 포근하고 품성은 가마솥의 숭늉처럼 따뜻했다. 국회의원이 되고 비록 군소정당이지만 당대표가 되어서도 이런 인성과 품성은 바뀌지 않았다.

④ 그는 인간적 포용력과 그릇이 컸다

그가 살았던 한국 사회는 극단의 시대였다. 남북대결, 독재와 반독재, 재벌과 서민, 지역주의 등 온통 극단적인 대결 구도였다. 정치판이 특히 심했고 국회는 그 중심지가 되었다. 그는 정당에 속하면서도 인간적 포용력으로 정파의 벽을 넘을 만큼 큰 그릇이었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아니라 그릇이 큰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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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1일, 노회찬 진보신당 서울시장 후보. 서울 명동입구에서 마지막 선거유세를 하며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율동을 하며 하트를 만들고 있는 모습. ⓒ 권우성


⑤ 그는 유머와 위트를 아는 정치인이었다

온갖 막말ㆍ상말ㆍ망언ㆍ몰상식이 횡행하는 정치판에서 여유있고 풍자적인 언어를 통해 경직된 분위기를 녹이고 정치공해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위안을 주었다. 정치인들이 아무리 외쳐도 울림이 없고 떨림이 없다가도, 그의 위트섞인 촌철살인은 감동적인 울림이 되고 긴 메아리로 남았다. 그의 발언은 임기응변이나 땜질용이 아니라 신념에 찬 확신이어서 더욱 감동적이었다.

⑥ 그는 한 번도 자신이 설정한 길에서 옆길로 새거나 뒷걸음치지 않았다

당대의 유수한 인물들이 권력과 부를 좇아 신념을 꺾고 변신과 훼절을 일삼을 때에도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걸었던 반독재 민주화의 길을 뚜벅뚜벅 걸었다. 건너 뛰거나 우향했으면 훨씬 기름진 자리, 현란한 위치를 차지했을 터이지만, 그는 우직스럽게 한 길을 걷고 그 길을 벗어나지 않았다.
 

2007년 2월 8일 당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던 고 노회찬 의원이 '삼성그룹 해고 노동자 엠네스티 양심수 김성환을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고 비가 오는 와중에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 김성환


⑦ 그는 진정한 노동자의 벗이었다

입으로는 노동자ㆍ농민ㆍ서민의 대변자를 자처하면서 귀족생활을 하고 앉았던 자리에 X냄새를 풍기는 세태에서, 그는 용접공 시절이나 국회의원이 되어서나 노동자의 친구이고 서민의 대변인이었다. 노동의 가치를 알고 노동하지 않은 대가(국회 특활비)를 거부하는 선량이었다. 국회에서 자신들의 급료를 줄이자고 제안하고 참석하지 않은 상임위의 회의 수당을 반납하였다.

⑧ 그는 청빈한 사람이었다

대단히 총명하고 예리하면서도 생활에는 굼뜨고 야무지지 못하고 그래서 치부를 몰랐다. 세간의 출세자들이 권력ㆍ부ㆍ명예를 모두 누릴 때에, 그는 청빈을 신조로 삼고 그렇게 살았다. 무슨 요술인지, 도깨비방망이라도 가진 것인지,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에 오르면 아파트가 몇 채씩 생긴다는 데, 그는 3선 의원으로 죽을 때까지 전셋집을 전전했다. 그러면서도 재물을 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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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25일, 한미FTA 협상 중단을 촉구하는 민주노동당 당원 총궐기대회 당시 노회찬 의원의 모습. ⓒ 권우성


⑨ 그는 대단히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중층적인 모순구조의 한국 사회에서 '정의'는 국어사전과 특정 정당의 이름 정도에 그치고 있다. "정의 없는 정치는 산적집단"(플라톤)이라는 말이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약효'를 찾기가 어려웠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외국 석학의 책이 자기 나라보다 10배 이상 팔릴 정도로 '정의'에 목말라하면서도 정의는 실현되지 않는다.
    
법무부 장관(과 총리) 출신의 제1야당 대표가 "아무 죄 없는 사람(박근혜)을 석방하라"고 외치는 탈법ㆍ무법의 반정의가 맹위를 떨치는 가치 전도의 사회는, 그의 생존시에도 다르지 않았다. 삼성으로부터 '떡값'을 받은 검사들의 명단을 폭로했다가 외려 의원직이 박탈당하면서도 정의의 칼을 내려놓지 않았다. 정치인 대부분이 재벌과 검찰의 비리에 눈감을 때 그는 앞장서서 정의의 칼을 휘둘렀다.

⑩ 그는 대중의 호감을 위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았다

민주주의가 타락하게 되면 포퓰리즘에 빠져들고 선동가들이 득세한다. 정치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한국 사회는 사회주의(민주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 포함)를 공산주의와 동일시해왔고, 좌파=빨갱이라는 등식이 극성을 부릴 때,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임을 당당히 밝히고 서구식 민주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였다. 족벌언론과 수구세력으로부터 온갖 음해를 당하면서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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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8월 18일 'X-파일` 녹취록 내용 중 삼성으로부터 소위 '떡값'을 받았던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국회 법사위에서 질의하고 있는 모습. ⓒ 이종호


⑪ 그는 자신의 역할을 알고 시대정신을 일깨운 지식인이었다

식민지와 분단과 독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시대에 절망하면서도 '길이 없는 길'을 꾸준히 찾고자 하였다. 때로는 봉인된 병속의 도그마에 갇혀 있는 동지들을 깨우치고, 낡은 이념의 자폐증에 빠져있는 중세적 거리감의 동료(의원)들을 도저한 언술로 질책하였다.
    
몸담은 정당의 권위는 취약했으나 정직성과 도덕적 권위를 통해 한국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정치인의 행동준거를 보여주었다. 너스레를 떨 줄도 알고, 희떠운 소리로 분위기를 녹이면서 사람들을 보듬고 도닥이면서 진보정치, 대중화의 기수 역할을 하였다.

⑫ 그는 호남형은 아니지만 수려한 얼굴은 정직성과 인격으로 다듬어진 모습이었다

자신의 내면적인 자화상이 얼굴에 드러나고 맑은 영혼 앞에 가꾸어진 진실한 얼굴이다. 그의 얼굴에는 사특함이 끼지 않았다. 정계 지도자의 반열에 오르고도 오만하거나 고압적이지 않았고 행동거지는 위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촌부와 같은 소박한 옷차림과 아무하고도 잘 어울리는 편안한 이웃이었다. 독립적이되 고립되지는 않았고, 때로는 정서적으로 허무주의적인 듯도 보였으나, 이웃들에게 한없이 곰살갑고 다정다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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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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