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과 골프 한 번 안 친 부시가 봉하마을 찾는 까닭

'한미동맹 최악'이랬지만 '북한과 평화협정'까지 설득해낸 노 전 대통령

등록 2019.05.23 07:36수정 2019.05.23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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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5월 14일 오후(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부시 미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 때의 한미동맹은 최악이었다고 하는데,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왜 봉하마을을 찾겠다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이 만난 건 총 8번. 정상회담은 1~2시간이면 끝난다.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경우도 있다. 양자회담으로 만난 게 4번, 국제 정상회의를 계기로 짬을 내 만난 게 4번이다. 부시 전 대통령이 좋아하는 골프를 같이 친 적도 없으니 두 사람이 함께 보낸 시간은 개인적인 친밀도를 높이기엔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보수 언론은 참여정부 시절을 한미동맹에 '최악의 시기'로 꼽기도 한다. <조선일보>는 참여정부 5년을 평가한 1월 28일자 기사에서 "벼랑끝으로 달려간 한미동맹"이라고 표현했다. '노 대통령이 부시 행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노 대통령을 만난 라이스 미국 국무부장관이 충격을 받고 돌아갔다' '정상회담 석상에서도 선을 넘나드는 얘기를 많이 했다'는 내용이 주요 근거다.

쉽게 말해 '미국의 한반도정책이나 대북정책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인데, 사실 당시 진행된 한미정상회담 내용들만 되짚어 보면 고분고분하지 않았다는 걸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강경 일변도로 가려던 미국을 설득해 북한과 대화하게 했고, 결국엔 미국의 대북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보는 게 맞다.

첫 정상회담은 보수언론과 야당도 호평... 2005년 경주에선 'BDA 격론'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의 미국 쪽 상대는 부시 대통령이었다. 북한을 '악의 축' '불량국가'로 낙인찍고 네오콘을 대변하면서 '힘의 외교'를 기조로 삼은 '아들 부시' 대통령. 햇볕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하던 김대중 대통령을 "이 사람(this man)"이라고 지칭하며 한국인에 모멸감을 안겼던 그 사람이다.

'한미동맹 위기론'은 참여정부가 시작되기 전부터 보수 언론과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노무현 후보 공격에 즐겨 써온 소재였다. "반미면 어떠냐"는 발언이 주요 공략 포인트였다. 참여정부가 내건 '한미동맹의 재조정'이란 말도 별다른 근거 없이 비난받았다.

하지만 2003년 5월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첫 만남은 대부분 보수언론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박종희 한나라당 대변인이 "크게 환영한다"고 논평했을 정도다. 비결은 양 정상이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용인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남북 교류협력을 비핵화와 연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데에 있었다. 이라크전쟁을 지지하며 파병을 결정한 건 미국측으로부터 환영받았다.

그런데 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비핵화는 국제협력에 기반한 평화적인 수단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부분도 포함됐다. 그동안 북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고려대상에서 빼놓지 않았던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전쟁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것이다. 

노무현-부시 갈등설이 터져나온 건 2005년 11월 경주에서였다. 그에 앞선 9월 미국 재무부는 방코델타아시아(BDA) 은행을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판단하고 '돈세탁 주요 우려대상'으로 지정했다. BDA에선 대량 인출사태가 벌어졌고, 마카오 금융당국은 BDA에 예치된 북한 관련 예금 약 2500만 달러를 동결시켰다. 이를 본 중국 등 여러 나라의 은행들이 북한과의 기존 거래를 중단했다. 동결된 자금은 2500만 달러에 불과했지만, 현실은 북한의 합법적인 무역까지 어렵게 만드는 압박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6자회담을 통해 9.19 공동성명이라는 합의가 이뤄지는 와중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와 IAEA로 복귀한다는 약속을 했는데, 미국이 북한의 돈줄을 죄니 애써 이룬 합의가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노 대통령은 미국이 BDA 문제를 해소해줘야 한다고 부시 대통령을 설득했지만, 양 정상의 의견은 대립했다. 1시간 이상 격론을 벌였다고 전해진다. 이 문제는 2007년 6월에야 해소됐다. 그 사이 북한은 대포동 2호를 발사하고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안전보장 문제' 즉 한국전쟁의 종전 필요성을 꾸준히 설득해왔다. 2003년 10월 한미정상회담 공동 언론발표문에 '다자틀 내에서 안전보장 방안'이란 문구가 포함되는 성과를 거뒀지만 미국의 대북강경 기조는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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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3년 5월 14일 오후(현지 시간),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열린 한미 정상 기자회견을 마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이 밝은 표정으로 접견실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북기조 바꿨지만 '평화협정 체결' 공개 언급 피한 부시

하지만 2006년 하반기에 들면서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기조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라크전쟁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북한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기조로 돌아선 것이다.

2006년 11월 18일 하노이에서 한미정상회담을 한 부시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핵무기를 향한 야망을 포기하면 우리가 북한 주민들을 위한 새로운 경제 인센티브 제공에 착수할 뿐 아니라 북한 사람들과 안보 협의에 들어가려고 한다는 점을 북한의 지도자들이 새겨듣길 원한다."

2007년 2월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의 영변 핵시설 가동 중지 및 봉인, IAEA요원 복귀를 내용으로 하는 2.13합의가 나왔고, 같은 해 9월 북한과 미국이 핵시설의 연내 불능화와 전면 신고에 합의했다.

2007년 9월 시드니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북한 안전보장 방안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의지를 확인한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종전선언 내지는 한반도 평화체제를 언급해주길 바랐다. 회담 뒤 언론회동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내지 종전선언에 대해 명확히 말씀해주셨으면 한다'는 노 대통령의 요청에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 평화체제 제안을 하느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재차 "김정일 위원장이나 한국 국민들은 그 다음 얘기를 듣고 싶어 한다"고 종전선언 언급을 유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퉁명스럽게 답하며 먼저 일어나 작별의 악수를 청했다.

"더 이상 어떻게 분명히 말씀드릴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전쟁은 우리가 끝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김정일씨가 그의 무기에 관해서 검증 가능하도록 폐기해야 할 것 같다."

미국의 여러 언론은 '노 대통령의 압박에 부시 대통령이 짜증을 냈다'고 보도했고, 국내 보수언론도 '노 대통령이 외교준칙을 무시하고 다그치다가 퇴박을 맞았다'는 식이었다. 이 일화는 2005년 11월 경주 한미정상회담의 BDA 격론과 더불어 '노무현-부시 불화설'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하지만 청와대와 백악관은 정상회담 때 '북한의 비핵화를 전제로 한 평화협정 체결' 언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시 2003년 5월 두 사람의 첫 만남으로 되돌려보면, 노 대통령은 '테러방지를 위해선 선제공격도 가능하다'는 독트린을 내세운 부시 대통령을 '비핵화는 외교적·평화적으로 달성한다'는 데에 동의하도록 만들었다. 노 대통령은 이후 4년여 동안 '북한과 평화협정도 맺을 수 있다'는 데까지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냈다. 다시 11년 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종전을 축복한다"고 했고, 북미대화의 의제 중 하나가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정착'인 세상이 왔다.

함께 골프 한번 친 일이 없고, 만난 시간도 짧고, 마지막 만남에선 결례까지 있었던 사이인 부시 대통령의 추모사가 어떤 내용이 될지 미리 알 순 없다. 하지만 한반도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노 전 대통령이 기울인 헌신적인 노력과 집요함에 대한 헌사가 빠지지 않으리라는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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