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의 '반발', 그 오랜 뿌리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전교조에 대한 국가권력과 자본의 공포심

등록 2019.05.24 14:24수정 2019.05.24 14:24
16
원고료주기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3가지의 비준(최종 승인)과 더불어 관련 국내법 정비를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노동계와 전교조에서 주문 성격의 비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조약을 비준할 것이냐 여부는 각국 정부의 판단에 달린 일이지만, ILO가 회원국들에게 비준을 권고하는 8대 핵심협약이 있다. '문명 국가의 노동 조건을 충족하려면 이 정도는 가입해야 한다'는 취지로 비준을 권고하는 협약들이다. 그중 한국이 비준한 것은 현재까지 4개다. 한국은 1991년에 ILO에 가입했지만, 아직까지 핵심협약 중 절반밖에 비준하지 않았다.

지난 22일,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남은 4개 중 3개의 비준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비준에 대한 동의를 9월 정기국회 때 받겠다는 입장이다. 이재갑 장관이 말한 3가지는 약칭 '제29호 협약'으로 불리는 '강제노동에 관한 협약', 제87호 협약으로 불리는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 제98호 협약으로 불리는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에 관한 협약'이다.

한편, 제105호 협약인 '강제노동 페지에 관한 협약'은, 국내 형법 체계와 국가보안법 등과의 관계 때문에 비준이 어렵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이 협약에서 말하는 '강제노동'에는 노동운동에 대한 제재로 징역형(수감+강제노동)을 부과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그래서 제105호가 비준되면, 노둥운동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제재가 종전보다 어려워지게 된다. 정부가 제105호 협약을 꺼리는 이유다.

3가지의 비준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자유한국당이 '노조 편들기다', '전교조 합법화 플랜의 일종'(나경원 원내대표)이라며 반발하는 데 반해, 노동계는 '정부의 조치가 미진할 뿐 아니라 불순한 의도가 담겨 있다'며 강도 높은 대정부 투쟁을 예고했다.
 
a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 ⓒ 남소연

 
ILO 핵심협약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23일 입장문을 발표해 '105호 협약의 비준을 추진하지 않는 것', '관련법 정비 이전에 비준부터 신속히 추진하지 않는 것' 등을 문제삼고 있다. 또 정부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조치들이 많은데도 굳이 국회로 죄다 떠넘기는 의도가 수상하다며 경계심을 표시하고 있다. 한국당이 버티고 있는 국회로 공이 넘어가게 되면 이 문제가 어떻게 변질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그처럼 주문 성격의 비판들을 쏟아내면서 강력히 촉구하는 것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의 직권 취소다. 민주노총과 별도로, 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동조합(전공노)도 23일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전교조 합법화 문제의 해결을 강력히 요구했다.

전교조와 전공노는 기자회견문에서 "어제 정부 발표는 '조건 없는 즉각적인 선(先)비준을 통한 노동기본권 보장'이라는 노동계의 정당한 요구를 묵살한 것일뿐더러,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는커녕 ILO 핵심협약 비준을 거래 수단으로 삼아 노동법을 개악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며 아래와 같이 촉구했다.
 
"정부가 지금 당장 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할 노동기본권 보장 조치 중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전교조 법외노조 직권 최소'가 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이전 적폐정권에 의해 저질러진 불법부당한 폭력 행정이었으며, 사법농단과 재판거래의 주요 사례로 꼽힌다."
  

2015년에 지하철에서 찍은 사진. 포스터 속의 말풍선은 이해의 편의를 위해 임의로 넣은 것이다. ⓒ 김종성

  
ILO 핵심협약 3개의 국회 비준동의를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당장에 할 수 있는 전교조 합법화부터 서두르라는 게 민주노총·전교조·전공노 등 노동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나타나듯이, 전교조 문제는 국가보안법 문제만큼이나 개혁과 개선의 속도가 매우 더딘 사안이다. 1960년 4월혁명 이후 교원노조 운동이 본격화된 이래 근 40년 만인 1999년에 가서야 교원노조가 합법화됐을 뿐 아니라, 노동조합법 상의 합법 노조였던 1999~2013년의 14년 동안에도 전교조는 파업권 없는 노조로 존재해야 했다.

파업권 없는 반쪽짜리 노조의 삶도, 그나마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에 법외노조(노동조합법 밖의 노조) 통보 조치와 함께 끝나고 말았다. 전교조에 대한 국가권력과 보수세력의 거부감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교육감 선거가 열릴 때마다 일부 보수 후보들이 전교조 반대 활동을 대단한 경력인양 홍보하는 데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전교조에 대한 보수세력의 반발심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교원노조에 대한 견제의 역사 

교원노조에 대한 견제는 유럽 민주화의 선두주자인 프랑스에서도 나타났다. 프랑스에서도 노동계 내 여타 분야에 비해 교원노조의 합법화가 가장 더디게 이루어졌다. 역사학자 신동규의 논문 '제3공화정의 교원노조, 교사 그리고 교육개혁'은 프랑스 제3공화국 시기의 교원노조 투쟁을 이렇게 요약한다. '제3공화국'은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로 공화국 체제가 존재했던 3번째 시기인 1871~1940년을 지칭한다.
 
"노동조합의 합법화를 규정한 1884년 발덱-루소 법의 반포에도 불구하고 교사의 공무원 지위로 말미암아 교원노조 결성은 1924년까지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교사들의 독립적이고 합법적인 결사체는 오랫동안 금지되었다."
-한국프랑스사학회가 2014년 발행한 <프랑스사 연구> 제30호.
 
일반 노조 합법화와 교원노조 합법화 사이에 40년이라는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 대혁명 이래로 유럽 민주화를 선도했던 프랑스에서도 교원노조 합법화에 대해서만큼은 많은 저항이 따랐던 것이다.

당시의 프랑스 지배층은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하는 공화주의 국가 건설을 지향했다. 일선 학교 교사들이 그에 부합하는 이념적 성향을 갖도록 만드는 게 국가권력의 목표였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특히 종교교육을 철폐하고 공화주의적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양성을 목표로 하는 초등사범학교는 공공교육을 담당하는 새로운 직업군에 동일한 공화주의적 이념을 심어주었으며, 이는 이후 교원노조 구성원들이 공화주의에 기반을 둔 비교적 동일한 이념적 지향을 가지게 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프랑스 국가권력의 목표는 부르주아가 지배하는 공화제 국가에 적합한 국민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이런 목표에 도달하자면 일선 교사들이 '동일한 이념적 지향성'을 갖고 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교원노조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2010년 교육감 선거운동 기간에 찍은 사진. 전교조 반대운동을 경력으로 내세운 후보의 현수막. ⓒ 김종성

  
1960년부터 교원노조 운동이 본격화된 한국의 경우에도, 노동운동의 여타 분야에 비해 교원노조운동에 대해서만큼은 국가와 보수세력의 압력이 매우 높았다. 국가권력과 보수세력이 그처럼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를 4·19 직전 상황에서 유추할 수 있다. 손호만 전교조 대구지부 참교육실장이 쓴 '교원노조 운동의 역사-4·19 교원노조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부정선거가 아니고서는 정·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판단한 이승만 정권은 정치적 의미가 컸던 대구에서의 선거운동에 많은 힘을 쏟았다. 수성천변에서 있었던 야당 대통령 선거유세에 학생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일요일날 등교를 지시했다.

학교마다 교사들은 갖가지 이유를 붙였다. 갑자기 중간고사를 앞당겨 친다거나(경북고), 전교생 토끼사냥을 나간다거나(대구고), 졸업식 예행연습을 한다(대구농고)는 등등 ······. 경북고를 비롯한 주요 고등학교 학생들은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감행했고 교사들은 이를 막기에 급급했다."
-민중행동이 2014년 발행한 <레프트 대구> 제8호.
 
1960년 당시에는 학생의 사회적 지위도 지금보다 높고, 학생운동의 영향력도 지금보다 강했다. 당시 사람들의 상당수는 1919년 3·1운동과 1929년 광주학생의거 등을 경험했다. 학생들이 사회변혁의 선두에 서는 모습을 목도했던 것이다.

거기다가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들의 권당(등교거부 투쟁)이 발휘한 정치적 위력을 잘 아는 고령층도 상당수 남아 있었다.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선거 참여에 대해 이승만 정권이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런 학생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이들이 바로 교사들이였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학부모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계급과 계층을 막론하고 전 국민의 의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교원노조를 경계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교사들의 조직이 국가이념을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는 반면, 국가권력과 부르주아에게 불리한 이념을 유통하는 통로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정권의 학생 동원에 억지로 협력했던 교사들 사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왔다. 교사가 국가 및 보수의 이념을 전달하는 통로가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목소리였다. 이런 목소리는 대구·경북에서 특히 강하게 나왔다. 이 지역 교사들은 교원노조 결성을 통해 권력의 압력에 맞서고자 했다. 학생들을 국가와 자본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구·경복 교사들이 중심이 된 이런 움직임이 4·19 혁명 과정에서 교원노조 결성 운동으로 이어졌다. 전국교원노동조합 대표자대회가 그해 7월 3일 대구에서 개최되는 성과로 연결된 것이다.

이런 흐름을 지켜보는 정치권의 시각은 대동소이했다. 프랑스 국가권력 및 부르주아의 시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승만 하야 직후의 허정 과도정부뿐 아니라 4월혁명 수혜자인 민주당 정권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정권 하에서 외무장관이 된 뒤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은 허정뿐 아니라 민주당 정권을 이끈 장면 총리도 교원노조를 불법단체로 취급했다. 교원노조운동을 주도한 경북 교원노조에 대해 장면 내각은 이런 반응을 보였다. 위 논문에 나오는 글이다.
 
"장면 정권은 8월 22일 조각 후 이루어진 첫 국무회의에서 경북교조의 건을 문교정책의 첫 과제로 다룰 수밖에 없었고, 8월 24일에는 경북교조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이례적으로 심야 국무회의를 열기도 했는데"
 
민주당 정권은 이미 출범한 교원노조를 불법화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교원노조를 불법화하는 벙법안을 상정"하기까지 했다고 위 논문은 말한다. 교사들을 국가이념의 전파 수단으로 생각하는 점에서는 이승만 정권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1961년 5·16 쿠데타 이후의 박정희 정권도 이 문제에 관한 한 전혀 다를 바 없었다. 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쿠데타 5일째 되는 날, 치안국에서는 '용공분자  2천 명 구속'이라는 발표를 하는데, 당시 파악된 교원노조의 연행자 수는  1500명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전체 구속자의 4분의 3이 교원노조의 조합원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그 어느 단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수치였다."
 
인간화 교육이 실현되려면

교원노조에 참여하는 교사들을 용공분자로 간주했다는 것은 보수적 국가권력이 교사 조직을 얼마나 위험시했는지를 보여준다. 국가권력이 교원노조를 그처럼 견제하는 것은, 교육을 국가이념의 전파 수단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제공할 목적이 아니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을 주입할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교원노조에 대해 불필요하고 과도한 개입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는 전교조 합법화가 단순히 교육 민주화를 위해서뿐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함을 보여준다. 국가와 자본이 자기 뜻을 국민에게 주입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자기 뜻을 국가에 주입하는 시대가 되려면, 전교조가 합법화되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전교조 전국노래패연합이 부른 '참교육의 함성으로'에 "굴종의 삶을 떨쳐 기만의 산을 옮기고/ 너와 나의 눈물 뜻 모아 진실을 외친다", "아! 우리의 깃발 교직원 노조 세워 민족민주 인간화 교육 만만세"라는 가사가 있다. 이 노래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전교조 합법화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굴종의 삶을 벗어나 진실을 접할 수 있고, 인간다운 삶을 추구하는 인간화 교육에 다가가게 만드는 기본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인간화 교육이 실현되려면, 교사들이 국가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지지 않으면 안 된다. ILO 핵심협약의 국회 비준동의 및 관련법 정비는 물론이고 전교조 합법화 역시 조속히 추진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다. 나경원 원내대표의 염려처럼. 이번 조치가 '전교조 합법화 플랜'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댓글1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FM101.9 (목)11시25분경. (저서) 역사 추리 조선사, 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 못하나,발해고(4권본,역서),패권 쟁탈의 한국사,신라 왕실의 비밀,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상고사(역서),조선노비들,왕의 여자,철의제국 가야,최숙빈,한국사 인물통찰,동아시아 패권전쟁 등. www.kimjongsung.com

AD

AD

인기기사

  1. 1 문재인 정부의 역대급 국방비, 한숨이 나온다
  2. 2 "지금 딱 한 사람 설득하라면... 윤석열이다"
  3. 3 여자의 몸은 어디까지 음란한 걸까
  4. 4 윤석열 총장, 정녕 이것보다 조국 먼지떨이가 더 중한가요
  5. 5 검찰이 합심해 똘똘 만 정경심 교수? 나는 '전리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