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실을 유스호스텔로 꾸민 MB... "사람들이 이걸 알까?"

[탁본에 남긴 잔혹한 기억] 흔적없이 사라지는 공간의 기억

등록 2019.06.15 11:46수정 2019.06.15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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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는 사진과 글 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에 더해 사람의 기억을 '탁본'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간첩조작 사건에 연루돼 고문 등의 '국가폭력'을 경험한 분들의 기억 말입니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던 사람들의 고통과 삶을 질감으로 기록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억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의 손으로 기록하는 탁본 모임에 많은 지지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시민단체 '지금 여기에'  [편집자말]

남산으로 향하는 탁본모임 사람들 ⓒ 지금여기에

 
평일 점심시간, 직장인과 시민들로 붐비는 충무로역에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청년들이 모였다. 한 번 들어가면 몸 성히 나오기 어려웠다는 남산 중앙정보부 터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대표적인 조작간첩 사건이었던 1974년 울릉도 간첩단 사건의 피해자 이사영에게 남산은 이문동 대공분실만큼이나 살아 있는 폭력의 장소였다.

"이사영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어제 인터뷰 하신 것 잘 들었습니다. 저녁 먹다가 깜짝 놀랐어요. 선생님 목소리가 들리길래 휙 돌아봤다니까요."

"인터뷰한 거 봤어요? 참 누구는 취소하고 누구는 안 하고 전부 다 고문했던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취소하는 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우리 같은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해야 하는데 아직 한 명도 그런 이야기를 한 걸 본 적이 없어요."


간첩 조작으로 받은 전직 고문수사관들의 서훈이 취소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기에 아직 취소되지 않은 수사관과 행정안전부에 대한 피해자들의 감정은 한껏 고양돼 있었다. 이사영은 며칠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에 빠진 고문수사관들도 당연히 서훈이 취소되어야 하며 그들의 진정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흔적 없이 사라지는 공간의 기억

그렇게 남산으로 향하길 얼마 지나지 않아 최근에 새롭게 단장한 호텔이 눈앞에 나타났다. 과거 아스토리아 호텔로 불렸던 이곳은 근처의 세종호텔과 함께 지근거리에 있던 중앙정보부의 안전가옥으로 쓰였다고 한다. 외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인물이나 사회 저명인사 등을 구금한 경우 이 호텔에 따로 방을 잡아 고문, 폭력 등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전시용 공간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우린 이런 호텔에는 못 왔어요. 나도 나중에야 남산 대공분실인 줄 알았지 처음에는 거적 같은 걸로 푹 뒤집어 씌워 놔서 철문 소리 나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지하로 내려갔으니까."
  

아스토리아호텔이 있던 곳. 이곳은 중정의 또다른 조사실이었다. ⓒ 지금여기에

 
소위 중정 5국, 안기부 5국으로 불린 구 서울시청 별관으로 가기 전 일행은 지금의 소방재난본부 앞에 있는 주자파출소 터에 들르기로 했다. 김순자는 예전 민가협 활동을 할 때 누가 잡혀 갔다는 이야기만 들리면 이곳 주자파출소 앞에서 민가협 어머니들과 함께 와서 면회를 허가 해달라, 풀어달라 목소리 높였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주자파출소 터에는 이곳에 무엇이 있었는지 알리는 알림판만 존재할 뿐 온통 공사판이 되어 있었다.
 

온통 공사판이 된 주자파출소 터. 끌려온 피해자를 면회하기 위해 가족들이 달려오던 곳이다. ⓒ 지금여기에

  
"이렇게 죄다 없애버리면 누가 역사를 기억하겠어요."

옛 주자파출소 터만이 아니었다. 소방재난본부 근처 곳곳에는 한창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흔히 '면회소'라고 불렸지만 면회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는 문구를 제외하면 과거 이곳이 어떤 공간이었는지를 알 근거는 없어 보였다. 공사차량을 피해가며 일행은 재난본부 뒤편에 있는 과거 중앙정보부장 공관으로 향했다.

'문학의 집'과 '시 읽는 방'을 지나 멋스럽게 지은 한옥 건물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중앙정보부장이 썼다고 알려진 공간으로 맞은 편의 산림문학관은 경호원들이 머물던 곳이라고 한다. 건물이 지어지고 운영된 시대를 생각하면 상당히 공을 들여 지은 곳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사영과 피해자들은 공관을 둘러보며 복잡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이렇게 좋은 집을 짓고 고개 넘어 건물 지하에는 사람을 고문하고 정말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 ⓒ 지금여기에

 

공관 알림판을 탁본하는 고문피해자들 ⓒ 지금여기에

  
 

옛 중앙정보부장 공관 탁본 ⓒ 지금여기에

   

목탄을 응시하는 이사영 ⓒ 지금여기에

  
남산 그리고 국가폭력

공관을 돌아 나와 남산 북쪽의 예장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1910년 8월 22일 3대 통감이었던 테라우치와 이완용이 한일병합을 조인한 '조선통감관저 터'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보였다. 1939년까지 조선총독관저로 쓰였던 건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한일병합에 기여한 공을 기려 세웠다는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세운 동상'은 이곳이 어떤 공간이었음을,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항변하는 듯했다.

'통감관저터'에 만들어진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역시 마찬가지였다. 피해자의 비극과 아픔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사회공동체에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는 것은 결국 후대의 몫이다. 또한 흔적을 남길 수 없다 할지라도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를 기억하는 것은 결국 그와 같은 일이 다시금 벌어져선 안 된다는 사회의 의지이자 책임이기도 하다.

통감관저터에서 샛길로 빠지면 과거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주로 했다는 1국 건물 터가 나온다. 이젠 바닥에 있는 흔적조차 없는 공간의 빈 벤치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일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고문, 폭력 등을 당하고 긴 징역 생활을 했던 서병호는 부쩍 떨어진 체력에 힘겨워하면서도 이렇게 피해자들과 만나면 기운이 난다고 말했다.

"이젠 나이가 들어서 집에만 있으면 더 힘이 없어요. 이렇게 나와서 우리 선생님들 만나면 오히려 기운이 난다니까. 난 남산이 아니라 보안대에서 고문을 받았지만 나중에 사상범으로 교도소에 있을 때 남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 사람들 다 벌줘야 해."

눈이 감기는 순간 비극은 반복된다

1국 터에서 조금 내려오면 구 중앙정보부 본청, 지금의 서울유스호스텔이 있다. 1973년 서울대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 사건이 발생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사실 유스호스텔로 바뀌기 전 현대사의 인권유린을 기록하는 공간으로 만들자는 문제제기가 있었으나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지금의 유스호스텔로 리모델링을 강행했다. 최종길 교수의 사망 이후 중앙정보국은 기존의 고문실을 모두 지하로 옮겼고 뒤이어 만들어진 남영동 대공분실의 창문 역시 좁아졌다.

아이러니한 건 당시 최종길 교수 사망사건으로 문책을 받은 책임자들이 다음해인 1974년 탁본모임에 함께 하고 있는 이사영을 고문한 울릉도 조작간첩 사건으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사회정의의 눈이 감기는 순간 비극은 반복된다. 그래서일까. 이사영은 건물 뒤편의 바닥을 탁본으로 남겼다. 흔한 시멘트 바닥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기록하는 사람과 기록하고자 하는 곳의 특별한 역사를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구.중앙정보부본관(현 서울유스호스텔)을 탁본하는 이사영 ⓒ 지금여기에

  
서울유스호스텔을 뒤로 하고 과거 5국이 있었던 구 서울시청 별관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는 과거 중정 수사관들의 체력 단련을 위해 만들었다는 체육관이 있었다. 물론 수사관들이 애써 단련한 체력을 어디에 썼을지는 모를 일이다.

산책길로 정비를 잘 해두어서 그런지 관광객과 시민들이 많은 걸 보고 김순자는 문득 이사영에게 "저 사람들이 선생님이 여기서 고문 받았다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할까요"하고 물었다.

"허허. 아마 들어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거예요. 당한 사람들이나 아는 고통 아닙니까."

이사영은 덤덤히 답을 하고 5국 터로 향하는 어두운 터널로 걸음을 옮겼다. 동생인 김태룡이 살아있던 때 함께 사진치유 모임차 이곳을 방문했던 김순자는 그 때의 생각이 나는지 눈시울을 붉혔다. 저 멀리 보이는 빛을 향해 걸으며 일행은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았다. 고통의 순간이 끝나길 기다렸을 마음과 터널 끝에 다다르길 바라는 마음이 겹쳐지는 듯했다. 그렇게 일행은 악명 높은 남산 5국터에 도착했다. 
 

남산 5국으로 향하는 터널. 수많은 국가폭력피해자가 이 터널을 지났을 것이다. ⓒ 지금여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여느 공공기관과 다를 바 없는 건물이지만 한때는 비명이 그치는 날이 없었다는 남산 5국. 이사영은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공간에 대한 기억보다 고통의 시간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수사관은 그에게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대로 들어와 잠을 깨우고 고문을 하는 그들로 인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깨어있는지 자고 있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은 고통이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렇게 보면 솔직히 내가 여기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때 있었던 흔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려우니까. 그런데 이곳을 기억하는 게 내 기억뿐이라면 얼마 가지 못할 거예요. 금방 잊히고 사라지지 않겠어요?"

살아남은 국가폭력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진실규명을 바라고 본인들의 비극과 아픔을 기억하길 바라는 건 단순히 고통을 호소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공동체로부터 배제되어 살아야 했던 화인(火印)과 같은 시간을 누구도 답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다시는 이 사회에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있다. 노년의 피해자들이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피해를 마주하며 폭력의 경험, 공간의 기억을 탁본으로 남기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연재기사 보기] 탁본에 남긴 잔혹한 기억 http://omn.kr/1jm1t

[후원문의]
☞ 국가폭력의 기억을 질감으로 남기는 사람들 
https://together.kakao.com/fundraisings/60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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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지금여기에"라는 단체에서 일합니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변화시켜 나가기 위해서 활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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