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마드는 정당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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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세연(birdkite9366)등록 2019.05.30 10:12
"니 딸 나중에 페미니스트" , "메갈이나 워마드 같은 페미니즘은 싫어." "페미니즘은 역차별이잖아"

되도록 피하다가 만난 동성 남성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항상 듣는 이야기다. 내가 페미니즘을 지향한다고 하면 눈에 불부터 켜고 달려든다. 사상검증으로 시작해서 과거사부터 지금까지 나의 결점을 찾으려 안달이다. 페미니즘이라면 덮어두고 약점부터 찾으려는 시선은 집단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워마드가 대표적이다. 약자의 목소리는 커질 수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표적이라도 생긴 것 마냥 호들갑을 뜬다. 성체 훼손부터 순직군인 조롱 사건까지 워마드로 집결하는 사회의 시선은 표면적으로는 일베에게 향하는 눈초리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이다. 워마드가 가리키는 사회의 심연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워마드가 말하는 여성혐오는 있지만 일베가 말하는 남성혐오는 없다

여성혐오는 사회의 공기처럼 존재한다. 공기는 인식하기 전까지는 그 존재를 명확히 인지하기 힘들다. 없는 줄 알았던 여성혐오가 보이기 시작했다. 남중남고를 나와서 직접 겪은 걸지도 모르겠다. 아니, 대학도 비슷했다. 군대는 특히 심했다. 여자친구와의 성관계가, 심지어 성매매가 왜 그토록 자랑스러운 훈장이자 놀림감인지 모르겠다. 동시에 여성의 정조를 강요하는 건 또 어쩌라는 건지. 전역한 뒤인 지금이야 안 만나면 그만이지만 군대에서는 피할 수도 없어서 괴로웠다. 눈 밖에 나는게 두려운 까닭에 그만하라고 말할 용기가 없어서 한 귀로 듣고 흘렸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속앓이가 심했다. 

너무나 일상적으로 우리에게 스며들어 있는 까닭에 문제임을 인지하기는 쉽지 않으나 여성혐오는 분명한 문제다. 법과 제도상에서 존재하는 차별은 상당 부분 해소되었지만 현재의 국면은 거대한 뿌리를 이제서야 들추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알맞다. 여성을 음식화하며 대상화하는 현상은 앞서 말했듯 너무도 흔한 일이기 때문이다. 버닝썬 사건의 일상성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달리 남성혐오는 부당하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떼쓰는 아이의 모습과 닮아있다. '여자도 군대 가라', '여자는 경찰하지 마라'로 대립하는 자아분열은 그들의 의식 수준을 투명하게 반영한다.

나도 떳떳하지 않다. 저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가부장제의 영향을 짙게 받은 한남이다. 하지만 고장 났던 시계를 고치려고 한다. 욕망을 배설하고 굴절시키는 게 동물이라면 이를 성찰하고 자아를 넓히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철저한 방관자로서 위치했던 게 부끄럽다. 여성혐오는 본능적이니 어쩔 수 없는 유희라고 여겼었던 건 백래시였다. 페미니즘은 찬반의 여지가 없는 보편타당한 인권운동이다.

워마드는 남성이 일간베스트를 만들었기 때문에 시작했다

이제 페미니즘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만 워마드의 미러링은 페미니즘을 알리는 데 큰 몫을 했다. 논란거리를 만든 만큼 적어도 여성의 권리,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렸다. 충분히 박수받을 만하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과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긴 역사끝에 성 평등을 향한 위대한 수레바퀴는 이제야 굴러가기 시작했다.

파열음도 많다. 워마드가 메갈리아로부터 분리되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할 때부터 정당성은 잃었다. 페미니즘을 알리는 대가를 치뤘다고 표현하고 싶다. 워마드의 행위가 올바르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일간베스트와 다른 점을 짚고 싶다. 남성이 일간베스트를 만들었고 그 문제점을 알리기 위해 워마드는 시작했다. 일간베스트와 달리 워마드가 바라보고 있는 사회의 심연은 분명히 존재한다. 니체가 말했듯 심연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심연 또한 그들을 바라본다. 워마드가 정당하지 않은 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할 때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여성인권의 현주소는 적나라하다. 그 외 래디컬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다. 페미니즘에 등급과 경계는 없다. 그들의 방법이 잘못됐다고 해서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 전체를 부정할 수 없다. 거시적인 데이터로보나, 개별적인 여성의 이야기에 주목하나 결과는 분명하다.

워마드에 대한 탄압 이전에 사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앞서야 한다

워마드에 대한 탄압은 예외적으로 강하다. 작년, 부산지방경찰청은 음란물 유포를 방조한 협의로 해외 체류 중인 워마드 운영자 A씨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았다고 밝혔다. 십여 년간 경찰은 남성 피의자를 방조했으나, 여성피의자는 등장한 즉시 체포하고 수사했다. 경찰은 '협조'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형식만 따지느라 소극적인 자세로 문제의 핵심을 외면하고 있다. 남성이 행한 범죄가 훨씬 심각함에도 도외시하는 것이다. 지금도 일간베스트와 디시인사이드 등 남성 중심 커뮤니티와 웹하드에는 불법촬영물이 넘쳐나고 있다. 경찰 측은 "일간베스트에 대해서도 엄정하게 수사해왔다" 라고 해명했지만 이를 신뢰할 수 없다.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과 유포는 한국에서 이미 조직적인 유통이고 산업이다. 경찰은 웹하드 업체에 대해서도 동등한 색온도로 특별 수사를 실시해야 한다. 경찰이 제대로 해왔다면 국산 야동은 없었을 것이다.

워마드에게 부당한 행위를 했으니 그만하라고 하기 전에 왜 그렇게까지 했는지를 사회가 귀 기울어야 한다. 오죽했으면 그렇게 했겠는가. 우리 인간은 길어야 100년 남짓, 턱없이 한정적인 시간과 공간에서 경험을 하고 그게 전부인 양 쉽게 가치 판단을 내린다. 그에 비해, 사회문제는 결과에 관한 가치 판단을 내리기 전에 원인이 선행한다. 과거를 바라볼 때 현재의 인과를 알 수 있다. 칼을 휘둘렀으니 '미친 년'이라고 섣불리 결론 지어선 안 된다. 칼을 빼앗을 때가 아니다. 여성이 칼을 휘두르는 건 남성의 책임이 크다. 여성이 왜 칼을 휘두르는지, 칼을 휘두르지 않게 하려면 사회 전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담론이 앞서야 한다.


여성은 이미 일상에서 불특정 다수의 희생양이다

워마드가 어쩌면 불특정 다수로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을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극단적인 행위를 생각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당장 내가 그들에게 테러를 당해도 워마드를 높이 평가할 수 있겠냐고 누군가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결과에 대해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일어난다면 물론 안타까울 테지만 그럴 만하다고 여길 듯하다. 여성은 이미 일상에서 불특정 다수에 의한 희생양이기 때문이다. 여성이 데이트폭력과 염산테러를 당하지 않기 위해, 경력단절이나 고용차별을 겪지 않기 위해서, 가부장제의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면 감수할 만한 위험이다.

자기희생을 하면서까지 가치 있는 미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워마드를 존경한다. 글이나 끄적이며 말 한마디 못하는 용기 없는 나보다 훨씬 낫다. 워마드는 정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의 행동을 잘못됐다고 말하기에 앞서 존재 가치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파열음도 있지만 위대한 수레바퀴는 그들 덕분에 이제야 굴러가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의 역사는 명백히 남성 우월주의였던 24만 년 인류역사를 통틀어 프랑스 혁명기 이후 200년이 겨우 넘었다. 그들의 적극적인 행동은 아직까지 여성혐오 시대에 유효하다. 그들에게 방법이 잘못 됐다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오히려 사회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에 대한 반성이 먼저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 개인계정에도 업로드한 글입니다.(작가명 : 유연)
https://brunch.co.kr/@goodwriting/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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