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표창 후보 거부 후 온갖 욕... 그래도 후회는 없다"

[인터뷰]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 펴낸 만해문학상 수상작가 이인휘

등록 2019.06.18 09:56수정 2019.06.1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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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문학상 수상작가 이인휘 소설가 ⓒ 이인휘 제공

 
오랜 문우인 소설가 이인휘(61)는 성격도 글도 활화산 같다.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장편소설 <활화산>을 펴내서일까. 노동운동의 불꽃이 타올랐던 그땐 몸을 던져서라도 노동해방의 불꽃을 피웠다. 하지만 불꽃은 이내 꺼졌고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세상이 바뀌면서 노동해방의 깃발은 변색됐고 전선의 동지들은 강철 군화를 벗어 던진 채 새신을 신고 이리저리 뛴다. 노동자의 아픔을 동여매는 이는 전선에 외로이 남겨진 소설가 이인휘다.

그는 대통령 표창과 상금 천만 원을 날려버렸다. 아무나 받을 수 있는 허접한 상이 아니다. 그는 생계 때문에 펜을 꺾고 공장에서 일했다. 흘러간 유행가 취급받는 노동소설로는 돈을 벌 수 없어 몸으로 때워야 했다. 그에게 천만 원은 거의 1년 치 벌이인데도 작가의 신념을 꺾지 못했다. 폐허의 세상과 결탁할 순 없었다. 탐욕에 취한 자들은 벌거숭이 춤을 추고 돈독에 오른 자들에겐 동지와 신념 따위는 안중에 없다. 이런 세상을 두고 보지 못한 그는 소설로 저항하면서 술병을 솔찬히 쓰러뜨렸다. 

제31회 만해문학상 수상 작가인 그는 지난해 '대한민국문화예술인상' 문학 부문 후보를 거부했다. 후보를 수락하면 상과 상금은 거의 확실했지만 단칼에 거부했다. 그는 "해고 노동자들이 장시간 농성과 투쟁으로 생명이 타들고 가고 있는데 문재인 정부는 노동자들을 외면한 채 재벌과 손을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을 수는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문재인 정부를 비판한 직후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욕은 다 들었다"고 말했다. 광화문 광장에선 촛불 동지였지만 신념에선 갈렸다. (관련기사: 대통령표창 후보 거부한 작가 "노동자 외면하는데 어찌...")

4년간의 신들린 작업... 만해문학상 수상에서 청소년 소설까지
 

소설가 이인휘 ⓒ 이인휘 제공

 
생계로 인한 절필 상태가 길었던 탓일까. 지난 4년 동안 그는 신들린 듯이 글을 썼다. 신들림의 신호탄은 <폐허를 보다>(2016년, 실천문학사), 하루에 10시간씩 중노동하면서 쓴 중단편 다섯 편을 담은 소설이다. 만해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과 억압적 정치현실을 절절하게 그려낸 <폐허를 보다>를 만장일치로 만해문학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이어서 12년 만에 신작 장편소설 <건너간다>(2017년, 창작과비평사)를 펴냈다. 가객 정태춘의 삶과 노래에 영감을 받아 쓴 이 소설은 70년대 유신부터 80년 광주민주항쟁, 87년 6월 항쟁과 촛불혁명까지의 노래와 이야기를 담았다. 그 노래의 힘으로 폐허의 시대를 건너가자고 이야기했다.

신들림 3탄은 현대차 노조의 투쟁 역사와 양봉수 열사의 삶과 투쟁을 담은 평전 형식의 소설 <노동자의 이름으로>(2018년, 삶창)이다. 양봉수는 1995년 노동조합 대의원 활동을 하던 중 노사협의 없는 신차 투입에 항의하다가 두 번째 해고를 당한 뒤, 그해 5월 분신한 현대차 조합원이다. 이만하면 신들림을 멈출 줄 알았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2019년, 우리학교)라는 제목의 청소년 소설을 펴냈는데 표지부터 신선하다. 그의 이웃 동네 안성 시골에 사는 목판화가 류연복의 작품이다.

문학평론가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에 대해 "숲속 마을을 바탕으로 한 자연의 신비와 소년, 소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한 편의 애니메이션, 한 편의 영화처럼 흘러간다"면서 "사채업자 등 현실의 부조리와 비틀어진 폭력조차도 서정의 힘으로 감싸며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까지 인간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 묻게 하는 독특하고 눈 아린 소설"이라고 평가했다.

"열번 읽어도 힘들지 않은 소설... 희망을 주고 싶었다"
 

이인휘 작가의 신작 청소년 소설 <우리들의 여름을 부탁해> 표지. ⓒ 우리학교

 
그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관덕마을에 산다. 해가 앞산을 넘어오기 전, 강 건너 산으로 스며드는 아침은 늘 따뜻하다. 술이 덜 깬 아침, 남한강이 흐르는 섬강 다리로 산책을 나서면 안개와 바람이 속을 풀어준다. 텃밭에 심은 옥수수와 토마토는 잘 자란다. 문우인 그가 이리 살면 좋겠다. 아내는 꽃밭에 핀 함박꽃처럼 함박웃음을 짓고 혼기가 찬 외동딸은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의 텃밭과 꽃밭뿐 아니라 가슴에도 평안의 꽃이 피면 좋겠다.

그는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를 쓰면서 상한 영혼을 매만졌다. 이전 작품들은 무겁고 아프고 쓸쓸한 이야기들이어서 탈고하고 나면 돌아보기 싫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따뜻한 마음으로 써서인지 열 번이나 교정을 보면서도 전혀 힘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최근 여러 날에 걸쳐 전화와 카톡,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지난 4년간의 작품과 신작에 대해 인터뷰했다.

- 노동 소설이 아닌 청소년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청소년일 뿐 청소년 소설이라고만은 할 수 없다. 청소년들까지 읽을 수 있게 쓴 소설이라고 표현해야 맞다.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줄곧 썼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나의 소설을 잘 안 읽는다. 그래서 청소년들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들에게 어른들이 잃어버린 아름다운 자연과 생명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시골구석까지 밀고 들어온 자본의 횡포와 어른들의 비열한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를 통해 청소년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가.
"소설을 발표하고 3개월쯤 지나면 어김없이 공허가 밀려온다. 황폐한 현실의 벽 앞에서 벌레처럼 작아진 한 인간의 절망 같은 느낌이다. 노동과 진보를 외치는 이들에게조차 환영받지 못하고, 문단과 문학 시장에서 소외당하는 내 소설의 처참함, 생활은 늘 궁핍하고 소설 속의 활자들은 먼지처럼 날아가 버린다.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봤는데 나이가 많다고 써주는 데가 없었다.

그때였다. 공허를 메꾸어 보자는 생각이 밀려들어왔다. 향락과 소비문화에 의해 뒷전으로 밀려난 소중하고 아름다운 얘기를 청소년들에게 들려줘 보자. 폐허의 시대를 건너가야 할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서정을 보여주고, 어른들의 비정한 현실도 보여주면서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물어보고 싶었다. 아무리 폐허의 시대라도 한 가닥 희망은 남아 있기 마련이다. 그 희망을 청소년들에게 들려주고 건네주고 싶다."
 

만해문학상 수상작가 이인휘 ⓒ 이인휘 제공

 
- 지난 4년간 신들린 듯이 글을 썼고 성과도 거두었다.
"지난 4년 동안 4권의 책을 펴냈다. <폐허를 보다>는 공장에서 하루 10시간씩 일한 이후에 잠을 설치면서 썼다. 다시는 그렇게 작업할 수 없을 것 같다. 만해문학상 수상 이후 공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선택했다. 노동자의 힘든 삶을 살았던 노동자로서 그 힘겨움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도서관을 출퇴근하면서 글을 썼다. 생계를 위해서도 열심히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 대한민국문화예술인상 문학 부문 수상 후보를 거부하면서 문단 안팎에서 비난이 쇄도했다.
"그 상을 안 받길 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약속했던 노동 관련 공약 대부분이 파기되고 있다. 탄력근로제와 지역별 업종별 최저임금법안을 따로 만드는 악법을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고 있다. 나는 평생 노동자로 살았다. 우리 사회가 노동자들을 얼마나 천대했는지 뼈저리게 겪었다. 그렇게 노동자로 살아온 내가 반노동자적인 정권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오마이뉴스>와의 수상 후보 거부 인터뷰 직후 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모든 욕은 다 들었다. 그들은 한국자유당이 하는 짓을 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를 외면하는 게 옳은 일인가. 작가는 시대의 진실 곧, 사회의 약자를 대변해야 한다.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작가들이 나를 곱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은 노동자를 비롯한 민중들이 인간 대우를 받고 사는 세상이다.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는 문학을 나는 하고 싶지 않다."

- 북 콘서트를 비롯한 향후 계획은?
"오는 26일 서울, 7월 6일 원주, 7월 20일 부산, 7월 27일 세종시에서 북 콘서트를 연다. 북 콘서트를 마친 뒤엔 역사소설을 쓸 계획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되돌아봐야 할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나는 평생을 노동자로 살았다. 그런 것처럼 노동자로 살 것이다. 다만 공장 노동자에서 전업 작가로서 노동 현장을 옮겼을 뿐이다. 나의 시선은 노동자를 향할 것이고, 나의 글은 자본의 폭력과 비인간적 사회를 향할 것이다. 다만,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가슴에 담았던 자연의 순수함과 서정의 아름다움을 잃지는 않고 싶다."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

이인휘 (지은이),
우리학교,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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