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많이 돕는 편이죠"를 요즘엔 뭐라고 할까요?

[맞춤형 결혼] 일과 가사의 병행, 더 중요한 일과 덜 중요한 일은 없다

등록 2019.06.25 10:02수정 2019.06.2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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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예전에 인터넷에서 '남편에게 감자를 반 깎아놓으라고 했더니' 하는 제목의 유머 글 같은 것을 봤다. 감자가 한 소쿠리 가득 담겨 있었는데, 남편이 그 감자 하나하나를 전부 반씩만 껍질을 벗겨 놓았다는 것이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면 안 되는 이유'라는 사진들도 꽤 유명하다. 남편의 위험천만하거나 터무니없는 놀이 방식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식이다. 

물론 웃자고 올리는 사진이고 일부러 연출한 것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왠지 이런 종류의 유머를 마냥 웃으면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가사와 육아에 서툰 남편의 사례는 아내 입장에서 사실상 재미보다 스트레스 요소에 가깝지 않을까? 일부러 바보인 척하는 게 아니라면, 얼마나 집안일이 손에 안 익었기에 저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 하고 나는 내심 한숨을 내쉬곤 했다. 

가사는 내 일일까, 네 일일까 
 

남편은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반찬을 버리면서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니까 부엌일에 관련해서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 Pixabay

 
가사는 누구나 결국 생존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이다. 조금 더 능숙한 사람과 서툰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부모님의 돌봄으로부터 벗어나면 나 스스로 집안을 돌봐야 한다. 결혼 후에는 그 일을 남편과 분배해야 했는데, 가사 분배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청소'라고만 해도 잘해보자고 파고들면 끝이 없었고, 신경 쓰지 않으면 또 집이 엉망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청소는 내가, 요리는 네가 한다고 치더라도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하는지, 또 완성도는 어느 정도인지 재보자면 애초에 공평한 가사 분배란 불가능했다. 한 사람이 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 눈에는 부족한 부분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결혼 초, 그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은 보통 남편이었다. 나는 남편의 손을 거친 일이 내 성에 차지 않아도 그냥 지나쳤지만 남편은 종종 집안을 훑으며 못마땅한 기색을 내비치곤 했다. 성에 안 찬다는 거다. 특히 그는 냉장고에 있는 오래된 반찬을 버리면서 "집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러니까 부엌일에 관련해서 나에게 잔소리를 했다. 

남편은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고, 나는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라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그는 내가 '집에 있으면서 왜 집안일을 소홀히 하는지' 답답해했다. 내가 한 달에 벌어오는 금액은 중요하지 않았으나, 집안이 어질러져 있는 것은 때때로 '지적'할 문제였던 것이다. 

나로서는 또 다른 사정이 있었다. 남편의 야근이 잦아지는 주간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으나, 집안일은 왜 오로지 내 몫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의아했다. 내가 하는 일은 '집안일을 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억울했다. 가정 내 생활 유지를 위해 누군가 일과 집안일을 병행해야 한다면, 혹은 일의 영역을 다소 희생하고 집안일에 힘써야 한다면, 그것은 꼭 나여야만 하는 것일까? 

나는 어느 순간 집안일의 책임자가 나로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아내이기 때문이고, 또 집에서 일하는 '집사람'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도 물론 집안일을 성실히 수행했다. 다만 남편은 내 일을 '도와주고' 있었을 뿐.

'벌이'와 '가사' 그 중요성의 차이 

시아버지는 남편이 내 생일에 미역국을 끓여줬다고 하니 혀를 차셨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남편이 신혼 때부터 집안일을 꼼꼼히 챙기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집뿐 아니라 최근 몇 년간 결혼한 맞벌이 신혼부부 친구들은 대부분 남편과 집안일을 공평히 나눠서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그것이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는 않고, 남편이 집안일에 참여하는 것은 묘하게 자랑거리가 된다. 

옛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여성은 전업주부가 대부분이라 남편이 얼마나 돈을 잘 벌고 얼마나 훌륭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지가 자랑거리였다. 요즘 맞벌이 아내들에게는 도리어 남편이 집안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하는지가 좋은 결혼의 척도인 것 같은 분위기다. 

다만 남편 쪽에서는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기보다 다소 계면쩍어하거나 손을 내젓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에는 라디오에서 신혼인 남자 연예인에게 "아내에게 잡혀 산다던데"라고 질문하자, 그가 "아니다, 라디오 출근 전 아내가 꼭 밥을 차려준다"고 답했다는 기사를 봤다. 

'잡혀 산다'는 말을 놀리듯 하는 것도 의아하지만('잡히는' 것이 놀림거리라면 '잡는' 것은 자랑거리인가?), 그게 부끄러운 듯 아내가 밥을 해서 나를 대접해 준다는 식의 대답을 하는 것도 왠지 이상했다. 집안일은 그 자체로 필요한 일이라기보다 누군가를 위해 떠받들고 희생하는 위치에 놓인 일처럼 여겨진다. 

우리 사회에서 집안일의 지위와 평가는 사실 그다지 전망이 밝지 않다. 집안일을 잘한다는 칭찬조차 기묘하다. 개인의 성과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업무적인 일에 비해 배우자를 위한 '내조'처럼 여겨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운전에 서툰 여자에게 '집에 가서 밥이나 해!'라는 말을 비난으로 사용하는 판이니, '집에서 밥이나 하는' 일이 나의 능력치로 느끼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집안일의 책임자가 되는 것은 '주부'의 역할에 가까워진다는 뜻이고, 그 지분이 높아지고 수행 능력이 훌륭하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명예로운 일처럼 여겨지지는 않는 분위기다.

많은 남성들이 그 일의 주체를 여성으로 두고 싶은 마음도 이해할 만하다. 남성은 그 일을 옆에서 도와주는 역할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받을 자격이 주어지며, 자상하고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으니까. 

집안일의 양보다 중요한 것 
 

부부라는 공동체가 된 이상, 하나의 역할에 일방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 Pixabay

 
맞벌이 가구의 남성 가사 노동 시간도 이전에 비해서는 늘어나고 있지만, 여전히 여성에게 4배가량 치우쳐져 있다고 한다. 심지어 아내가 더 많은 돈을 벌어도 아기가 생겼을 때 일을 그만두고 육아를 맡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다. 가장은 남성이, 가사는 여성이 맡는 것은 오랫동안 당연시되어 왔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일과 가사의 가치를 구분한 다음 남편은 더 중요한 일을 우선순위에, 아내는 덜 중요한 가사 일을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맞벌이 부부의 경우, 남편은 제 몫의 일 외에도 집안일을 수행함으로써 자신이 아내를 사랑하는 꽤 멋진 남편이라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아내가 일과 가사를 동시에 맡게 되면, 그에 대한 칭찬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일의 중요도가 남편에 비해 낮은 것처럼 보이는 형세가 된다. 그래서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어린이집으로 달려가는 것은 대부분 엄마다. 그 때문에 점점 더 회사의 중요한 일을 맡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을 겪는다. 

남편이 '벌이'를 맡고 아내가 '가사와 육아'를 맡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남편의 역할이 아내보다 우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물론 이전 세대에서는 집안일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었다. 청소기와 세탁기와 전기밥솥은 자연스럽게 여성 주부를 타깃으로 두고 광고했다. 부탁하는 것만 해줘도 고마운 남편이고, 남편의 작은 도움도 과장되게 칭찬함으로써 집안일을 잘할 수 있도록 격려하라는 것이 공공연한 노하우처럼 떠돌았다. 

그러나 부부라는 공동체가 된 이상, 하나의 역할에 일방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각 가정마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능동적인 역할 주고받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서로의 도움을 받고 있고, 또 서로에게 도움을 베풀고 있다. 가정이 있어서 일을 할 수 있고, 일이 있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다. 

나는 남편에게 집안일의 공평한 배분에 앞서, 우리가 서로 일과 가사에 동등한 책임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남편도 내 얘기를 듣고 나니, 부엌일이 아내의 몫이고 자신은 돕는 중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인정했다.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을 한 명에게 미루고 탓하지 않기로 했다. 프리랜서인 나는 한가할 때 그보다 조금 더 많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남편은 일을 쉬고 있을 때 집안일을 대부분 책임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다. 

"오늘 우리 집은 빨래랑 설거지랑 고양이 화장실 치우기 해야 하는데, 자기가 뭐 할래?" 

책임진다는 건, 더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기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머릿속으로 우리 집안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지 가늠하고 적절히 배분하며 실행을 주도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적어도 설거지를 부탁하니 세제가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는 것이다. 

시키는 집안일이라도 잘 해내는 남편, 맞벌이하는 아내와 함께 집안일을 분배해 맡는 남편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남편인지도 모른다. 내 남편도 가끔 나에게 '나 정도면 꽤 오픈된 마인드 아니야?'라고 묻는다.

하지만 함께 살기 위한 서로의 크고 작은 수고에 고마워하는 것과는 별개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의 가사 참여에 더 높은 점수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그가 '나의' 가사 일을 도와주어서가 아니라, 함께 생활하기 위해 기꺼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고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cats-day)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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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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