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에 대한 희망 전하는 '재일동포' 3세 감독... 그의 바람

[리뷰] 영화 <무지개의 기적> 재일동포가 그린 감동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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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훈(haemil808)등록 2019.07.02 18:22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는 무지개다리 끝에 보물이 묻혀있다는 공통된 옛 이야기가 있다. 세차게 몰아치는 빗줄기가 그치고 햇살과 함께 떠오르는 무지개는 희망 그 자체라는 정서다. 최근 재일동포 3세 박영이 감독이 세상에 내놓은 다큐멘터리영화 <무지개의 기적>은 바로 그런 마음을 한껏 담아 만든 보물 같은 영화다.

맑음을 뜻하는 '하늘색'에 이어 이번엔 알록달록한 '무지개색'이다. 박영이 감독은 전작 <하늘색 심포니>(2016)에 이어 <무지개의 기적>(2019)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카메라가 끈덕지게 응시하는 장면은 모두 통일을 소망하는 우리학교 학생들의 표정이다. <하늘색 심포니>가 북녘 조국 땅을 찾은 동포학생들의 웃음과 울음을 비추어냈다면, 이번에는 고베 지역 동포학생들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일상을 주시했다.

결론부터 강조하자면 박영이 감독·재일동포들이 바라마지않는 기적이란 '우리(조선)학교' 학생들의 숨결, 그 자체다. 애초 이 영화 자체가 남북이 완전히 갈라지기 전인 1949년, GHQ(연합군 최고사령부, 일본 미군정)과 일본 정부의 탄압에서 우리학교-우리말 지키기에 나선 4.24 한신교육투쟁 70주년을 맞아 제작됐다. 박영이 감독에 따르면 영화는 "70년 전과 현재의 지점을 선으로 잇는 작품"이다.

영화의 부제는 '4.24의 미래로, 일곱색의 다리'다. 홍보포스터를 보면 한 가운데에 동포 여학생이 무지개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빛덩어리(희망)를 두 손으로 소중히 떠받쳐 들고 있다. 설명으로는 "찾았다. 일곱 번째 빛"이라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한 감독 스스로의 문답을 들어보자.

"카메라를 손에 처음 쥘 때에는 상상도 하지 못한 위기와 새 시대의 흐름을 직면하면서 우리학교라고 하는 기적을 더욱 찬란히 비추기 위해 싸우는 동포들은 미래에서 무엇을 본 것일까?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모든 이가 '희망'을 입에 담는 것은 어째서일까? (분단) 70년의 시간을 넘어 우리학교의 현황을 전하면서 무엇보다 일곱 빛깔로 빛나는 우리학교의 '지금'을 미래로, 세계를 향해 전합니다."

박영이 감독만 해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선총련)의 지원을 받는 조선학교를 나와 한국 국적을 취득해 일본을 발판삼아 남과 북을 오가는 영화인이다. 재일동포들은 70년 넘게 남북으로 나뉜 분단의 경계선에서 때로는 힘겹게, 그러나 굴하지 않고 힘차게 살아왔다. 일본열도 각 지역, 우리학교(60여 개교)가 보금자리가 되어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를 마주하는 동포, 일본사회의 열기도 각별히 뜨겁다. 5월 11일부터 31일까지 주 무대인 고베 지역의 조선학교를 비롯해 인근 오사카, 교토를 넘어 일본열도 각지에서 로드쇼가 열렸고, 앞으로도 새로운 상영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지역사회에서 큰 호평과 입소문이 잇달아 퍼져나가 고베 지역에서는 소극장 상영 영화 중 이례적으로 1500명을 돌파해 역대 최다 관객 동원과 흥행 수익 1위를 일궈냈다. 이 점만 봐도 영화의 감동-만듦새를 능히 짐작케 한다.

한 마디로 조국 분단과 일본 사회의 차별이라는 현실을 힘차게 이겨내는 동포들의 힘이 일본에서 '통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오직 '우리 민족 박영이'이기에 가능한 통일이야기

박영이 감독은 20대 중반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잡고 우리학교 학생들을 담아냈다. 감독에게는 '남 아니면 북'이라는 족쇄는 없다. 한반도 산천이 모두 조국이다. 여기에는 남과 북, 일본 어느 쪽에도 확실히 속하지 않는 재일동포의 서글픈 역사와 사연이 짙게 배어있기도 하다.

우리 동포들은 조선학교를 민족학교로 인정 않는 일본 정부와 차별, 편견, 민족대립의 가시밭길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박영이 감독도 그런 고민에서 카메라를 잡고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오가며 우리학교와 통일의 의미를 전하는 '살아있는 다리'로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페이스북으로 동포학생들, 북녘의 귀중한 소식을 전하는 통일꾼.' 박영이 감독을 또 이렇게 부를 수도 있을 듯하다. 4.27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등 굵직한 민족사의 길목마다 박영이 감독이 SNS에 남기는 글에는 조국통일을 간절히 염원하는 마음 마음이 깃들어 있다. 박영이 감독의 마음은 몽당연필, 겨레하나 등 국내 시민단체와 연계한 직접 활동으로 나아갔다.

박영이 감독의 발걸음(비행길)도 바쁘다. 일본에서 지내다 어느 날에는 비행기를 훌쩍 타고 평양으로 갔다가, 다른 날에는 남측으로 와 서울·인천·강릉·부산·울산·제주도 등지를 분주히 오가며 토크콘서트를 나누는 강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예를 들면 평양으로 훌쩍 떠나 집단체조극 '인민의 나라'를 본 '인증샷'을 남기더니 다시 일본, 또 며칠 지나지 않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19주년 대회에 참석하는 식이다. 감독 자신이 '남에 번쩍, 북에 번쩍, 일본에 번쩍'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속담을, 한반도와 일본열도를 한 데 잇는 통일길을 스스로 창조해 내고 있는 셈이다.

그 활동의 결과로 현재, 한국에서는 <하늘색 심포니> 공동체상영이 한창 전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그래서 박영이 개인의 이야기는 재일동포들의, 우리민족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박영이 감독의 활동도 휴전선을 넘나들며 전 민족을 아우르고 있으니 앞으로 감독의 번뜩이는 역할을 기대해봄직 하다.

다만 아쉽게도 한국에서 <무지개의 기적>을 만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듯하다. 현재 일본에서 개봉행사가 막 진행 중인데다가 한국 극장개봉(또는 공동체상영)을 위한 여러 절차와 자막작업 등이 필요해서다. 일단 한국 곳곳에서 열리고 있는 '하늘색 심포니 토크콘서트'에서 박영이 감독을 마주하면 좋겠다.

"<하늘색 심포니>가 남쪽 고향(한국)에서 처음으로 상영된 것은 2016년 DMZ(비무장지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입니다. 박근혜 정부 말기였던 당시 한국인들에게 '편견과 오해가 없는 이해를, 대립이 나닌 평화를'이라는 마음을 담아 (하늘색 심포니) 상영을 도전했습니다."

그때와는 시절이 많이 바뀌었다. <무지개의 기적>의 한국 극장 개봉과 공동체상영도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다. 소개글로만 영화를 접한 글쓴이도 이 영화가 무척 보고 싶어졌다.

<무지개의 기적>은 여러 면에서 의미 있는 첫 작품이다. 처음으로 남북한 국제영화제(9월 평양국제영화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동시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 처음으로 조선학교의 전면협력을 얻어 제작-연출됐다는 점에서, 처음으로 당사자인 우리학교 출신 감독이 직접 우리학교의 일상을 그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앞으로 많은 한국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동포 학생들과 '통일 무지개'라는 희망을 함께 찾아 나설 날이 올 것이다. 바로 그때야말로 '무지개색으로 찬란히 빛나는 보물 같은 날'이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주권연구소>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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