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재한 춘천 여행

'고마워요' 서울시 50 플러스

검토 완료

CHUNG JONGIN(elliec)등록 2019.07.12 15:27

열 명 가까운 인원이 함께 움직이려면 몇 가지 제약 사항이 따른다. 예를 들면 부담 없이 동행할 수 있는 교통수단의 선택과 모두가 동의하는 장소와 날짜 선정  등이다. 그래서 우리는 은퇴자들만이 택할 수 있는 월요일에 열차를 이용할 수 있고 발로 걸어 다닐 수 있는 그리고 한국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봄내, 춘천을 가기로 정하였다. 

7월이 시작하는 첫날 우리 일행 8명은 용산에서 춘천행 ITX 청춘 열차를 탔다. 미리 예매를 하지 않아 자유석이라는 다소 생소한 좌석을 부여받고 일부는 빈 좌석을 찾아 앉고 또 다른 일부는 열차 칸 사이의 휴계석에 앉아 아이들 소풍 가는 것마냥 마구 떠들며 들떠서 용산역을 출발했다. 춘천에 가면 50 플러스가 맺어준 벗 엄준열 선생님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단다. 그저 봄내길을 걸으며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관을 찾을 생각이었던 일행은 춘천의 향토 문화 해설사로 손색이 없는 엄 선생님의 출현으로 오늘 하루 춘천에서 펼쳐질 일정을 두근거리며 기대하게 되었다.

엄 선생님의 안내를 받기 위해 일행은 춘천역 인근의 렌터카 업체에서 12인승 차를 빌리고 운전은 1종 면허가 있는 황 회장님이 하기로 하였다. 일단은 시장한 배 속을 채우기 위하여 유포리 막국수 집으로 출동했다.

유명 맛집임에 틀림없었다. 월요일 점심인데도 그것도 12시가 30분이나 지난 시각인데도 대기 줄이 길었다. 마당에 자리 잡은 살구나무를 흔들어 살구로 허기를 채웠다. 막국수를 먹는데 막국수를 좋아하는 식구들 얼굴이 어른거렸다. 담백한 동치미 국물이 어우러진 막국수와 감자전, 빈대떡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첫 번째 행선지는 이상원 미술관.    이상원 화가를 검색어에 넣어 찾아보니 이력이 특별나다. 학력은 춘천 농업학교  중퇴. 춘천에서 태어나 15살 때 6.25를 맞이하여 무명의 소년 학도병으로 참전함으로써 한국 전쟁의 불행한 역사를 고스란히 가슴에 품고 있는 화가였다. 정규 미술 교육 대신 영화 간판과 초상화를 그리는 상업 화가로 출발하여 나이 40에 국전 출품을 계기로 본격적인 예술인의 삶을 시작하신 분.

이 화백의 그림은 수묵과 유화물감을 함께 사용하는 자신만의 극사실주의 기법을 통하여 사람들의 시선에서 소외된 버려진 흙바닥, 논바닥, 그물망, 삶의 고단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얼굴들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일행이 방문한 날은 휴관 일이었다. 대신 우리는 미술관이 자리 잡은 화악산 기슭의 자연을 독차지할 수 있었다. 물소리와 새소리로 가득한 산책길을 허튼 이야기 소리로 어지럽히며 하늘의 뭉게구름에 대한 감상평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신헌 묘소였다. 묘소는 나중에 찾아보니 춘천시 신북읍 용산리 평산 신씨 집성촌 선영에 위치해 있는데, 엄 선생님이 지시하는 대로 찾아간 우리에게는 그저 군부대 옆에 자리 잡은 안내판도 없는 그러나 항상 보살핌을 받은 듯한 깨끗한 묘소로 기억될 것 같다.

신헌은 조선 후기의 무신이자 외교관으로 1876년 조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체결할 당시 협상 책임자였다. 소설 '강화도'에 따르면 그는 쇄국과 개국의 경계에서 최선을 다해 외교력을 발휘했던 분으로 나온다. 신헌의 생전 업적과 주요 관직 등이 가득 적혀 있는 묘비에는 여기저기 총탄으로 상처 난 자국들이 남아 있어 이곳이 한국전쟁이 치열했던 전쟁터였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충북 진천 출신인 그의 묘가 어떤 연유로 생전의 인연이 없는 춘천 땅에 있는지 알려진 바는 없으나 그의 시조인 고려 개국 공신 신숭겸 장군의 묘가 춘천에 있는 것과 연결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우리의 해설사인 엄준열 선생님의 추측이었다. 

그래서 일행은 신풍 신씨의 시조이며 대한민국 5대 명당이라고 일컬어지는 신숭겸 장군의 묘소를 찾았다. 신숭겸 장군은 927년 고려군이 견훤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태조 왕건과 옷을 바꿔입고 싸우다가 전사함으로써 태조 왕건을 구한 그야말로 고려의 개국 공신이다. 

장군의 묘는 양옆에 소나무 숲을 끼고 있는 긴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 언덕위 묘를 뒤로하고 앞을 바라보니 명당에 대한 무지한 나도 "과연 명당이구나"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이곳 해설사에 따르면 태조 왕건이 자신의 묘를 쓰기 위해 점지해 놓은 최고의 명당자리를 신숭겸 장군에게 주고 묘를 돌보도록 그 마을 일대를 평산 신씨들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봉분이 세 개있다는 점이었는데, 이는 신숭겸의 시체가 두상 없이 발견됨에 따라 머리를 황금으로 만들어 하관하였기에  도굴을 막기 위한 묘책이라 한다. 이러한 왕건의 뜻을 신도 알았는지 명당의 기 때문인지 신숭겸 장군의 묘는 식민지 시절의 도굴도 피해하고 한국 전쟁도 빗겨나 온전히 보존되고 있었다. 

다음의 행선지를 정해야 하는데 시간이 애매했다. 저녁을 먹기에는 이르고 기차 시간에 맞추자니 시간이 빠듯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저녁을 과감히 건너뛰고 경관이 빼어난 곳에서 맥주 한잔을 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일행은 엄 선생님의 안내로 춘천의 유명 건축물로 옛 춘천시 어린이회관을 리모델링하여 복합문화 공간이 된 상상마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바다가 아닌 의암호에 사는 인어를 만나기로 했다. 의암호의 인어상은 70년대 그 시대답게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이종길 교수와 그 제자들의 습작이었으나 40여 년이 지난 2012년 청동상으로 다시 태어나 주변 의암호의 아름다운 경관을 더욱 빛내주고 있었다. 

상상마당으로 변한 춘천의 옛 어린이 회관은 한국의 현대 건축가 김수근 씨의 작품으로 가까이 보아도 멋있지만 의암호 건너편에서 멀리 바라보면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보이는 의암호와 삼악산이라는 자연 공간과 호흡을 함께 하는 건축 예술품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가 보았던 역시 김수근 씨의 작품인 남영동 대공분실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 있어서 그런지 기분이 개운하지만은 않았다. 

상상마당의 카페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일행은 기대치를 훨씬 넘어선 춘천 여행의 뒷마무리를 하였다. 장마철인데도 불구하고 뭉게구름이 피어난 파란 하늘 아래 춘천을 둘러싼 산과 호수가 한눈에 보이는 맑은 공기 속에서 진행된 춘천 여행에 대해 일행은 서로서로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50플러스 캠퍼스에서 만난 인연으로 이렇게 함께 모여 여행을 하고 춘천에서 매주 50플러스 강의실을 찾아주었던 춘천 시민인 엄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50플러스의 보조금을 받아 넉넉한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이런 걸 대박이라고 하나 횡재라고 해야 하나... 아직은 힘도 지식도 쓸만한 은퇴자들에게 서울시가 참 고마운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50 플러스 중부캠퍼스 "평화 길벗" 커뮤니티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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