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 맞냐'던 남자 떠난 뒤... 내 곁에 온 사람들

[나는 미혼부모입니다 ③]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일깨워준 미혼모 임혜정

등록 2019.08.18 18:21수정 2019.08.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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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스물한 살의 임혜정씨는 임신 5개월이 지나서야 아기가 생긴 것을 인지했다. 남자친구와는 헤어진 뒤였고 낙태는 불가능했다.

- 남자친구에게 알리지 않았나요?
"연락했었죠. 그 사람 첫 마디가 '내 아이가 맞느냐?'였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할 말을 잃었어요. 더는 얘기할 가치가 없었어요."

지난 7월 15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만난 양육 미혼모 혜정(29)씨 이야기다. 그는 아기에 관해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었다.

- 어머니께는 얘기해 보지 않으셨어요?
"엄마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돌아가셨어요."
   

"아기를 보내고 내가 정말 살 수 있을까?"미혼모 임혜정씨는 입양기관에서 운영했던 미혼모자시설에 머무르며 아기를 출산했다. 임신 기간 동안 입양을 보내기로 결정했었지만, 아기를 낳은 뒤 양육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입양 기관에 있던 선생님들은 적극적으로 혜정씨의 결정을 지지해주었고, 지금까지도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김민지


아동학대 피해자로 보육원에서 보낸 학창시절

혜정씨는 중학교 3학년 때 새어머니에게 학대를 당한 후 집에서 쫓겨났다. 보육원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졸업했다. 원래 그의 집은 충북 진천이었는데 그 무렵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아버지를 진천에 남겨두고 나머지 가족들은 인천으로 이사했다.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는 동안 혜정씨와 새어머니의 갈등은 깊어졌다. 그는 매일 새어머니에게 맞았다. 결국 어느 저녁 맨몸으로 집에서 쫓겨났다. 막막하고 무서웠지만 다시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학교는 나가고 싶단 생각에 다니던 중학교 근처를 배회하다가 학교 옆 교회 옥상에 숨어 밤을 보냈다. 새벽에 교회를 빠져나오는 그를 목사 부부가 발견했다. 혜정씨는 울면서 맞고 쫓겨난 이야기를 했다.

"사모님은 제 얘기를 들어주셨고 경찰에 신고도 해주셨어요."

혜정씨는 아동학대 피해자로 접수되었고 곧 아동보호센터로 인도됐다. 그곳에 있는 동안 경찰 조사를 받았다. 조사 과정에서 혜정씨는 부모님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진술했다. 동생이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조사가 끝난 뒤 혜정씨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결국 보육원에서 지내며 학교에 다녔다.

- 보육원에 있는 동안 아버지한테서 연락은 없었나요?
"딱 한 번 편지가 왔었어요. 다른 내용은 기억나지 않고 한 구절 생각나요. '대를 위해서 소를 포기한다'라는 구절이었어요."

- 무슨 뜻이죠?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저를 다시 집으로 데려갈 수 없다는 말이었어요."

- 보육원 생활은 어땠나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잘 적응했어요. 학교 다니는 게 좋았죠. 친구들과 선생님들 모두 친절했고 제 사정을 잘 이해해줬어요. 그때 학교에서 단짝 친구들도 사귀었죠. 지금도 만나요. 친구들은 이제 돌도 안 된 어린 아기를 기르고 있거나 아직 결혼도 안 했어요. 아기가 있는 친구들은 저에게 육아 정보도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죠. 그런 얘기 종종 나눠요. 친구들은 이제 시작이고 아직 멀었지만 저는 아이가 내년에 학교에 가요. 한시름 놓았어요. 제 아이가 스무 살이 되어도 저는 아직 젊을 테니, 다 키워놓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해볼 수 있는 인생이 한 번 더 있는 셈이죠."

혜정씨는 생기 있고 당당했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남다른 아픔이 주는 어두운 구석은 그에게 없었다.
  

미혼모인 혜정씨는 혼자 버려졌다고 느낄 때마다 손잡아준 많은 이들을 만났다혼자 버려졌다고 느낄 때마다 손잡아준 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편견에 사로잡혀 상처주고 외면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지지하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의 사연은 ‘아이를 낳는 것은 부모이지만, 기르는 것은 마을과 사회, 국가가 모두 함께이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 김민지

 
아기를 떠나보내고 나서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보육원에서 퇴소한 혜정씨는 다시 가족에게 돌아갔다. 집에서 생활하면서 그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자신을 대하는 아빠와 남동생에게 너무나 서운했다. 돌아가신 뒤 꿈에서조차 얼굴 한 번 보여주지 않는 낳아준 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때 남자친구를 사귀었다. 사랑한다고 깊이 믿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두 사람은 자주 다투었다. 결국 서로 너무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쯤 그들은 헤어졌다.

혜정씨는 헤어진 뒤 몇 달이 지나서 아기가 생긴 것을 알게 되었다. 생리 주기가 불규칙했다. 그냥 위장에 문제가 생긴 줄 알고 병원에 갔다가 임신했다는 진단을 받았다. 혼자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주위에 의논하거나 도움을 받을 만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때의 혜정씨에게 홀로 아기를 기른다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입양기관인 '동방사회복지회'(이하 동방)에 연락했다. 그렇게 찾아간 동방에서 비로소 자신의 사정과 어려움을 들어주고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이후 그는 동방에서 운영하는 미혼모 보호시설에 들어갔다.

아기 얼굴을 보기까지 혜정씨에게 입양은 기정사실이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기를 어깨 위에 올려주었을 때 그는 스스로 물었다.

"아기를 보내고 나서도 내가 정말 살아갈 수 있을까?"

대답은 '아니'었다. 그렇게 아기는 입양 가지 않고 혜정씨의 곁에 남았다. 양육을 결정한 그를 동방의 선생님들은 진심으로 지지해주었다. 당시 그가 있던 '세움누리의 집'은 미혼모들이 머무르며 출산을 하고 아기를 입양 보내거나, 양육을 결정한 경우 아기가 태어난 후 6개월 정도 지낼 수 있는 시설이었다.

혜정씨가 그곳에서 지내던 2013년, 입양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자시설' 16곳이 2년 후 폐쇄될 예정이라는 사실이 국감 자료를 통해 공개되고 언론에 보도되었다. 2011년 개정된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른 것이었다. 미혼모가 양육보다 입양을 선택하도록 할 우려가 있어서, 입양기관이 직접 미혼모자시설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 이유였다.
 
'미혼모자시설' 폐쇄에 반대하다


이 소식을 들은 혜정씨는 너무나 화가 났다. 시설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다른 미혼모들을 많이 만났다. 자기처럼 기댈 가족이 없는 경우가 아니어도, 가족들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고 의논할 수 있는 미혼모는 없었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불특정 다수의 타인이 아닌 바로 원가족(原家)이었다. 그런 그들을 유일하게 도와줄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입양 기관의 선생님들이었다. 선생님들은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 의식을 갖고 있었다. 아기의 생명도 중히 여겼지만 미혼모들의 처지를 깊이 공감하고 이해했다. 그들 때문에 혜정씨를 비롯한 미혼모들은 자신들에게도 '안전한 미래'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가진 미혼모 시설들이 폐쇄되는 것을 혜정씨는 그대로 보고 있을 수 없었다. 2015년이면 자신은 퇴소한 뒤겠지만 당장 기댈 곳 없는 엄마들은 어찌하란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인터넷상에서 막강한 공론의 장이었던 다음 아고라에 실명으로 '미혼모자시설 폐쇄'에 반대하는 글을 쓰고 서명을 받았다.

- 변화가 있었나요?
"아니오. 결국 그대로 시행됐어요. 36곳 중의 13곳이 폐쇄됐고, 3곳은 출산 후 공동생활을 지원하는 2차 기관으로 전환했어요. 미혼모들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임신 기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이 없어진 거죠."

실제로 현재 미혼모자 가족복지시설 중 '임신 및 출산 후 6개월 미만의 여성'을 보호하는 시설(1차 시설)은 지금도 전국에 20곳밖에 없다. 지방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2011년에 2개 시설이 있던 전북과 1개 시설이 있었던 경북은 폐쇄된 이후 대체 시설도 마련되지 않아 지금까지 단 한 개 시설도 없는 상태이다. 당시 지방자치단체와 여성가족부는 대체 시설을 약속했지만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 시설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나요?
"이제 4년째 접어들어요. 그렇지만 선생님이나 그때 함께했던 엄마들과는 계속 만나고 있어요. 동방사회복지회는 나에게 친정 같은 곳이에요. 아직도 그곳을 통해 후원도 많이 받고 있죠. 물심양면으로 많이 기대고 힘을 얻고 있어요."
 
- 아기를 기르기로 했던 그때 그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은 없나요?

"한두 번 있었어요. 제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아이에게 더 좋은 기회를 줄 수 있었는데 내가 기르면서 그 기회를 빼앗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니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요즘 아이가 유치원에서 미술에 남다른 재능이 있는 것 같단 얘기를 들어요. 제가 봐도 특히 색감이 뛰어난 것 같고요. 그런데 예체능 쪽은 부모 뒷받침이 더 필요하잖아요. 입양을 갔다면 지금보다는 형편이 나았을 것 같으니까요."

- 실명 인터뷰를 했는데 걱정되지 않나요?
"저는 이미 실명으로 서명을 받았던 경험이 있어요. 저에 대한 비난이나 편견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제 아이에게 상처를 준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스물아홉 살의 임혜정씨는 강하고 따뜻했다. 힘들었던 과거와 팍팍한 현실에도 삶의 의욕을 잃지 않은 것은 어리고 연약함에도 '한없는 생명의 에너지를 발산하는' 아이의 존재 때문이었다. 또 혼자 버려졌다고 느낄 때마다 손잡아준 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편견에 사로잡혀 상처 주고 외면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그는 그런 사람들보다는 자신을 지지하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의 사연은 '아이를 낳는 것은 부모이지만 기르는 것은 마을과 사회, 국가가 모두 함께이어야 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기획 / 나는 미혼부모입니다] 
① 아이 존재 아는 유일한 남자의 냉담... 그녀는 결심했다 http://omn.kr/1j9tu
② 엄마 없이 아이 출생신고 한다는 것... 미혼부의 고통 http://omn.kr/1k5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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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공교육, 청소년 독서, 대안 학교, 미혼모 문제,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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