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이 시켰다"...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몰아내기의 내막

[아파트 회장 분투기 4] 서명서 위조까지 동원된 회장 해임 작전

등록 2019.08.20 07:44수정 2019.08.20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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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으로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지만, 국민의 약 70%가 거주하는 아파트의 적폐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험해보니 국가 적폐보다 마을(아파트) 적폐의 청산이 더 힘들게 느껴집니다. 4년간 아파트 회장을 하면서 겪었던 파란만장한 경험과 성취한 작은 성공의 이야기들을 시민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 기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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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해임 작전에 모든 조직이 동원되었다.(자료이미지) ⓒ 오마이뉴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나에게 우호적인 선거관리위원 2명을 숫자로 밀어붙여 해촉시킨 이들은 2015년 12월 21일 정기회의에서 "해임"이란 단어를 처음 꺼냈다. 꺼낸 사람은 지난 두 번째 회의 때 나를 검찰 취조하듯 몰아붙인 감사였다. 해임 사유가 차고 넘치니 해임을 위한 임시회의를 열어달라는 것이 요지였다.

그가 제시한 해임 사유는 4가지다. 첫째는 회장인 내가 관리소장에게 그날그날 아파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목만 적어서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는데, 그것이 소장에 대한 업무방해라는 것이다. 상근직이 아니고 직장이 있는 회장이 아파트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요청한 것인 데도 말이다. 

둘째는 회의록을 공개했다는 것이다. 관리규약에 회의록 공개가 의무인데도 말이다. 회의록에 관해서 규약은 "공개해야 한다"로 되어있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의무"라는 말이 없다고 우겼다. 셋째는 아파트의 각종 공사에 회장이 와보지 않았다고 이것이 업무해태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회장 선거 출마 당시 서류를 이메일로 제출했는데 이게 불법이라는 것이다.

감사의 이런 발언을 듣고 있던 세 명의 동대표들-나에게 우호적이었던 이 동대표들은 몇 달 후 모두 아파트를 떠났다-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강하게 항의했다. 규약에서 정한 해임 사유에 해당하지도 않는데 감사가 무슨 권리로 해임을 위한 임시회의를 요청하느냐며 하나하나 따졌다. 아니나 다를까 11명의 동대표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그 동대표들을 몰아붙였다. 관리소장은 회의록 공개는 의무가 아니라고 태연하게 거짓말까지 했다.

심장이 벌렁거려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용기를 내어 '회장 해임이 임시회의 안건이 되는지 검토해보겠다, 나를 이런 걸 가지고 해임시킬 수 있을 줄 아느냐, 더 센 걸 가져오라'고 맞대응한 후 회의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으나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참 순진했다. 해임을 위한 임시회의를 열지 않으면 해임 추진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들은 내가 해임을 위한 임시회의를 열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이미 다음 단계를 밟고 있었다.

회장 해임의 경로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입주자대표회의가 해임 의결 → 선거관리위원회에 의결 사항 통보 → 선거관리위원회의 해임투표 진행'이고, 또 하나는 '입주민 10% 이상의 해임동의서 확보 → 선거관리위원회 제출 → 선거관리위원회의 해임투표 진행'이다. 첫 번째 방법이 막히자 그들은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경비원이 받으러 다닌 해임동의서

2015년 12월 30일에 아는 입주민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경비원이 '남기업 회장 해임동의서'를 받으러 다닌다는 것이다.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 그 경비원을 찾아갔더니 책상 위에 버젓이 '남기업 회장 해임동의서'라는 서류가 있고 벌써 서명한 문서도 여러 장 눈에 띄었다. 경비원과 함께 관리사무소로 가서 관리소장에게 따졌다. 경비원 관리를 책임지는 관리소장이 시킨 게 아니냐고. 그랬더니 관리소장은 자신이 시킨 게 아니라고 잡아뗐다.

떨리는 맘을 간신히 가라앉히고 나는 핸드폰으로 녹음하면서-이때부터 무슨 일이 있으면 녹음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누가 시킨 것이냐고 경비원에게 물었다. 고개를 푹 숙인 그는 작은 목소리로 '거물'이 시켰다고 답했다. 거물, 우리 아파트에서만 회장을 4번 했다는 그 사람, 나와 회장 선거에서 경쟁했던 동대표, 직업이 동대표라고 알려진 그 사람이 시켰다는 것이다.

예상했듯이 그가 남기업 해임 작전의 총 지휘자였다. 내가 회장이었지만 나를 지지하는 동대표가 소수였기 때문에, 그 경비원에게 책임을 물을 수가 없었고 경위서를 받아 두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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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민들에게 '해임동의서'를 받으러 다녔다는 경비원을 찾아 경위서를 받아두었다. ⓒ 남기업

   
입주민을 방문하여 해임동의서를 받은 경비원에게 경위서까지 받았기 때문에 해임동의서 확보 작업은 더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사람들이 아니었다.

2016년 1월 4일 새해 첫 출근하는 날 아침 관리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196장의 해임동의서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되었다고. 그들과 한통속이었던 관리소장, 아니 해임절차를 위한 행정지원을 아낌없이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그가 침통한 말투로 내게 전화를 해온 것이다. 전철에서 내려 연구소로 걷는 중에 전화를 받은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정말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해임동의서가 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되면 선관위는 해임절차를 무조건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선관위가 그렇게 움직이려면 선관위에 해임찬성파 선관위원이 적어도 4명 이상 되어야 한다. 7명으로 구성된 선관위는 과반(4명)의 찬성이 있어야 해임절차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임찬성파 선관위원들은 당시까지 3명이었다. 나에게 우호적인 해임반대파 선관위원 2명을 해촉했지만, 해임을 추진하려면 아직 1명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들은 선관위원 2명을 위촉하는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했다. 지원자는 모두 10명이었다. 그중 해임반대파, 즉 나에게 우호적인 지원자는 4명이었고, 해임찬성파는 6명이었다. 결국 추첨을 하게 되었는데, 추첨 결과가 불리해질 것을 우려한 관리소장이 추첨 절차를 의도적으로 불공정하게 진행해서 결국 해임찬성파 1명, 반대파 1명이 위촉되었다. 그들이 과반수를 확보한 것이다.

가속도 붙은 해임 절차

나를 지키고자 선관위원에 지원한 동서가 격렬하게 관리소장에게 항의했지만, 소장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추첨 절차를 끝내 버리고 결과를 공고해버렸다. 이로써 관리소장은 회장 남기업 해임의 기획자 겸 추진자였다는 것이 폭로된 것이다. 결국 선거관리위원회도 저들이 접수해버렸다. 이제 해임 절차에는 가속도가 붙게 되었다.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퇴근 후 밤마다, 주말마다 평소에 아는 입주민들을 만나 나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들은 어쩌냐며 함께 걱정해주었지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동대표도 선관위원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어떤 입주민을 만나고 다니는 것까지 저들이 다 아는 게 아닌가.

여러 가지 정황상 경비원들과 청소원들이 내가 누구를 만나고 다니는지를 관리사무소와 그들에게 일일이 보고한 것이 분명했다. 관리사무소 직원들, 경비원들, 청소원들, 그러니까 아파트의 모든 조직이 남기업 해임 작전에 동원된 것이다.

고립무원이 된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나의 억울함과 저들의 불법적 해임 추진을 해임소명서를 통해서 입주민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관위에 제출된 해임소명서가 게시판에 공고되지만, 경험상 그 소명서를 읽어 볼 입주민들이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에, 나는 직접 50만 원이라는 거금을 써서 우편으로 모든 세대(1680세대)에 발송했다.

그런데 이것도 저들이 방해를 놓았다. 우편 배달원이 각 세대 우편함에 넣은 우편물의 상당수를 경비원들이 수거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우편물을 못 받았다고 하기에 알아봤더니 경비원들이 수거해갔다는 것이다. 아파트는 완전히 무법천지가 되어버렸다.

1680세대 중 196세대가 해임동의서에 서명을 해주었다는 것도 의심되었다. 하여 나는 서명을 해주었다는 세대를 직접 방문해서 확인해 보았다. 확인해 보니 196장의 해임동의서 중 무려 30장 이상이 서명해준 적이 없다는 게 아닌가?

서명서가 위조되었다는 확인서 30여 장을 확보한 나는 법원에 해임투표중지가처분을 신청했다. 난생처음으로 법원으로 간 것이다. 이때부터 나는 법원, 검찰청, 경찰서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그러나 해임투표중지가처분은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절망스러웠다. 결국 회장 남기업을 대상으로 한 해임투표는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아파트 회장 분투기'는 앞으로 약 30회 정도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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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자유연구소(landliberty.or.kr) 소장. 토지정의와 기본소득, 그리고 통일을 염두에 둔 대안 국가모델에 관심을 갖고 연구와 운동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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