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니 아부지만 26명" 상계동 누비는 노란 자전거

[이면N] 돌봄 노인 자살 '제로'... 노원 어르신돌봄지원센터 민경자씨의 하루

등록 2019.08.30 15:45수정 2019.08.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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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N]은 뉴스의 이면을 봅니다. 그 이면엔 또 다른 뉴스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면N]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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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상계 10동의 한 반지하 주택에서 문(82,여)씨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 김성욱

 
오후 7시, 서울시 노원구 상계 10동의 한 주택 반지하.
  
"나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이걸 봐도 돈을 내라는 건지, 물어볼 데도 없고... 그래서 우리 선생님 바쁜 거 알면서도 매번 이렇게 뻔뻔하게 전화를 해. 그런데도 늘 달려와 주니 고맙지, 정말. 너무 의지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하고..."
  
문(82, 여)씨 할머니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할머니가 내민 공과금 더미를 살피던 민경자(57)씨가 말했다. 
  
"엄니, 이거 엄니가 지금까지 열심히 일한 거 있잖아요? 그거 잘했다고 근로 장려금 준다는 거야. 그니까 '뽀너스' 같은 거에요. 9월 10일까지 신청하라고 나와 있는데... 내가 할 테니까 걱정 마요. 지금은 전화해도 6시가 넘어서 신청 못하니까 내가 내일 잠깐 와서 해줄게. 아이고 잘 됐네, 우리 엄니."
  
폐지를 주우며 생계를 이어오던 문 할머니는 민씨의 도움을 받아 작년부터 노인 공공일자리 사업을 통해 학교 급식소, 복지관 등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월급은 27만원. 리어카 한 가득 폐지를 모아 2천원 남짓 벌던 걸 생각하면 큰돈이라고 했다.
  
"얼마나 큰돈이에요. 다 민경자 덕분이야. 나 거기 일하게 해주고 또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길도 알려주고. 나이는 내가 엄마뻘이지만, 민경자는 오히려 나한테 엄마 같기도 하거든. 꼭 엄마가 나한테 '아가야 울지 마라' 이러는 거 같아... 고마와, 고마와 민경자."
  
민경자씨는 '노원구 어르신돌봄지원센터'의 생활관리사다. 지난 22일, <오마이뉴스>가 그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
  
돌봄 노인 자살 '제로'... "정기적으로 안부만 물어도 큰 도움"
  
극단선택 위험 독거노인 '돌봄' 효과…6년간 자살 '0' (6일, <경향신문>) 
서울 노원구 7년째 '독거노인 자살 0' 행진… 비결은 돌봄  (7일, <국민일보>) 
  
"어르신돌봄지원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돌봄 서비스를 받는 독거노인 2200명 중 자살한 이는 한 명도 없었다"는 지난 6일 노원구 발표를 인용한 보도들이다.
  
서울에서 어르신돌봄센터가 별도로 설치돼 있는 곳은 노원구를 비롯해 마포·은평·강남·서초·구로구 등 여섯 군데다. 6개 어르신돌봄센터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는 마포 어르신돌봄통합센터 관계자는 23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6개구 센터에서 총 약 8300명의 어르신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라며 "노원 센터에서 관리 중인 어르신 중 자살 건수는 없었다"고 했다.
  
노원구 어르신돌봄지원센터의 경우 민경자씨 같은 생활관리사가 84명 있다. 생활관리사 1명이 노원 지역 저소득층 독거노인 26~30명을 돌본다. 일주일에 한 번은 직접 방문하고, 두 번은 전화 통화로 안부를 묻는다. 김춘숙 노원구 어르신돌봄지원센터 센터장은 "오랫동안 혼자 사시면서 심리적으로 고립된 어르신들의 경우 정기적으로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여쭙는 것만으로도 자살 예방에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 자살률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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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관리사가 노란 자전거를 타고 독거 노인 방문을 시작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라고 했다. 상계 2동, 상계 5동, 상계 10동의 골목 골목엔 유난히 언덕길이 많았다 ⓒ 김성욱


오후 2시경, 민 관리사가 센터 앞에 세워놓았던 노란 자전거에 몸을 실었다. 민 관리사는 이동 시간을 아끼기 위해 노란색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고 했다. 자전거 앞바구니엔 어르신들의 건강, 심리 상태를 빼곡히 기록한 때묻은 노트와 후원 물품으로 전달할 죽, 밑반찬, 오징어 젓갈 등이 실려 있었다. 민 관리사가 돌보는 어르신은 26명이라고 했다.

[1] 오후 2시 15분 ~ 2시 35분
  
상계 2동의 5평 남짓한 옥탑방. 32도를 넘는 습한 날씨에 헐렁한 나시와 반바지 차림이던 송(74, 남)씨는 평소엔 잘 켜지 않는다는 벽걸이 에어컨을 켜놓고 민 관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더운데 우리 같은 사람들 위해서 애쓰시니까 시원하게 해놔야죠."
  
민 관리사는 송씨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3년 전, 부인과 사별 후 우울감을 갖고 있던 송씨를 처음 발굴해 돌봄 대상에 올린 것도 민 관리사였다. 옥탑방은 센터의 후원으로 창문 샷시, 장판 도배, 현관 방충망을 새로 했다고 했다. 지난 한 주간의 안부를 확인한 민 관리사는 송씨에게 불고기와 연두부, 파김치 등의 밑반찬을 전달했다.
   
"정말 고맙죠. 매번 이렇게... 얼마 전에 제가 임대주택이 됐는데, 관리사 선생님이랑 떨어지는 게 싫어서 가지 말까 싶기도 해요. 아 웃지 말어. 농담 아니고 진짜여. 내가 다리가 아파서, 옥탑이라 계단 왔다갔다 하는 것만 아니면 안 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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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 2동 옥탑방의 송씨 할아버지가 문 밖으로 나와 민 관리사를 배웅하고 있다. ⓒ 김성욱

 
[2] 오후 2시 40분 ~ 3시 10분

두 번째 방문지는 송씨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상계 2동의 한 지하 주택. 민 관리사는 지(68, 남)씨의 오른쪽 윗입술이 부어 있는 것부터 알아챘다. 
  
민 관리사 : "아버지 입술이 왜 이리 부었어? 다리는 또 왜 그래요?"
지씨 : "방금 넘어졌어... 우리 집 화장실 턱이 높잖아..."

   
지씨는 치아가 안 좋아 식사도 제대로 못했다고 했다. 
  
민 관리사 : "들기름에 날계란 풀어 드시는 것도 안 하셨어?"
지씨 : "으응... 계란이랑 다 떨어졌어..."
민 관리사 : "아 그래요? 그럼 제가 이따가 사 갖고 올게요."

  
지씨는 아내와 사별한 후 자식들과 왕래가 없다고 했다. 지씨는 민 관리사를 "우리 집에 오는 천사"라고 불렀다.
  
[3] 오후 3시 20분 ~ 3시 45분

"내가 쌍둥이 딸을 낳은 거야. 내 친딸도 쉰 일곱이거든. 여기도 쉰 일곱이고. 허허. 우리 딸이야, 내 딸."

상계 5동의 한 지하, 유(78, 여)씨 할머니는 민 관리사를 "우리 큰 딸"이라고 했다. 전북 고창 출신이라는 유씨 할머니는 처음엔 생활관리사 방문이 내키지 않았다고 했다.
  
"귀찮스럽고, 또 내가 지하에서 살고 그러니까 창피스러워서... 근디 서로 정을 주고 받고 하니까 지금은 딸 같지. 우리 딸도 직장이 있어서 자주 못 오는데, 더 자주 와서 이렇게 챙겨주니까. 내 몸이 말이 아니거든. 심장 수술 했제, 목 수술 했제, 혈압 있제, 당뇨 있제, 고지혈증 있제, 오른쪽 눈 안 보이제... 근데 이렇게 의지할 데가 있으니까... 참 좋지."

[4] 오후 3시 50분 ~ 4시 25분

상계 5동의 조(93, 여)씨 할머니 집엔 에어컨이 없었다. 하나 있는 선풍기마저 민 관리사와 기자에게 향하도록 돌려주던 할머니는 8년 전 외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고 했다. 남편과는 6.25 전쟁 때 헤어졌다고 했다.
  
"올해부턴 오래 다닌 교회도 안 나가요. 나도 모르게 저절로 소변을 할 때가 있어서... 자꾸 신세지는 게 미안해서요."

꼬박꼬박 '요'자를 붙이던 할머니는 민 관리사에게 통장과 도장을 내밀며 관리비 정산과 통장 정리를 부탁했다. "매번 미안해요." 할머니 침대 옆의 벽에는 '노원구어르신돌봄지원센터 생활관리사 민경자 010 - XXXX- XXXX'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얼마나 고마운지... 저번처럼 바로 안 갖다 줘도 돼요. 천천히, 천천히 해주세요."

[5] 오후 4시 35분 ~ 5시 10분

상계 5동의 한 반지하, 민 관리사의 목소리가 커졌다. 

"아버지! 근로장려금! 신청하라고! 날라 온 거예요! 잘 됐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이씨를 위해 민 관리사는 목소리를 크게 냈고 입 모양도 더 확실하게 만들었다. 공과금 서류 뭉치를 펼치며 어리둥절해 하던 이(73, 남)씨가 환하게 웃었다. "제가! 지금 바로 신청할 테니까! 걱정 마셔요!" 민 관리사가 이씨의 폴더폰으로 세무서에 전화를 했다. ARS 자동응답기 안내에 따라 꾹꾹 숫자 버튼을 누르고, "아버지! 주민번호! 얼른!", "아버지! 전화번호! 아니 내 번호 말고 아버지 꺼!" 입력 시간을 놓친 몇 번의 실패 끝에 간신히 성공. 연신 고맙다던 이씨가 최근에 찍었다는 자신의 영정사진을 꺼내 보여줬다.

"잘 나왔지? 무지 잘생겼지?" 
  
[6] 오후 5시 20분 ~ 5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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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 5동의 할머니가 민 관리사를 배웅하고 있다. ⓒ 김성욱

 
익명을 요청한 상계 5동의 할머니(76)는 허리 통증으로 며칠째 잠을 잘 못 잤다고 했다. 민 관리사는 이를 알고 있었다. 할머니 집에 설치돼 있는 IOT(사물인터넷) 장치를 통해 할머니의 신체 움직임, 실내 온도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IOT가 축적한 정보는 민 관리사 핸드폰으로 실시간 확인된다고 했다.
  
"불면증은 우울감의 원인이 되기도 해서, 이런 분들은 더 신경을 써야 해요". 할머니가 잠시 나간 사이 민 관리사가 귀띔했다. 노원 센터는 집중 관리 어르신 375명의 집에 이 같은 IOT 장치를 설치했다고 했다.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민 관리사 전화기가 연거푸 울렸다. "아 어머니, 왜요? 전화기가 고장 났어? 그럼 일 끝나고 갈게요", 업무 마감 시간인 6시가 다가왔지만 민 관리사는 예정에 없던 두 집을 더 방문하게 됐다고 했다. 민 관리사는 할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이날 오후 처음 화장실에 갔다.

[7] 오후 5시 55분 ~ 6시 20분

상계 10동의 한 주택, 민 관리사를 급히 호출한 박(77, 여)씨 할머니는 집전화가 고장 났다고 했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불러서 미안해."
  
민 관리사는 곧장 전화기 상태를 확인하고 통신사에 전화를 했다. "노란 선은 잘 꽂혀 있는데요... 검은색 기기요? 거긴 불이 안 들어와요. 네, 네." 안경을 벗고 이리저리 전화선을 살피는 민 관리사 이마에 땀이 맺혔다. "어머니, 이거 기사님이 오셔야 된대. 토요일 한 시 괜찮아요? 오케이. 그럼 그때 기사님 오시라고 할게요." 민 관리사는 할머니가 준 냉커피를 단번에 들이키고 곧장 다음 장소로 향했다.
  
[8] 오후 6시 30분 ~ 7시 20분 
  
마지막 여덟 번째 집이 상계 10동의 한 반지하, 문(82, 여)씨 할머니네였다. 할머니가 민 관리사를 찾은 이유는 영문 모를 우편 때문이었다. 앞서 이씨 할아버지네서 봤던 것과 똑같은 공공일자리 근로장려금 신청서였다. 
  
"다 여기 민경자 덕분이야. 아 참, 경자, 옷장 솜이불에 곰팡이가 슬었다고 했었잖아. 냄새가 너무 심해지더라고. 근데 저 옆집에서 이사를 하길래 이삿짐 아저씨들한테 부탁을 했더니, 다행히 이불을 다 버려줬지 뭐야. 아주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더라고. 또 며칠 전엔 말이야..."
  
할머니의 근황 얘기가 다 끝나고 민 관리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문 할머니는 퇴근하는 민 관리사를 꼭 껴안았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생활관리사의 노동시간은 휴식 30분을 포함해 오후 12시 30분부터 6시까지지만 이날 민 관리사의 일과가 끝난 건 저녁 7시 20분쯤이었다. 후원 물품으로 가득 찼던 민 관리사의 자전거 앞바구니는 텅 비어 있었다. 가벼워진 노란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민 관리사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 매일 이렇게 일하면 힘들지 않나.
 "힘들긴요, 그냥 얘기를 들어드리면 돼요. 어르신들 코드에 맞춰서. 다들 얘기하고 싶어하시는 분들이니까요. 오히려 제가 어르신들한테 배우죠. 우리도 다 저렇게 늙어갈 거잖아요. 시간이 없어서 어르신들 말씀 자르고 나와야 할 때가 가장 어려워요. 일하면서 자기 것 찾으려고 하면 이 일 못해요. 전 이 일이 맞나 봐요. 일을 하면 신이 나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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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관리사의 일과는 저녁 7시 20분에 끝났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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