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대한 배신감, '보통사람'들의 욕망

[조국, 이렇게 본다] 누가 정의와 공정함을 말하는가

등록 2019.08.27 14:44수정 2019.09.09 16:14
5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a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이희훈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각종 의혹으로 인터넷이 매일 뜨겁다. 세상 어느 나라 국민들이 장관 임명에 이렇게 첨예한 대립과 관심을 보이는지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정말이지 '다이나믹 코리아' 아닌가...

유구한 유교의 역사와 분단의 현실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에게 대학 입시와 병역 이슈는 너무나도 민감해 그 어떤 베테랑 정치인이라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산이 아니다.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는 그중 하나인 자녀의 대학입시에서 불거진 수많은 의혹을 검증해야 할 상황에 와 있다.

제도 안에서 방법을 찾는 것과 과거 제도를 비판한 건 모순 아니다

외국에서 10년 가까운 생활을 하고도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기간이 짧았던 이유로 우리집 아이는 소위 '해외거주 특례' 혜택을 전혀 받지 못했다(많은 학교가 부모의 해외체류 기간도 조건으로 삼는다).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아이는 일반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입시의 시점과 상황은 다르나 조국 후보자 딸이 입시를 위해 준비했던 수많은 비교과 활동들을 우리 아이도 대부분 거쳤다. 동아리도 만들었으며 소논문을 써서 상도 받아야 했고 바쁜 중에 짬을 내어 봉사활동도 했다.

생기부를 '아름답게' 채우기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돌아보면 정말 잠잘 시간도 부족했던 나날들이었다. 그 모든 것 위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신 성적이라지만 어쨌든 비교과 활동은 생기부 작성을 위해 꼭 필요했다.

대입을 위한 비교과활동은 부모의 도움이나 컨설팅 업체를 통한 구체적인 정보 없이 학생 혼자서 준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부모가 교수인 조국 후보자 딸은 일단 입시에서 유리하다. 비교과 활동을 용이하게 해주는 정보와 인맥에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인 부모가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동원해 딸의 입시를 도왔는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이야기 말고, '정확한 사실'을 나는 알지 못하므로 섣불리 비난하거나 판단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나 또한 허용하는 제도의 범위와 내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사용할 것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에서 수시로 자녀의 대학입시를 치러본 학부모라면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이 주어진 제도 안에서 자식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과, 그가 과거에 제도의 잘못을 비판하며 개선을 요구한 것이 자신의 신념에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대한민국 시스템 안에서 자녀의 앞날을 걱정해야 하는 학부모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것이 불법적인 것이라면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대중이 느끼는 배신감의 정체
 
a

지난 23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중앙광장에서 고려대 학생들이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자녀 ‘특혜 논란’ 진상규명 집회를 열고 있는 모습. ⓒ 이희훈

 
대한민국은 많은 것이 서열로 결정되는 사회다. 동시에 다른 사람의 우위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모순을 가지고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가진 자들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오래된 경험의 산물이라고도 말할 수 있으나 더 근본적인 것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고, 내 자식은 나보다는 더 잘 살아야 한다는 확고한 인간의 욕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쉽게 누리는 것에 대해서 분노를 내재하고 있다.

게다가 어떤 이유로든 내가 남들보다 더 못 가진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쿨하게 인정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모두가 공평한 삶이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분노에 집중하기보다는 어떻게 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가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면 좋겠다. 자녀에게 무엇을 유산으로 물려주는가를 결정하는 것도 내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드는 한 방법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환경에서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에 따라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가 결정되는 경우는 허다하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언뜻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교육은 단지 학교와 사교육에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며 가정 내에서 부모와 대화하는 방식, 부모로부터 체득한 취향, 책 읽는 습관, 다양한 경험에서 배우게 되는 통찰(insight)과 같은 복합적인 과정이 있을 때 비로소 교육의 최대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부모의 경제자본이 문화자본의 형태로 변형돼 자녀에게 상속되는 과정을 통해 구별된 계급을 만들어낸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장관 후보자 '조국'은 이념적으로는 진보적 색채를 지니고 있으나 계급적으로 구별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대중이 느끼는 당혹감이나 배신감은 '구별(distinction)'된 계급인 그를 이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인식하게 됐기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심 특별하게 살고 싶었던 '보통사람'인 나를 갑자기 마주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자본의 힘은 거대하고 계급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대한민국에서 지극히 평범한 어쩌면 평범을 약간 밑도는 경제수준의 가정에서 자란 나는 운 좋게도 외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갖게 됐다. 거기서 만났던 한 사람. 나와는 나이도 같았고 공부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것도 같았다.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외국생활이라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하지만 유학생활에서 만나지 않았다면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서로 만날 일이 없는 부류라는 것을 알게 된 것 또한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좋은 환경에서 엘리트 교육만 받아온 그 사람은 처음이라는 외국생활에 거침이 없었다. 공부도 잘했으며, 아무리 바빠도 헬스장은 거르지 않았고, 방학이면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어린 시절 골목을 누비며 놀다가 학교만 다녔던 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소심하고 낯을 가렸다. 그녀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많은 자본을 누리고 살면서 자녀에게도 그녀가 체득한 세련된 취향을 가르칠 것이다. 또한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유·무형의 자산을 물려줄 것이다. 나는 내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수 있을까? 적어도 그것이 아이의 내면에 가치 있는 것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정의와 공정함에 대해 이야기하던 한 사람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하는 마음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다. 모순 많은 한국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불완전한 인생이 그 한 사람뿐일까 싶다. 구별(distinction)된 세상에 분노하는 마음이 공정한 사회를 향한 정의로운 마음에서 온 것이라고 자신할 사람은 몇이나 될까?

"왜 아닌 척 하는 건데?"라는 아들의 말
 
a

'조국 사퇴' 외친 한국당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소속 의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남소연

 
이쯤에서 부모인 나는 타인의 시선에서 여태껏 자유롭지 못한 내 안의 숨겨진 욕망을 본다. 내 아이가 나보다는 더 윤택한 삶을 살기를, 나보다는 더 괜찮은 직업을 갖기를, 남들이 인정해줄만한 위치에서 살기를 원하는 마음 같은 것 말이다. '이런 것들을 이뤄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돼야지!' 이런 부끄러운 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내 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 나는 아직 뭐가 될지 잘 몰라. 엄마 아빠보다 더 돈을 못 벌고 살게 될지도 몰라.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평범하게 살면 되지 뭐."

두 나라를 반반씩 경험한 이 아이는 부모가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을 봐주기를 원한다. 자식이 특별한 존재로 살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이 너무 주관적이라며 비판한다. 가끔씩 한국 사람들의 이중적인 면을 꼬집기도 한다. 이번 사건에도 한마디 거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다들 화를 내지? 중대한 잘못이 있으면 임명 안 하면 되는 거잖아. 자기들도 상황이 됐으면 그렇게 했을 거면서, 속으로는 다 자기가 특별하게 대우받기를 원하면서 왜 아닌 척 하는 건데? 다들 제발 '겟 오버 유어셀프'(get over yourself, '네 자신에게 너무 심취하지 말라' 혹은 '자기중심주의를 탈피하라'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했으면 좋겠어."

우리 사회가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여전히 자신의 욕망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삶에는 잔인한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일까? 혼란스러운 사회가 아닌, 활기찬 사회로 진화하는 과정이라 애써 생각하고 싶다. 좀 더 객관적이고 성숙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 다수가 되는 사회로 가는 중에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조국, 이렇게 본다]

20대의 눈으로 본 '조국 사태' (http://omn.kr/1kmib)
'가슴 뛰는' 문 대통령 취임사를 다시 보았습니다 (http://omn.kr/1kmie)
'조국 블랙홀'...그래서 청문회가 더 필요하다 (http://omn.kr/1kln1)
조국에게 조국(祖國)을 묻다 (http://omn.kr/1kji9)
#조국 #대학입시 #문화자본
댓글50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2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가족과 가족관계를 탐구하는데 관심이 있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52세 조기퇴직, 파란만장 도전 끝에 정착한 직업
  2. 2 한국 반도체 주저 앉히려는 미국, 윤 대통령 정신 차려라
  3. 3 "출국 허락한 적 없다" 수장 없는 공수처의 고군분투
  4. 4 "30년 영화계 생활, 정당 가입 처음... 조국에 직언하겠다"
  5. 5 특활비 자료 숨겼다가 들키자 검찰이 벌인 황당한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