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병은 나와 전혀 관계 없는 일일까요?

[서평] 바버라 립스카 박사의 뇌질환 극복기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등록 2019.09.10 11:19수정 2019.09.1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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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세상은 점점 더 기이해졌고, 혼란한 마음은 종종 분노로 변했다."(p179)

오랜 시간 신경과학자로서 정신질환을 연구해온 바버라 립스카 박사. 그는 어느 날 돌연 뇌에 흑색종의 습격을 받은 후로 전혀 상상하지 못한 세계에 던져진다. 거의 모든 일에 왕성한 개인적, 학문적 성취를 이루던, 그야말로 남부러울 것 없던 바버라 립스카는 조현병 증세로 위기에 처한다.

바버라 립스카는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경험과 내 경험 사이의 유사성을 활용해 정신질환의 양상과 원인을 더 잘 이해하고자 하는 것"(p22)이 이 책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의 주된 목표임을 밝힌다. 그가 밝힌 것처럼 이 책은 정신질환의 증상 등을 자세히 알려주는 정보서의 기능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바버라 립스카의 뇌질환 극복기이기도 하다.
 

바버라 립스카 박사의 뇌질환 극복기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겉표지. ⓒ 심심

 
정신질환이 특정한 사람에게만 생기는 불행이라는 편견과 달리, 매년 전 세계 성인 다섯 중 한 명이 우울증, 조현병, 양극성 장애(조울증) 등 적어도 한 종류의 정신질환을 겪고 있고, 전 세계의 1%가 조현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그럼 우리 중 백 명에 한 명이 조현병을 앓고 있고 앓을 수 있다는 말인데,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매우 특별한 병이라는 관념은 실상 환상이지 않은가?

바버라 립스카 박사는 죽은 사람의 뇌를 기증받아 조직 표본을 만들어 뇌질환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그러던 그에게 조현병 증상이 닥쳤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 조현병의 50%, 양극성장애(조울증)의 40%가 자신의 이상 증상을 알아채지 못하는 '질병인식불능증'을 겪는데, 바버라 립스카 역시 신경과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생활은 점점 방향을 잃으며 미궁에 빠지기 시작한다. 매일 다니던 길을 찾지 못해 허둥대고, 주차한 곳을 찾지 못해 난감하다. 수십 년을 해 온 조리법을 잊고 괴상한 음식을 만들어 내놓고, "온 세상이 나를 적대시하고 있다"고 느끼며 주위 사람들을 의심한다. 남편에게 전에 없던 과도한 화를 내고, 딸과 아들, 손자에게 폭언을 일삼는다.

바버라 립스카는 자신이 겪었던 이상 증상을 기술하며, 주로 전두엽의 전전두피질의 이상으로 발생하는 뇌질환의 유사한 증상들이 왜 일어나는지를 소상히 알려준다. 전두측두치매나 알츠하이머 환자에서 나타나는 증상들- 자제력장애, 판단력장애, 난산증, 난독증, 통합운동장애, 식탐, 요실금 등-이 뇌의 어떤 기능의 이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설명한다. 정신적 문제는 감정에 변화를 일으켜 성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평소의 성격과 급격히 다르게 나타나는 분노, 의심, 성마름 등은 뇌에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다.

바버라는 '질병인식불능증'으로 자신의 이상 증세를 알아채지 못하기에, 그 자신은 사실 크게 괴롭지 않다. 오히려 어떻게든 자신의 뇌에 둥지를 튼 흑색종과 단판을 짓고야 말겠다는 전의를 불태운다. 고통은 정작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 이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에게 있다.

우리가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태도

"사회적 환우 엄마가 되어 주세요."

정신질환을 앓았던 아이를 둔 지인이 있다. 아이에게 어느 날 갑자기 발병한 조현병은 그의 가족에겐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정신질환도 뇌에 생긴 질병에 불과하지만 이를 보는 눈은 매우 따갑다. 지인의 가족이 여러 번 이사를 다녀야 했던 까닭도 더 나은 환경을 찾은 이유도 있지만 타인의 차가운 시선과 무관하지 않았다.
 
"정신질환을 향한 관심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사회적 낙인은 여전하다. 정신장애는 본질적으로 생리학적인 문제다. 관상동맥 질환이 심장의 병이듯 정신질환은 뇌의 병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정신질환은 종종 비난받아 마땅한 사람, 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 취급을 받는다"(p25)
 
조현병은 주로 뇌의 전두엽 이상으로 발병하지만, 사람들은 마치 가족, 특히 부모가 나쁜 영향을 주어서 조현병에 걸렸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우곤 한다. 지인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어서 아이의 발병 이후 주변인으로부터 심리적 타격을 받았다.

처음 찾아갔던 병원 의사가 엄마의 우울증이 전이됐다는 가공할 진단을 내리거나, 부모 상담에서 예상 외로 부부관계가 좋다는 어이없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의료현장에서조차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하루 종일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은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엄마에게 돌아왔다. 게다 환우 엄마다움을 요구받거나, 아이가 아픈 죄를 엄마가 져야 하는 부정의한 상황에도 내몰렸다. 지인에겐 바버라 립스카가 누린 주위의 조력(따뜻한 주위의 조치와 배려, 바버라의 배경으로 가능했던 최고, 최선의 의료진)이 부재했다. 병의 질곡에서 벗어날 책임은 오직 환자 개인과 가족에게만 지워졌다.

지인은 이제는 완쾌해 성인이 된 아이의 정신질환을 용감히 커밍아웃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한 사회운동에 참여하고, 정신 질환에 대한 책임을 환우 엄마 개인이 아닌 '사회적 환우 엄마'에게 요청하기 위해서다. 그의 요청처럼 환자를 병마에서 구조하는 일은 마땅히 사회가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질병 치료에도 계급이 존재하는 무거운 현실

바버라 립스카가 뇌의 흑색종을 없애기 위해 벌이는 사투는 용감하고, 그의 극복기는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책을 읽고 밀려드는 상실감을 떨치기 어려웠다. 바버라가 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의료에 대한 우월한 접근성이 보통의 사람들의 현실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계급적 간극을 어쩔 수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바버라는 저명한 학자다. 그의 연구는 종종 학술지에 실리며 주목을 받고 있으며, 직장에서도 수장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유능한 사람이다. 그의 유능함은 개인적 성취는 물론 사회적 지위까지도 담보한다. 그렇게 형성된 그의 계급은 그의 의학적 접근에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가 누린 고가의 각종 치료와 유수한 의료기관과 의료진의 혜택은 저 계급 계층에겐 도저히 진입할 수 없는 '엘리시움(파라다이스)'의 세계다. 그가 일반인에겐 허용되지 않는 수십만 달러의 치료제를 투약 받게 되는 과정 또한 그가 가진 문화 자본 없이 가능했다고 보기 어렵다. 보통 사람들의 투병 현실과 큰 괴리를 보인 그의 투병기는, 그녀의 완쾌가 축복임에도 불구하고 쓸쓸한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게다 그가 투병 과정에 보여준 불굴의 자세-2시간 걷기, 12킬로미터를 쉬지 않고 자전거 타기, 등산, 바다수영, 마침내 트라이애슬론 도전까지- 또한 마음에 걸린다. 그의 도전은 그가 평소 스포츠를 매우 즐겼던 것이 작용했지만, 보통의 환자가 이 정도를 너끈히 수행하기란 힘들지 않을까. 그의 탁월한 육체적 효용과 자발적 동기에 기반해 가능했던 투병기가 병을 고치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해야 한다는 전범으로 제시될까 우려스럽다. 

병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상정하면, 병을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다시 한번 낙오자라는 낙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서 밝혔듯이 정신질환을 어렵지 않게 다룬 좋은 정보서임은 분명하다. 이에 초점을 맞춘 독자는 일독을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로그 게시

나는 정신병에 걸린 뇌과학자입니다

바버라 립스카, 일레인 맥아들 (지은이), 정지인 (옮긴이),
심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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