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언제부터 '관리'의 대상이 되었나

[질병사회 ②] 역사의 창을 통해 본 국가의 질병관리

등록 2019.09.16 14:01수정 2019.09.16 14:01
0
원고료주기
시민의 안전과 건강에 가장 기초적이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질병. 질병은 언제부터 '질병'으로 분류되었으며 지금 질병의 패러다임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 질병 차별과 질병의 개인화, 자본주의와 질병 상품화 등 현대 사회 질병을 둘러싼 다양한 이슈와 쟁점을 알아본다. - 참여사회


질병은 인류역사를 통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간들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역병 유행에 관해 비교적 잘 기록되어 있는 1700년대 『실록』을 보면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20년, 30년을 주기로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낳는 대역병이 창궐했고, 그 사이도 "역병이 없는 해가 없다" 할 정도로 질병은 끊임없이 인간과 사회를 유린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의학적 대응은 찾아볼 수 없고 "임금이 신하들을 서울과 각도에 보내어 여제(厲祭)를 베풀 것을 지시"❶, "삼남 및 제도(諸道)에 대해서도 엄히 명령하여 막(幕)을 짓고 굶주림을 구하는 일과 그밖에 돌보아주는 일들을 경청(京廳)의 예에 의거해서 거행"❷ 할 뿐이었다. 전근대 사회에서 의학과 국가는 대규모 전염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실록에 나타난 대표적인 역병 피해사례 ⓒ 참여사회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전염병 대책과 실태

대한제국 정부는 1899년 8월 16일 「전염병 예방규칙」을 필두로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디프테리아, 발진티푸스, 두창 등 여섯 가지 법정전염병에 대해 각각 예방규칙을 제정했다. 그보다 4년 전인 1895년 7월 「호열자병 예방규칙」을 공포한 바 있었지만 관리 대상 전염병을 확대하고, 관리 방법도 체계화한 것이었다. 이러한 법을 제정하고 전염병 예방에 나선 것은 근대국가의 통치기구를 자임하는 국왕과 정부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실제 성과는 미미했다. 정부는 법령을 제정했을 뿐 실제로 전염병들을 제대로 관리한 것 같지는 않다.

일제는 강점기 동안 식민지 조선에 근대적 발전을 가져왔으며, 특히 보건의료 면에서 그러하다고 강변해왔다. 하지만 일제가 당시 작성한 자료들을 분석해 보더라도 조선인들의 건강 수준은 일제강점기 동안 거의 향상되지 않았다. 

또한 기왕의 연구결과들과는 달리 조선인의 전염병 사망률이 떨어졌다는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자료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조선총독부가 1919, 1920년의 콜레라를 제외하고는 조선인들의 전염병 발생 피해에 대해 거의 파악조차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일제 당국은 당시 식민지 조선의 최대 보건의료 문제였던 조선인들의 전염병을 아예 방치했다. 다만 일제는 1919, 1920년의 콜레라 유행에 대한 대처에서 잘 보여주듯이 격리, 추방 등 조선인들을 통제하고 차별하는 수단으로 위생경찰제도를 활용했다.

조선시대 말기와 일제강점기 성병의 실태와 관리

1886년에 나온 『조선정부병원 제1차년도 보고서』는 미국인 의사 알렌과 헤론이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국립병원인 제중원조선정부병원에서 첫 1년 동안 활동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이는 근대서양의학의 관점으로 우리나라의 질병 발생 상황을 다룬 최초의 보고서로, 우리나라 보건의료사에서 매우 중요한 기록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제중원을 찾은 외래환자 10,460명 중 소화기계 환자가 19.4%, 비뇨생식계 및 매독 환자 18.2%, 발열 환자 11% 순으로 높았다. 이 수치는 전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 조선의 질병 발생 상황을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비뇨생식계 및 매독 환자 1,902명 가운데 매독 환자가 760명이었고, 매독 골막염 96명, 매독성 항문 고무종 89명 등 매독의 후유증으로 제중원을 찾은 환자는 380명이었다. 매독과 그 후유증을 합치면 1,140명으로 전체 외래환자 중 11%를 차지했다. 그리고 연성하감❹ 235명, 임질❺ 156명 등 매독 이외의 성병 환자는 모두 588명으로 외래환자의 6%였다. 성병 간의 감별진단이 까다로울 수는 있지만, 성병과 그 밖의 다른 질병들을 분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따라서 보고서의 매독 등 성병 환자 수치는 상당히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성병은 조선시대에 만연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가운데 매독은 151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것으로 여겨진다. 매독에 대한 뾰족한 예방과 치료 방법이 없었고, 위생과 영양 상태가 좋지 않았던 시절에 매독 환자가 병리생태적 균형에 이를 때까지 점차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다른 성병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기에 엉뚱하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일은 결코 아니었다. 매독을 비롯한 성병이 만연해 있는데도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다른 전염병들과 달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통치기관의 성병 관리는 일제에 의해 처음 도입된 것이었다.

질병 관리의 궁극적인 주체는 누구인가 

일제는 개항장의 일본인 거류지 중심으로 공창제(公娼制)❻를 도입하기 시작했고, 1906년 통감부 설치 뒤에는 한성 등 대도시에, 1916년부터는 조선 전역으로 확대했다. 일제는 형식적으로는 요리점 예기(藝妓)와 음식점 작부(酌婦)의 성매매를 금지했지만 이들에 대해서도 강제 성병 검진을 규정함으로써 이들의 매매춘을 묵인했다. 

일본식 공창제는 인신 구속을 법으로 보장했으며 인신매매도 사실상 방조하는 등 문명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인권적, 반여성적 제도였다. 일본 본토보다 식민지 조선에서는 그러한 점이 더욱 뚜렷했다. 하지만 공창제 하에서 이들 매매춘 여성의 성병 보균율은 일본인이든 조선인이든 5% 내외로, 당시 보건의료 수준에 비추어서는 성병 관리 면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었다.

1948년 2월 15일 미군정 산하의 남조선과도입법의원❼은 「공창제폐지령」을 공포하여 공식적으로는 공창제를 철폐했다. 그러나 이때 예기·작부 관련 법령들은 존속시킴으로써 성매매에 대한 '묵인-관리'를 속성으로 하는 성 착취 제도가 2004년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될 때까지 완전히 해체되지 않은 채 존속했다.

1954년판 『보건사회통계연보』에 의하면 매매춘 여성 중 매독과 임질 등 성병 보균자 비율이 1947년 67%, 1948년 55%, 1949년 47%, 1951년 40%, 1952년 27%, 1953년 23%, 1954년 22%였다. 부실하나마 강제 검진과 항생제 덕으로 성병 보균자 비율이 빠른 속도로 떨어지긴 했지만 실로 놀라운 수치다. 아무리 해방과 전란으로 혼란을 겪던 시기였다고 하더라도 용납하기 어려운 보건의료 실태였다. 국가에 의한 강제 검진과 강제 치료는 그 자체로 논란의 대상이지만, 한편 다른 적절한 방안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이 부실할 경우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이다.

민주사회에서 질병 관리의 궁극적인 주체는 모름지기 개인이어야 한다. 그렇다고 국가와 사회의 책임이 면제된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시민 개개인과 공동체의 건강과 복리 증진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역사를 통해 배움을 얻어야 할 것이다.   
  

시민 개개인과 공동체의 건강과 복리 증진을 위해 국가와 사회가 어떻게 개입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역사를 통해 배움을 얻어야 할 것이다 ⓒ 참여사회

 

❶  『영조실록』 1749년 12월 4일자 인용
❷  『정조실록』 1799년 1월 13일자 인용
❸  1700년대 조선의 인구는 600~700만 명 정도로 추산됨 
❹  듀크레간균(Haemophilus ducreyi) 감염에 의해 일어나는 성병의 일종
❺  임균에 의해 발생하는 성병의 일종 
❻  1916년부터 1948년까지 일본에 의해 식민지 조선에서 실시된 성매매 관리제도
❼  1946년 12월 12일 한국에서 개원한 미군정 시대의 입법기관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황상익 님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이자 <역사가 의학을 만났을 때> 저자입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 2019년 9월호에 실렸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네이버 채널에서 오마이뉴스를 구독하세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참여사회>는 참여연대의 역사와 시대를 보는 바른 눈을 담아냅니다.

AD

AD

인기기사

  1. 1 "옳은 말 하고 싶을 때 많지만... 문재인 정부 비난 않겠다"
  2. 2 '수다맨' 강성범 "서초동 촛불, 불이익 받을까 망설였지만..."
  3. 3 조국의 최후 기자회견, 검찰 향해 '헌법 1조 2항' 메시지
  4. 4 조국 전격 사의 표명 "검찰개혁 불쏘시개 역할 여기까지..."
  5. 5 "재활용 분류까지... 서초동 촛불 끝나고 정말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