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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산골 귀틀집은 어떻게 세계 우퍼들의 성지가 됐나

[우먼 인 로컬 - 영월편] 내마음의 외갓집 김영미 대표

등록 2019.10.14 07:40수정 2019.10.23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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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살아가는 남성이 아닌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편집자말]
 

‘내 마음의 외갓집’을 운영하는 김영미 대표는 유기농 텃밭과 과수원을 가꾸며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고 있다. ⓒ 유성호

  

‘내 마음의 외갓집’ 김영미 대표가 들려주는 ‘귀촌’ 노하우강원도 영월군 북면에서 ‘내 마음의 외갓집’을 운영하는 김영미 대표가 19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귀촌 생활과 자급자족하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유성호

 
지난해 8월 SBS 스페셜에서 방영한 <영미네 작은 식탁> 편은 현실판 '리틀 포레스트'로 알려지며 인기를 끌었다. 강원도 영월에서 자급자족하며 살아가는 영미네로 도시 생활에 지친 청년들이 찾아오며 시작하는 다큐멘터리다. "말뿐인 위로는 접어두고 밥이나 같이 먹읍시다"라는 구호로 시작한 프로그램에 참여한 청년들은 영미네서 숙식을 제공받으면서 농사일을 도왔다.

언뜻 '농활'과 비슷해 보이는 이 프로그램 이름은 우프(WWOOF,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유기농업 농가에서 하루에 4~6시간 일손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글로벌 네트워크 활동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일하는 사람을 '우퍼', 그런 우퍼들을 받는 농가를 '우프 호스트'라고 한다. 방송 당일에는 우프코리아(https://wwoofkorea.org)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자연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삶. 매일 복잡한 출근길에 치이는 회사원이라면 한번쯤 꿈꿔볼 만하다. 게다가 '우프 호스트'로서 전 세계 사람들도 만나볼 수 있다. 21세기에 걸맞은 유토피아가 아닌가. 

하여, 영월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영미네 '내 마음의 외갓집'을 찾아갔다.

영월판 자급자족하는 삶
 

강원도 영월군 북면에서 ‘내 마음의 외갓집’을 운영하는 아내 김영미씨, 남편 임소현씨. ⓒ 유성호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우프 호스트인 영미네는 서울에서 차를 타고 3시간 30분, 영월고속버스터미널에서 다시 20여 분은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영월에서도 오지에 있다. 경사진 산길을 타고 한참을 올라가자 그 길의 끝에 영미네가 보였다. 흙과 나무로만 지어진 귀틀집이다. 차에서 내리면 소담한 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밥은 먹었어?"

주인의 손길이 구석구석 느껴지는 예쁜 정원을 지나니 별채로 따로 있는 주방에서 김영미 사장님이 나온다.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대뜸 밥은 먹었냐고 묻는다. 그녀다운 첫인사다.

외지에서 온 손님에게 끼니를 챙겼느냐고 물어보는 마음. 기자들이 고개를 젓자 일단 식탁에 앉히고 본다. 따뜻한 누룽지와 고사리줄기볶음, 가지무침, 김치 등이 예쁜 그릇에 담겨나온다.
      
시골이라고 아무 그릇에나 담아 먹지 않는다. 그릇 욕심에 돈 꽤나 썼다는 영미 사장이기에 도시의 고급 한정식 못지 않은 상차림이 가능하다. 그릇뿐 아니라 주방 곳곳에 안목이 없으면 고를 수 없는 아이템들이 즐비하다. 인터뷰를 시작하기도 전, 영미 사장님은 숟가락과 젓가락부터 쥐어주고 본다. 이렇게 받은 영미네 밥상, 시골에서 받기에는 풍성하다 못해 넘친다.

"지금 식탁에 있는 것 중에 우리가 돈 주고 사서 먹는 건 거의 없어. 우리 콩 두부 한 모 정도? 나머지는 다 직접 키운 거야. 벼농사 빼고 다 한다고 보면 돼. 한 번은 가만히 앉아서 몇 가지를 키우나 세워봤어. 180가지가 넘더라고. (이 김치도 담근 건가요?) 그럼. 우리는 김장할 때 아무것도 안 사. 김장에 재료가 참 많이 들어가거든. 무, 배추만 필요한 게 아니라 고춧가루, 생강, 마늘 같은 것도 들어가잖아. 가끔 재료가 없는 건 주변 사람들이 보내줘. 새우젓 보내주시는 분이 있는데 그럼 우리가 그걸로 김치 만들어서 다시 보내 드리지. 소금도 남편이 조합에서 배당금 받은 걸로 써. 김장비용이 제로야. 사는 게 있다면 김장 봉투 정도?"

김영미, 임소현 부부는 대부분 먹거리와 생필품을 직접 재배하거나 만들어서 쓴다. 영미네 주변으로 천 평이 넘는 땅에 온갖 작물이 자란다. '다품종 소량 생산'이다. 작물뿐이 아니다. 영미네 밭 한쪽에서는 벌집이 세 통 있다. 남편 임소현씨를 만나 영월로 오기 전, 경상도 성주에서 전통찻집을 할 때 벌을 키웠던 영미 사장님. 그 때 경험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골에서 누리는 호사, 힙하게 산다
 

‘내 마음의 외갓집’을 운영하는 김영미 대표는 산양을 기르기 시작해 자신의 속소를 손님들에게 산양유로 만든 산양유 라떼를 대접한다. ⓒ 유성호

  

‘내 마음의 외갓집’을 운영하는 김영미 대표가 직접 키운 고추밭을 둘러보고 있다. ⓒ 유성호

 
얼마 전에는 산양도 기르기 시작했다! 사람 좋아하는 산양은 쓰다듬어도 얌전히 애교를 부린다. 하루에 산양이 생산해 내는 우유는 500mL정도. 두 부부가 하루 마시기 좋은 양이다. 밥을 다 먹고 나자 산양유로 만든 산양유 라떼를 내놓는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만난 트렌디한 커피다. 이렇게 살면 돈이 한 푼도 들지 않을 것 같다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란다.

"식비는 거의 안 들지. 그래도 차량 유지비는 조금 들어. 워낙 산골이라 차를 한 대씩은 가지고 있어야 하니까. 공과금이나 핸드폰비는 도시랑 비슷해. (집과 땅을 가지셔서 더 적게 드는 걸까요?) 이게 우리집이겠어? 대출 받았으니까 농협집이지. 그건 도시랑 비슷해(웃음)."

작물과 꿀, 우유 같은 먹거리도 직접 재배하지만, 영미 사장이 정성을 들이는 건 또 있다. 바로 집 앞의 정원이다. 수국처럼 널리 알려진 꽃도 있지만, 한국에서 보기 드문 외래종도 있다. 세계 각국의 우퍼들이 보내준 씨앗 덕분이다. 지금 당장 스몰웨딩을 올려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잘 꾸며진 정원이다. 정원을 따라 작은 산책로도 있다.

"처음엔 나도 못 먹는 거를 사다 심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가드닝(정원 가꾸기)은 백작 부인들의 놀이인 줄 알았지. 그런데 가까이 사는 친정어머니가, 부부생활도 꽃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조금 키워보라고 하더라고. 가드닝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는 내가 꽃을 엄청 사들이고 있지. 집의 가치는 꽃과 나무가 만든다는 걸 알게 됐어. 농사짓는 거랑은 다른 매력이 있어. 우리집으로 우핑을 왔던 해외 우퍼들이 가드닝 책을 보내주기도 해. 꽃씨도 보내주고."

그렇게 말하는 영미 사장님 앞에는 이날 오전 정원에서 가져왔다는 부추꽃이 꽂혀져 있다. 정원에서 보는 매력과 식탁 위에 두고 보는 매력이 다르단다. 농사에 가드닝까지. 부지런한 천성이 아니면 어려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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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영미네 정원 모습. ⓒ 김영미

  우퍼들을 위한 숙소의 아이템, 주방의 커튼, 식탁보 등도 영미 사장님이 직접 만든다. 주방 커튼에는 요즘 유행하는 프랑스 자수가 새겨져 있다. 영미 사장님은 한때 프랑스 자수 소모임에도 참여했다. 최근에 와서 '도시' 사람들이 알게 된 서양매듭으로 만든 물건도 보인다.

집에 있는 소품만 보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인지 강원도 영월인지 헷갈릴 정도다. 서울하고 멀리 떨어진 지역에 있다고 해서 힙하지 않은 게 아니다. 이런 걸 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유튜브에 검색하면 다 나온단다. 아, '갓튜브'. 

남편 임소현님은 서울에서 출판사를 다니다 제천으로 귀농을 했고, 영미 사장님도 경북 성주에서 전통찻집을 하다 영월로 왔다. 도시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 부부는 동경의 대상, 그 자체다.  

"사람들은 그런 거 물어. 집은 어떻게 지었냐, 몇 년 걸렸냐, 얼마가 드냐. 그런데 시골에서 살려면 '얼마를 벌 것인가' 보다 '어떻게 덜 쓸 것이냐'가 중심이어야 해. 시골이라고 다 싸지 않아. 물가는 비싼 편이야. 서울에 왔다갔다 해야 할 일이 많으면 교통비도 많이 들지. 돈 버는 거에 포커스가 있으면 도시에 살아야지, 여기 왜 내려와? 돈은 사람이 많은 데서 벌어야 해. 여기서는 덜 쓸 궁리를 해야지. 돈 없으면 자급자족 하게 되어 있어."

차 없이는 가기 힘들 정도로 깊은 산 속에 있지만, 영미 사장님의 네트워크는 가히 세계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우프 호스트'이기도 하지만, 국적과 거리에 상관없이 소통할 수 있는 SNS 덕분이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우프 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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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네를 찾은 꼬마 손님들. ⓒ 김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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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홍콩인 우퍼 시우와 앨리스가 오미자를 따고 있다. ⓒ 김영미

  영미 사장님의 친구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미국, 캐나다, 독일, 대만, 일본 등 이곳에서 우핑을 한 우퍼들과 인연을 이어 나간다. 영미네 부부가 다시 그들의 나라로 여행을 간 적도 여러 번이다. 그들이 선물을 보내오고 서로에게 필요한 물건이 오간다. 

"우핑하고 떠나도 SNS에서 계속 만나. 인터넷이 정말 '현관' 같아. 거리에 상관없이 취미와 관심이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릴 수 있잖아. 난 집에서 심심하면 '구글 어스'를 켜서 해외여행을 해(웃음). 집 소파에 앉아서 이 나라 저 나라 다니는 재미가 있어."

'우프 호스트' 영미네가 알려지면서 영월에도 우프 바람이 불었다. 한국의 우프 농가는 50여개, 그중 6개가 강원도에 있다. 또 영월도 많이 알려졌다. 영미네 기사가 실린 영월군 홍보책자 <그렇게, 영월>이 전국의 독립서점에 배포되고, 2030대 청년들이 영월에 관심을 가진다. 영미네에 방문하는 손님들 중 절반이 2030대 청년이다. 최근에는 영월 읍내에 최초의 독립 서점 '인디문학 1호점'도 문을 열었다. 청년 살롱의 상징이라 여겨지던 독립서점이 영월에 생긴 것역시 눈여겨 볼만한 점이다.

이제는 누구도 영미네를 '외지인'이라 배척하지 않는다. 영월에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제 일처럼 나선 덕이란다. 최근에는 영월의 여성 농업인들과 케이터링 공부를 하고 있다. 8월 말 영월에서 열린 강원도의회 체육대회에도 여성농업인들과 함께 점심식사 케이터링을 맡았다. 영미네가 집에서 하던 대로 직접 재배한 음식을 세련되게 꾸며 팜파티(Farm Party)처럼 진행했다. 도토리묵밥에 샐러드, 떡, 전병 등을 부페식으로 준비하고 직접 재배한 오미자와 아로니아로 주스를 만들었다. 테이블 꽃 장식은 가드닝에 재능이 있는 영미 사장님이 솜씨를 발휘했다. 

절간 같은 고요한 분위기에서 성찰적인 삶을 살 거라는 예상과 달리 영미네 부부의 귀촌은 활기차고 재미있다. 트렌디하고 개방적이다. 꼬마 아이부터 인생 선배까지, 영월 사람부터 독일 사람까지. 네트워크도 넓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냐고 묻는 질문에 영미네 사장님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계속 자연 속에서 살고 싶지. 우리는 은퇴 같은 게 없으니까. 사람들하고 소통하면서."

영미네가 세상을 향해 문을 빼꼼히 열자, 영월의 다른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빗장을 푼다. 영미네가 열심히 마중물을 부은 덕일까. 물이 조금씩 솟아난다. 영월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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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6월 영미네에서 열린 연천군 체험농가 팜파티 모습. ⓒ 김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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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임소현 부부가 사는 내마음의 외갓집 전경. 어떤 날에는 끊임없이 운무가 펼쳐진다. ⓒ 김영미

 
덧붙이는 글 내 마음의 외갓집 http://blog.naver.com/herbinn/ 010-5473-8636 /강원 영월군 북면 봉래산로 790-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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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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