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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으로 'PT푸어'가 된 직장인

[리뷰] 신한슬 지음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등록 2019.11.03 13:07수정 2019.11.03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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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나는 내가 달리기를 싫어한다고 굳게 믿었다. 학교를 졸업한 지 수십 년이 지났어도 달리기 하면 떠오르는 것은 시끄러운 호각이나 총성, 그리고 등수를 매기는 일이었으니, 소음도 경쟁도 싫은 나로서는 딱 질색이었다. 

다른 운동이라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다. 원체 겁이 많고 잘 놀라는 편이라, 심장이 두근거리는 일은 최대한 피하고 살았다.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발걸음을 재촉하다가도, 개구쟁이 조카와 조금 격하게 놀다가도, 심박수가 빨라질 것만 같으면 동작을 멈춰버리곤 했다. 

듣자하니 호흡과 심박수가 조금은 빨라질 정도로 움직여야 운동의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데, 나는 결코 그런 효과가 발생하지 않도록 안간힘을 쓰며 살아온 셈. 어디가 특별히 안 좋은 게 아닌데도 그랬다.

그런 내가 달리기를 한 지 거의 일 년이 되어간다. 정말이지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주 5회 이상, 하루 6킬로미터를 달린다. 유독 힘든 날도 있지만, 어떤 때는 다 뛰고도 체력이 남아 그만두기가 아쉽다. 나로선 대단한 변화다. 학창 시절에도 오래 달리기는 완주도 해보지 못한 나다.

아직은 초보 달리기지만, 달리기를 시작하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우선, 밤마다 날 괴롭히던 다리 부종이 사라졌다. 늘 침대 위엔 머리가 아닌 다리를 누일 베개가 두세 개씩 쌓여 있었는데, 이젠 다 치운 지 오래다. 기초 체력 또한 좋아졌다. 일상을 보내는 에너지가 달라졌음을 확실히 느낀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내 몸에 대한, 나아가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등산을 할래도 내려올 것이 무서워 망설이던 내가, 여행을 갈래도 다녀온 뒤의 피로를 지레 걱정하던 내가, 이제는 겁먹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괜찮을 내 체력을, 나를 믿기 때문이다. 

뿐인가. 여행지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홀로 밤길을 걸을 때도, 전보다 덜 두려워한다. 내가 달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무모한 믿음이라 해도 괜찮다. 어차피 위험한 일은 할 성격도 못되는데 과도하게 겁먹고 주변을 경계하며 살았다. 나는 조금은 과감해져도, 그래도 괜찮다.

나는 어제도, 오늘도 달렸고, 내일도 달릴 것이다. 다른 무엇이 아닌 내 심신을 믿기 위해서. 그렇게 내 삶을 긍정하기 위해서. 그러나 안타깝게도, 헬스장엔 운동하는 여자를 방해하는 복병이 너무나도 많다. 정확히 말하자면 헬스장도 예외는 아닌 것. 세상 어느 곳이 그렇지 않던가.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책표지 ⓒ 휴머니스트

 
신한슬의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는 저자가 그간 운동을 하며 겪은 일들을 생생하게 담은 책이다. 문체는 가볍지만 사유는 묵직하다. 이름하여 '몸무게보다 오늘 하루의 운동이 중요한 여성의 자기만족 운동 에세이'. 

저자는 기자로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최악의 건강 상태를 맞이했다고 한다. 계속된 야근과 철야, 음주, 스트레스가 그녀의 건강을 갉아먹은 것. 그녀는 생존을 위해 운동을 시작한다. 다이어트나 장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을 버텨낼 최소한의 근력과 체력을 위해서.  

그녀가 택한 것은 PT(Personal Training)다. 고민을 거듭하게 하는 거금이지만 그녀로선 지속적인 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그녀는 자발적 'PT푸어'가 된다. 월급의 많은 부분을 PT에 쏟게 된 것. 그리하여 체력을 얻게 되었다, 하는 단순한 이야기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게 아등바등 시간을 내 헬스장에 가면, 비로소 내 몸에만 집중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비싼 돈을 내도 헬스장이 여성의 몸을 다루는 방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29쪽)

아무리 건강과 체력을 위해 운동한다고 해도 트레이너는 다이어트를 이야기하며 그녀의 몸을 깎아내린다. 그녀가 겪은 일은 그대로 내게도 일어났었다. 이것이 무슨 평행이론일 리는 만무. 그러니까 이건 세상에 만연한 여성혐오다. 여성의 몸에는 끊임없이 불가능한 요구가 가해진다. 그녀는 이에 반기를 든다.
 
"나는 이 불가능한 요구를 수용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반(反)다이어트주의자다. 나는 여성이다. 내 몸은 어떤 모양이든,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헬스장과 이 사회가 제시하는 특정 몸매만이 '완벽한 여성성'이라는 주장에 반대한다."(51쪽)

소위 '비포 앤 애프터'를 전시하며 몸을 모욕하고, 시선 강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운동 환경. "생리를 해서 피곤하다"라고 말했을 뿐인데, 몸둘 바 몰라하던 트레이너. 저자는 '사람의 몸', '여성의 몸'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헬스장 풍경이 달라질 필요가 있음을 요목조목 짚는다.

저자는 이 책으로 누군가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점이 있다 해도 그녀는 헬스장이 있어서 꾸준히 운동할 수 있었고 유능한 트레이너 덕분에 무릎 통증을 떨쳐냈다. 다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성찰하지 않음이 때로는 악을 재생산 하기 때문에.

며칠 전, 한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시청자가 원하는 조건에 맞는 집을 찾아주는 형식이었다. 출연자들은 역시 여성에게 중요한 것은 부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고, 누군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요리하고 있던 아내가 환하게 웃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좀처럼 웃을 수 없었다. 

누군가는 예능 프로그램에 정치적 올바름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치다고,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면 어쩌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부쩍 달려들고 싶다. 전통적 가치관이나 '악의 없는' 농담이라는 이유로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과연 변하긴 할까.

'잘난 여자'가 되라는 요구 못지 않게 '잘난 남자'를 만나야 한다는 지침을 하달받으며 자라온 사람으로서 나 역시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더욱, 이런 책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대 담론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낱낱이 체감할 수 있는 책. 그래서 내 곁의 여성혐오를 알게 하는 책.

저자는 헬스장을 여성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지 않는다. 노동의 공간으로서도 조명해 내 시야를 넓힌다. 또한 고객으로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언급하니 관련 업계 종사자들이 보고 참고해도 좋을 듯하다. 여성 혐오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까 모두에게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 말로 리뷰를 맺고 싶다. 사이즈와 무관하게, 우리의 몸은 아름답다. 그 어떤 역경에도 불구하고 운동하는 여자들이여, 오늘도 화이팅.
 
"그들이 정한 '정상' 구간에 맞지 않는 나를 자랑스러워하자. 개인의 '정신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몸이 위축되지 않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한 여성이 자기 자신을 옹호할 때, 그는 사실 자신도 모르게, 어떤 주장도 펼치지 않으면서 모든 여성을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마야 앤젤루의 말처럼."(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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