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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부대, 주남마을 버스 총격 민간인 학살

[김삼웅의 5·18 광주혈사 / 45회]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은 총 4건으로 추정되고, 피해자는 모두 33명이다

등록 2019.11.07 18:10수정 2019.11.0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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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동구 주남마을에 있는 위령비. 1980년 5월 23일 11공수부대는 부상당한 청년 두 명을 주남마을 야산 중턱으로 끌고가 사살하고 암매장했다. ⓒ 이주빈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23일 광주시 동구 주남마을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시내에서 철수해 조선대에 주둔해 있던 공수부대가 22일 새벽 주남마을 일대에 머물고 있었다.

이날 도청 수습대책위원회는 밀려드는 시체들을 넣을 관이 부족하자 외부에서라도 관을 가져오기위해 소형버스 1대를 시민군 몇 사람에게 내주었다.

"이 소형버스는 화순방면으로 향했고, 마침 여성노동자였던 김춘례가 5월 23일이 할아버지 제사인데 함께 가자고 공장동료인 고영자에게 권하여 두 사람도 화순방면의 이 소형버스에 탑승하게 되었다. 시민군 5명, 여고생 2명, 여성노동자 2명 등 총 11명이 탑승한 이 소형버스가 지원동을 지날 즈음에 매복해 있던 장교 1명과 무전병이 폭도들을 태운 소형버스가 화순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이에 소형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장교는 소형버스가 지나갈 때에 사격지시를 내렸다. 운전사인 김윤수가 계엄군이 매복해 있음을 발견하고 속력을 냈지만 채 100미터도 못가 총탄 세례를 받았다. 김윤수는 즉사하는 동시에 버스가 한바퀴굴러 도로 옆으로 엎어졌으며, 계엄군은 여전히 전복된 버스 안에 사격을 가했다." (주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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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희생자들이 상무관에 임시 안치되기 전 도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지내고 있다. ⓒ 5.18 기념재단

 
이 발포로 현장에서 8명이 즉사하고 남녀 3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참혹한 살상극은 더 이어졌다.

"당시 춘태여고 1년생 홍금숙과 청년 2명이 온몸에 피를 흘리는 채 끌려나왔다. 한 청년은 눈알이 빠져나왔다. 공수들이 3명을 경운기에 싣고 가다 길이 좁아지자 청년들을 포승줄에 묶어 리어카에 싣고 홍금숙은 걷게 하여 여단본부 쪽으로 데리고 갔다. 무전연락을 받고 온 소령이 청년을 처치하라는 고갯짓을 하자 벌집이 된 버스 앞에 청년을 세우고 중상자 청년의 머리에 M16 3발씩 쏘자 사망했다." (주석 2)

시체들은 어찌되었을까.

"계엄군들은 시체들을 버스에서 끌어내어 길옆에 나란히 눕히고 흙으로 덮었다." (주석 3)

주남마을 버스총격사건은 이외에도 유사한 3건이 더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종합하면,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은 총 4건으로 추정되고, 피해자는 모두 33명이다. 주검이 발견된 10구는 고영자ㆍ김남석ㆍ김윤수ㆍ김춘례ㆍ박현숙ㆍ백대환ㆍ양민석ㆍ장재철ㆍ채수길ㆍ황호걸 등이다.

생존자 홍씨 1명과 10구를 제외하면 22명의 주검이 아직도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홍씨의 주장대로 미니버스사건 1건에 탑승자 18명으로 치더라도 최소 7명의 주검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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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당시 11공수부대가 주둔했던 주남마을.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수북이 쌓여 있다. ⓒ 이주빈

 
시신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육군본부 전투교육병과사령부 '전교사 상황일지'엔 '5.23 15:00 상황 : 광주 소태동, 폭도 50명(버스 1대) 군부대 기습 기도, 군부대(11공수여단) 반격 소탕. 생포 3명(부상 2명), 사살 17명'이라고 적혀 있다.

정수만 전 5ㆍ18유족회장은 "전교사 상황일지를 보면 5월 23일 광주~화순 간 도로에서 17명을 사살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 군 기록에 맞춰 사고 시간과 주검 숫자가 맞춰졌을 가능성이 크다. 향후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핵심적으로 주남마을 버스 총격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주석 4)

잔인무도한 공수부대원들의 학살극과 관련, 『광주민중항쟁비망록』의 기록이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겨우 초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공장생활을 하면서도 할아버지 제사부터 식구들의 생일을 어김없이 챙길 줄 알던 18세의 김춘례 양을 비롯해 방송통신고등학교 친구였던 황호걸ㆍ백대환 군 그리고 도청 안에서 어느 누구도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시체들을 닦아내고 옷을 갈아입히며 민주화와 삶의 진실을 몇 번이고 되씹어야 했던 박현숙 양 등 10명이 이들 희생자들은 모두 열 발 이상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할아버지의 제사를 모시러 가던 여공과 관을 마련해 먼저 산화한 희생자들의 시신을 거두려 했던 여고생과 젊은 청년들의 처절한 죽음은 80년 5월 광주가 왜 그토록 참혹한 능지처참을 당해야 했는지를 이 땅의 모든 민중들에게 묻고 있다.

더구나 지역 주민들이 벌집이 된 차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안에는 무기라고는 M1소총 1정뿐이었다. (주석 5)


주석
1> 강준만, 앞의 책, 145~146쪽.
2> 『한겨레』. 1988년 5월 20일자.
3> 5ㆍ18광주민중항쟁 유족회 편, 『광주민중항쟁비망록』, 148쪽, 남풍, 1989.
4> 「5ㆍ18사라진 사람들」, 『한겨레』, 2019년 5월 15일자.
5> 『광주민중항쟁비망록』, 148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5ㆍ18광주혈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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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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