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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의 전쟁... 분당 주택가에서 실감하게 될 줄이야

[옥상집 일기] 산 아래 살면서 느끼는 자연의 민낯

등록 2019.11.08 08:48수정 2020.02.18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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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첫째 주에 옥상집으로 이사했다. 비록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40년 넘는 아파트 생활에서 얻지 못한 경험을 맛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남기고 싶어졌다. [편집자말]
우리 가족은 지난 9월 태풍 링링이 올라오던 즈음 이사를 했다. 야속하게도 이삿짐을 나를 때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이삿짐은 물론 사람들도 흠뻑 젖어서 힘들기만 한 하루였다. 이튿날 아침에는 하늘이 맑았다. 태풍이 더욱 가까워졌다지만 구름 한 점 없었고 태양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집 바로 앞이 산이라 비 맞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짙게 다가왔다. 그 향기에 이끌리어 옥상에서 첫 아침 식사를 했다. 새들이, 여러 종류의 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새 소리 사이로 전혀 예상 못 한 소리도 들렸다.

산 바로 아래 살면서 생긴 일들

물 흐르는 소리였다. 평지에서 흐르는 소리가 아닌 계곡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그런 소리였다.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왔다. 이사 오기 전에 동네를 다 둘러보고 주변 산도 둘러봤는데 분명 계곡은 못 봤다.

난 그 소리를 따라 집을 나섰다. 산을 끼고 걷는데 물소리가 점점 커졌다. 집에서 약 50미터쯤 떨어진 등산로 입구 바로 옆에 계곡이 있었다. 물길이 넓거나 급하진 않았지만 제법 많은 물이 흘러 내려왔고 바위를 때리는 소리도 요란했다.
 

우리 집근처계곡 불곡산 등산로 옆 계곡. 비가 내리기 전 평소 모습이다 ⓒ 강대호

 
등산로 입구에서 100미터만 올라가면 약수터가 있다. 물은 그쪽에서 흘러왔다. 평소에는 약수터에서 내려오는 물이 도랑처럼 흘렀겠지만, 큰비 내린 뒤라서 계곡이 된 모양이었다. 집 바로 앞에 산이 있어서 좋았는데 계곡까지 있다니 이삿날 비 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싹 날아갔다.

이처럼 산 바로 아래에 살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전에는 경험하지 못해본 일들이 여럿 생겼다.


9월 어느 주말 오후에 차 유리창에 어떤 종이가 놓여있었다. "강풍 피해가 예상되는 태풍이 올라오고 있으니 산 근처에 주차한 차를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라"는 주민센터의 안내문이었다.

"공용주차장을 무료로 개방하고 대로변에 주차해도 단속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동네에는 차들이 많이 보이질 않았다. 그제야 산 바로 아래니까 강풍이 불면 나무가 쓰러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차부터 옮겨야 했다.

하지만 공용주차장 입구는 들어가지 못한 차들로 북적였고 대로변에도 세워둔 차들로 빈자리가 없었다. 나는 몇 바퀴 돌다가 그냥 집 근처에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곳에다 차를 세웠다.

옥상에서 바라본 산은 나무들이 추는 춤으로 들썩였다. 나무들은 바람 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푹 숙였고 나뭇가지들은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바람 소리와 나무들이 부닥치는 소리가 밤새 들렸다. 창문도 밤새 흔들렸고 부러진 잔가지들이 날아와서 창문을 때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니 깨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바람이 잦아진 이튿날 아침 밖으로 나가보니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길에 즐비했다. 다행히 우리 차는 무사했다. 나뭇가지가 차 위에 떨어졌으나 약간 긁힌 정도였다. 산 쪽을 올려다보니 부러진 나무들이 보였다. 마을버스 정류장 옆 가로수에서 제법 큰 나뭇가지가 부러져 그 아래에 있던 차 유리창이 깨지기도 했다.

나는 산 밑에서 살면 자연의 민낯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이 더욱 굳어진 일도 겪었다.

한밤중 그 '따그닥 따그닥' 소리

10월 어느 밤 무슨 소리를 들었다. 뭔가 딱딱한 밑창을 신고 뛰는 소리였다. 분명 '따그닥 따그닥'에 가까운 소리였다. 난 설마 했다.

이튿날 아침 동네 곳곳에는 안내장이 붙어 있었다. 멧돼지가 출몰했으니 조심하라고 파출소에서 붙인 거였다. 세상에. 전날 밤에 들었던 소리가 멧돼지였었나 보다. 그 전단을 보던 주민들도 믿기지 않는단 모습이었다.
 

멧돼지주의 등산로 주변으로 멧돼지 출몰을 경고하는 안내가 붙어있다. ⓒ 강대호

  
누군가 분명 봤으니까 경찰에 신고했을 테고 그런 안내문도 붙었을 것이었다. 그 며칠 후에는 등산로 입구 근처에 플래카드까지 붙었다. 우리 집에서 50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돼지 열병 때문에 불안한데 멧돼지가 자꾸 나오니 걱정이네."

근처 편의점 주인의 말이다. 혹시 직접 보았냐고 물으니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만 봤다고 했다. 다른 손님은 혹시 멧돼지와 맞닥뜨릴까 봐 두렵다고 했다.

나도 주말에 집 근처 등산로를 오르는데 겁이 났다. 외진 등산로라 그런지 등산객이 드물어서 더 을씨년스러웠다. 등산로 근처에 파인 흔적만 보면 모두 멧돼지가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나는 파출소에 전화를 걸어봤다. 경찰은 멧돼지가 플래카드 붙인 곳, 우리 집에서 50미터 떨어진 그곳에서 목격되었다고 했다. 다시 나올 확률이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다. 혹시 멧돼지를 만나게 되면 바로 신고해달라는 당부도 했다.
 

멧돼지 조심 분당 어느 산 아래 주택가에 멧돼지 출몰을 경고하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 강대호

  
그 후로도 플래카드는 계속 붙어 있지만 더 이상의 멧돼지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지역은 아니었나 보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멧돼지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멧돼지 폐사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바이러스가 속속 발견되자 모든 행정은 멧돼지 박멸에 집중하고 있다. 접경 지역에서는 군과 민간이 함께 멧돼지를 사살하고 있고 경기도에서는 포상금을 걸고 멧돼지를 잡고 있다.

하지만 ASF에 대한 위험 신호가 계속 있었음에도,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적절히 준비하지 못했단 비판이 많이 나온다. 안전사고가 우려되는 총기 포획 방안도 멧돼지 출몰 지역 주민들에게는 큰 불안감으로 다가간다.

산 근처에 살면 산 짐승을 만날 확률이 다른 곳에 살 때 보다 당연히 높을 거다. 동물들도 마찬가지로 어떤 환경에서 살든지 인간을 만날 확률이 점점 커질 것이다. 한쪽 생태계가 무너지면 그 연쇄 반응으로 다른 생태계에도 무너질 확률이 크다는 걸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강대호 시민기자의 글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옥상집 일기 #멧돼지 #A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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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중반을 지나며 고향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을 답사하며 얻은 성찰과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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