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순둥이들

배려와 인정이 인간관계를 풍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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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영(cyyoun)등록 2019.11.16 14:07
*행복한 순둥이들
 
순동이들이란 모임이 있다. 세 명은 고등학교 후배이고 한 명은 세 명의 후배 친구의 누나다. 그런데 정작 누나의 동생은 함께 하지 않는다. 이 세 명은 고등학교 때 누나의 동생인 그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누나가 맛있는 것을 챙겨주었고, 그러다 누나와 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네 명이 한 번씩 어울렸는데, 그 어울림에 내가 들어가면서 5명이 멤버가 되었고 이 모임의 이름을 아내가 '순둥이들'로 지어 주었다. 나이가 들어 진정성 있는 만남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알기에 많은 사람은 지금까지 가진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말을 하며, 새로운 만남을 시도하는 것을 꺼린다. 하지만 이 모임을 함께 하면서 나이가 들어서도 얼마든지 진정성 있는 만남을 새롭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둥이란 말 그대로 멤버들이 모두 온순하다. 이 모임에서는 상대를 비난하거나 비평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만나기만 하면 서로에 대한 칭찬을 많이 한다. 있는 자리에서 칭찬을 하면 듣는 이도 하는 이도 낯이 뜨거워지기도 하지만 싫지는 않다. 그것이 진정어린 마음에서 나오는 칭찬임을 알기 때문이다.
만나서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 누군가 번개를 치고 시간이 되는 사람이 모이면 함께 카페에 모여 수다를 떤다.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재미있다. 또한, 영화를 함께 보러 가기도 하고 차를 타고 여행을 하며 맛 집을 찾아가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한다. 말 그대로 친목모임이다. 이 모임을 한번씩 가지면 충천을 받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 가족이 아닌 내 편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는 우리 아들이 취업에 성공했기에 내가 한 턱 쏜다고 해서 모두 모였다. 아내도 가고 싶다고 하여 함께 했다. 평소 난 피자를 좋아하지 않지만, 나를 제외하고 모두 피자를 좋아했기에 기꺼이 피자집에 갔다. 축하하고 축하 받고 음식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아침 아내는 별명을 지었다며 나에게 말해주었다.
 
"엄00은 수학학원을 운영하였기에 '엄 선생님', 서00은 끌끔한 청소 박사이기에 '깔끔 박사', 유일한 홍일점 요세피나 누님은 시를 좋아하고 감성이 풍부하기에 '요세피나 시인님' 이라고 부르면 좋겠어요. 그런데 박00은 무엇이라 부를지 생각이 안 나요."
"박00 별명은 이미 있어요. 내가 지은 건데 배려의 달인이기에 배려 박이, 빨리 발음하면 빼레빡이가 되지요."
그러면서 우리는 웃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떤 조직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직장이든 친목모임이든. 모임은 에너지를 주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소비하게도 한다. '순둥이들' 모임이 이렇듯 풍요로운 관계가 된 비결 중 가장 큰 것은 서로에 대한 배려이다. 배려는 전염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배려하면, 그 배려는 그 사람에게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배려를 받아본 사람은 그 기분을 알기 때문이다.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면 상대를 먼저 배려해야 한다. 배려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서로에 대해 배려를 하다 보니, 이 모임에는 상대를 생각해주고 배려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모든 것을 배려할 수도 모든 것을 할 필요도 없다. 관계를 형성하다보면 배려해야할 때를 알 수가 있다. '해줄까 말까'고민한다면 무조건 해주면 된다. 물론 내가 할 수 없는 것까지 무리할 필요가 없다. 나에게는 충분하지만 상대에게는 없어 필요해 보이는 것을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는 상대방이 기분 상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칫 자신은 배려한다고 한 것이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기에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배려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하면 할수록 더 하고 싶은 것이 배려이며, 배려는 하는 쪽도 받는 쪽도 모두 마음이 채워지는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런 배려가 쌓이면 그 관계는 풍요로운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 비결은 서로를 인정해주는 것이다. 지금 그대로의 그를 좋은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각을 그 사람의 부족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당연히 단점이 있고, 당연한 장점이 있다. 있는 그 자체로 좋은 사람으로 인정해준다는 것은 단점을 보지 않고 장점만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로의 장점을 칭찬해주면 자연스레 그 모임은 좋은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어제 모임에서 요세피나 시인님은 나에게 칭찬 폭탄을 터뜨렸다. 어색했지만 그래도 아내와 나는 그 분위기를 즐겼다. 칭찬할 부분이 없나를 항상 찾는 그 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의 눈임을 요세피나 시인님을 통해 알게 되었다.
비록 나이가 들어 만나게 된 모임이지만, 몇 십 년이 걸쳐 모인 모임 못지않게 정이 끈끈하다. 사람의 관계란 언제, 얼마나 오랫동안 만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자세로 모임을 가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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