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선가 나의 데이타 사용량이 사용되고 있다면?

검토 완료

CHUNG JONGIN(elliec)등록 2019.11.18 09:35


토요일 저녁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을 다녀온 후 핸드폰을 옆에 끼고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핸드폰에서 "부웅"하고 문자가 도착했다는 소리가 났다.
핸드폰 통신사(kt M Mobile)인 114의 메시지였다. 
'11월 9일 20시 기준 데이터 사용료 10,000원을 초과 사용하였습니다.'
"어, 이게 뭐지. 난 낮부터 모바일 데이터를 꺼 놓았는데?"
지난달 데이터 허용량 1.5GB를 간신히 통과했고, 외부에 나갈 일이 많은 이번 달에는 데이터 허용량을 초과할까 염려되어 집에 있는 날에는 데이터를 꺼놓곤 하던 차였다. 옆에서 남편이
"뭔가 착오가 있겠지. 잘못 보냈거나."
나 역시 그러리라 생각하고 있는데 9시, 10시 계속해서 10,000원씩 추가되었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조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보고 있던 영화를 잠시 멈추고 114로 전화를 했다. 주말이라 분실 신고 등이 아니면 월요일 아침 9시 이후에나 통화가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일단 데이터가 허용치를 초과하지 사용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남기기 위하여 핸드폰 설정으로 들어가 기기상의 데이터 사용량이 419MB라는 화면을 캡쳐했다. 그리고 잊었다. 

누구나 그렇듯 앉으면 늘 핸드폰을 손에 쥐고 산다. ⓒ pixabay

 
내가 데이터를 전혀 사용하고 있지 않기에,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에 따르면 소비자가 불만을 제기하면 소비자의 소비 기록을 보고 소비자를 신뢰하여 주었기에 미국 못지않게 발달했다는 한국의 소비시장을 믿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날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새벽 3시까지 60,000원을 초과 사용했다는 문자가 와 있어도 걱정을 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설거지를 대충 치우고 9시가 되자마자 114 번호를 눌렀다. 상담원이 나와 한 대답은 이미 7.8GB 이상의 데이터를 초과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순간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상담원 말이 자세히 알고 싶으면 '통화 상세 내역서' 열람을 신분증과 함께 팩스로 신청하면 팩스나 우편으로만 전달해 준다고 했다.
"아니, 나는 집에 있는 사람인데 어느 집에 팩스기가 있단 말인가? 우편으로 받으라고? 며칠이 걸릴 텐데?"
다행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팩스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드디어 손에 넣은 '통화 상세 내역서'는 26페이지에 달했다. 15페이지 둘째 줄부터 문제의 데이터 사용량이 기록되어 있었다.  
내역서에 따르면 9일 15:35:24부터 10일 13:46:45까지 비정상적인 데이터를 수 분(대부분 7분) 간격으로 거의 40,961KB씩 22시간 동안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대충 계산해 보니 이 같은 사용량이 7GB가 넘었다. 새벽 3시 이후에는 문자가 오지 않은 것을 보면 통신사도 지쳤었나 보다.
다시 상담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기록에 나타난 데이터 사용에 대한 책임은 소비자에게 있으며 기기는 조작이 가능하여 믿을 수가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하긴 교육받은 대로 친절한 언어로 답하는 상담원이 이 이상 무엇을 알며 무엇을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책임자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수 분 후에 책임자라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시 나의 사정과 기기상의 기록에 대하여 되풀이하여 말을 했고 책임자라는 사람의 답변 역시 상담원의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언성이 점점 높아졌다. 그동안 데이터를 사용해 왔던 성향이나 기기상의 기록이 왜 증거가 될 수 없냐고 따지는 나의 질문에 그간의 데이터 사용 패턴이나 기기상의 기록은 아무런 근거가 될 수 없어 무조건 데이터 사용료를 내야 한다는 약간 화가 난 앵무새 같은 답변만 돌아왔다. 기기에 나타난 기록이 근거가 안 된다면 결국 소비자가 제공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도 없다는 뜻이다.
여기저기를 뒤져보니 고객센터 자체가 통신사에서 운영하는 부서가 아니라 외주를 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런 사정이니 고객센터와의 대화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약이 바짝 올랐다. 네이버, 다음, 구글을 뒤졌다. 생각보다 사례가 많지 않았고 기술상 데이터 도둑은 있을 수 없다는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누군가로부터 내 데이터를 도둑맞았는데? 내 핸드폰에서가 아니라면 내 유심이 어디 다른 곳에 또 있다는 건가? 과연 통신사는 아무 잘못이 없을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와 내 핸드폰은 아무 잘못이 없고 책임질 일이 없다는 사실이다.
인터넷상에 나와 있는 몇 가지 사례 역시 싸우다가 지쳐 그대로 요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기가 막힌 것은 이 같은 사례가 국가권익위원회 신문고에 신고한 내용에도 나와 있었는데, 통신 데이터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답변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Q. 
본인은 4일 입국 후 데이터 사용하지 않고 와이파이로만 사용하고 있었는데 몇 일 사이에 갑자기 과금문자자 날라와 민원제기 합니다.
A.
1. 선생님 민원에 대한 검토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가. 선생님께서는 입국 후 와이파이만 이용하였으나 과도한 데이터 청구 문자를 받아 불편사항이 발생된 것으로 이해됩니다.
  나. 이와 관련하여 해당 사업자 확인 결과, 2019.2. 약 0.22GB의 무선 데이터 접속 이력으로 인해  데이터 통화료가 초과로 발생되었음을 알려왔습니다.
 다. 또한, 사업자는 데이터 통화료의 경우 단말기 상에서 데이터에 접속된 이력을 기반으로 전산 상 반영되어 요금이 과금되는 사항으로서, 통화내역 열람을 통해 접속된 날짜, 시간, 사용량 등에 대해 확인이 가능한 사항이며, 와이파이 존에서 사용할 경우에도 와이파이 신호 미약 시 3G/LTE 망으로 접속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전해왔습니다. 
2. 추가로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본 민원을 담당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민원실  국번 없이 1335번으로 문의하시면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와 유사한 네 개 정도의 사례를 더 찾았으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답변은 마치 복사한 것처럼 거의 동일하였고 통신사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하는 내용이었다. 소비자가 통신사와 대화를 못 해 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던 것이 아닌데도 말이다. 
거창한 이름을 가진 '국가권익위원회'의 존재 이유에 의문이 갔다. 작다면 작은, 별일이 아닌 일인데도 이렇게 분노가 이는데 인간의 생사가 걸린 문제라든가 재산상의 큰 손해가 발생하는 문제라면 얼마나 기가 막히고 막막할까.
그런데도 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민 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고 소비자 보호원에도 민원을 넣었다. 이들 기관의 도움을 받는다면 좋겠지만 그보다는 이들 기관의 실상을 체험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리고 일상적인 일을 처리하며 며칠이 지났다. 그간 통신사와 의미 없는 몇 차례 통화해 보았고 소비자 상담센터에서는 한 단계 위인 '피해구제' 단계에서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이번 주 내내 머리를 싸매고 입술이 부르터가며 신경을 썼건만 아직 답보상태이다. 

어디에선가 나의 데이터 사용량이 새고 있었다. ⓒ pixabay

 
인제 그만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원래부터 순간적인 흥분만 잘하지 끈기가 없는 탓이다.
어제 오후에는 미국에서 오는 아이들과 함께할 여행지를 찾아 계획을 세우는 일도 했다. 역시 나에게 어울리는 일이고 핸드폰 관련 일을 잊으니 마음이 평온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참 고민 없는 일상을 즐기고 있었나 보다.
14만 원, 그냥 잃어버린 것으로 치면 안 될까? 길 가다 지갑을 흘릴 수도 있고 쓸데없는 데 돈을 낭비할 수도 있지 않은가. 통신사가 소비자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행태는 괘씸하지만, 그들이  가져간 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마음 한쪽 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온다. 내가 실수를 해서 벌어진 일도 아니고 명백한 가해자가 있는 사건이 아니기에 나만의 문제가 아닌 그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시스템의 허점을 노린 데이터 도둑이라도 있다면? 
많은 분에게 알리고 공유하고 싶다. 적어도 원인이라도 알고 싶다. 상담원 말로도 이런 경우가 전혀 없지 않다고 한다. 다만 통신사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것뿐. 
덧붙이는 글 이미 기사로 올렸으나 책택되지 않아 다시 수정해 올립니다. 첫 번째 것이 너무 개인적이 경험위주였고 사진 역시 상담 단계에서나 사용될 수 있는 것이었으므로 일반화된 사진으로 교체했습니다. 사진은 free download 받는 사이트에서 받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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