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친구들의 특별한 송년회를 자랑합니다!

[일상 비틀기]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세상을 바꿔나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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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희(crazyli)등록 2019.12.02 14:19
제가 안 하던 일을 하나 하려고 해요. 뭔지 아시겠어요? 바로 제가 살고 있는 도시인 포항을 자랑하는 거예요. 이곳에 온 지 11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하루의 반을 넘게 보내는 일터에도 적응하지 못했는데 무슨 자랑이냐고요? 이 동네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송년회는 꼭 소개하고 싶어요. 좋은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위로하며 살아가면, 삶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리고 싶거든요.

"여러분, 너무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세상은 쉽게 좋아지지 않을 것 같아요. 주변에 여러분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을 찾으세요. 그분들과의 교류를 통해,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삶의 의미를 지켜내셨으면 좋겠어요."

2015년 근처의 학교에서 있었던 유시민 작가의 강연 말미, 당시의 암울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듯 작가가 전해준 '낙관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어요. 메시지를 전하는 작가의 목소리는 어두웠지만, 주변의 억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마음을 나눌 동료'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저는 마음을 나눌 동료들을 얻었어요. 

1990년대에 대구의 시민들은 '예술마당 솔'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예술을 매개로 세상의 진보와 사회의 변화를 얘기하고자 했던 시민들은 2012년에 포항에도 지부를 만들었고, 포항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소모임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답니다. 이런 자발적인 활동이야말로,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진심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요?

 

<영화로 세상읽기>의 1년을 뒤돌아 보았습니다. 각 소모임별로 각자의 1년을 돌아보고, 새로운 1년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제가 진행했던 소모임의 행사들을 같이 살펴 보았습니다. ⓒ 이창희

  
저는 이 모임에서 몇 년 전부터 작은 소모임인 '영화로 세상읽기'를 맡아서 진행하고 있어요. 모임에서는 정기적으로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를 통해 세상의 다양한 삶을 돌아보고 있는데, 벌써 세 살이 되었네요. 이외에도 같이 보이차를 마시면서 건강한 삶에 대해 나누는 '차다락'이라는 모임, 포항의 이곳저곳을 함께 걸으며 서로의 삶을 응원하는 '포항사랑 걷기' 모임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2017년의 11.15 포항지진에서 큰피해를 입은 흥해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행복한 흥해 만들기'도 있는데, 그들에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지진의 아픔을 함께 위로하며 해결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행복한 흥해 만들기'에는 참여해 보지 못했는데, 지진이 남긴 상처에 대해 그들이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꼭 들어보고 싶어졌어요.
 

송년회 참가자들이 당신들의 1년을 함께하고 있어요! 각 소모임별로 한 해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얘기하는 중입니다. 우리 모두, 지난 2019년 덕분에 잘 지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 권평정

  
송년회는 모임 안에서 '따로 또 같이' 활동하던 마흔여덟 명의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그동안의 활동을 나누는 자리였어요. 근처의 식당을 예약하고 회원들은 각자 나눠서 맡은 역할을 통해 모임의 한 부분이 되었답니다. 물론 우리가 나눠 받은 역할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몇몇의 회원들이 시간과 노력을 더 쓰셔야 했어요.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군가를 연결하기 위해선, 그들 사이의 연결을 위한 줄을 만들고 잡아주는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모임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한 또 다른 아이디어는 '호혜시장'이었습니다. 물물교환 형식의 시장이었는데요, 회원들이 자기에게는 소용이 없어졌거나 여유가 있는 물건을 내어놓고 다른 물건으로 바꿔가는 형식이었어요. 물론 내어놓는 것이 꼭 '물건'일 필요가 없다는 안내에 따라, 누군가는 모임에서 노래를 나누셨고 누군가는 언젠가 타로 점을 봐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놀랍죠?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연결점을 계속 만들어나가는 중이랍니다.

두 시간 정도 진행된 행사는 모임에 참여한 우리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 지나온 2019년에 대한 칭찬과 다가오는 2020년에 대한 응원과 함께 마무리되었습니다. 행사장을 벗어나며 날씨는 한결 차가워졌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더 풍성해진 것을 느꼈어요.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격려해 준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 해동안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나눌 수 있는 것들을 함께 나누며, 지나간 해에 대한 축하와 새로운 해에 대한 응원을 나누고 있습니다. ⓒ 이창희

  
지금보다 나은 세상은 어느 날 갑자기 '짜잔'하고 찾아오는 것은 아닐 거예요. 그런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의 기대가 새로운 동료들을 만들어가고, 그 변화의 물결 안에서 연결된 '우리'를 계속 확장해 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기득권이 만들어놓은 공고한 세상이 완고하게 버티고 있는 것만 같아서 비참해질 때도 많지만, 저는 서로를 응원하는 '우리'를 믿어 보려고요. 변화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복수는, 더 좋은 세상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 뿐이니까요. 

여러분도 '예술마당 솔'의 친구들처럼 좋은 동료들을 만들어 보세요. 좀 더 넓어진 '우리'가 만나는 날, 세상은 분명 좀 더 나은 곳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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