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60년 이야기들 1 떴다 떴다 비행기

초등학교 1학년 입학후 학교에 가지 못하다가 이사한 곳에서 전학한 첫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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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ksuntae)등록 2020.01.08 08:26
       교육 60년 이야기들 1     떴다 떴다 비행기  
 
"자, 이제 수속이 모두 끝났으니 교실로 가보십시오."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아버지의 손에 매달려서 1학년 교실로 가고 있었다. 교무실에서 복도 쪽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끝 교실이었다. 진짜로 말해서 그것은 교실이 아니었다. 교실로 들어가는 현관에 책상을 들여놓고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교실이지 교실이 아닌 맨 바닥에 책상만 놓여 있는 곳이었다.
물론 이곳의 학교는 그래도 내가 전학을 오기 전의 학교보다는 훨씬 더 좋은 학교였다. 오기 전에 다니던 학교는 숫제 학교 교실이 모두 다 불타버리고 없어져서 마을 사람들이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가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외를 엮어서 흙으로 바른 시골 초가집과 같은 것으로, 바닥은 그냥 맨 흙바닥이었고, 들어 다니는 문이 없어서 가마때기를 펼쳐서 문 대신 달고 이것을 둘둘 말아 올리면 문이 열리는 것이고, 주루룩 내리면 문이 닫히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창문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었고, 창문 부분은 숫제 텅 비어 있어서 비가 몹시 내리면서 바람이 불면 교실바닥에 물이 고이고, 비가 들이쳐서 한쪽 구석에 모여 앉아야만 하였었다.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교실 안은 굴속과 같이 깜깜해서 곁에 앉은 사람의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가 않았다.
그런데 전학을 온 이 학교는 그래도 벽은 역시 외를 엮어서 흙을 바른 것이지만, 창문도 반듯이 달렸고, 교실 안쪽의 벽은 회를 발라서 하얗게 깨끗하였고, 교실 바깥쪽 벽은 판자를 밑에서부터 덮어 붙이는 식으로 처리되어서 아무리 비바람이 쳐도 끄떡없는 그런 교실이었다. 다만 교실이 모자라서 드나드는 입구를 막아서 1학년 교실로 쓰고 있었던가 보다.
내가 1학년 교실로 다가가는데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힘차게 선생님을 따라 책을 읽는 소리가 온 학교를 울리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책을 읽는 소리가 아니라 노래였다. 책을 읽는 그 소리가 나중에 어떤 사람의 손에 의해서 노래로 작곡이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날의 책 읽는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이 부르는 그 노래와 거의 같은 소리였다. 분명 그 때는 이 노래가 없었고, 한 참 후에야 노래로 불려졌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떴다. 떴다. 비행기, 우리 비행기."
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은 책을 읽던 소리가 뚝 끊어지고 모두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좁고 길다란 교실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이 교실 가득히 들어앉은 아이들이 모두들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선생님께로 가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시자 나도 따라 인사를 하였다.
"오늘 전학을 왔습니다.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아버지께서 고개를 굽실거리면서 말씀하시자 선생님은
"어디서 전학을 오시는 것입니까?"
하고 물으셨고, 몇 마디 이야기가 오가고 나서 선생님은 아버지께
"이제 되었습니다. 가셔도 좋습니다."
하시자 아버지는 내 등을 떠밀 듯이 어루만지면서
"말씀 잘 듣고 와."
한 마디 하시고서 교실에서 나가셨다. 시간이 끝나고 나가보니 어디에도 안 계셨다.
나는 다음 시간부터 혼자서 여간 힘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그 동안 학교에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글자를 전혀 익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이들을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누구를 시켜도 책도 잘 읽고 문제도 척척 풀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글자라고는 ㄱㄴㄷㄹ을 익혔을 뿐이었고, 숫자도 겨우 10까지를 쓰고 읽을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나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 구경꾼일 뿐이었다. 그 날 공부가 끝나고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가는데 나를 선생님께서 불러서 가 뵈었더니 글자를 얼마나 아는지 시험을 보는 것이었다. 보나마나 나는 엉터리 박사가 아닌가? 책을 읽어보라고 하시는데 읽기는 무얼 읽나 글자도 모르는데, 나는 답답하여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더니, 선생님은
"넌 이제야 학교에 입학을 한 것이구나. 다른 아이들은 이제 2학년이 되어야 하는데 이렇게 글자를 모르면 2학년이 못 되는 거야. 얼른 글자를 배워야 해, 집에 가면 글자를 가르쳐줄 사람은 있는 거야?"
하고 물으셨다. 마침 그때 6학년 형이 나를 찾으러 왔다가 이 모습을 보고서는
"선생님, 제가 이 아이 형입니다. 6학년에 전학을 해왔습니다. 이 아이 공부는 제가 시키겠습니다."
하고 말을 하자 선생님은 그제서야 안심이 되는 듯
"응, 그래 잘 됐구나. 글자를 몰라서 안 되겠다 싶었지. 그런데 왜 이제까지 글자를 안 가르쳤니?"
"저희 집은 지금까지 반란군이 득실대는 곳에 살고 있어서 나는 학교를 다녔지만, 어린 동생은 학교에를 다니지 못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럼 공부를 시키면 따라 할 수는 있겠구나?"
"예, 얘가 영리한 편이라 금새 따라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 집에서 좀 가르쳐라. 난 학교에서 열심히 가르쳐 볼게."
이렇게 해서 난 날마다 학교에서는 나머지 공부를 해야 하였고, 집에서는 밤늦게까지 글을 읽어야 했었다.
전학을 한지 사흘 째 되는 날. 나는 동네 형들과 함께 학교로 가는데 엊저녁에 내린 눈이 얼마나 쌓였는지, 고무신을 신은 발을 덮고도 한참 위까지 푹푹 빠지는 길을 걸어서 가다가, 철도를 가로질러 가자면 그 가파른 철도 둑을 올라가서 넘어 가야하는데, 하필이면 이렇게 눈이 쌓였으니 그 길을 갈 수가 없었다. 올라가다가 중간에서 미끄러져서 아래까지 미끄러져 내려가고, 다시 올라가다가 미끄러져 뒹굴고 마는 짓을 몇 번씩이나 되풀이 하다가 먼저 올라간 형들이 손을 마주 잡고 끌어 올려 주어서 간신히 학교에 갈 수 있었다. 학교에 가니 벌써 공부가 시작되었었다. 우린 발은 물론 무릎까지 다 젖은 옷으로 교실에 들어서는데 얼굴은 물론 바지가랑이에서도 젖은 옷이 마르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오는 길에 길가에서 모닥불이라도 피우다가 온 것으로 오해를 받아서 선생님이 혹시 불을 피웠으면 연기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어서 개처럼 냄새를 킁킁 맡아보시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불을 피운 적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만약 춥다고 불이라도 피우다가 늦었더라면 혼이 났을 것이다.
나는 그 무렵 마을에서 어른들이 글을 배우는 야학을 하는 형들을 따라 다니면서 밤이 늦도록 까지 글을 읽고 쓰는 공부를 계속 하였다.
어느 날 밤에 야학에서 한 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우리가 공부했는데 그럼 흙이냐, 흑이냐."
하는 어느 어머니의 질문에 형들은 두 패로 나뉘어서 서로 자신이 맞는다고 우김질이 시작 된 것이었다. 땅을 나타내는 흙을 가지고 다툴만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 무렵까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글에 대해서 별로 잘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사실 마을에서 우리 글자를 아는 사람은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인 것이었다. 공부를 한 어른들은 일본말을 배웠고, 한자를 배웠지만 우리 글자를 제대로 잘 알지 못하였고,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나마 배운 적이 없어서 글자라고는 단 한자도 모르는 까막눈이 대부분이었던 시절이었다. 우리 속담대로 정말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마을에서 학교에 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모여서 [흙]이라는 사람과 [흑]이라는 사람으로 나뉘어서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 글자를 열심히 배우고 있던 시절이었으므로 제대로 배워서 아는 편이었다. 이튿날 학교에 가서 선생님의 손으로 바른 것이 어는 것인가를 적어 주시라고 하여서 마을에서 보이기로 한 것인데, 당연히 [흙]이 맞다는 판정을 받고 나서 나는 동네에서 4학년 이상인 형들 세 명과 마찬가지로 맞은 답을 한 사람 쪽 이어서 아주 칭찬을 받게 되었다.
바로 이런 일이 있고 나서 나는 학교에 가서도 자신 있게 발표를 할 수도 있었고, 공부 시간에 손을 번쩍 들고남들 앞에서 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1952년 1월에 전학을 하여 3월 말에 2학년에 올라가야 했으니, 겨우 65일을 학교에 다니고서 2학년이 되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1학년 공부를 거의 하지 못한 채 2학년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2학년이 되어서는 제법 공부를 열심히 하여서 잘하는 편에 속했던지, 학급에서 10% 안에 들어서 우등상을 받을 정도였으니 제법이었던 셈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나의 블로그에도 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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