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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제자 김남국 변호사는 이런 사람입니다

[아이들은 나의 스승 182] 애써 그를 정치적으로 엮으려는 분들에게

등록 2020.02.23 12:18수정 2020.02.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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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지만, 아직도 난 그가 법률가나 정치인보다는 '교육자'가 더 어울린다고 믿는다.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이들을 좋아하고,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며, 공부하고 토론하는 걸 좋아하는 그의 천성이 언젠가는 드러나리라 본다. 며칠 전부터 인터넷 포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김남국 변호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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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국 변호사 ⓒ 연합뉴스

 
정치판이란 본디 진흙탕 개싸움이라는데, 이번 총선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힌 듯한 그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될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인터넷에 쏟아지는 그를 향한 온갖 막말을 지켜보고 있자니, 고등학교 시절 스승으로서 모르는 척 뒷짐 지고 있긴 힘들었다. '문빠'(문재인 대통령의 팬덤)나 '홍위병'은 그나마 낫다. '자객'과 '조국 꼬붕'이라는 조롱도 인터넷에 넘쳐나고 있다.
  
그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안다고 나섰으니, 그와 내가 어떤 사이인지를 잠깐 언급하고 가야겠다. 그는 우리 부부의 제자이자 '중매쟁이'이기도 하다. 아내는 중학교에서 3년 동안, 난 고등학교에서 3년 동안 그를 가르쳤다. 서로 어울린다고 여겼던지, 그는 해마다 스승의 날과 세밑 즈음이면 찾아와 내겐 아내를, 아내에겐 나를 소개하며 인연의 다리를 놓아주었다.

대개 스승이 제자를 중매하는 게 보통이지만, 우리 부부는 애먼 제자 덕을 본 셈이다. 우린 결혼 예물 시계를 같은 것으로 세 개 구입했다. 결혼한 지 20년이 지난 마당에 낡고 유행이 지난 시계를 손목에 차고 다닐 리 만무하지만, 이따금 그를 만날 때마다 장난치듯 시계의 안부를 묻곤 한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입에서 '미래'라는 말이 먼저 나오면, 개인적으로 그를 신뢰하지 않게 된다. 이게 어디 정치인만의 문제일까마는, 무릇 한 사람을 제대로 평가하자면 앞으로의 비전보다 몇 배는 더 중요한 것이 지난 과거의 행적이다. 지금까지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면, 그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가 빤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학교에서 6년간 매일 만났고, 졸업 후 20년 동안 먼발치에서 지켜본 '청년' 김남국은 호사가들이 인터넷에서 마구 지껄여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고작 금배지 하나 달자고 간이고 쓸개고 다 내주는 그런 '정치적인' 인물이 못 된다는 이야기다. 장담하건대 그는 이전투구의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뒹굴기에는 영혼이 매우 맑다.
   
'청년' 김남국은 '정치적인' 인물이 못 된다

  

20년 전 사진전 자료 학창시절 경북 안동문화권 답사를 마치고, 그가 주도적으로 만든 사진전 자료다. 20년 넘도록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는 동아리의 보물이다. ⓒ 서부원


김남국의 학창 시절을 추억해 본다. 그는 학교에 부임하자마자 꾸렸던 문화유적답사반 동아리의 원년 회장이었다. 지금이야 학생부종합전형이 도입되면서 적극 장려되는 분위기이지만, 그때만 해도 동아리 활동은 교육과정에만 포함돼 있을 뿐 사실상 유명무실했다. 대부분 자습 시간으로 대체됐고, 입시에 반영되지 않았으니 굳이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그는 답사 활동에 의욕을 보였다. 자습을 하라고 하면, 되레 친구와 후배들을 꼬드겨 교실에서 다음 답사를 준비하며 자료집을 만들었다. 지도교사였으나 초임이라는 이유로 선배 교사들의 눈치를 살필 때, 그는 답사 활동이 학습에 도움이 되는 이유를 대며 선생님들을 찾아가 설득했다. 당시 답사에 대한 그의 열정과 집요함에 혀를 내두른 교사가 한둘 아니었다.
  
그의 노력 덕분에 1998년 백제문화권 답사를 시작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답사를 다녔다. 여름과 겨울엔 방학을 이용해 2박 3일간의 긴 여정을 꾸렸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취사도구를 준비해 아침과 저녁 식사는 숙소에서 해결했고, 점심에는 음식값이 싼 식당을 찾아 헤매느라 일정이 밤까지 늦춰지기도 했다.
  
답사를 다녀와서는 탐탁잖게 여긴 선생님들 보란 듯 사진전도 가졌다. 당시엔 스마트폰은 물론 디지털카메라조차 흔하지 않았던 터라,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해 A4용지에 붙인 다음 아래에 간단한 설명을 써넣어 복도에 내걸었다. 비록 변변한 액자도 마련하지 못한 볼품없는 전시회였지만, 다른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기엔 충분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복도에 전시했던 빛바랜 사진들을 묶어 보관하고 있다. 코팅해 놓은 덕에 헤지지 않았고, 언뜻 새것 같기도 하다. 지금 많게는 30대 후반이 된 답사반 동아리 친구들에게도, 어느새 반백이 된 지도교사인 내게도 당시 사진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아무튼 지도교사인 내가 한 일이라곤 봉고차를 운전하고, 컴퓨터를 빌려준 것밖에 없다.
   

2017년 여름에 함께한 지리산 종주 담임을 맡은 학급 아이들과 해마다 여름이면 지리산을 종주하는데, 2017년에는 짬을 내 함께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다음 날 출발 전에 찍은 사진이다. ⓒ 서부원

  
대학 재학 시절은 말할 것도 없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뒤에도 그의 답사반에 대한 사랑은 계속됐다. 후배들이 2박 3일 일정으로 강원도 철원 지역을 답사했을 때, 그는 늦은 오후 삼겹살 50인분을 사 들고 숙소를 찾아왔다. 후배들과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답사뿐만 아니라 후배들과 지리산 종주도 여러 차례 함께했다. 서울에서 변호사 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지난 2017년 여름에도 굳이 함께 가겠노라며 짬을 내서 내려왔다. 그는 늘 맨 뒤에서 등반을 힘겨워하는 후배들의 손을 잡아주는 일을 도맡았다. 그들의 보폭에 맞춰 걸으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우산을 씌워주기보다 함께 비를 맞는 느낌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돌아와 나눈 아이들의 소감에는 예외 없이 그가 등장했다. 산행 중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대피소였다거나, 심지어 그가 동행했기에 완주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현직 변호사라고 소개해도 아이들은 당최 믿으려 하지 않았다. 산행을 함께한 지 채 한 시간도 안 돼 그는 아이들에게 '우리 형'이 되어 있었다.
  
숙소인 대피소 마당에 지쳐 널브러져 있는 후배들을 위해 100m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 식수를 떠 오고, 침상에 누운 그들을 일일이 찾아가 아픈 데는 없는지 묻는가 하면, 몇몇 아이들의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물러주는 그의 모습에 모두가 감동했다. 자기밖에 모르는 철부지 아이들조차도 그의 행동이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슬라이드 필름 자료 그가 동아리 후배들에게 우리 역사와 문화재에 대해 가르치기 위해 사용했던 슬라이드 필름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 서부원

  
모교 후배들만 챙기는 것도 아니다. 언제 어디서 그와 잠시라도 '옷깃을 스친' 후배라면, 나이와 고향을 불문하고 도움 줄 게 없는지를 거의 본능적으로 살핀다. 의무경찰 시절 함께 복무한 후임병들도 여태껏 가족처럼 살갑게 지내고, 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 시절 같이 공부한 이들과도 친분이 두텁다.
  
법학전문대학원 시절, 부모님이 계시는 집을 놔두고 부러 인근 고등학교 기숙사의 사감 역할을 자원하기도 했다. 듣자 하니, 학교에 상담교사가 배치되어 있는데도 저녁 시간 그에게 학업과 진로 상담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안다는 수많은 사람 중에 그를 험담하는 경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의 자취방은 언제나 '사랑방'이었다.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던 광주에서도, 변호사가 된 지금 서울에서도 다르지 않다.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이라면, 그가 사는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쯤은 다 알고 있다. 출장이나 서울 나들이를 온 고향 후배들을 위해 통째로 집을 비워준 경우도 있으니 더 말해 무엇 할까.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이라 그가 이 글을 읽는다면 불쾌해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왕 말이 나온 김에 하나만 덧붙이자. 나 역시 2019년 11월 즈음 서울 출장이 잡혀 그의 '사랑방'에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간만에 그와 술 한 잔 나누고 싶어 부러 찾아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집엔 나 말고도 여럿이 신세를 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건 모두 김남국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정작 서로는 잘 모르는 사이였다는 점이다. 그의 '중재'와 '통역'으로 곧장 이물 없이 친해져 속내까지 털어놓는 사이가 되긴 했어도, 아무튼 방의 개수가 적었다면 서로 난감할 뻔했다.
   
김남국이 원하는 건 '조국 수호'가 아니라 '검찰 개혁'이다
    
그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다 그만 여기까지 와 버렸다. 감히 그의 부모보다 더 잘 안다고 자부해 보면, 그는 자상하고 꼼꼼한 성격에다 어려움에 처한 이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다. 더욱이 책 읽고 토론하고 가르치는 것도 좋아해서 미래 교육자가 되어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내심 바랐다. 그도 종종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쳐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적어도 내게 정치인과 김남국은 여전히 낯선 단어의 조합이다. 젊은 시절 꿈이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한다지만, 어릴 적 그의 꿈이 정치인도 아니었고,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가 직접 정치를 해야겠다고 나선 건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뒤 곧장 모교에 출강하는 걸 보고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흐뭇하기도 했다.

그는 대학 강의가 인권이 존중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당시 지인들은 그의 본업이 변호사인지 대학 강사인지 헷갈릴 지경이라 말할 정도였다. 오로지 대학 강단에 서기 위해 변호사 자격이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돌던 시절이었고, 나 역시 그렇게 이해했다.

그러나 그에겐 큰 그림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뒤 일반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고 법학전문대학원을 선택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꿈은 그저 변호사가 되겠다는 게 아니라,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해박한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의 삶의 무게중심이 시나브로 정치에 가까워지기 시작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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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에서 '조국 백서' 필자인 김남국 변호사가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2009년 봄,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그의 꿈이 결정되는 삶의 변곡점이 됐다. 일국의 대통령이 퇴행적인 보수언론과 검찰 권력에 맞서다 무참히 쓰러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가 내로라하는 법률 전문가가 되어 무소불위 대한민국 검찰과 맞장뜨겠다는 무모한 도전은 그렇듯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된 것이다.

선출되지 않은 검찰 권력이 국민 다수의 선택으로 뽑힌 대통령을 능멸하고 죽음으로 내몬 사실을 기억하며 그는 법률 공부에 매진했다. 고등학교 학창 시절 그다지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그가 지금 법률가로서 뛰어난 기량을 뽐내는 건, 상처로 남은 그 기억 때문이다. 검찰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그들의 손에 쥔 칼을 함부로 쓸 수 없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그는 일찌감치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검찰 개혁'. 예나 지금이나 그는 검찰 개혁이 완수되어야만 우리나라가 인권이 존중되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런 그에게 '조국'이라는 두 글자는 '검찰 개혁'과 동의어였을 것이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개인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을 뿐더러, 그의 범죄 혐의를 감추고 두둔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다만 조국의 낙마로 인해 더욱 기고만장해질 검찰 권력의 오만과 횡포에 맞서려고 했던 것일 뿐이다. 무소불위 검찰 권력에 맞서 단 한 번이라도 승리한 역사를 쓰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해 그는 서초동 대검찰청 앞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그가 단상에서 줄곧 외친 '조국 수호'는 '검찰 개혁'이라는 뜻이었는데도, 일부 정치인들과 보수언론은 위선적인 조국을 엄호하려는 구호로 낙인찍었다. 그가 참여한 '조국백서' 역시 조국 일가 수사에 대한 검찰과 언론의 그릇된 행태를 지적한 것인데도, 마치 그가 조국의 마름인 양 폄훼하고 왜곡하고 있다.
  
아예 '아군'인 민주당의 현역 국회의원조차 그를 '조국의 사람'이라며 공격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검찰 개혁이라는 '달'은 보지 않고, 조국이라는 '손가락'만 앞장서서 문제 삼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의 공약대로 검찰 개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상황이라면, 그가 구태여 출마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애써 조국과 엮으려는 현역 국회의원이 검찰 출신만 아니었어도 그랬을 것이다.

그가 유능한 정치인으로 기억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장담할 수 있다. 이전투구의 정치판에서 대나무 부러지듯 꺾일지언정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하거나 불의에 타협하는 정치인으로 타락하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그를 가까이에서 수십 년 지켜본 스승으로서 감히 단언하건대, 서른여덟의 '청년' 김남국의 이력에는 '오점'이 없다.

사족 하나. 그를 가르친 교사들에게 그는 좋은 '수업 교재'다. 공부보다는 인성이, 성적보다는 열정이 중요하다는 걸 몸으로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후배들 모두가 그의 이름은 물론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도 잘 알고 있다. 많은 후배에게 그는 '롤 모델'이다. 부디 맑은 영혼에 생채기가 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사족 둘. 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김남국 변호사에게 '청년정치'를 했는지 자문해보라며 일침을 놓았다고 한다. 그를 대신해 스승인 내가 대답하겠다. 그가 까마득한 후배들조차 일일이 챙기고, 기꺼이 상담교사를 자처하며, 그들의 '형'으로 불리고, 그들의 비빌 언덕이자 '입'이 돼주겠다고 말하는 게 '청년 정치' 아니면 뭐겠는가. 그가 졸업한,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건물 벽엔 이렇게 적혀있다. '여러분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랑받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학창시절 숱하게 봤던 이 글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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