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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택배 기사님이 고마운 때가 없습니다

[코로나19가 은퇴자에게 미친 영향] 빼앗긴 봄을 아쉬워하는 제가 부끄러워요

등록 2020.04.01 22:05수정 2020.04.0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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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앞 냇가 양쪽으로 길게 줄지어선 벚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사람이 없을 때는 잠시 내려가서 따스운 봄햇볕도 쬐고 꽃에 대한 갈증을 얼마간 풀기도 한다. ⓒ 김숙귀

 
나는 작은 집에서 혼자 산다. 칠 년 전에 오래 몸담았던 직장에서 명퇴를 하고 드디어 좋아하는 여행의 즐거움에 푹 빠져 지내던 중이었다.

눈을 떴다. 머리맡의 큰 창에는 벌써 밝은 햇살이 한가득이다. 한번 잠들면 깨는 일없이 숙면을 취하는 편인데 요즘 들어 늦게까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기도 하고 중간에 깨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밤, 역시 숙면을 취하지 못한 탓에 자고 나서도 개운하지가 않다. 한참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누워 있다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켰다. 욕실에 가서 대강 씻고 한길로 난 큰 창문을 열어 밤새 묵은 공기를 내보냈다.

쉽사리 가시지 않는 코로나 불안

거리는 텅 비어 있다. 창으로 넘어들어오는 3월 햇살이 물색없이 부드럽고 포근하다. 집앞 작은 냇가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오래된 벚나무에 꽃이 활짝 피었다. 벚꽃이 필 때면 해마다 동네잔치가 열리곤 했는데 올해는 그냥 지나가야 하리라.

집에 있는 날은 늦은 아침과 이른 저녁, 두 끼 식사면 충분하다. 연두부 한 개,  삶은
계란 한 알, 사과 반쪽, 두유 한 잔으로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린다. 짙은 커피향에 한동안 몸을 맡긴 채 머리를 비운다. 커피잔을 비우고 일어서서 습관처럼 창문 너머로 한길을 내려다본다.  

벚나무 양옆의 데크가 비었다. 꽃도 햇살도 이리 좋은데 잠깐 볕바라기라도 해야겠다. 마스크에 장갑까지 챙기고 나가서 꽃길을 걸으며 올망졸망 예쁜 얼굴을 한껏 내밀고 있는 벚꽃과 마주했다. 꽃길 곁, 올해 초 문을 연 작고 아담한 커피집에는 오늘도 주인장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적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코로나19 이전에는 늘 손님이 있었다. 

두 달 가까이 빈 가게를 지키며 주인장은 문을 연 지 한 달도 안 되어 이런 악재가 덮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짧게 걸었던 길을 되짚어오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커피집을 다시 바라보는데 젊은 남녀가 문을 밀고 들어간다. '아, 다행이다.' 잠시 내 일처럼 즐거워졌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한 사람이 서있다. '같이 타야 하나' 결국 집이 있는 오층까지 계단으로 오르는데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

집에 들어서는데 갑자기 기침이 나온다. 이마를 짚어보니 어쩐지 열도 악간 있는 것 같다. 왈칵 겁이 난다. 얼른 컴퓨터 앞에 앉아 눈과 귀가 따갑도록 보고 들은 코로나19의 증상을 다시 찾아본다. 그리고는 요 며칠새 어디를 다녀왔는지 되짚어본다. 확진자가 처음 나온 뒤부터 누구를 만난 적도, 집밖으로 멀리 간 적도, 밀폐된 공간에 간 적도 없다.

몇 년째 일주일에 한 번은 들르던 집근처 바닷가 단골 찻집에도 가지 않았다. 어쩌다 신선식품을 사기 위해 마트에 갈 때도 손님이 적은 평일 오픈 시간에 맞춰 메모해간 물건을 서둘러 사서 오곤 했었고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도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꼈다. 그런데도 불안한 마음은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종종 찾아오는 이런 불안감에 무력해진 탓일까. 책을 읽어도 온전히 집중이 되지 않고 생각을 모아 글을 쓰는 작업도 쉽지가 않다.

코로나에서 겸손을 배웁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요즘 같은 때 기다리던 물건을 문앞까지 배달해주시는 택배기사님이 정말 고맙다. 지난해 봄, 황사 때문에 사두었던 마스크가 아직 10장 정도 남아있다. 요즘은 비대면 배달이라 기사님께 드릴 마스크와 음료수를 비닐에 넣어 현관 바깥손잡이에 걸어두었다. ⓒ 김숙귀

 
여행만큼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오래된 엔야(Enya)의 CD를 재생한다. 그녀의 신비로운 목소리와 서정적인 음률에 얼마간 위안을 얻는다. 문자가 들어온다. 그저께 주문한 커피원두가 곧 배달된다는 내용이다. 자주 배달해주시는 기사님인데 요즘은 더 힘드실 거다. 늘 음료수라도 한 병 드리곤 했는데 지금은 비대면 배달이라 마스크와 음료수, 고마운 마음을 비닐에 담아 현관 바깥손잡이에 걸어두었다.

밥생각은 별로 없지만 하루에 한 끼 정도는 제대로 챙겨먹어야 된다는 생각인지라 주섬주섬 이른 저녁을 준비한다. 며칠 전 사두었던 달래를 꺼내 된장국을 끓이고 달래장을 만들었다. 쟁여 두었던 마른 생선도 꺼내 손질하여 무를 깔고 자박하게 졸였다. 지난 초겨울 통영에 갔을 때 넉넉하게 사두었던 곱창김이 아직 남아 있다. 갓지은 밥을 푸고 김을 살짝 구워 제법 그럴 듯해진 밥상 앞에 앉았다. 그저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는 일에만 시간을 들여 집중한다.

텅빈 거리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TV 전원을 올려 뉴스를 본다. 코로나19 확진자수가 어제와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나려나' 또 우울해진다. 하지만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무거운 방호복을 걸친 채 환자를 보살피는 의료진들, 퇴직을 앞두고 대구로 달려간 노의사의 주름진 얼굴, 꼬깃꼬깃 모은 돈을 들고 기부행렬에 동참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지난번 강원도에 산불이 났을 때 밤을 도와 줄지어 강원도를 향해 달리던 소방차와 얼마 전 대구를 향해 줄지어 가던 구급차가 겹쳐 떠오른다. 한국의 보통사람들은 위기에 강하고 슬기로우며 따뜻한 심성을 지녔다. 저멀리 거슬러 오르면 임진왜란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IMF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보통사람들의 힘이었다. 지금의 이 어려운 상황도 머지않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집에 머무른 지 두 달여, 떠날 수 없다는 사실에 순간순간 숨이 막힐 듯 답답하고 힘들다. 그럴 때면  겹겹의 방호복을 걸친 채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있던 의료인의 모습을 가끔 떠올린다. 그 사진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그리고 코로나19에 뺏긴 봄을 아쉬워하며 집에서의 시간을 답답하고 힘들어하는 자신이 미안하고 부끄러워진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화사하고 아름다운 봄은 내년에도 다시 찾아온다. 작년 봄에 누렸던 기쁨과 행복은 당분간 잠재워 두고 지금 내가 할 일은 최대한 조심하고 집에 머물며 슬기롭게 시간을 견뎌내는 일이다.

감염병에 날마다 속절없이 무너져내리는 지구촌의 모습을 보며 서로 질시하고 반목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느낀다. 어둠이 계속되면 그제서야 빛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고 했던가. 나부터라도 좀더 겸손해져야겠다. 오늘 밤에는 깨지 않고 푹 잘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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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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