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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한인촌에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벌어진 일

[코로나19 속 베트남] 수직 상승한 불안감... 교민들간의 교류는 큰 힘

등록 2020.03.24 09:08수정 2020.03.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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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6일 오후 5시 27분]

얼마 전 급히 어딘가로 갈 일이 있어 택시를 탔다. 요즘 베트남 호치민 날씨는 33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인데, 기사가 창문을 연 채로 달린다. 더우니 에어컨을 틀어줄 수 없냐는 나의 물음에 마스크를 쓴 기사가 "khȏng được!(안 돼!)"을 외치며 빠르게 달린다.

아마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기사가 나간 뒤 독자 지적에 따라 26일, 베트남 보건부 권고 사항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 편집자말). 그런데 아니었다. 

베트남 보건부는 '지역 사회에 질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커넥티드 애플리케이션(그랩Gab, 비Bee, 고비엣Go Viet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을 사용하여 대중교통 및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자를 위해 COVID-19 질병 예방에 대한 권장 사항을 발표했다. 보건부는 운전자가 '일하는 동안 승객과 대화 할 때 마스크를 사용할 것과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는 호흡기 분비물의 확산을 줄이기 위해 천이나 손수건 또는 소매로 코와 입을 가릴 것', 또 '사용한 종이 타월은 밀봉된 봉투에 넣어 지정된 폐기물 용기에 버리고 소독제로 손을 씻을 것' 그리고 '차량의 자연 환기 사용을 장려하십시오'라고 권고했다. 운전자는 이 권고를 따랐던 것이다.

이런 오해를 할 만도 했던 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랩 택시를 부르면 "너 중국사람 아닌 거 확실하지?"라고 묻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한다는 뉴스가 발표된 이후로 한국인에게 경계심을 감추지 않는 눈치였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한인 밀집 지역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푸미흥 지역의 한 아파트 지난 17일 코호트격리 조치가 내려졌던 호치민 한인촌 푸미흥의 한 아파트. 이 아파트에는 약 45세대의 한국교민이 거주중이다. ⓒ 이나영

 
베트남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의 수는 공식 집계된 수가 대략 18만 명이다. 등록되지 않은 수까지 포함하면 25만 명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내가 살고 있는 한인촌인 푸미흥(Phu My Hung)에는 8000여 명의 한국교민이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17일, 푸미흥의 한 아파트에서 베트남인 확진자 한 명이 나왔다. 그날 오후 보건국에서는 아파트 입구를 봉쇄하고 거주 주민 모두에게 14일간 출입을 금지하는 코호트 격리를 시행했다.

이 아파트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은 약 45세대 정도. 소문이 퍼지자마자 그날 근처 마켓과 슈퍼는 늦은 밤까지 길게 줄을 서서 물건을 사는 사람들로 붐볐고, 다음날까지도 식품점이나 정육점의 주문량이 폭주했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워낙 많은 수의 교민이 사는 동네이기에 사람들의 불안감은 급속도로 치솟았다.

갑작스레 아파트에 격리된 사람들은 다들 누군가의 지인이거나 아는 사람들이었다. 나와 가까운 친구 또한 딸과 함께 격리되었다. 전화와 메시지로 안부를 묻고 위로의 말을 보내면서 코로나19가 조금씩 나와 가까워지고 있구나, 싶어 실감이 났다. 내 생활 공간의 범위가 조여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파트 전체가 봉쇄되긴 했지만 1층 경비원을 통해서 물품 배달은 가능한 상태였다. 다음날, 한인회에서는 격리조치 된 한국 교민들에게 구호물품을 지원했고, 같은 지역에 사는 교민들의 도움과 응원의 손길이 이어졌다. 식당에서 음식을, 반찬가게에서 김치 등을 무료로 보내주고 아파트 단톡방에서는 정보를 교환하며 서로를 위로했다고 한다.

이런 순간 한국인들은 재빠르게 손을 내밀고, 힘을 합치며 온정을 나눈다. 살고 있는 곳에서 몇 백 미터 안에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불안감은 순식간에 고조되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상황을 몸소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와 응원이 재빠르게 확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퍼지는 교민들의 협력
 

한인회에서 보내준 구호품들 지난 3월 17일 코호트 격리된 푸미흥의 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에게 전달된 한인회의 구호품 ⓒ 이나영

 
다음 날, 보건당국은 방침을 바꾸어 확진자가 머무르고 있던 8층 주민만 14일 격리하기로 하고 아파트 전체에 내려졌던 봉쇄를 철회했다. 하룻밤 동안 주민들의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락내리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이 더 이상 안전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고, 내가 살고 있는 곳 주변에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 베트남 당국이 얼마나 빠르고 엄격한 조치를 내리는지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었다.

2월 중순 이후 한국에서 코로나 감염 환자가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던 당시, 베트남 내 여론은 한국인들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최근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유입되었고 거주하는 교민의 수 또한 절대적으로 많은 숫자이기에 베트남 사람들은 한국인으로 인한 감염이 퍼질까봐 불안해 했다.

베트남 뉴스에 올라오는 한국의 코로나 관련 기사에는 간혹 "한국인 너네 나라로 돌아가"와 같은 댓글이 달리곤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베트남 내 코로나 확진자 중에는 한국인이 한 명도 없다. 대부분 영국과 유럽, 미국을 다녀온 베트남인이나 외국인이 확진자로 확인되었다. 이번 푸미흥 아파트의 확진자 또한 전날 비행기로 미국에서 들어온 베트남 여성이었다.

한국 교민들이 밀집되어 살고 있는 지역이기에 교민들 사이에 전염이 발생할까 봐 두려움이 순식간에 확산되기는 했지만 아직은 다행스럽게도 큰 문제 없이 며칠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 이후로도 계속 베트남 내 확진자는 조금씩 늘고 있는 상황이어서 현재 3월 21일 기준으로 94명이 되었다.

한국에서 들려오는 고국의 소식은 이곳에서 점점 더 긴박하게 느껴진다. 내가 만약 확진이 된다면 재외국인에게 이 나라 사람들이 진료와 치료를 제대로 받게 해줄 것인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내가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냉정하게 느끼게 되는 날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잘 지내려고 하고 있고, 서로에게 힘과 도움을 주는 한인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힘들수록 마음을 모아 따뜻한 정을 순식간에 만드는 놀라운 힘이, 우리에게는 늘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이 이 막막한 시간을 견디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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