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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변하지 않았던 '유전자'... 4000년 전 사람들과 비슷해

[김창엽의 아하! 과학 62] 근동지역 민족 유전자 특성 4천년 동안 변화 극히 적은 것으로 드러나

등록 2020.06.03 12:02수정 2020.06.0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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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성격이나 습관, 신념 같은 게 여간해서 변하지 않음을 두고 흔히 하는 말이다.

하지만 유전적인 차원에서 이 말은 개개인이 아니라 특정한 민족이나 지역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른다. 프랑스와 영국 등의 유전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주축이 된 공동연구팀이 이같은 점을 보여주는 조사결과를 내놨다. 
 

오토만 제국의 메흐메트 대제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오늘날 이스탄불)을 점령하던 당시를 상상한 이탈리아 화가 파우스토 조나로의 그림. ⓒ 위키미디어 커먼스




영국 버밍햄 대학, 레바논 소재 프랑스 근동연구소 등의 학자들은 오늘날 레바논 사람들의 유전자는 90% 정도가 4천년전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과 동일하다는 내용의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레바논은 중동과 유럽을 잇는 징검다리와도 같은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수많은 정복전쟁의 길목이었고, 인적 문화적 교류 또한 고대 이래로 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활발했다. 

그러나 오늘날 레바논 사람들은 4천년전 이 지역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4천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유전자 차원에서는 '그 조상에 거의 그 후손'이라는 얘기이다.
 

고대국가 히타이트의 유물. 사람 주먹 모양을 한 컵이다. 히타이트는 앞선 철기문명을 바탕으로 주변국가들을 정복해나갔다. ⓒ 위키미디어 커먼스




연구팀은 수천년전 유적에서 발굴된 사람의 뼈와 각종 분석자료 등을 토대로 대략 5백년 간격으로 유전자 변화를 조사했다. 무력 즉 전쟁으로든, 앞선 문명으로든 오늘날 레바논 지역을 접수한 침입자, 지배자 그룹을 선정하고 레바논 사람들의 유전자 변화를 추적한 것이다. 

오늘날 레바논 지역을 정복했던 사람들 혹은 지배자 그룹을 오래된 순서부터 대강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페니키아인, 히타이트인, 이집트인, 앗시리아인, 페르시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아랍인, 십자군 사람들, 오토만 제국 사람들 등이다.

연구팀은 오늘날의 레바논 사람들과 약 4천년전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 사이의 유전자 차이 10%는 대략 3개의 '역사적 사건'에 의해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즉 지금으로부터 약 3천년전 레바논에서 철기문명의 시작, 기원 330년전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 그리고 서기 1516년 오토만 제국의 지배권에 들면서 고대 레바논 토착인들의 유전자가 조금 변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 3개 사건에서 외래의 정복자 그룹은 시간 순서대로 히타이트인, 그리스인, 터키인들이 주축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레바논 사람들이 많게는 10% 수준에서 유전자를 공유하는 그룹은 이들 3개 민족에 불과하며, 다른 수많은 외래 지배자들의 유전자는 현재 레바논의 일반 시민들에게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다.

연구를 주도한 영국 버밍햄 대학의 마크 하버 박사는 "레바논 지역은 고래로 수많은 외부인들의 침입과 정복으로 음식이나 종교, 심지어 언어에 이르기까지 적잖은 문화적 변화를 거쳤다"며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유전자는 4천년전 이래로 지금까지 변화가 매우 적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정복자나 지배자들의 혼인 등이 지배계층에만 주로 한정됐던 탓으로 풀이했다.

이번 연구는 레바논 지역을 중심으로 한 근동(유럽에 기준에서 가까운 동쪽) 지역에 초점이 맞춰 이뤄졌다. 유사한 연구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빈번하게 충돌했던 한반도 등지에서도 진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침략자(혹은 도래인들)와 토착인들의 교류 혹은 지배 양상을 동서양으로 나눠 비교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성과들이 적지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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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이 코앞. 그러나 정신 연령은 딱 열살 수준. 역마살을 주체할 수 없어 2006~2007년 승차 유랑인으로서 시한부 일상 탈출. 농부이며 시골 복덕방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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