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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못 잊어서 복원했으나 한여름엔 사라지는 다리

[세상을 잇는 다리] 마음 속 고향을 찾아가는 영월 판운리 섶다리

등록 2020.07.08 15:30수정 2020.07.0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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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누군가 자신의 등을 밟고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존재다. 또한 모든 것을 이어주는 존재다. ‘이음과 매개, 변화와 극복’은 자기희생 없인 절대 이뤄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옛 다리부터, 최신 초 장대교량까지 발달되어 온 순서로 다룰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학기술은 물론 인문적 인식 폭을 넓히는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기자말]
영월은 강과 물의 고장이다. 마음 속에 그리고 있는 고향과 낭만적인 풍경을 만나 보려면 영월이 제격이다. 평창에서 발원한 평창강과 횡성에서 발원해 원주를 거쳐 온 주천강이 만나서 서강(西江)을 이룬다. 정선에서 발원해 영월로 흘러든 동강(東江)은, 이미 많은 이유로 사람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 있다. 서강과 동강이 영월에서 만나, 비로소 남한강을 이룬다.

섶다리는 바로 서강과 동강을 이루는 물줄기 상류에 주로 분포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도로가 개량되고 현대식 교량들이 생겨나면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마음 속 고향을 잃어버린 격이었다. 사라져 버린 섶다리는, 영월 사람들에게 아련하고 진한 향수였다.
 

강변의 봄, 갈색으로 말라있는 다리의 섶 녹음이 피어나는 강변의 봄 풍경 속에, 지난 가을 만들어진 판운리 섶다리 모습.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홍수에 대비하여 철거된 섶다리 한여름, 홍수에 대비하여 마을 주민들이 철거한 판운리 섶다리. 풍성한 나뭇잎과 대조적으로 다리가 사라진 자리에 선창만 남아있음.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아늑하고 정겨운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섶다리를 기억해 냈다. 옛 다리에 대한 그리움과 계승염원이, 드디어 복원으로 이어졌다. 청년들이 모여, 해마다 섶다리를 만들어냈다.

20년도 더 전에 시작된 일이다. 이런 측면에서 섶다리는 그 쓰임에 비해, 영월 사람들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안식처였을 것이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 영월에선 지금도 섶다리가 계승되고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평창강을 가로 지르는 섶다리는, 영월군 주천면 판운리에 있다. 판운리 섶다리는 길이가 제법 길다. 선창까지 합하면 100m가 넘는 길이이고, 섶다리만 해도 90m에 이르는 제법 긴 다리다. 이 섶다리는 밤뒤마을과 미다리마을을 연결하는 기능을 한다.

미(未)다리는 말 그대로, 여름 홍수철에 섶다리가 떠내려가 '다리가 없어져 버린 마을'이라고 하니, 그 의미가 자못 낭만적이다. '未橋(미교)'를 바꿔 부른 것으로, 이름 자체가 섶다리의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는 마을이다. 섶다리가 이곳에선 숙명이었다.
 

낙엽이 진 쓸쓸한 가을 섶다리 추위가 밀려오기 시작한 쓸쓸한 가을이, 섶다리에 그대로 묻어 있는 풍경.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게 판운리 섶다리다. 섶다리는 주변 풍치와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 마음이 푸근해진다. 엄마 품 속 같은 아늑함이 전해져 온다. 물안개 자욱한 아침이면, 진한 향수를 자극한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아련한 추억 속 풍경으로, 우리를 끌어들인다.

눈 내린 한 겨울 섶다리는, 평온하기 그지없다. 온 세상이 층하가 없이, 다 같은 색깔이다. 다리와 강물만이 오롯하다. 달빛을 받아 평창강에 비친 섶다리는,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게 한다. 시심(詩心)이 절로 일어난다. 방랑시인 김삿갓이 되어본다. 그도 이곳 영월 사람이다.

영월 사람 김삿갓도 건넜을 다리

 

눈 내리는 겨울,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눈보라가 날리는 강가, 섶다리를 건너 어딘가로 가고 있는 사람들. ⓒ 김원식_주천 강 문화센타

 
김삿갓 본명은 김병연이다. 조선중흥조 정조가 죽은 1800년 이후, 나라 권력을 오로지하고 있던 안동 김씨 가문이다. 세도정치는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벌족(閥族)끼리 연합한 권력이다. 안동 김씨는 세도정치의 핵심 중 핵심이었다.

1811년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반란군에 항복했다는 그의 할아버지가 김익순이다. 당시 권력의 핵심을 이루던 김조순과 같은 항렬이다. 아버지가 김○근(金○根) 항렬이고, 김삿갓이 김병○(金炳○) 항렬이다. 모두가 노론의 시파와 벽파를 이끌어 오던 방계 후손들이다.

김삿갓 할아버지가 부사가 되어 평안도 선천에 부임한다. 지역 현안을 수습하고 인심을 모은다. 민심을 안정시키고 행정기반을 잡아나갔다. 부임한 지 3달이 훌쩍 지나가고, 추운 겨울이 된다.

그간 많은 도움을 받은 하급관리들과 지식인들, 향반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잔치를 열어 술을 마신다. 그리곤 곤하게 잠이 들었다. 그날 밤 난을 일으킨 홍경래 군대가 선천을 점령해 버린다. 김익순은 투항한다.

이듬해 5월까지 계속된 반란은 이내 진압되어 버린다. 권력은 차마 김삿갓 집안을 멸문(滅門)하진 않았다. 세도권력의 핵심에 있던 집안이기 때문이다. 김익순만 처형당하고, 다른 가족들은 살아난다. 온 가족이 가노(家奴)를 따라 황해도 곡산으로 숨어든다. 그곳에선 반란군에 투항한 역적이란 신분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간다. 천재라는 소리를 듣던 어린 김삿갓은, 아무것도 모르고 자라난다.

약관 김삿갓이 영월에서 열린 과거에 응시한다. 시제(試題)가 '역적에게 투항한 김익순을 논하라'는 것이었다. 천재라고 이름난 김삿갓의 붓이 춤을 춘다. 글은 한여름 더위가 잊힐 만큼 시원하다. 기개는 하늘을 찌를 듯 드높기만 하다. 날카로운 벼랑에 홀로선, 곧고 푸르른 소나무가 글 한가운데 오롯하게 들어앉는다. 긴 소리를 내며, 단칼에 쪼개지는 대나무였다. 그는 과거에서 장원을 한다.
 

한겨울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섶다리 겨울 하얀 눈이 내린 평창강과 섶다리가 만들어낸 그림같은 풍경. ⓒ 영월군_주천면사무소_총무팀_보도자료

 
그제야 김삿갓 집안의 치부가 드러난다. 그가 그렇게 통렬하게 몰아붙이고 비판했던 사람이, 자기 할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으리라. 그리고 세상에게 너무도 부끄러웠으리라. 얼굴을 가린다고 마음까지 숨길 순 없었다. 그래도 뭔가로 가려야만 했다. 커다란 삿갓을 준비한다.

처가가 있는 충청도로 간다는 말을 남기고, 북쪽으로 길을 잡아 금강산에 접어든다. 그때부터 전국을 유랑한다. 세상을 풍자하고, 권력을 희화화했으며, 헛된 욕망으로 탐욕을 부리는 세상을 골탕 먹였다.

끝 간 데 없는 방랑으로, 온 몸을 바람과 구름으로 만든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오직 시와 멋과 풍류만 있을 뿐이다. 그리곤 죽음으로 영월 땅에 되돌아온다. 지닌 뛰어난 재주로 세상을 구하지 못한 한이 무척 컸으리라. 그런 세상이 한없이 원망스러웠으리라.

김삿갓이 금강산으로 드는 길에, 서강을 지나 평창강으로 접어들어 판운리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지 않았을까? 평안한 풍경에 작으나마 마음의 위안을 얻지 않았을까?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섶다리를 건너면서, 덧없는 인생의 한 자락을 음미하지 않았을까? 혹은 삐걱거리는 섶다리에 자신을 투영시키지 않았을까? 평창강의 차가운 물은, 오늘도 맑은 햇볕에 반짝이며 말없이 흐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제공해 주신 영월군 주천면 '주천 강 문화센타' 김원식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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