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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달만 밟았을 뿐인데... 고맙다, 자전거야

자전거가 생긴 뒤 달라진 일상... 매일 나의 광야로, 나의 몽골로 간다

등록 2020.06.23 09:56수정 2020.06.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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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은 하지였다. 이날을 정점으로 낮의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지만 본격적인 여름은 이제부터다. 나는 여름을 많이 타는 편이다. 어릴 적에는 더 심했다. 내가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나의 유별난 체질과 무관하지 않다.
 

연꽃 전주 '덕진연못'에 핀 연꽃의 자태. ⓒ 안준철

 
그 후 장년이 되고, 작년부터는 국가와 사회로부터 고령자 우대를 받는 처지가 되었어도 나의 체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나는 여름을 별 탈 없이, 아니 아주 행복하고 황홀하게 잘 지내고 있다. 나에게 자전거가 생긴 뒤의 일이다.
 

연꽃과 아침 노을 전주 덕진연못은 7월에 절정을 이룬다. 작년 7월 초순 이른 아침에 찍은 사진. ⓒ 안준철

 
나는 하루 두 번 황홀함을 맛본다. 아침에는 연꽃을 보러가고, 저녁에는 노을을 보러 가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연꽃과 아침노을을 동시에 볼 때도 있다. 나의 황홀함을 위해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 연꽃을 보러갈 때도 노을을 보러갈 때도 자전거를 타고 가기 때문이다. 기름 한 방울 쓰지 않고 오로지 나의 장딴지 힘만으로 말이다. 고마운 자전거에게 바친 헌시 중 일부다.
 
자전거를 타고
저녁이 오는 속도보다도
더 천천히
방천길을 달리다 보면
산다는 것이 문득 단순해진다
페달을 밟기만 해도
자전거는 바람을 일으키고
세상은 다시 설레기 시작한다
- 졸시 <자전거 타기> 중에서
 

연꽃 수줍게 숨어서 핀 연꽃이 아름답다. ⓒ 안준철

 

연꽃 전주 덕진연못에 핀 연꽃을 아침 일찍 시민들이 감상하고 있다. 아직은 일부에만 피어 있다. ⓒ 안준철

 
내가 사는 전주에는 '덕진 연못'이 있다. 덕진 공원이 공식적인 명칭이지만 연못이라는 말에 더 정이 간다. 여름을 타는 내가 여름을 기다리게 된 것은 순전히 연꽃 덕이다.

연꽃은 아침 연꽃이란 말이 있다. 아침에 핀 연꽃의 자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생생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나에게 자전거가 없었다면 매일 아침 연꽃을 보러 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차도 없고 운전면허증도 없다. 왜 차를 사지 않느냐고 물으면, 어쩌다보니 그리 되었노라고 넘어가고 말지만, 사실이 그러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일이 아니고 안 한 일이지만 말이다.

하긴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간의 삶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자전거 완주군 삼례읍 하리마을 농로를 신나게 달리다가 푸릇푸릇 잘 자라고 있는 모를 보고 잠깐 멈추었다. 남의 농사라도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해진다. ⓒ 안준철

 

자전거가 답이다 동네 천변에 거치되어 있는 자전거. 자전거가 코로나 이후의 대안으로 하루빨리 자리잡기를 간절히 바란다. ⓒ 안준철

 
요즘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 보면 길에서 교복 입은 아이들을 만난다. 어찌나 반가운지! 자전거를 끌고 산책을 나가는 길에도 동네 놀이터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을 본다. 남의 자식이라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다.

그럴수록 더 미안한 마음도 든다. 그들에게 물려줄 지구의 미래가 걱정돼서다.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는 어떤 장황한 이론보다는 실사구시적인 대안과 실천이 중요한 때이다. 그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서 당장이라도 실천 가능한 소박한 제안을 하나 하자면, 바로 이것이다.

"자전거가 답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여행가가 되고 싶었다. 그 꿈을 접은 대신 지금은 산책가로 살고 있다. 여행가의 꿈이 산책가로 바뀐 것은 우선은 경제적인 이유가 클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긴 것이 두 번째 이유다.

그보다는 조금 덜한 다른 이유들도 있는데,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고 비행기가 대기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도 그 중 하나다. 평생 한두 번 다녀오는 해외여행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여행을 일상적으로 해야 한다면 그만큼 대기를 오염시킬 것은 자명한 일이 아닌가.
 

만경강 노을 자전거를 타고 왕복 오십리 길을 달려 노을을 보러 간다. 운동도 하고 노을도 감상하고 지구도 사랑하고. 일석삼조다. ⓒ 안준철

   

만경강 노을 전주천과 만경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낚씨를 즐기고 시민들. 석양빛이 아름답다. ⓒ 안준철

 
아무리 그렇다 한들, 여행의 매력에 눈을 감고 있기가 쉽지는 않을 터이다. 아직은 나의 야성이 죽지 않았는데 맨날 동네 산책이나 하고, 멀리 달려보았자 왕복 50리 길인 만경강이나 다녀오는 것이 고작이다.

동료 시인들이 몽골이나 동유럽의 유서 깊은 어느 도시에 간다고 하면 은근슬쩍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선택한 삶인 것을! 대신, 나는 자전거를 타고 나의 광야로, 나의 몽골로 간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광야, 나의 몽골은
자전거로 전력질주하면
삼십 분 거리다
거친 숨 몰아쉬며
자전거 폐달을 죽을 듯이 밟는 것은
속도를 내고 싶어서가 아니다

고통 없이
그곳에 닿아서는 안 될 것 같아서다
야성의 시간이 그리워서다
저녁 여섯시만 되면
몸이 슬슬 달아올랐던 건
노을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다

삶에 안주하지 말라는
바람의 당부를 들으러 갔던 거다

- 졸시 <만경강> 중에서
 
내가 자전거를 본격적으로 타게 된 것은 부실한 허리 때문이다. 허리 협착증을 앓고 있는 나에게 의사는 수영과 걷기(속보)와 자전거 타기를 권장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영장을 못 가게 되면서 왕복 오 십리 길을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달려가 노을을 보고 온다. 자전거를 타고 인적이 드문 강변을 달리다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 상황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효과도 있었다. 끝으로 꽃노을을 보고 온 날 쓴 산책시 한 편을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칠까 한다.
 
꽃노을을 보고 온 날은
늘 늦은 저녁을 먹는다

해가 기울고 난 뒤
하늘이 더 붉어지는 걸
알고 나서부터다

생의 비밀을 눈치챘다면
저녁이야 조금 늦어진들 어떠리

저무는 일이
저리도 고울 수 있음에랴

꽃노을에 비벼 먹는
늦은 저녁밥이

맛있다

- 졸시 <맛 있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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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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