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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버한 통합당... 봉준호에게 사과부터 해라

[하성태의 인사이드아웃] 시작도 안 한 드라마 <출사표>에 법적대응 엄포라니

등록 2020.06.30 08:40수정 2020.06.3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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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봉준호 감독 ⓒ CJ 엔터테인먼트

 
"봉준호 영화의 거리, 봉준호 카페의 거리, 봉준호 생가터 복원, 봉준호 동상, 영화 기생충 조형물을 남구에 설치하겠다. 봉 감독의 위대한 업적을 영구보존·계승시키기 위해 그가 태어나 성장한 남구 생가터 주변 지역을 봉준호 영화·문화의 거리로 지정하고 인접 지역을 카페의 거리로 조성하겠다."

지난 2월, 4.15 총선에서 대구에 출마한 한 예비후보가 내건 공약 중 일부다. 당시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 대구 지역 후보자들은 봉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영화상 4개 부문을 석권한 다음날 앞다퉈 '봉준호 마케팅'에 열을 올렸다. 또 다른 한국당 예비후보 역시 "봉 감독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을 대구 남구 대명동에 건립해 대구에서 제2, 제3의 봉 감독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즈음 박용찬 한국당 대변인 또한 봉 감독의 수상 직후 "자유한국당은 앞으로도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논평을 낸 바 있다. 

이 같은 한국당의 '봉준호 마케팅'에 영화계 안팎에서 "사과부터 하라", "후안무치가 따로 없다"는 비판이 쇄도한 건 당연지사. 잘 알려진 대로, 봉 감독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대표적인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이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 <설국열차>(2013) 등 봉 감독의 대표작 3편이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후 봉 감독은 국내 투자배급사를 떠나 넷플릭스와 <옥자>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6년 12월엔 7개 영화 단체 명의로 특검과 부산지검에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블랙리스트 작성 관련자들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다. 당시 봉 감독은 한국영화감독조합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 이후 <설국열차>를 함께 했던 CJ엔터테인먼트와 제작한 영화가 바로 <기생충>이었다. 황금종려상을 받았던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참석 당시 봉 감독은 프랑스 AFP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예술가들을 깊은 트라우마에 잠기게 한 악몽 같은 몇 년"이라고 블랙리스트 사태를 정의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블랙리스트의 작성 주체와 한 몸이었던 (미래통합당의 전신인) 한국당의 이러한 총선용 '봉준호 마케팅'은 블랙리스트 피해자인 봉 감독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실로 웃지 못할 블랙코미디였다고 할 수 있다. 보수야당이 문화예술을, 문화예술인들을 그저 득이 되면 끌어안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치는 '분칠한 것들' 정도로 인식한다는 반증이었고.

이 미래통합당이 또 다시 문화예술을 건드리고 나섰다. 이번엔 'K-드라마'였다.

빈약한 근거, 과도한 대응
 
<출사표>에서 뒤가 구린 캐릭터는 보수정당 쪽에 배치하고, 정의로운 캐릭터는 진보정당 쪽에 배치해  '진보는 선, 보수는 악'이라는 허황된 구도를 설정했다(...). 국민 대다수는 이런 유치한 편 가르기를 공영방송에서 보길 원하지 않는다.

지난 25일 통합당 미디어국이 <KBS, '진보는 선, 보수는 악' 외치려면 수신료는 민주당에서 받아라>라는 제목으로 낸 논평 중 일부다. 오는 7월 1일 첫 방송 예정인 KBS 드라마 <출사표>의 내용을 걸고넘어진 것이다. 통합당 관계자는 <뉴스1>과 한 통화에서 "KBS에 대한 고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통합당은 아직 방송도 되지 않은 드라마를 두고 법적 대응 운운했을까.

드라마 소개에 따르면, <출사표>는 29살 여성 '취준생' 구세라의 "1년짜리 계약직 구의원이 된 청춘의 취업기이자 생활 밀착형 정치극"을 표방했다. "노머니 저스펙 흙수저인 정치 무식자가 구의원이 되어 불량 정치인들의 잔치판을 통쾌하게 뒤엎는 바보의 1승"이란 소개가 눈길을 끈다. 소개만 놓고 보면, 구의회를 배경으로 한 '청년 정치 코미디' 장르가 예상된다.

통합당이 문제 삼은 부분은 극중 거대 양당으로 포진된 '애국보수당'과 '다같이진보당' 소속 정치인 캐릭터들에 대한 소개였다. 통합당은 '애국보수당' 소속 정치인은 범죄전력을 가진 인물로, '다같이진보당'은 정의감을 지녔거나 검소한 인물로 그렸다고 주장하며 "어느 정당을 겨냥한 것인지 초등학생도 알 법한 유치한 작명으로 사실상 '여당 홍보, 야당 능멸' 속내를 부끄러움도 없이 드러냈다"고 날을 세웠다.

이에 제작진은 26일 "당적을 가지고 나오는 인물들은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대부분 선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며 "정치적 성향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은 무소속 등장인물 구세라를 전면에 내세워 진보, 보수 양측의 비리들을 파헤치고 풍자하는 코미디를 추구"한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제작진이 수정했다는 캐릭터 소개를 보면, 드라마 속 '다같이진보당' 소속 여성 구청장은 "든든한 당이 빽인 욕망의 정치인", "'소통'이 아닌 '쇼통'", "구청의 숨겨진 '폭군'", "피도 눈물도 없이 냉정하다"란 표현이 등장한다. '애국보수당' 캐릭터들의 소개 역시 부정적 묘사가 대부분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다같이진보당' 쪽 등장인물은 2명, '애국보수당' 쪽이 4명으로 '애국보수당' 캐릭터 수가 더 많다는 점이랄까.

통합당의 이러한 '법적 검토' 운운은 한국 드라마들이 그간 국회의원이나 정치인들을 어떻게 묘사했는지를 감안한다면 가히 난센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최근 JTBC <보좌관>부터 KBS <어셈블리>, SBS <내 연애의 모든 것> 등 드라마에서 코미디 장르 모두 여야 정치인들은 부정적 묘사가 대부분이었다.

'정치 신인'이 부패한 기성 정치판의 개혁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전통적인 정치드라마의 문법을 따른 것 역시 공통분모였고. <출사표>의 경우, 29세의 흙수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 정도가 나름의 차별화 전략으로 보인다. 어딜 봐서 이게 제1야당이 펄쩍 뛸 만한 내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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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수목 드라마 '출사표' ⓒ KBS

 
블랙리스트와 닮아 있는 통합당의 재갈 물리기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이 <출사표>가 KBS에서 편성됐다는 것만으로 '친여'로 몰고 갔다는 점, 그리고 단순 비판에 그치지 않고 법적 검토를 시사했다는 점. 하지만 통합당이 방영 전 드라마를 놓고 '유치한 편가르기' 운운하며 KBS를 '친여' 성향으로 몰고가기엔, 그 근거가 빈약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설령 진보와 보수 정치인에 대한 비판이 드라마에 녹아 있다고 해도, 그것을 법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통합당이 평소 주장해온 '표현의 자유'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지 않은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언론 보도에 대해 틈만 나면 소송을 걸어온 통합당이 이제는 방송 드라마에까지 '재갈 물리기'를 시도하는 모양새다. 아울러 마음에 들지 않는 문화예술 작품에 꼬투리를 잡아 블랙리스트란 멍에를 씌우고 불이익을 줬던 지난 정권들의 패착을 변형된 형태로 답습한다고 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최소한 문화예술 작품은 직접 본 이후 판단하시라.

결과적으로, <출사표>에 대한 통합당의 겁박은 "제2, 제3의 봉 감독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거나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는 정책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던 '봉준호 마케팅'이 일시적인 '숟가락 얹기'였단 자백과도 같아 보인다.

말이 나온 김에, <사랑의 불시착> 등 해외에서 위상을 높이고 있는 'K-드라마'를 향해 통합당이 고소 운운하며 겁박할 시간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봉 감독과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인들에게 사과를 하는 것은 어떨까.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단 한 번도 진심어린 사과를 한 적이 없지 않은가. 마침,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화이트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기도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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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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