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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한 세대가 가고 있다

[박원순 사건, 이렇게 본다] 박원순의 죽음과 2차 가해의 확산이 의미하는 것

등록 2020.07.15 12:42수정 2020.07.15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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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유명을 달리한 이후 여러 의견과 평가나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유창선 시사평론가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필자의 동의를 얻어 싣습니다.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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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 박원순 서울특별시장 영결식에서 유가족들이 헌화를 하고 있는 모습. ⓒ 사진공동취재단

 
한 시대가 이렇게 가고 있구나.

요즘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고인의 성추행을 거론하는 입을 막으려는 움직임들이 예상보다, 그리고 상식보다 훨씬 강하다. 피해 여성을 향한 2차 가해는 무차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페이스북에서 수천 명씩 '좋아요'를 누르며 동조하는 사람들의 프로필을 보면 다 멀쩡한 사람들이다. 세월호 리본을 올려놓거나 정의, 약자, 사람, 배려... 그런 말들을 즐겨쓰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피해 여성의 고통에 대해서는 예외이다. 그들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더 이상 말하지 말라!"

연줄의 고리를 끊어낼 용기의 부재

'사람'보다는 '진영'이 중요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너무 많이 얽히고 섥혔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 시장과 인연이 있었거나 함께 일했던, 혹은 지원을 받았던 많은 사람들, 차마 그가 몹쓸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싶어한다. 피해 여성의 증언 앞에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더라도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굳이 말하려 하지 않는다.

고인과 한 시대를 공유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박원순을 부정하는 것이 자신을 부정하는 것 같은 동질 의식을 느끼며 이 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그 연줄의 고리를 끊어낼 냉정한 용기를 가진 사람은 유감스럽게도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범죄였다'고 말해줄 사람들이 침묵하는 사이, 2차 가해는 집요하고 악랄하게 기승을 부린다.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는 것 아니냐" "일방적인 주장만 갖고 어떻게 판단하느냐" "손뼉은 마주쳤으니 소리가 난 것 아니냐", 심지어 '꽃뱀'이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성추행보다 더 큰 형벌이 그렇게 피해자에게 가해지며 그녀를 고통의 감옥에 가둬버린다.

사안의 핵심을 꿰뚫는 2030세대
  
이럴 때 당연히 고통받는 피해 여성의 편에 섰어야 할 정의로운 권력은 그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성추행 의혹에 대해 말을 꺼낸 기자는 여당 대표에게 "후레자식" 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 당의 어떤 의원은 "고인은 죽음으로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라며 미투 조작 의혹까지 제기한다. '촛불정부'의 여성가족부는 입장이 없다며 꼼짝도 하지 않다가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뒤늦게 "피해자 어려움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냈다. 국가인권위원장은 조문만 하고 아무런 말이 없다. 고인의 명예에 한점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방어는 생각보다 담대했다. 간절히 호소하는 피해 여성의 존재는 고인만 생각하는 그들의 머리에서는 지워져버린 것이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상황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일까. 가장 정의롭다고, 약자 편에 서겠다고 자처했던 정권이 들어섰고 그들이 국회, 지자체장, 지방의회, 권력이란 권력은 모두 석권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걸까. 어째서 그들이 2차 가해의 방조자, 심지어 가해자가 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어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됐을까. 민주화운동의 경험을 공유했다는 기성 세대들이 지난 시절의 무용담을 갖고 너무 오랫동안 무대를 차지했다는 생각이 든다. 신화는 신화일 때만 아름다운 것, 신화를 현실로 착각하고 나라를 구할 자신들만의 정의로움과 전지전능함을 믿는 데서 비극적 서사는 반복되고 있다.

2030 세대에게 이 사건은 '서울시장이라는 권력자에 의한 성범죄'일 뿐이다. 그들은 건조하게 사안의 핵심을 말한다. 하지만 고인의 삶을 부정하면 자신의 삶을 부정하는 것 같은 의식을 가진 기성 세대는 그것을 한사코 막으려 한다. 그러니 이 상황은 낡은 것을 지키려는 기성 세대들의 최후의 저항인지 모른다. 그래서 싸움이 이렇게 격렬한 것이다. 하지만 그 싸움의 승부는 이미 예정돼 있다. 기우는 해를 막을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말했듯이, 낡은 것은 죽었지만 새 것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아니, 새 것 인줄 알았던 것이 사실은 그 또한 낡은 것이었다. 박원순을 기리는 기성세대들은 그 마음을 가슴 속에만 품고, 이제는 무대에서 물러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 더 이상 젊은 세대들을 훈계하고 있기에는 너무도 '내로남불'했고 이율배반적이었다.특정인의 성추행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 문제를 대하는 기성 세대들의 자기모순적 태도였다. 우리 세대는 자격도 신뢰도 모두 잃었음을 인정하고 이제 그만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이제 우리 세대의 신화는 파산했음을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움츠려들지 않게, 덜 다칠 수 있도록"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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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오후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이 열렸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냈다는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고인의 죽음와 성추행을 둘러싼 갈등을 지켜보며 얻은 나의 결론은 이것이었다. 이제 더 이상은 안되겠구나.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추한 모습 보이지 말고 뒤로 물러서야겠구나. 민주화세대든, 586세대든, 지난 역사가 달아준 마음 속 훈장을 너무 오래 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그 훈장을 떼고 세상의 주인공을 다음 세대에게 맡기는 것이 삶의, 그리고 역사의 순리이겠다.

14일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가 류호정·장혜영 두 청년 의원의 조문 거부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마치 아이들이 학교가서 저지른 잘못을 대신 사과하는 부모의 모습 같았다. 청년 정치인을 키우겠다는 건지, 어린 아이 취급하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역시 너무 오래들 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러 갔을 때, 전에는 내가 메뉴판을 들고 주문할 음식을 골랐다.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한 뒤로는 20대인 두 딸들에게 맡긴다. 가성비 좋은 음식을 나보다 훨씬 잘 고르기 때문이다. 나는 한발 뒤로 물러서고 이제는 아이들에게 하나씩 주도권을 맡겨가는 것, 그것이 우리네 삶의 순리라고 생각한다.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20대 여성이 페북에 올린 글을 읽었다. 아빠에게 이런 부탁을 하고 있었다.

"가해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간에 피해자의 말을 들어줘. 우리가 움츠려들지 않을 수 있게. 부디 아빠가 사랑하던 가치를 생각해줘. 약자의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도록, 우리가 죽지 않도록, 되찾기 위해 싸움을 하면서도 덜 다칠 수 있도록. 아빠가 사랑하는 나를 생각해줘."

읽고 나서 속으로 이런 말을 했다. 얘들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

언젠가는 물러가야 할 세대, 기왕이면 추하지 않고 아름답게 물러섰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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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 수술 이후 방송은 은퇴하고 글쓰고 동네 걷기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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