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자가 고발한 일본의 만행

[책이 나왔습니다] 데일리메일 특파원 프레더릭 매켄지가 쓴 '일본의 만행 그 절반의 이야기'

등록 2020.08.04 10:20수정 2020.08.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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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들어 우리와 일본의 관계가 매우 험악합니다. 그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 우리가 아무리 힘주어 말한들 일본이 인정할 리 없고, 당사자가 아닌 제3국 시민들도 꼭 우리에게 우호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제오늘 새로 생긴 풍경은 아니지만, 일본의 서점마다 이른바 혐한(嫌韓)서적이 버젓이 매대를 채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과연 두 나라 사이가 정상화될 여지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편으론, 역사적 경험의 후유증으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어느 정도 원한을 갖고 있기는 해도 질 낮은 혐일(嫌日)서적 같은 것을 써서 스스로 품위를 떨어뜨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전하는 이 책을 번역하기로 한 것은 우연히 읽은 원작의 충격과 감동을 동료 시민과 나누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가 캐나다에서 출생한 영국 기자였고, 직업상의 인연 외에 우리와 일본에 대해 편견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 글의 객관성을 보장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책을 번역하는 일이 적어도 일본 사람들이 혐한서적을 쓰는 일과는 다르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번역하면서 특히 <반일 종족주의> 같은 책을 써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분들과 그런 생각에 동조하는 분들이 이 책을 꼭 좀 읽어봤으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의 만행, 그 절반의 이야기 ⓒ 임창식

이 책은 영국 신문 <데일리메일> 동아시아지역 특파원이었던 프레더릭 매켄지(Frededrick A. McKenzie)가 1919년 한국인의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독립운동을 일본이 잔인하게 진압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 실상을 고발하려고 쓴 책입니다.

저자는 1904년에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처음 한국에 와서 일본군의 절제 있는 행동을 보고 감탄하여 일본에 깊은 호감을 느꼈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일본인 민간 이주자는 물론 관리와 군인 등이 오만 무례하고 잔인하게 한국인을 탄압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는 자신이 이전에 일본 군인에게서 보았던 절제와 규율이 일본의 참모습을 잠시 가리고 있던 가면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저자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일본인이 벌인 어처구니없는 행패에 대해 기록한 내용도 꽤 상세하고 흥미롭습니다. 임오군란과 갑신정변, 청일전쟁, 갑오경장,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피를 끓게 하는 명성황후시해사건에 관한 기록은 해당 시대 한국사 전공자가 아닌 독자 대부분에게 큰 충격을 줄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은 물론 저자도 다른 기록을 참고해 정리한 것이지만,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사실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독립협회에 관해서도 따로 한 개의 장을 두고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운동의 주인공인 서재필이 저자에게 써준 긴 메모의 전문이 책에 실려있어 당시의 재미있는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1907년 고종의 퇴위를 둘러싼 갈등과 순종의 즉위식도 상세히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개된 내용으로 보아 자신이 행사를 직접 취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어서 충청북도와 강원도 지역에서 전개되고 있던 의병 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현장으로 가서 겪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제8장에서 묘사된 아름다운 한국 농촌의 풍경이 너무 생생해서 시골에서 자란 분들이 이 부분을 읽으면 아련한 향수를 느낄 만합니다. 저자와 의병 지휘관의 대화에서 당신 의병이 처했던 암담한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 읽는 사람의 마음마저 답답하게 합니다.

제11장 이후에는 주로 일본의 공권력이 한국인을 잔인하게 탄압한 사례들이 소개됩니다. 탄압의 빌미가 됐던 주요 사건은 1911년 105인 사건(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 사건)과 1919년 3.1 독립운동입니다. 물론 105인 사건은 터무니없는 날조극이었습니다. 병탄조약 직후 동요하는 민심을 억누르기 위한 엄포였을 것입니다.

이 두 사건과 관련된 잔인한 고문의 실상은 따로 요약하기도 어렵습니다. 수많은 사례를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과장되거나 날조되지 않은, 명백한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가 무던히도 신경을 썼다는 점입니다.

일본의 잔학성을 고발하는 데서 나아가 저자는 비폭력 저항운동에서 보여준 한국인의 용기와 품위에 대해 깊은 감탄과 존경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저자는 놀라운 통찰력으로 국제정세의 전개 방향을 예측하며, 미국과 영국 등 열강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는 일이 한국인을 폭압에서 구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장차 발생하게 될 거대한 전쟁을 미리 억제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아쉽게도 당시 미국은 일본 편에 서서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는 것을 묵인했고, 그 결과 우리 민족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미국은 또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 우리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시 고종황제가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낸 밀서의 눈물겨운 내용과 그 밀서를 대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를 읽어 보면 수치와 울분을 참기 어렵습니다.

우리 처지에서 볼 때 몇 가지 흠도 눈에 띕니다. 우선 조선 왕조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한 인식으로 간단히 깎아내리는 것이 그렇습니다. 사실 그런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니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닐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와 전명운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폭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 자체를 나무랄 수 없겠으나 이런 종류의 테러가 억압당하는 민족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또 한 가지는 곳곳에 오리엔탈리즘의 기색을 드러낸다는 점입니다. 서양인의 무의식적인 우월감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2014년 우리 정부가 저자의 공로를 인정하여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늦었지만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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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하고 주로 책을 읽고, 간간이 번역일도 하며 소일합니다. 인문, 사회, 정치, 경제 등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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