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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도 상상 못한 설교, 페스트 때보다 퇴화한 코로나 시대 종교

[取중眞담] 73년 전 '소설 속 이야기' 2020년 현실로... 종교 넘어 왜곡된 정치적 입장 투영

등록 2020.09.08 08:30수정 2020.09.0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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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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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9일 경북 경산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중증환자가 서울 양천구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남병원에 후송되고 있다. ⓒ 이희훈


한국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창궐했던 지난 3월 이후, 알베르 카뮈의 1947년 작 소설 <페스트>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퍼지는 이 바이러스 앞에서 사람들은 73년 전 소설을 다시 손에 들었다.

<페스트>엔 의사, 기자, 법조인, 공직자, 청년, 범죄자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이 글에선 많은 등장인물 중 성직자 파늘루에 주목하려고 한다. 도시의 저명한 신부인 그는 페스트 창궐 후 시민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사 이래 하느님께서 내리신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하느님 발밑에 꿇어앉혔습니다. (중략) 오늘 여러분에게 페스트가 닥친 것은 반성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이 떠는 것은 당연합니다."

책을 손에 쥔 이들 대부분은 이 대목에서 혀를 찰 것이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염병의 원인과 그것이 주는 공포를 깨우친 인류는 파늘루의 설교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맹신 바이러스

하지만 그와 같은 일이 2020년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정부가 교회의 대면예배를 제한하자,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 모양새다. 아래는 지난 8월 30일 대면예배를 강행한 한 목사의 설교 내용이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면 천국 가고 예배를 안 드리면 지옥 가는 겁니다. (중략) 하나님은 전염병을 주실 수도, 해결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예배를 중단한다? 예배를 드려야 코로나가 없어지는 겁니다. 코로나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 믿습니다. (중략) 하나님께선 고난을 통해 (믿음을) 굳건하게 만들고 있어요. 믿음과 기도로 이기지 못하면 환난과 박해가 일어날 때 넘어져 버립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엔 카뮈조차 예측하지 못한 더욱 큰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일부 목사들이 왜곡된 정치적 입장을 이 사안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주사파 정부'가 나라를 북한에 팔아 교회를 문 닫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더욱 대면예배를 강행하고 정부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설교한다. 급기야 선지자를 자처하고 순교를 입에 올린다. 과학적 사고에 기초해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지금, 편향된 종교관·정치관에 의한 맹신이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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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7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목사가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사택을 나와 성북보건소 차량에 탑승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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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8일, 코로나19 확진자가 대량 발생한 서울 장위동 사랑제일교회 관계자들이 방역 작업을 하는 성북구청, 보건소, 주민센터 직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 권우성


거창하게 '종교인의 자세'까지 이야기할 것도 없다. 최근 시민들로부터 박수 받은 몇몇 목사의 글은 장대한 다짐이 아닌 누구나 공감하는 상식을 담고 있기 때문에 호응을 얻었다.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것은 잠잠하라는 뜻입니다. 손을 자주 씻으라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뜻입니다. 사람과 거리두기를 하라는 것은 자연을 가까이 하라는 뜻입니다. 대면예배를 금지하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집합을 금지하라는 것은 소외된 자들과 함께 하라는 뜻입니다." - 부산 샘터교회 안중덕 담임목사

<페스트>의 신부 파늘루는 어떻게 됐을까? 그가 "주님, 이 아이를 구해주소서"라고 혼신의 힘을 다해 외치지만, 판사 오통의 어린 아들은 페스트 앞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아이를 돌보던 의사 리외는 "이 아이는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라며 파늘루에게 따지듯 울부짖는다. 다시 사람들을 모아 회심(回心)의 설교를 한 파늘루는 시민들이 조직한 보건대에 합류해 페스트와의 싸움을 돕다 숨진다.

카뮈는 의사 리외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신이 침묵하고 있는 하늘을 바라볼 일이 아니라, 신을 믿지 않고 온 힘을 다해 죽음과 싸우는 것이 어쩌면 신에게도 더 좋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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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1일 서울 용산구 대형병원에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한 이들이 의료진의 안내에 따라 대기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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